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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신입 사원 연수 (3)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보급은 없습니다. 알아서 먹을 것을 구하십시오." 일요일 점심. 가장 배고픈 시간. 교관의 무자비한 선언이 떨어지자, 훈련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투명해질 지경이었다. 아침도 고작 시리얼 한 줌으로 때웠다. 위액이 위벽을 갉아먹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점심과 저녁까지 굶으라고? "여기는 곤충연구소 신입 연수입니다. 자연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연구원의 자질입니다. 휴대폰 등 모든 전자기기는 압수했으니, 편의점이나 배달 어플 같은 문명의 이기에 기댈 생각은 마십시오. 곤충이든 풀이든, 알아서 섭취하십시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옆에서 자원관리팀 신입이자, 훈련 기간 내내 나의 든든한 '몸개그 파트너'가 되어준 김석훈 씨가 중얼거렸다. 185cm의 거구에 95kg. 곰 같은 덩치지만 심성은 비단결 같은 남자. 하지만 '밥심'으로 사는 그에게 단식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의 큰 덩치가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는 벌써부터 손을 덜덜 떨며 안경 쓴 홍보팀 동기 최유리 씨에게 물었다. "유리 씨, 어쩌죠? 저 진짜 배고픈데... 혈당 떨어지고 있어요. 손 떨리는 거 보이세요?" "진정하세요, 석훈 씨. 교관님 말이 맞아요. 이론상 인간은 물만 있으면 3주는 버틸 수 있대요. 지방을 태우면 되니까..." 최유리 씨는 안경을 고쳐 쓰며 냉정하게 분석했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르륵 하는 천둥소리가 그녀의 배에서 울렸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하아... 그럼 우린 뭘 먹죠? 흙이라도 퍼먹어야 하나..." 김석훈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발밑의 흙을 쳐다봤다. 다른 조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개중에는 공황 상태에 빠져 벌써부터 아무 풀이나 뜯어서 씹어보며 퉤퉤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저거 독초인데. 미치광이풀 잎을 씹으면 환각 보일 텐데. '나서는 건 금물이다.' 나는 속으로 셈을 했다. 여기서 내가 나서서 토끼를 사냥해오거나, 화려한 부비트랩 기술을 보여주면 눈에 띄게 된다. 내가 원하는 건 '평범한 연구원 서 과장'이지, '레어 그릴스 서준혁'이 아니다. 하지만 굶는 건 싫다. 나도 배고프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동료들을 '아바타'처럼 조종해서 생존하는 것이다. "일단 역할부터 나누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저는 식물이나 버섯 종류는 잘 모릅니다. 잘못 가져왔다간 다 같이 배탈 나서 의무실 실려 갈 수도 있고요. 대신... 오늘 밤 추울 텐데 잘 곳을 마련하는 건 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릴 때 시골에서 비닐하우스 좀 쳐봤거든요." "아, 쉘터요? 좋은 생각이네요." 최유리 씨가 눈을 반짝였다. "밤에 산속 기온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저체온증이 오면 칼로리 소모가 더 심해져서 위험해요. 체온 유지가 식사보다 우선일 수 있죠." 그녀의 분석적인 성격이 도움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니까. "그럼 제가 형님을 돕겠습니다! 힘쓰는 건 자신 있습니다. 나무라면 얼마든지 옮길 수 있어요!" 김석훈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팔뚝은 웬만한 통나무만 했다. "그럼 저는 먹을 걸 구해올게요! 곤충학 전공의 명예를 걸고, 단백질 공급원은 책임지겠습니다!" 정민재가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숲으로 뛰어들었다. 녀석의 뒷모습에서 비로소 제 전공을 살릴 기회를 잡은 '덕후'의 열정이 느껴졌다. 김석훈과 나는 숲속의 적당한 공터를 찾아 작업을 시작했다. 바닥이 평평하고, 물기가 없으며, 머리 위에 죽은 나뭇가지가 없는 안전한 곳. "석훈 씨, 저기 쓰러진 나무 좀 가져와 줄래요? 기둥으로 쓰게." "넵! 맡겨만 주세요!" 김석훈은 곰 같은 덩치 값을 톡톡히 했다. 내가 낑낑대는 척하며 "어익후 무거워라" 하고 놓는 통나무를, 그는 한 손으로 번쩍 들어 날랐다. 인간 지게차, 아니 인간 굴착기였다. 나는 그가 가져온 나무들을 엮어 뼈대를 세웠다. 칡넝쿨을 이용해 나무와 나무를 묶었다. 매듭 묶는 법이 군대식이나 스카우트 방식이 아니라, 최대한 엉성해 보이도록 신경 썼다. 매듭을 짓고 나서 일부러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모양을 비뚤배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하중을 완벽하게 분산시켜 튼튼하게. "과장님, 입구는 저쪽이 좋겠어요." 주변 지형을 살피던 최유리 씨가 손가락으로 북서쪽을 가리켰다. "아까 지형을 살펴봤는데, 계곡이 저쪽 동남쪽에 있더라고요. 밤이 되면 산풍이 불어서 바람 방향이 바뀔 수 있어요. 입구를 반대로 해야 찬 바람을 막을 수 있어요." "아, 그렇군요! 역시 유리 씨는 똑똑하시네요. 풍향까지 생각하다니."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휜 방향과 바위의 이끼가 낀 위치만 봐도 바람길을 알 수 있다. 내 뺨에 닿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도 북서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짐짓 감탄하며 그녀의 조언대로 입구 방향을 잡았다. 덕분에 '똑똑한 신입 사원'과 '말 잘 듣는 착한 과장'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잠시 후, 꽤 그럴듯한 쉘터가 완성되었다. A자형 텐트 모양으로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넓은 잎과 마른풀을 겹겹이 덮어 방수와 단열 효과를 냈다. 바닥에는 마른 낙엽을 30cm 두께로 깔아 푹신한 침대를 만들었다. "우와! 형님! 이거 진짜 대박인데요? 여기서 살아도 되겠어요!" 숲에서 돌아온 정민재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쳤다. 녀석의 손에는 정체불명의 꿈틀거리는 것들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먹을 것도 구해왔어요! 최고급 고단백 영양식!" 정민재가 봉지를 열자, 김석훈과 최유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으악! 그게 뭐야!" "설마... 그걸 먹자고요? 살아있잖아요!" 봉지 안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굼벵이, 커다란 방아깨비, 그리고 뒷다리가 튼실한 귀뚜라미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재는 진지했다. "이게 보기엔 좀 그래도 진짜 영양 덩어리예요. 소고기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다고요. 제가 독 있는 건 다 골라냈으니 안심하세요." "하아... 배고프니까 눈에 뵈는 게 없네요. 먹읍시다. 기절하느니 먹고 죽는 게 낫죠." 김석훈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문제는 조리였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생식을 할 수는 없었다. 기생충 감염의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비주얼이... "불이 있어야 굽든 볶든 할 텐데..." "라이터도 없는데 어떡하죠? 스마트폰도 없어서 검색도 못하고..." 최유리 씨가 난처한 표 정을 지었다. 압수당한 물품 중에 부싯돌이나 성냥 같은 건 없었다. 교관 놈들이 철저하게 털어갔다. "음... 제가 예전에 영화 '게스트 어웨이'를 감명 깊게 봤거든요. 툼 행크스 나오는 거."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 턱을 쓰다듬다가 말을 꺼냈다. "거기서 보니까 나무랑 끈으로 불을 피우더라고요. 마찰열로. 보 드릴 방식이라고 하던가?" "아, 그거요? 그거 엄청 힘들 텐데... 일반인이 성공하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석훈 씨 힘이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한텐 '인간 굴착기'가 있잖아요." 나는 김석훈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김석훈이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봅시다! 저 오늘 밥 못 먹으면 죽어요! 불이든 뭐든 다 피워버리겠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적당한 나무를 구했다. 나는 활처럼 생긴 휜 나뭇가지에 내 군화 끈을 풀어서 묶고, 가운데에 30cm 정도 되는 단단한 참나무 가지를 끼웠다. 그리고 밑판이 될 평평한 소나무 조각에 작은 홈을 팠다. 일명 '파이어 보' 세트. "자, 석훈 씨. 이걸 잡고 톱질하듯이 앞뒤로 당기면 돼요. 제가 위에서 누를게요." "맡겨만 주세요!" 김석훈이 씩씩대며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쓱싹, 쓱싹, 쓱싹. 마찰 소리가 숲의 정적을 깼다. 나무 타는 냄새가 났지만 연기는 피어오를 듯 말 듯했다. "좀 더 세게! 더 빠르게! 리듬을 타세요!" 김석훈의 이마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팔 근육이 터질 듯 팽창했다. 단순 무식한 힘 하나는 끝내준다. 하지만 힘만으로는 불이 붙지 않는다. 중요한 건 회전 속도와 누르는 압력의 균형, 그리고 산소가 공급될 타이밍이다. 일반인이 처음 해서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다. '지금이다.' 나는 위에서 누르고 있는 나무 손잡이('핸드 피스')의 각도를 미세하게 틀었다. 아주 살짝, 1도 정도. 마찰열이 흩어지지 않고 밑판의 홈, 'V'자 홈으로 집중되도록. 그리고 공기가 통할 틈을 만들어주면서 미세하게 입김을 불어넣었다. 치이익- 검은 목탄 가루가 쌓이더니, 그 중심에서 붉은 점 하나가 반짝였다. 생명의 불씨였다. "어?! 불씨다!" 민재가 소리쳤다. 나는 김석훈을 멈추게 하고, 재빨리 준비해둔 마른 쑥과 억새 뭉치에 소중한 불씨를 옮겨 담았다. 그리고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입으로 호호 불었다. 후우, 후우, 후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펑! 주황색 불꽃이 춤추듯 타올랐다. "와아아!!" "대박! 진짜 불이 붙었어!" 김석훈이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으며 환호했다. "하아... 하아... 제가 해낸 거죠? 와, 나 진짜 재능 있나 봐. 정글의 규칙 나가야겠어." "석훈 씨 진짜 대단해요! 이걸 한 번에 성공하다니!" 최유리 씨가 박수를 쳤다. 사실 내가 각도 조절 안 해줬으면 김석훈은 팔만 빠지고 실패했겠지만,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다. "석훈 씨 뚝심이 대단하네요. 저는 그냥 옆에서 거들기만 했습니다." 나는 공을 김석훈에게 돌리며 씩 웃었다. 덕분에 나는 '옆에서 나무나 잡아준 착한 형', '운 좋은 조력자'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피어오르자 숲의 냉기가 밀려나고,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우리는 불 주위에 둘러앉았다. 원시인처럼. 민재는 평평한 돌판을 달구고, 잡아 온 곤충들을 굽기 시작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의외로... 맛있는 냄새였다. 새우 굽는 냄새와 비슷했다. 징그러워하던 김석훈도 코를 킁킁거리며 군침을 삼켰다. "음!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고소해요!" "그죠? 메뚜기는 튀김 맛이고, 굼벵이는 땅콩 버터 맛 나요." 우리는 '곤충 파티'를 벌였다. 배가 고프니 미슐랭 요리 부럽지 않았다. 나는 혹시 몰라 쉘터 주변에 쳐둔 덫에 걸린 눈먼 야생 토끼 한 마리도 슬쩍 꺼냈다. (사실 눈이 먼 게 아니라, 내가 짱돌을 던져 기절시킨 놈이다.) "어? 여기 토끼가 죽어있는데요? 덫에 걸렸나 봐요." 내 뻔뻔한 연기에 민재가 "와! 형님 운 진짜 좋으시네요! 로또 사세요!"라며 감탄했다. 우리는 토끼까지 구워 먹는 호사를 누렸다. 배를 채우고, 따뜻한 모닥불 앞에 앉아 타닥거리는 장작 소리를 듣고 있자니. 여기가 지옥 훈련장이 아니라 캠핑장처럼 느껴졌다. 밤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기... 다들 고마워요." 불에 구운 굼벵이를 오물거리던 민재가 불쑥 입을 열었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아니었다.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사실 저, 곤충학 전공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엄청 비웃었거든요. 친구들이 '파브르 나셨네', '징그러운 벌레나 보면서 밥은 먹고 살겠냐' 그러고... 소개팅 나가서도 전공 말하면 다들 표정 굳고..." 민재가 씁쓸하게 웃으며 타닥거리는 장작불을 멍하니 응시했다. "부모님도 이해 못 해줬어요. 남들처럼 공무원이나 하지 왜 하필 벌레냐고. 근데... 오늘처럼 제가 아는 지식이 도움이 되고, 다들 '맛있다', '고맙다'고 해주니까... 뭔가 인정받은 기분이라, 되게 좋네요." 그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장작 타는 소리만이 위로하듯 들려왔다. 김석훈이 먹다 남은 메뚜기 뒷다리를 쥔 채, 진지한 표정으로 민재의 어깨를 툭 쳤다. "민재 씨, 무슨 소리예요. 이거 진짜 맛있어요. 편견? 그건 안 먹어본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죠. 민재 씨 아니었으면 우리 오늘 다 굶어서 쓰러졌을 거예요." "맞아요. 저도 솔직히 처음엔 좀 거부감 들었는데, 민재 씨 설명 듣고 보니까 이게 미래 식량자원으로서 가치가 충분해 보이던 걸요?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하고요." 최유리 씨도 안경을 고쳐 쓰며 거들었다. "형님은요?" 민재가 기대에 찬 눈빛,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나를 봤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 나는 없어서 못 먹지. 네가 최고다, 민재야. 너 없었으면 우린 오늘 흙 파먹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형님!" 민재의 얼굴이 불빛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단순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닌, 따뜻한 충만감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서 과장님 아이디어 덕분에 살았어요. 영화에서 본 걸 기억하시다니." "저는 민재 씨가 벌레 보는 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석훈 씨 힘 아니었으면 저 나무들 못 옮겼을걸요? 불도 못 피우고." 서로 칭찬이 오가는 훈훈한 분위기. 이 차가운 숲속에서 우리 넷은 작은 불 하나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생존이라는 원초적인 목표가 오히려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멀리서 적외선 망원경으로 우리를 감시하던 교관의 표정이 묘하게 구겨졌다. "저 조... 뭐야? 왜 자기들끼리 힐링 캠프를 찍고 있어? 다들 울고불고 난리인데..." 교관의 황당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불멍을 때리는 척하며 남몰래 미소 지었다. 이 정도면 적당히 묻어가면서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겠군. '완벽해.' 하지만 나는 몰랐다. 나중에 내 인사 평가서에 [극한 상황에서의 임기응변 및 식량 확보 능력 우수 (S급)]이라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적히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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