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세금
지잉- 지잉-.
침대 머리맡에서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는 이 떨림. 알람이 아니다. 은행 어플 알림이다. 매달 25일 아침 7시. 내게는 기상 나팔 소리보다 더 정확하고, 심장 박동보다 더 무겁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나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이불 밖으로 뻗은 손으로 차가운 액정을 확인했다.
[KB국민은행] 입금: 3,500,000원 (급여) [국방부] 입금: 850,000원 (국가유공자 보훈 급여) [국방부] 입금: 1,200,000원 (특수임무 수행 보상금 - 1급 위험 수당 포함)
총액 555만 원. 30대 후반의 미혼, 평범한 직장인 치고는 꽤나 짭짤한 금액이다. 파브르 연구소의 파격적인 월급에, 군 생활 12년 동안 내 청춘과 연골, 그리고 영혼을 갈아 넣은 대가들이 합쳐진 숫자였다. 누군가는 이 숫자를 보며 적금 계획을 세우거나, 새 차 뽑을 꿈을 꿀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숫자는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다. 내 통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고작 3초.
딩동. 딩동. 딩동.
예약 이체 설정이 작동하며, 문자 메시지가 폭죽처럼 연달아 터졌다.
[출금] 300,000원 (김상철 님 - 평안하세요) [출금] 450,000원 (최민우 님 - 학비 보탬) [출금] 500,000원 (박진수 님 - 병원비) ...
12건의 이체 내역. 화면을 넘어가는 이름들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박혔다. 김상철 병장. 마지막 담배를 내게 양보하고 산화했다. 그의 노모는 아직 시골에서 홀로 농사를 짓는다. 최민우 하사. 전역하면 여동생 대학 등록금 대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대신 내준다. 박진수 중사. 아버지가 신장 투석 중이었다.
10년 전, 그 지옥 같은 겨울 속에서. 내가 살아남은 대신 차가운 동토에 묻혀야 했던 전우들의 가족들이다. 그들의 피가 내 삶의 거름이 되었다. 그러니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다.
마지막 문자가 도착했다.
[잔액] 34,800원
순식간에 로그아웃된 내 월급. 화려했던 숫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통장 잔고는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오늘 저녁에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으려면 쿠폰을 뒤져야 할 액수다. 하지만 나는 텅 빈 잔액이 찍힌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래, 다들 잘 받았겠지.'
화면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묘하게 젖어 있었다. 이건 적선이 아니다. 기부도 아니다. 부채 상환이다. 내 목숨값. 내가 지금 숨 쉬고, 따뜻한 밥 먹고, 아침 햇살을 볼 수 있는 이 시간들은 모두 그들이 대신 죽어준 덕분에 얻은 '덤'이니까. 매달 25일, 나는 생존자라는 죄목으로 세금을 낸다. 그러니 이 정도 세금은 기꺼이, 아주 기꺼이 낼 수 있다. 평생이라도.
나는 가벼워진 통장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창밖으로 아침 태양이 붉게 떠오르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때로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일이다.
"출근해야지."
30살. 남들은 대리 달고 결혼 준비할 나이. 내가 사회로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의 나이였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입대해서 11년을 군대 밥만 먹었다. 그것도 최전방, 지도에도 없는 특수부대에서 오직 괴수 때려잡는 기술만 연마하면서. 전역하던 날, 내 손에 쥐어진 건 명예로운 훈장 몇 개와, 비 오면 쑤시는 너덜너덜해진 몸뚱이, 그리고 늦깎이 대학 입학 통지서뿐이었다.
"신입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청춘의 낭만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화사한 벚꽃이 흩날리는 3월의 캠퍼스. 따스한 봄바람, 여학생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 기타 소리, 잔디밭의 싱그러운 풀 냄새. 그 모든 생기의 한가운데, 풋풋한 20살 새내기들 틈에 섞인 30살 '신입생' 서준혁의 모습은... 마치 컬러 TV 화면 속에 잘못 끼어든 흑백 사진 같았다. 솔직히, 많이 튀었다.
강의실 맨 앞자리. 백묵 가루 냄새가 나는 강의실 공기. 사그락거리는 필기 소리. 나는 교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나는 그저 '경청'하고 있었다. 교수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작전 브리핑처럼 새겨듣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배움에 목마른 내 눈빛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기들 눈에는 '타깃을 확인하고, 사살 명령을 기다리는 저격수의 눈빛'으로 보였나 보다.
"저기... 형? 교수님 얼굴 뚫리겠어요." "응? 아, 미안. 집중하다 보니."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았다. 아니, 내려놓으려고 했다.
뚝.
경쾌한 파열음. 내 손안에서 검은 모나미 볼펜이 정확히 두 동강 나 있었다. 잉크가 터져 손바닥에 검은 핏물처럼 번졌다. 어이쿠. 아직 힘 조절이 안 되네. 전장에서 방아쇠 당기던 압력이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20살 동기가 "히익"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는 그날 이후 내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책상도 문제였다. 수업 듣다가 자세 좀 고치려고 무심코 책상을 짚었는데, 우지끈. 합판이 비명을 질렀다. 미세한 금이 가며 나무 톱밥이 떨어졌다. 사회 물건들은 왜 이렇게 약해 빠진 건지. 전장의 강철 방벽에 익숙해진 나에게, 이 평화로운 세상의 사물들은 너무나도 연약했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의 전설은 강의실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만들어졌다. 신입생 환영회 MT. 대성리 펜션. 술 냄새와 고기 냄새, 그리고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찬 방. 짓궂은 복학생 선배들이 "나이 많은 신입생 형님 오셨다"며 소위 '신고식'을 준비했다. 커다란 양푼에 소주, 맥주, 막걸리, 사이다, 심지어 누군가가 장난으로 넣은 치약 맛 나는 싸구려 양주까지 섞은 지옥의 혼합주. 색깔부터가 늪지대 흙탕물 색이었다.
"준혁이 형, 이거 다 드실 수 있겠어요? 무리 안 하셔도..." "아, 괜찮아. 목말랐는데 잘됐네."
나는 망설임 없이 양푼을 들었다. 꿀꺽, 꿀꺽, 꿀꺽. 목젖이 위아래로 춤을 췄다. 나는 2000cc가 넘는 액체를 사막의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만난 듯 단숨에 비웠다.
크으-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감각. 하지만 그뿐이었다. 선배들의 눈이 만화 캐릭터처럼 휘둥그레졌다. 한 잔, 두 잔, 세 잔... 나를 보내버리겠다고 덤볐던 복학생들이 하나둘씩 화장실로 기어 전사하고, 결국 거실 바닥이 시체(?)들로 즐비해질 때까지. 나는 안주로 나온 눅눅한 뻥튀기만 집어 먹으며 멀쩡하게 정좌하고 있었다.
"혀... 형님? 안 취하세요? 얼굴색 하나 안 변하시네..." "음? 약간 알딸딸한 거 같기도 하고."
사실 하나도 안 취했다. 내 간은 이미 11년의 전장 생활 동안, 놈들의 독액과 생화학 가스에 내성을 갖도록 혹독하게 단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입대 초기 비밀리에 투여받았던 강화 혈청 '베타-7'의 부작용(?)... 아니 혜택으로, 내 신진대사는 일반인의 몇 배였다. 알코올 따위는 간에 도달하기도 전에 분해되어 열량으로 타버렸다. 나에게 술은 취하는 약물이 아니라, 고열량 에너지 드링크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전설의 알콜 탱크', '간강철 형님'으로 불리며 남초 학과의 탑(Top)이 되었다. (물론 성적 말고 술로.)
하지만 진짜 반전은 대학원, 석사 과정 때였다. 오래된 책 냄새가 나는 연구실. 창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였다.
"이게... 자네가 쓴 논문인가?"
노교수님이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손을 떨었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논문 제목: [절지류형 괴수의 화학적 의사소통 체계와 페로몬 구문론].
"네, 그렇습니다."
"놀라워. 이건... 단순히 페로몬 성분을 화학적으로 분석한 게 아니야. 놈들이 페로몬으로 체계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가설을 완벽하게 증명했어! 경계 신호, 공격 명령, 후퇴, 심지어 '배고픔'과 '유희' 같은 감정 표현까지..."
교수님은 흥분해서 침까지 튀기며 논문을 넘겼다.
"자네, 대체 이걸 어떻게 연구했나? 1급 위험 지역의 샘플은 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이런 디테일한 상황별 데이터는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불가능해! 마치... 놈들 둥지 안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썼군!"
나는 덤덤하게, 아주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상상력입니다."
거짓말이다. 그건 상상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7년 동안 매일 밤, 참호 속에서 놈들의 냄새를 맡으며 살았다. 피 냄새 속에 역하게 섞여 있던 비릿한 페로몬. 놈들이 공격해올 때 풍기던 톡 쏘는 산성 냄새(공격 신호). 도망갈 때 흘리던 쿰쿰한 곰팡이 냄새(공포). 동료를 부를 때 내던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과일 썩은 냄새(집결).
나는 그 냄새만 맡아도 놈들이 몇 마리인지, 기분이 어떤지, 어디를 다쳤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살기 위해서 익혀야만 했던 감각. 그저 내 머릿속, 아니 내 뼛속에 새겨진 그 끔찍한 '생존 데이터'를 고상한 학술 용어로 번역해서 A4 용지에 옮겨 적었을 뿐이다. 학계가 경악한 '천재성'의 정체는, 사실 'PTSD의 부산물'이었다.
그 논문 하나로 나는 단숨에 학계의 주목을 받는 '천재 연구원'이 되었다. 30살 늦깎이 신입생이, 38살에 박사 타이틀을 따고 국내 최고의 파브르 연구소에 입사하게 된 배경이었다.
"이번 역은 양재, 양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안내 방송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얼굴. 그때의 '천재 박사' 서준혁은 어디 가고, 지금은 낡은 백팩을 메고 졸고 있는 38살의 평범한 직장인이 서 있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지하철 문이 열리고 인파가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수군거린다. 일부러 아침에 달고 나온 가슴에 달린 [파브르 연구소] 배지를 보며. "와, 파브르 다니나 봐." "엘리트네." "연봉 쩔겠다." 그들이 상상하는 내 모습: 하얀 가운을 입고, 최첨단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고뇌하는 지성인. 현실의 내 모습: 창고 청소, 짐 나르기, 복사기 고치기, 그리고 가끔 밤에 사마귀랑 눈싸움하기.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뭐 어때. 오히려 이게 더 편하다. 상아탑의 답답한 공기보다는, 땀 흘리고 몸 쓰는 현장이 내 적성에 맞다. 펜보다는 삽이, 마우스보다는 총이(물론 지금은 잡을 수 없지만) 내 손에 더 익숙하다. 게다가 여기선 책이나 모니터 속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진짜' 괴수들을 볼 수 있으니까. 책상 머리에서 죽은 데이터만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훨씬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오자 뜨거운 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아침이다. 통장 잔고는 비었지만 마음은 꽉 찼고, 몸은 고되겠지만 점심에 나올 구내식당 메뉴는 꿀맛일 것이다.
"가자, 꿀보직 지키러."
나는 백팩을 고쳐 메고 출근하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