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완벽한 협박 일러스트

완벽한 협박

잠시 후, 권이헌의 의사를 전달받은 강지훈의 짧은 회신이 도착했다.

[…알겠다. 기다리지.]

권이헌은 통신을 끊고 현관문 잠금을 해제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문이 열리자, 완전무장한 특수 체포팀 대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권이헌에게 꽂혔다. 대한민국 최강의 S급 에스퍼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훈련받은 정예 요원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깨고, 앞으로 나선 것은 서아린이었다.

“제가 서아린입니다.”

그녀는 조금의 위축도 없이, 팀을 이끄는 대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들의 체포에 응하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저를 ‘피의자’가 아닌 ‘핵심 참고인’의 자격으로 연행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목적지는 취조실이 아닌, 폭주자들이 격리되어 있는 특수 병동입니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대장은 물론이고, 모든 대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마녀사냥을 당하는 피해자가, 마치 개선장군처럼 조건을 내걸고 있었다.

대장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서아린의 등 뒤에 서 있던 권이헌이 나직이 덧붙였다.

“그리고 내 파트너의 조건에 하나 더 추가하지.”

그의 시선이 얼음처럼 차갑게 대원들을 훑었다.

“나도 함께 간다. 그녀의 1미터 반경 안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아. 이건 협상이 아니라 통보다. 거부한다면… 이 자리에서 너희 전부를 먼지로 만들고, 내가 직접 관리국장 멱살을 잡으러 가지.”

그것은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오직 권이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협박이었다.

결국, 특수 체포팀은 ‘체포’가 아닌 ‘호위’라는 기묘한 형태로 두 사람을 에스코트하기 시작했다.

펜트하우스를 나서는 서아린의 손을, 이하나가 울먹이며 붙잡았다.

“아린아… 너 진짜… 진짜 웹소설 주인공 같아! 꼭 이겨야 해! 알았지?”

서아린은 친구를 향해 처음으로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연하지. 내가 원래, 지는 싸움은 안 하거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좁은 공간 안에는 서아린과 권이헌, 그리고 숨 막히는 긴장감만이 가득했다. 권이헌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뜨거운 온기가, 그녀에게 백만 대군과도 같은 든든함을 주었다.

1층 로비에 도착하자, 수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방송사 기자들과 유튜버들이 어떻게 알고 몰려들었는지,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었다.

“마녀 서아린이다!”

“해명하십시오! 당신이 정말 바이러스의 근원입니까?”

분노와 저주 섞인 고함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권이헌의 미간이 흉흉하게 구겨졌다. 그가 염력을 사용하려는 찰나, 서아린이 그의 손을 살짝 쥐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세상의 모든 악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녀의 텅 빈 것 같던 눈동자는, 이제 수많은 데이터와 감정을 분석하며 가장 효과적인 수를 계산하는 프로파일러의 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권이헌과 서아린은 특수 체포팀의 호위를 받으며 관리국에서 보낸 방탄 차량에 올라탔다. 차 문이 닫히고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자, 비로소 작은 정적이 찾아왔다.

차창 밖으로, 자신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후회 안 해?”

권이헌이 나직이 물었다.

“뭘요?”

“이렇게… 세상의 적이 된 거.”

서아린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그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전에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녀가 잡고 있던 그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당신만 내 옆에 있으면, 세상 전부가 적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우리 둘이서, 세상 전부를 상대로 이겨버리는 거.”

그녀의 말에, 권이헌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불안과 분노로 가득했던 그의 얼굴에, 아주 오랜만에 진심 어린 미소가 피어났다.

차량은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될 특수능력관리국 특별 격리 시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라비린토스가 만들어낸 비극의 피해자들이, 그리고 서아린의 능력을 증명할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강지훈 팀장이 착잡하면서도 기대에 찬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번째 마녀 재판이 곧 시작될 참이었다.

***

특수능력관리국 지하 13층.

세상과 완벽하게 격리된 이곳은 ‘특별 격리 시설’이라는 공식 명칭이 무색하게, 사실상 통제 불가능한 능력자들을 가두는 종신형 감옥이자 생체 실험실에 가까웠다.

방탄 차량이 육중한 5중 차폐문을 통과해 시설 내부로 진입하자, 바깥세상의 소음은 한 톨도 남지 않은 채 완벽한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공기마저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금속 냄새로 가득 차,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서늘해지는 듯했다.

차 문이 열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강지훈 팀장이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굳어 있었고, 그가 입고 있는 단정한 제복은 마치 장례식의 상복처럼 무거워 보였다.

“왔군.”

그의 목소리는 복도 전체를 낮게 울렸다. 그는 권이헌과, 그의 손을 굳게 잡고 있는 서아린을 복잡한 눈으로 번갈아 보았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전 세계로 송출된다. 저 위에서, 이 나라에서 가장 높으신 분들과 각국의 대표단이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어.”

강지훈은 복도 끝, 감시 카메라가 번뜩이는 천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여긴 당신의 능력을 증명할 무대야, 서아린 씨. 혹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씁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당신의 처형대가 될 수도 있지.”

“구경꾼이 많을수록 쇼는 더 재밌어지는 법이죠.”

서아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태연함에, 강지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저 여자는 대체, 배짱이 어디까지인 걸까.

그들이 복도를 걷기 시작하자, 양옆으로 늘어선 강화유리 너머의 연구원들과 요원들의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경멸, 호기심, 공포, 그리고 노골적인 적의. 라비린토스의 선동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눈 깔아.”

권이헌이 으르렁거리듯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살기에, 감히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이가 없었다. 그는 거대한 날개를 펼친 흑룡처럼, 서아린의 옆에서 모든 악의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중앙 통제실이었다.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하얀색 패드가 덧대어진 방이 내려다보였다. 마녀의 심판을 지켜볼 ‘심판관’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특수능력관리국 국장, 국방부 장관,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눈부신 은발에 새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윤세라였다. 그녀는 S급 힐러로서, 이번 사태의 공식 의료 자문 자격으로 참석해 있었다.

윤세라는 서아린을 발견하자, 입꼬리를 비틀어 경멸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라는 눈빛이었다.

“서아린 씨.”

관리국장이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채, 사무적으로 울렸다.

“당신은 지금부터 저 격리실 안에 있는 ‘폭주체 C-7’에게 접근하게 될 겁니다. 대상은 21세 남성, 어제 오후 명동에서 인공 각성하여 B급 화염 제어 능력으로 폭주, 현재까지 진정 불가능 상태입니다. 국내 최고의 정신계 능력자들과 윤세라 양의 S급 힐링 웨이브조차 통하지 않았습니다.”

국장은 통유리 너머를 가리켰다.

격리실 안, 한 젊은 남자가 구속복에 묶인 채 온몸을 발작적으로 뒤틀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통제 불능의 불꽃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고, 입에서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고통스러운 비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모니터에 떠 있는 그의 생체 신호와 마나 파형 그래프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붉은 경고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10분 안에 저 폭주체를 ‘안정’시켜 당신의 능력을 증명하십시오.”

국장은 서늘한 목소리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만약 성공한다면, 당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재검토하고, 이 사태 해결의 파트너로서 당신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당신을 라비린토스와 공범인 테러리스트로 간주, 즉결 처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권이헌 에스퍼, 당신 또한 국가 안보를 위협한 중범죄자로서 모든 것을 잃게 될 겁니다.”

잔인한 선고였다. 실패는 곧 죽음이었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