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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일러스트

증명

JK그룹 본사 로비.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로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디서 정보를 듣고 몰려들었는지, 수백 명의 기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플래시를 터뜨리고 질문을 쏟아냈다.

“권이헌 대표님! 긴급 주주총회 소집이 사실입니까?”

“JK그룹이 ‘마녀 서아린’을 비호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공식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서아린 씨! 정말 당신이 에스퍼 폭주 사태의 원인입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악의와 호기심이 뒤섞인 질문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권이헌은 자신의 몸으로 거대한 벽을 만들 듯 서아린의 앞을 막아서고, 모든 소음을 차단하는 방음벽처럼 그녀를 감쌌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S급의 위압감에, 맹수처럼 달려들던 기자들조차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서아린은 그의 등 뒤에 숨지 않았다.

그녀는 권이헌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개의 카메라 렌즈와 마이크, 그 너머의 세상을 향해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마치 전생의 김윤아가, 브리핑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섰을 때처럼.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소란스럽던 로비가 순간 기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녀’라고 부르던 여자의 눈에서, 예상했던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단단함과 확신을 보았다.

두 사람은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뚫고 V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권이헌이 참았던 숨을 내쉬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아?”

“네.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요.”

서아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고맙던데요.”

“뭐가?”

“저렇게 많은 증인들이 지켜봐 주니, 오늘 우리의 쇼가 더 극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녀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그 모습에, 권이헌은 결국 긴장을 풀고 웃음을 터뜨렸다.

최고층 이사회실.

거대한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JK그룹을 움직이는 수십 명의 이사들과 대주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급 소집에 대한 불만과,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는 권이헌을 향한 불신, 그리고 그의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서아린을 향한 노골적인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가장 상석에는, 지팡이를 굳게 쥔 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앉아 있는 권기태 회장이 있었다. 그는 권이헌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의 옆에 선 서아린에게서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모두 모이셨구려.”

권 회장의 나직하고 권위적인 목소리가 회의실의 공기를 장악했다.

“내 손자놈이, 그룹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을 논의하겠다며 이 귀한 분들을 새벽부터 불러 모았으니,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고작 F급 계집 하나 때문에 회사를 통째로 말아먹겠다는 소리가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오.”

시작부터 서아린을 겨냥한, 명백한 독화살이었다. 회의실 곳곳에서 동조하는 듯한 헛기침 소리와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권이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준비된 단상으로 걸어 나가, 회의실의 모든 조명이 자신에게 쏟아지게 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것은, JK그룹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S급 에스퍼의 위압감이 아닌, 거대 그룹을 이끄는 젊은 CEO의 냉철함과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현재 전 세계는 ‘인공 각성’이라는 전례 없는 재앙 앞에 놓여 있습니다. 라비린토스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크린에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주 사태의 참혹한 영상들을 띄웠다. 이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것은 단순한 테러가 아닙니다. 기존 질서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붕괴는, 누군가에게는 위기이지만,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기회라니! 지금 제정신인가, 권 대표!”

한 이사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혼란 속에서 JK그룹이 살아남을 걱정은 못 할망정, 기회라니!”

“바로 그겁니다.”

권이헌은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이 재앙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을,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 JK그룹만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뭐라고 부르시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블루오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의 선언에, 회의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적인 복수’나 ‘치기 어린 사랑’을 예상했던 이사들의 눈에, 처음으로 ‘이해타산’이라는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이헌은 말을 이었다.

“저는 오늘, JK그룹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여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제안합니다. 프로젝트 명, ‘프로메테우스’. 우리는 라비린토스가 퍼뜨린 절망의 불을, 인류를 위한 희망의 불로 되돌려줄 것입니다. 우리는 백신을 만들고, 치료 센터를 짓고, 새로운 시대의 구원자로서 JK그룹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킬 것입니다!”

그의 연설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권기태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허황된 소리! 꿈같은 이야기로 늙은이들을 설득하려 들지 마라! 그래서 그 해결책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네놈이 말하는 그 ‘백신’의 실체가 뭐냐는 말이다!”

모든 이사들의 시선이 권이헌에게 집중되었다.

권이헌은 대답 대신, 회의실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서아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백신의 실체는, 바로 이 사람입니다.”

서아린은 그의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와 단상 위, 그의 곁에 섰다. 이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회의실을 가득 메운 수십 명의 의심과 경멸의 눈빛을 하나하나 마주했다. 그리고, 프로파일러 김윤아로서 수많은 브리핑을 통해 다져진, 차분하지만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저를 ‘마녀’라고 부릅니다. JK그룹의 후계자를 홀린 F급, 혹은 이 모든 재앙의 원흉이라고 생각하시겠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권기태 회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지만 회장님. 당신이 보는 것은 위험(Risk)이겠지만, 제가 보는 것은 가능성이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당신들이 가진 돈과 권력, 그리고 그 어떤 S급의 힘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이 재앙을, 오직 저만이 끝낼 수 있습니다. 저를 마녀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어차पि 세상은, 그 마녀가 만든 기적에 무릎 꿇게 될 테니까요.”

서아린의 선언은, 이성적인 계산과 냉철한 이해타산으로 가득 찬 이사회실의 공기 속에 던져진 불붙은 성냥개비와도 같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일으킬 수 있는.

“…….”

일순, 시간이 멈춘 듯한 절대적인 정적이 흘렀다. 회의실을 가득 메운 수십 명의 노회한 경영인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감히 일개 F급, 세상이 ‘마녀’라 손가락질하는 젊은 여자가, JK그룹의 심장부에서, 그룹의 총수를 상대로 ‘기적에 무릎 꿇게 될 것’이라 선포하는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가장 먼저 정적을 깨부순 것은 권기태 회장의 지팡이가 대리석 바닥을 내리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었다.

탁!

“같잖은 것!”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서리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네년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신성한 이사회실에서 요사스러운 말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냐! 마녀? 기적? 네년의 그 주둥이로 뱉어내는 말들이 얼마나 허황되고 가소로운지, 스스로는 모르는 게냐!”

그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이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 여자, 제정신이 아니구먼!”

“대표님!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지 않고 무엇 하십니까! 그룹의 격이 떨어집니다!”

“보안팀은 뭘 하는 건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경멸의 화살. 그것은 서아린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회장님.”

서아린이 다시 한번,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회의실의 공기를 가르고, 이상하리만치 모든 이의 귀에 명확하게 박혔다.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이 허황된 궤변인지, 아니면 JK그룹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확실한 정보인지. 5분만 시간을 주시면, 직접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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