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그림자
끼익.
녹슨 철문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틈에 끼워둔 얇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확인했다. 그대로다. 끊어지지 않았다. 아직 타인의 숨결이 내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증거. 나는 안도의 한숨 대신, 습관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복도의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그림자들을 쫓아내듯.
"후우..."
현관문을 닫고 도어락을 잠갔다. 띠리릭, 하는 전자음이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걸쇠를 걸고, 현관 매트 아래 숨겨둔 압력 센서의 전원을 켰다. 초소형 스피커와 최루 액 분사기가 연동된, 조잡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방어선. 누군가 문을 부수고 발을 들이는 순간, 이 좁은 방은 120데시벨의 경보음과 매운 독가스로 오인 받을 소화액으로 가득 찰 것이다.
과민 반응이라고? 정신병이라고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 전, 옆에서 자고 있던 동료가 천장을 뚫고 들어온 놈들의 앞다리에 소리도 없이 목이 잘려나가는 것을 봤다면. 그리고 그 잘린 머리가 바닥을 구르며 마지막으로 눈을 깜박이는 걸 목격했다면. 누구도 침대보다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더 신뢰하게 될 것이다.
방은 좁았다. 빛바랜 벽지, 삐걱거리는 싱글 침대, 책상 하나, 그리고 철제 옷걸이.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자취방 풍경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의 껍질을 벗기면, 이곳은 요새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는 3일 치 식량과 구급낭이 든 생존 배낭이, 옷장 뒤편의 가벽 사이에는 날을 세운 정글도와 컴파운드 보우(석궁)가 숨겨져 있다. 물론, 집주인 아줌마가 알면 기절하다 못해 경찰을 부를 노릇이다.
나는 옷을 벗어 던졌다. 땀과 먼지, 꿉꿉한 지하 창고의 냄새, 그리고 묘한 성취감으로 범벅이 된 의사 가운을 의자에 걸쳤다.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매끈한 셔츠 속에 감춰져 있던, 뒤틀리고 찢겨진 역사가 드러났다.
등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고 굵은 흉터. 시베리아 벌판에서 놈의 발톱에 스쳤던 자국이다. 1cm만 더 깊었으면 척추가 끊어졌다. 오른쪽 어깨에 둥글게 남은 이빨 자국. 굶주린 들개 떼와 식량을 두고 싸웠던 흔적. 허벅지를 덮은 거무튀튀한 화상 자국. 화염방사기 연료통이 터질 때 튀었던 불똥의 기억. 내 몸은 살아있는 전쟁 역사 박물관이었다. 혹은, 실패한 인체 실험의 기록이거나.
"시작할까."
나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려 물구나무를 섰다. 혈류가 거꾸로 솟구치며 뇌를 때리는 감각. 시야가 뒤집히고, 세상의 중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나. 팔을 굽혔다 폈다. 삼두근이 찢어질 듯 팽창했다. 근섬유 하나하나가 끊어졌다 붙는 고통이 느껴졌다.
둘. 호흡을 가다듬는다. 들이마시는 숨에 방 안의 정적을, 내뱉는 숨에 하루의 긴장을 태운다. 후우- 웁- 후우-
셋.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따갑다. 하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집중했다. 중력이 내 몸을 짓누를수록, 나는 더 강하게 지구를 밀어냈다.
이것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의식이다. 오늘 하루, 어리숙한 신입 사원 '서준혁'으로 연기하느라 느슨해진 내 야성을 다시 조이는 과정이다. 사회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둔 날카로운 이빨이 무뎌지지 않도록 갈고닦는 시간이다. 근육이 터질 듯한 고통이 느껴져야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아직 죽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넷, 다섯, 여섯...
숫자가 늘어날수록 육체의 고통은 정신을 잠식한다. 의식은 몽롱해지고, 현실의 벽지가 흐릿하게 녹아내린다. 그 틈으로, 억지로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차가운 자취방 바닥의 냉기가 아니다. 살을 에는 듯한 삭풍. 피와 화약, 그리고 얼어붙은 진흙탕 냄새가 났다.
"준혁아! 엎드려!!"
쾅-!
고막을 찢는 폭음과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흙더미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참호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입안으로 흙과 모래가 씹혔다.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바로 옆에 있던 박 상병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대신 구멍 뚫린 철모와, 하반신만이 남아 경련하고 있었다. 터져 나간 살점과 내장이 뜨거운 비가 되어 내 얼굴을 적셨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크어억... 컥..."
박 상병의 머리가 굴러와 멈췄다. 그의 입이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목구멍에서는 핏물만 울컥울컥 솟구쳤다. 나는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공포는 사치였다. 목소리조차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우리는 떨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끼에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마찰음. 마치 칠판을 쇠갈퀴로 긁는 듯한, 영혼을 파괴하는 소리. 전방의 짙은 얼음 안개 속에서 '그것'들이 나타났다. 검은 갑각으로 뒤덮인 6미터 크기의 사마귀형 괴수. 블레이드 맨티스. 놈들의 앞다리에 달린 거대한 낫이 겨울 햇살을 받아 서슬 퍼렇게 번뜩였다. 저 낫 한 번이면 전차의 복합 장갑도, 인간의 여린 살가죽도 평등하게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사격! 사격 개시!!"
중대장의 절규 섞인 고함이 무전기를 때렸다. 참호선에서 K-22 소총과 마그네슘 레일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다다다당! 콰광! 화염이 밤을 밝혔다. 하지만 5.56mm 나토탄은 놈들의 단단한 키틴질 갑각에 튕겨 나갈 뿐이었다.
10년 전. 인류가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추락했던 날. '대붕괴'의 시작이었다.
중국 윈난성 깊은 산골, 고대 유적지 발굴 현장에서 시작됐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처음엔 신종 전염병인 줄 알았다. 산간 마을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증발했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저 대륙의 과장된 뉴스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놈들이 만리장성을 넘고, 압록강을 건너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북한? 그들이 자랑하던 백만 대군과 핵무기? 웃기지 마라. 놈들은 땅굴을 팠다. 지하 수백 미터까지 파고들어, 벙커에 숨은 수뇌부를 가장 먼저 씹어 먹었다. 머리가 잘린 군대는 오합지졸이었다. 지휘 체계가 마비된 북한군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살아남은 인민군과 2천만 굶주린 주민들이 좀비 떼처럼 휴전선으로 밀려 내려왔다.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뒤에는 괴수 떼를 달고서.
"살려주시요! 문 좀 열어주시요!" "괴물이다! 괴물이 온다!"
휴전선은 아비규환이었다. 우리는 총구를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랐다. 불쌍한 난민에게? 아니면 그 뒤에서 난민들의 머리를 씹어 먹으며 달려오는 괴물들에게? 지뢰가 터져 시신이 사방으로 비산되는 중에도 철책을 넘어온 북한 주민들을 그저 볼 수는 없었다. 다행이 그간 뭍어둔 휴전선의 대인지뢰와 대전차용 지뢰들이 괴수들의 남하를 막아섰다. 결국 철책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지옥이 한반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기술 발전이 되었다고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괴물들을 언제까지나 막을 수는 없었다.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우리는 그 방어선을 지켜내기위해 버려진 총알받이가 되었다. 매일 밤 동료가 죽어 나갔다. 어제 함께 뽀글이를 먹으며 전역하면 뭘 할지 이야기하던 김 병장이. 오늘 아침 마지막 남은 담배를 나눠 피던 최 하사가. 놈들의 먹이가 되어 씹히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어둠 속에서 불침번을 서야 했다. 우드득. 빠드득. 쩝쩝.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뜯기는 그 소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귓가에 선명하다. ASMR처럼, 매일 밤 자장가 대신 들려온다.
"서 하사! 정신 차려! 놈들이 뚫고 들어온다!"
누군가가 내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달빛을 가리며 드리워져 있었다. 사마귀 괴수가 낫을 치켜들고 있었다. 그 겹눈에 내 공포에 질린 얼굴이 수천 개로 복사되어 비쳤다. 죽는다. 이번엔 내 차례다.
하지만 그때였다. 하늘에서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재가 아니었다. 눈이었다.
괴수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녀석의 관절이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번개처럼 빠르던 낫 휘두르기가 슬로비디오처럼 느려졌다. 입에서 내뿜던 산성 증기가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었다.
"어...?"
그해 겨울은 유난히 빨랐고, 혹독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시베리아 한파. 대붕괴가 불러온 기상이변. 역설적이게도, 그 지옥 같은 추위가 인류를 살렸다.
그것이 우리를 살렸다. 놈들은 곤충이었다. 아무리 덩치가 커지고 흉폭하게 진화했어도, 태생적인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녀석들은 추위에 약했다.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놈들은 기온이 내려가자 급격히 둔해졌고, 동면에 들 준비를 하듯 본능적으로 땅속으로, 건물 지하로 숨어들었다.
인류에게 주어진 기적 같은, 아니 신이 내린 마지막 반격의 기회.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동계 대공세 작전! 한 놈도 남기지 마라!" "다 태워버려!"
얼어붙은 괴수는 쉬운 먹잇감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었다. 우리는 닥치는 대로 놈들을 쏘고, 태우고, 짓이겼다. 화염방사기로 놈들이 숨은 굴을 지질 때마다, 타들어 가는 키틴질 노린내가 진동했다. 그 냄새는 승리의 냄새였고, 동시에 죽어간 전우들을 위한 복수의 향기였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얼어붙은 압록강 위에서, 우리는 놈들의 시체로 산을 쌓았다. 그때 우리 부대의 별명은 '동장군'이었다. 추위보다 더 지독하게, 얼음보다 더 차갑게 놈들을 사냥하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놈들은 끈질겼다. 여왕. 군체를 지휘하는 여왕 개체들은 깊은 땅속, 마그마 근처 따뜻한 곳에 숨어 알을 낳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놈들은 더 강력해진 내성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럼 우리는 또다시 겨울을 기다리며 버티고, 다시 얼어붙은 땅 위에서 사냥하고... 그 지긋지긋한 소모전. 여왕을 잡기 위한 수많은 자살 작전들. '여왕 사냥', '하이브 버스터', '딥 임팩트'... 작전명만 거창하게 바뀌었지, 내용은 똑같았다. 죽으러 들어가는 것.
나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았다. 영웅이 되어서가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던 겁쟁이, 혹은 감정을 지워버리고 살인 기계가 되어버린 괴물이었기에.
"삼만구백아흔아홉... 사만!"
쾅!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바닥을 밀고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폐가 터질 것 같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역설적으로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잡념이 사라진, 명경지수와 같은 상태.
욕실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쏟아지는 찬물을 머리부터 맞으며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차가운 물줄기가 뜨거운 몸을 식히며 타임머신을 멈췄다. 10년 전의 전장은 이제 없다. 피비린내 대신 샴푸 향기가, 비명 소리 대신 옆집 TV 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에어컨 빵빵한 대기업 연구소와, 3분 카레가 있는 아늑한 자취방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종전으로 보일 뿐이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는 총칼 대신 자본과 기술로 무장하고, 우리에게 들키지 않는 곳으로 전선이 옮겨졌을 뿐이다.
놈들은 사라진 게 아니다. 어쩌면 놈들은 더 영리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아니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낫을 휘두르는 대신, 세련된 양복을 입고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는 방식으로.
나는 습기 찬 거울 속의 나를 노려보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긴 전장이 아니다."
이 평화는 내 자신에게는 가짜다. 언제든 다시 겨울이 올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다시 겨울이 다시 찾아온다면, 10년 전보다 훨씬 더 춥고 길 것이다. 내가 막지 못한다면.
띠링-
그때, 책상 위에 던져둔 스마트폰이 경쾌하게 울렸다. 현실의 소리. 메시지 알림음. 이 시간에 누구지? 스팸인가? 아니면 택배?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거칠게 털며 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하지만 메시지 내용을 보는 순간,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준혁 씨? 저 아까 의무실. 신혜림이에요.]
신혜림 실장이다.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인사팀 기록을 볼 권한이 있나? 이어지는 두 번째 메시지.
[가운 주머니 확인해 봤어요? 내 체취가 묻어서 냄새 좋을 텐데. 변태처럼 킁킁거리지 말고 잘 찾아봐요.]
무슨 소리야. 나는 젖은 몸을 이끌고 의자에 걸쳐둔 가운으로 달려갔다. 주머니를 뒤졌다. 아까 내가 넣어둔 금속 벌집 카드. 그건 그대로 안주머니에 차갑게 식어 있다. 그런데... 오른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손가락 끝에 빳빳한 종이의 질감이 걸렸다. 작게 접힌 쪽지였다. 아까 옷을 입을 땐 없었는데? 그녀가 가운을 던져줄 때, 그 찰나의 순간에 넣은 건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펴들었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이, 마치 붉은 립스틱으로 쓴 듯, 혹은 핏물로 쓴 듯 휘갈겨져 있었다.
[내 번호 소중히 간직해요. 언제고 필요할 수 있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샤워를 했는데도 오한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신혜림 실장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녀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그녀의 장난스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것은 아군일까, 적군일까.
나는 본능적으로 창문을 쳐다봤다. 블라인드 틈새로 보이는 어두운 밤거리.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방 떼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타닥, 타닥. 녀석들은 마치 누군가의 눈동자처럼, 집요하게 내 방 창문을 두드리며 안을 엿보려 하고 있었다.
탁. 나는 블라인드를 완전히 내렸다. 어둠이 방을 삼켰다. 그 어둠 속에서 내 눈만이 사마귀처럼 부릅뜨고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