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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구원하다 일러스트

스스로 구원하다

권이헌은 서아린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정작 죽음의 기로에 선 그녀보다, 그녀를 지켜보는 그가 더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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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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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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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은 대답 대신, 그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괜찮다는, 믿어달라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놓고, 통제실의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격리실로 향하는 육중한 철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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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수십 개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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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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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무거운 철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렸다. 문틈으로, 폭주체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지독하게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

서아린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안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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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유리 너머, 권이헌은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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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세상이 닫히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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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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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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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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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의 등 뒤로 닫힌 문은 단순한 강철의 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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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녀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경계였고, 권이헌의 보호가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사지(死地)였으며, 오직 그녀 혼자 모든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외로운 투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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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권이헌의 절박한 눈동자는 오롯이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통제실의 두꺼운 강화유리에 이마를 기댄 채, 쿵, 하고 주먹으로 유리를 내리쳤다. S급 에스퍼의 힘이 실리지 않은, 무력한 인간의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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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미동도 없었지만, 그의 심장은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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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이야… 전부 미친 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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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당장이라도 이 유리벽을 깨부수고, 저 문을 찢어발기고 그녀를 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모든 것을 걸고 만든 이 판을, 그 자신의 손으로 뒤엎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그녀의 가장 강한 방패이자, 가장 무력한 관객이 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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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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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온 줄리안 크로프트가 팔짱을 낀 채 격리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능글맞음이 걷힌 채, 예지 능력자 특유의 서늘한 관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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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수만 개의 미래를 봤지만, 저 문 안에서 벌어질 일은 단 한 갈래도 보이지 않아요. 그녀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특이점(Singularity)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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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격리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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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은 문이 닫히자마자 덮쳐오는 살인적인 열기와,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에 잠시 숨을 멈췄다. 공기 중에는 살이 타는 듯한 역한 냄새와, 순도 높은 악의와 고통의 감정 입자가 먼지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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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정신계 능력자였다면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오염되어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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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을 감았다. 프로파일러 김윤아가 범죄 현장에서 불필요한 시각 정보를 차단하고, 오직 후각과 청각, 그리고 직관에만 의지해 사건의 본질을 파고들던 습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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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악! 꺼져!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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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중앙의 구속 침대에 묶인 폭주체, ‘C-7’이 그녀의 기척을 느끼고 더욱 격렬하게 발작했다. 그의 몸에서 터져 나온 화염이 천장의 스프링클러를 녹여버렸다. 그의 감정이 파도처럼 서아린에게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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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분노,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근원에 자리한 단 하나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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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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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처절한 생존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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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괴물이 아니었다. 라비린토스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희생자일 뿐이었다.

​

“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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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불꽃이 튄 바닥을 밟으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통제실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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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난 널 해치러 온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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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에도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그 어떤 정신 안정제보다도 부드럽고, 그 어떤 힐링 웨이브보다도 깊은 파장을 지닌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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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뭘 하려는 거지? 자극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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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실에서 한 연구원이 소리쳤다. 윤세라는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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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감성팔이로군요. 폭주체의 정신세계는 이미 인간의 논리가 통하는 영역이 아니에요. 곧 저 F급의 위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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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아린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폭주체의 손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섰다. 남자가 그녀를 향해 머리를 휘두르며 위협했지만,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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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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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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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몸에서 방어기제처럼 강력한 화염이 터져 나와 그녀의 팔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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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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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헌이 절규하며 유리를 향해 염력을 터뜨렸다. 콰앙! 방탄유리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났지만, 뚫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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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해, 권 에스퍼! 저길 봐!”

​

강지훈이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

불꽃은 서아린의 몸에 닿기 직전, 마치 보이지 않는 얇은 막에 막힌 것처럼 스르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맑고 푸른 오라가, 폭력적인 화염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정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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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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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라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S급인 자신의 힐링 웨이브조차 튕겨냈던 폭주체의 마나가, 저 F급의 오라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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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은 자신의 손바닥을 통해, ‘사이킥 레조넌스’의 힘을 남자의 정신세계로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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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의 망가진 정신을 강제로 억누르거나 치료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고통을 ‘공감’했다. 그의 기억 속으로 더 깊이, 더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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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앞에, C-7이 겪었던 끔찍한 하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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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남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갑자기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능력이 각성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해칠 뻔했다는 공포와, 스스로가 괴물이 되었다는 절망 속에서 이성이 마비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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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린토스가 심어놓은 악의적인 마나 코드가 그의 불안정한 정신을 좀먹고, 그를 파괴적인 괴물로 몰아갔던 것이다.

​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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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은 그의 정신세계 속에서, 겁에 질려 울고 있는 그의 내면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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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무서웠지. 다 알아. 하지만 이제 괜찮아. 내가 여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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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순수한 공명이, 닥터 최가 심어놓은 악의적인 코드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하나씩 끊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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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실의 모니터 위. 붉은 경고등을 내뿜던 C-7의 마나 파형 그래프가 기적처럼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거친 비명은 잦아들었고, 그의 몸을 뒤덮었던 불길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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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남자는 길고 긴 악몽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서아린의 손길 아래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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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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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C-7’, 안정화 확인. 바이탈 사인 정상. 마나 파형 안정권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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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기적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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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시간 10분. 그녀는 단 3분 42초 만에, S급 힐러도, 국가 최고의 전문가들도 실패했던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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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실 안은 쥐 죽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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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도, 장관도, 윤세라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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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권이헌만이,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안도와 환희, 그리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벅찬 사랑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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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린은 그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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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죠? 이게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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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세상의 심판대 위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구원자임을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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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계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기적을 선포한 그 순간.

통제실 안을 지배하던 것은 경이도, 환희도 아닌,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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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멈춰 있었다. 국장은 입을 벌린 채 다음 말을 잊었고, 장관은 헛것이라도 본 듯 눈을 비볐다.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데이터와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모니터의 그래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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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완벽한 정적을 깨부순 것은, 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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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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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헌. 그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서서, 유리 너머의 서아린만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인 그 순간, 그의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불안과 분노가 눈처럼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는 오직 그녀를 향한 안도감과 심장을 터뜨릴 듯한 사랑만이 남아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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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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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저 문을 열고 들어가, 저 작은 어깨를,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진 저 여자를 끌어안아야만 했다.

​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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