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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신입 사원 연수 (4)

"오늘 오후 훈련은 모의 전투입니다." 1주차 마지막 날. 대망의 하이라이트, 서바이벌 게임 시간이 다가왔다. 훈련장은 숲속에 지어진 모의 시가지였다. 폐허가 된 콘크리트 건물들, 깨진 유리창, 그리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드럼통과 폐타이어. 마치 '대붕괴' 직후의 서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스산한 풍경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녹슨 철문이 끼익끼익 소리를 냈고, 공기 중에는 낡은 시멘트 가루 냄새와 페인트 탄의 화학 약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지급된 장비는 가스압 작동식 모의 총기. 탄알은 수용성 페인트탄. 하지만 맞으면 꽤 아픕니다. 멍이 들 수도 있으니 보호 장구 착용 철저히 하십시오." 조현태 교관이 무표정한 얼굴로 설명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색 MP5 모의 총기가 묵직해 보였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눕니다. 룰은 간단합니다. 상대 팀의 깃발을 뺏거나, 전멸시키면 승리. 승리 팀에게는 연구소 복귀 후 특별 휴가 1일이 주어집니다." "와아아아!" '특별 휴가'라는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좀비 같던 동기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광기 어린 눈빛. 저건 더 이상 연구원의 눈이 아니었다. 휴가에 목마른 직장인이라는 이름의 전투병기였다. 나도 귀가 솔깃했다. 휴가라니. 집에서 뒹굴거리며 밀린 무료 연재분 웹툰을 정주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돼.' 지급받은 총을 들어보았다. 묵직한 그립감, 차가운 금속의 감촉. 익숙하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소름이 돋았다. 총을 잡는 순간, 내 몸의 '스위치'가 켜질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 군 생활 11년 동안 내 손에 쥐었던 건 펜보다 총이 더 많았다. 조준, 호흡 조절, 격발, 반동 제어. 그건 머리가 아니라 근육이, 뼛속의 골수가 기억하는 영역이다.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더블 탭'이나 '헤드샷'을 날렸다간? "어머, 서 과장님. 사격 자세가 델타포스급이시네요? 군대 어디 나오셨어요?" 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작전은 하나다. [작전명: 불운한 총알받이] 시작하자마자 적당히 나대다가, 눈먼 총알에 맞고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전사자 대기 구역' 그늘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잔다. 이기면 휴가라지만, 여기서 에이스 노릇을 하느라 땀을 흘리느니 차라리 일찍 죽고 쉬는 게 낫다. "형님, 같은 팀이네요! 잘 부탁드려요! 저 FPS 게임 고수예요!" 백팀이 된 정민재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고글을 쓴 그의 모습이 비장해 보였지만, 총을 잡은 폼은 영락없는 초보였다. 개머리판이 겨드랑이 밖으로 빠져 있었다. 미안하다, 민재야. 형은 먼저 간다. "개시!" 호각 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폐허가 된 도시 세트장 여기저기서 피슝! 피슝! 하는 파열음과 함께 형형색색의 페인트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총을 들고 건물 사이를 걸었다. 누가 봐도 "나 여기 있어요, 제발 쏴주세요, 저는 무방비 상태입니다"라고 광고하는 표적지 같은 자세였다. '자, 어디 있냐 저격수들아. 제발 나 좀 맞춰주라.' 내 눈은 흐리멍덩하게 풀려 있었지만, 머릿속의 전술 지도는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은 북서풍, 풍속 3m/s. 습도는 60%. 건물 2층 창문, 3시 방향 폐차 뒤, 9시 방향 드럼통. 적이 매복하기 좋은 포인트들이 붉은색 글씨로 오버랩되어 보였다. 저기, 저기, 그리고 저기. 인기척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정보를 무시하고, 가장 위험한 개활지로 걸어 나갔다. 부스럭. 그때였다. 오른쪽 10시 방향, 무너진 벽 뒤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호흡 소리. 그리고 옷깃이 스치는 소리. '왔다!' 본능적으로 탄도 궤적이 머릿속에 3D 그래픽처럼 그려졌다. 거리 15m. 각도상 저기서 쏘면 내 오른쪽 어깨를 스치거나 가슴에 맞을 것이다. 완벽하다. 적당히 맞고 "으악!" 하고 쓰러지면 퇴근이다. 자, 쏴라! 어서! 파앙!! 압축 가스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페인트탄이 날아왔다. 시간이 느려졌다. 회전하며 날아오는 페인트탄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가만히 맞...으려고 했는데. 움찔. 내 빌어먹을 몸뚱이가 제멋대로 반응했다. 총알이 날아오는 찰나, 생존 본능이 뇌의 이성적인 명령을 씹어 드시고 척추 반사를 일으켰다. 상체가 순식간에 뒤로 젖혀졌다. 정말 종이 한 장 차이. 슈욱- 페인트탄은 내 코앞을 쌩 하니 지나가 뒤쪽 시멘트 벽에 '퍽' 하고 터졌다. 노란색 물감이 예술적으로 튀었다. "......" 벽 뒤에 숨어 있던 상대 팀원이 고글을 비비는 게 보였다. '어? 방금 뭐지? 버그인가? 왜 안 맞았지?' 하는 표정이었다. '아, 젠장!' 피하면 안 되는데! 이 놈의 저주받은 반사 신경, 제발 좀 진정해! 11년 동안 쌓인 PTSD가 이렇게 무섭다. 나는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척하며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연기 톤조절에 실패해서 삑사리가 났다. "으아악! 뭐야! 깜짝이야!" 그리고는 일부러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으려 했다. 넘어져서 데굴데굴 구르는 척하다가, 2차 사격에 맞을 생각이었다. 완벽한 시나리오 수정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넘어지려고 뒷걸음질 친 그 자리에, 튀어나온 굵은 나무뿌리가 있었다. 탁. 발이 나무뿌리에 걸렸다. 내 몸은 엉덩방아가 아니라, 앞으로 꼬꾸라지며 다이내믹한 슬라이딩 자세가 되어버렸다. 마치 야구 선수가 홈으로 도루하듯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잡으려던 내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눈먼 총알 한 발이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곡사포? 아니다. 그냥 오발탄이다. 포물선을 그리며 힘없이 날아간 노란색 페인트탄은 숲 너머 보이지 않는 덤불 속으로, 전장 밖으로 사라졌다. 당연히 아무것도 안 맞겠지. 그런데. "억!!" 짧고 굵은 비명 소리가 숲을 갈랐다. 그리고 잠시 후. "백팀 승리! 청팀 지휘관 전사했습니다! 상황 종료!" 교관의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어?" 나를 포함해, 총을 쏘던 모든 사람이 동작을 멈추고 벙쪘다. 청팀 지휘관? 누군데? 동기 중에 지휘관이 있었나? 풀숲이 갈라지며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연병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숲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번 훈련에 특별 교관이자 대항군 지휘관으로 참전한 **'조현태'**였다. 리바이벌 팀의 전투대장이자, 전직 헌터. 인간 흉기. 걸어 다니는 살인 병기. 그 무시무시한 인간이, 지금 이마 정중앙에 선명한 노란색 페인트 자국을 달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노란 물감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려 뚝, 뚝 떨어졌다. "......" 조현태가 고글을 벗고 살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정말 어이가 없어 보였다. 분노라기보다는 황당함에 가까웠다. 자신은 완벽하게 은폐하고 있었고, 일반인이 감지할 수 없는 거리에 있었는데. 난데없이, 정말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곡사포' 같은 페인트탄이 정확히 미간에 꽂힌 것이다. "누구입니까." 낮게 깔린 목소리. 살기가 서려 있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아직 슬라이딩 자세로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마치 사격을 마친 저격수처럼. 내 총구에서는 아직도 희미한 물감 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혀... 형님?!" 정민재가 입을 턱 빠질 정도로 벌렸다. "보, 보지도 않고 쐈는데... 헤드샷?" "게다가 저 거리에서? 곡사로? 바람까지 계산한 거야?" "와... 미쳤다. 진짜 숨겨진 스나이퍼 아니야? 특수부대 출신이라더니 진짜였어?"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졌다. 존경과 경외, 그리고 공포가 뒤섞인 시선들. '아니, 아니야! 실수라고! 넘어진 거라고! 바람 계산 같은 거 안 했다고!' 나는 벌떡 일어나 해명하려 했다. "저, 저기! 교관님! 이건 오해입니다! 제가 쏘려던 게 아니라, 발이 걸려서 넘어지다가 그냥 오발 된 건데... 운이 나빴던 것 같습니다!" "운?" 조현태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가까이 오자 진하고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수많은 사선을 넘은 자만이 풍기는 기운.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단순한 훈련생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먹잇감을, 혹은 라이벌을 발견한 맹수의 눈. "넘어지는 척하면서 반동을 이용해 곡사 사격을 했다? 그것도 헌터의 미세한 기척을 읽고, 바람의 방향까지 계산해서?" "네? 아니, 기척 못 읽었는데요? 진짜 그냥 넘어진..." "겸손하군요. 아니면 정체를 숨기는 건가?" 조현태는 장갑 낀 손으로 이마의 페인트를 쓱 닦아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소름 끼쳤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미소, 혹은 목덜미를 물기 직전의 늑대 같았다. "서준혁... 기억해두겠습니다. 다음엔 페인트가 아닐 겁니다." '망했다.' 제대로 찍혔다. 이소연 과장에, 강하윤 씨에, 이제는 조현태까지.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월급 받으며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데, 왜 자꾸 사건의 중심이 되는 거지? 왜 내 몸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거야! "와아아아! 서준혁! 서준혁!"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백팀 동기들이 나를 헹가래치기 시작했다. 특별 휴가를 따낸 영웅 대접이었다. 나는 하늘로 붕 뜨면서 울상이 되었다. "내려줘! 제발 내려줘! 나 영웅 아니라고! 나 찍혔다고!" 하지만 내 비명은 환호성에 묻혔다. 멀리서, 통제탑 위에서 한 교관이 이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무전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네, 박사님. 확인했습니다. 서준혁... 물건이네요. 우연을 가장한 실력인지, 진짜 천운을 타고난 건지. 오발탄으로 헌터의 미간을 맞추다니...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내 신입 연수는 이렇게 파란만장하게, 그리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화려하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아니, 아직 끝이 아니었다. 진짜 지옥은 지금부터였다. 숲 깊은 곳에서. 페인트탄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에 자극받은 '진짜'가 깨어나고 있었으니까. 땅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낫을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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