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의 정원
"앉으세요, 서 과장님."
바이오솔루션팀 팀장실. 문이 열리는 순간, 은은한 난초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고급 공기청정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먼지를 걸러내고 있었다. 한승우 팀장이 손수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치이익- 고압의 증기 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커피 아로마가 난초 향과 섞여 묘하게 안정적인, 하지만 인위적인 평온함을 만들어냈다.
책상 위에는 단란해 보이는 가족사진이 원목 액자에 담겨 있었다. 리조트에서 웃고 있는 예쁜 아내와 토끼 같은 두 딸. 배경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 영락없이 '성공한 40대 가장', '자상한 아버지'의 표본이다.
하지만 나는 엉덩이를 가죽 소파 끝에만 걸친 채 긴장을 풀지 않았다. 10년 전, 전장에서 나는 수많은 '리더'들을 봐왔다.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고 뒤에서 웃는 자들. 혹은, 부하들을 위해 가장 먼저 총을 드는 자들. 진짜 무서운 지휘관은 고함을 지르거나 총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팀장처럼,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않는 사람. 상대의 숨소리 하나, 동공의 미세한 떨림 하나, 심지어 땀구멍이 열리는 반응 속도까지 캐치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부류.
'도청기... 책상 밑에 하나, 화분 뒤에 하나.' 내 눈은 본능적으로 방 안의 이질적인 진동수를 잡아냈다. 벽에 걸린 추상화 뒤에서 미세한 전자음이 들린다.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다. 여기는 그의 요새이자, 감시탑이다.
"적응은 좀 되십니까? 우리 회사가 좀... 독특하죠?"
"아, 네. 다들 개성이 넘치시더군요. 특히 의무실 쪽은..."
"하하, 신 실장이 좀 짓궂죠. 그래도 실력 하나는 업계 최고니까, 아프면 참지 말고 가세요. 그녀는... 고장 난 걸 고치는 데 도가 튼 사람이거든요."
팀장이 커피잔을 내밀었다. 하얀 본차이나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내가 잔을 받는 순간, 그의 시선이 내 손끝을 스쳤다. 아주 짧은 찰나. 0.1초도 되지 않는 시간. 하지만 내 손등의 굳은살 위치를 확인했다는 걸, 내 피부의 솜털이 감지했다.
일반적인 펜 굳은살은 검지 안쪽에 생긴다. 하지만 내 손에는 검지와 중지 사이 마디에, 그리고 엄지 안쪽에 두꺼운 굳은살이 박혀 있다. 총기의 방아쇠를 당기고, 무거운 탄창을 갈아 끼우고, 검잡이를 꽉 쥐느라 생긴 영광의, 아니 생존의 흔적. 그는 그걸 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돌렸다.
'들켰나?'
등줄기에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며, 어리숙한 리액션을 과장해서 터뜨렸다.
"아뜨뜨! 으아, 역시 팀장님 커피는 화끈하시네요! 혀 데일 뻔했습니다!"
"조심하세요. 리필은 무료니까요. 천천히 드십쇼."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사람 좋게 웃었다. 안경 너머의 눈빛이 잠시나마 부드러워졌다. 다행히 '눈치 없고 모자란 놈' 연기가 아직은 통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속아 주는 척하는 거거나.
"서 과장님. 우리 팀의 목표가 뭔지 아십니까?"
"음... 친환경 살충제 개발? 아니면 꿀벌 살리기 운동? 뉴스에서 보니까 요즘 꿀벌이 사라진다고..."
내 멍청한 대답에 그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말로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진짜 우리 팀이 하는 일을 보여드리죠."
지하 3층. 보안 레벨 5구역. 일반 사원들은 출입조차 불가능한 금기 구역.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은밀하게 '파브르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냄새가 있었다. 비릿하고, 축축하고, 묵직한 생명의 냄새. 비 온 뒤의 숲 냄새와 썩은 낙엽 냄새, 그리고 수만 마리의 생명체가 동시에 내뿜는 열기와 페로몬이 뒤섞인 기묘한 향기였다.
"와..."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물론 이번엔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놀랐다.) 거대한 강화 유리 돔 안에 인공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천장에서는 인공 태양 조명이 내리쬐고, 스프링클러가 주기적으로 미스트를 뿌려 열대우림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바벨탑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흙탑.
"군체 지능 연구실입니다."
한 팀장이 유리벽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흙탑의 표면이 시커멓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수만, 아니 수십만 마리의 개미였다. 그냥 개미가 아니었다. 어른 손가락만 한 병정개미부터 깨알만 한 일개미까지, 서로 다른 종처럼 보이는 녀석들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변종 개미 '자이언트 솔져'. 대붕괴 시절 나타난 몬스터의 유전자를 일반 개미에게 섞어 만든 키메라의 후예들.
놈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흙을 나르고, 누군가는 거대한 버섯 농장을 관리하고, 심지어 진딧물처럼 생긴 거대 곤충을 '가축'처럼 목축하여 꿀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인간의 도시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빈틈없이 통제된 전체주의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저 안에는 약 20개의 서로 다른 군체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개체 수만 40만 마리. 여왕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싸우지 않고 자원을 공유합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되었거든요."
그때, 튜브 안쪽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한 무리의 병정개미들이 더듬이를 격렬하게 비비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영역 다툼인지, 먹이 분배 문제인지 서로의 턱을 벌리고 물어뜯으려 했다.
한 팀장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유리벽 옆에 있는 제어 패널에 손바닥을 대고 눈을 감았다. 그의 손목에 낀 시계 형태의 디바이스가 푸른빛을 냈다.
지잉-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느꼈다. 피부의 솜털이 곤두서는 감각. 초음파와 뇌파가 섞인 미세한 진동이 공기를 때렸다. 그 순간, 미쳐 날뛰던 수십 마리의 개미가 거짓말처럼 동작을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자 연주를 멈춘 오케스트라처럼. 곧이어 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줄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업무(?)로 복귀했다.
'방금... 정신 감응 아이템?'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질적인 힘이다.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다. 사용자의 뇌파를 증폭시켜 곤충의 신경계에 직접 명령을 꽂아 넣는 기술. A급 이상의 정신 계열 능력자만이 가능한 광역 제어다. 대체 이 사람, 정체가 뭐냐? 단순한 연구원 팀장? 아니면...
"보시다시피, 놈들은 본능적으로 혼란보다는 질서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 '통제'의 알고리즘을 연구해서 인공지능이나 무인 로봇 제어 기술에 응용하고 있죠."
팀장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떼며 말했다. 평온한 얼굴. 40만 마리의 생명을 손가락 하나로 조종해 놓고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 나는 짐짓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공포심을 숨기기 위해 너스레를 떨었다.
"와... 근데 쟤네는 점심시간도 없습니까? 불침번도 없이 24시간 근무라니, 이거 노동법 위반 아닌가요? 개미 노조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
팀장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봤다. 아, 드립 실패인가. 너무 나갔나.
"하하... 서 과장님은 참, 인간적이시네요. 걱정 마세요. 녀석들은 일하는 게 행복입니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스스로 동료의 먹이가 되어 단백질로 환원되죠. 그게 저들의 '복지'입니다."
그의 말이 섬뜩하게 들린 건 기분 탓일까.
다음 코스는 갑충 구역이었다. 이곳은 마치 갑옷을 입은 중세 기사들의 연무장 같았다. 금속성의 마찰음이 유리벽을 넘어 들려왔다.
"티긱! 티디딕!"
작은 강아지만 한 크기의 사슴벌레 두 마리가 사육장 한 켠에서 뿔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녀석들의 갑각은 단순한 껍질이 아니었다. 조명을 받을 때마다 에메랄드빛과 짙은 보라색이 오묘하게 섞여 빛나는, 살아있는 보석 같았다. 방탄 서보다 단단해 보이는 그 등껍질 위로 유려한 광택이 흘렀다. 집게가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물론 내 상상 속에서만, 하지만 그 충격음은 진짜였다.)
"저 녀석들의 외골격 구조는 현존하는 어떤 합금보다 가볍고 충격 흡수율이 뛰어납니다. 다층 나노 구조. 우리 연구소의 주력 상품인 차세대 방탄복, '비틀 슈트'가 바로 저 녀석들의 DNA와 구조를 모방해서 만들어지죠."
옆 수조에는 축구공만 한 쇠똥구리들이 거대한 덩어리를 굴리고 있었다. 냄새가 좀... 구수하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똥이 아니었다. 폐건전지,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흘러내리는 보라색 슬라임 덩어리들(아마도 독극물).
"환경 정화팀입니다. 놈들은 강력한 소화 효소로 산업 폐기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저준위 방사능 오염 물질까지 분해해서 순수한 바이오 에너지로 바꿉니다. 걸어 다니는 원자력 발전소죠."
"에너지요?"
내 눈이 반짝였다. 이건 컨셉이 아니라 진짜 솔깃했다.
"팀장님, 저거... 혹시 민간에도 보급됩니까? 제 자취방에 한 마리 키우면 겨울철 난방비 좀 굳을 것 같은데요. 요즘 도시가스 요금이 너무 올라서..."
나는 진지하게 쇠똥구리를 가리켰다. 팀장이 입매를 씰룩였다. 웃음을 참는 건지, 어이없어하는 건지 헷갈리는 표정.
"음...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저 녀석들이 하루에 배출하는 고농축 메탄가스 양이면 과장님 자취방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겁니다. 화력발전소 옆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아... 폭발은 좀 그렇네요. 집주인 아줌마가 싫어할 테니까."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유전자 분석실'이었다. 이곳은 앞선 사육장들과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흙 냄새도, 곤충들의 소음도 없었다. 완벽한 정적. 그리고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공기. 새하얀 벽, 수술실처럼 창백한 LED 조명, 그리고 전신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유령처럼 소리 없이 오가는 모습. 이곳이 바로 파브르 연구소의 진짜 심장이다.
중앙의 거대한 홀로그램 모니터에는 복잡한 이중나선 구조가 끊임없이 회전하며 붉은색과 푸른색 빛을 뿜고 있었다. 나는 그 데이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단순한 곤충 DNA가 아니다. 저건... 섞여 있다. 곤충의 염기서열 사이에, 훨씬 더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무언가가 강제로 끼워 맞춰져 있었다. 이질적이고, 파괴적인 아름다움.
"서 과장님."
한 팀장이 회전하는 DNA 모형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아까의 '좋은 사람' 톤이 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을 아름답다고 합니다. 평화롭고, 조화롭고, 어머니 같은 품이라고."
"그렇죠. 주말에 힐링하러 산에 가고 그러니까요. 피톤치드 맡으러."
"착각입니다. 오만이죠."
그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의 안경알에 홀로그램의 붉은 빛이 반사되어 번뜩였다.
"자연은 낭만이 아닙니다. 처절한 생존 투쟁의 장이죠. 먹느냐 먹히느냐, 진화하느냐 도태되느냐. 그것이 유일한 규칙인 콜로세움입니다. 그리고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냉철한 과학자의 얼굴.
"자연은 인간에게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진, 태풍, 신종 바이러스... 그리고 '대붕괴' 때 나타난 놈들까지. 마치 우리 인류를 지구라는 행성에서 암세포처럼 도려내기로 작정한 것처럼 말이죠. 시스템의 면역 반응처럼 집요하고 잔혹하게."
그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10년 전, 얼어붙은 참호 속에서.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는 놈들을 보며, 그 압도적인 폭력성 앞에서 하늘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었다. 이게 자연의 뜻이라면 자연 개새끼라고. 벌레고 뭐고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우리는 그 악의에 대비하는 겁니다."
한승우 팀장이 배양기 속에 떠 있는 주먹만한 크기의 알을 바라보며 말했다. 푸른 배양액 속에서 고동치는 알. 반투명한 껍질 너머로 기괴하게 생긴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연에게 뺏기기 전에 우리가 먼저 힘을 가지고, 멸종당하기 전에 먼저 진화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 인간도 자연과 대등한 경쟁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방법을 찾아내야 해요. 자연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또 문제가 된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 내는 것이 우리 팀의 진짜 임무입니다."
진화. 그 단어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평범한 친환경 곤충 회사인 줄 알았던 이곳이, 사실은 인류의 생존을 걸고 자연이라는 거대한 신과 '군비 경쟁'을 벌이는 최전선이었다니. 소름 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피가 끓는 이야기였다.
"어떻습니까? 서준혁 씨. 같이 해볼 만한 일 같나요?"
팀장이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손. 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마주 잡았다. 따뜻했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손바닥의 온기 뒤에 숨겨진 차가운 계산과 힘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글쎄요. 거창한 건 잘 모르겠고... 저는 그냥 월급만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나오면 뭐든 좋습니다. 아까 그 난방비 절감 쇠똥구리 프로젝트, 진짜 기각입니까? 아까운 덴데."
나는 짐짓 멍청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직감했다. 이 남자, 그리고 이 연구소. 대기업의 화려한 간판 뒤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굴을 파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이제 그 굴의 입구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