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미끼 일러스트

미끼

권이헌은 태블릿을 빼앗아 들었다. 기사 제목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는 그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그가 분노할 때와는 다른,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릴 듯한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짧은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이 기사를 쓴 기자, 유포한 커뮤니티, 악플을 단 모든 아이디.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찾아내. JK그룹 법무팀과 정보팀 총동원해. 1시간 준다. 그들의 모든 것을 파괴해.”

그의 목소리가 퍼진 실내는 남극의 대기처럼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이것은 감정적인 폭주가 아니었다. JK그룹의 후계자이자 대한민국 최강의 에스퍼가 가진 힘을 이용한, 철저하고 계산된 보복이었다.

서아린은 그의 거침없는 모습에 압도되었다. 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건드린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있었다.

그는 전화를 끊고, 굳어있는 서아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뺨을 감싸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말했지. 넌 내 거라고. 내 것을 더럽힌 쓰레기들은, 내가 직접 싸그리 청소한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서아린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 전부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남자의 무서운 분노와 마주했다.

권이헌의 보복은 매우 신속하고 자비없이 진행되었다.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서아린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처음 보도했던 인터넷 언론사는 JK그룹의 압박으로 폐간 절차에 들어갔다. 인터넷 언론사야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어차피 한 두명이 운영하며 돈 받고 기사 써주는 가짜 언론사 아니던가.

악성 루머를 퍼뜨렸던 대형 능력자 커뮤니티는 서버가 마비되었고, 운영진은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직면했다. 악플을 달았던 수백 개의 아이디는 실시간으로 신상이 털려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되었다.

세상은 JK그룹의 후계자를 잘못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끔찍한지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서아린을 향했던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고, 모든 관련 게시글과 기사들은 인터넷에서 증발하듯 사라졌다.

비밀 연구실 안, 서아린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하는 한정훈 실장의 브리핑을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여론을 통제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쥐고 흔들 수 있는지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이 정도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도련님? 배후를 좀 더 파헤쳐 볼까요?”

한정훈의 물음에 권이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꼬리는 이미 잘렸을 거다. 배후가 누구든, 이번 경고로 다시는 섣부른 짓은 못 하겠지.”

그의 시선이 서아린에게 향했다. 그녀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마음에 안 드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너무….”

서아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프로파일러로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를 심판해왔던 그녀에게, 권이헌의 방식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힘이었다.

“이게 내 방식이야. 내 사람을 지키는 방식.”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세상에서는 법보다 자신의 힘이 우선이었다.

그때, 서아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강지훈 팀장이었다.

[서아린 씨,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서아린은 권이헌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폰 너머로 강지훈의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터넷에서 벌어진 소동은 잘 봤습니다. JK그룹의 힘이 대단하더군요. 덕분에 저희 관리국은 일이 편해졌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두셔야겠습니다. 서아린 씨. 권이헌 에스퍼의 보호가, 오히려 당신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걸. 그의 적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고, 위험합니다. 오늘 같은 일은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팀장님?”

[당신이 정말 평범한 F급이 아니라는 제 심증이, 오늘 일로 더욱 굳어졌다는 말입니다. 보통의 F급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공포에 질려 도망쳤을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너무 침착해.]

강지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의 뒷조사를 하는 세력이 또 있었습니다. 오늘 소동을 일으킨 자들과는 다른 세력입니다. 훨씬 더 은밀하게 움직이고, 전문적이죠. 마치 국가기관처럼요. 그들이 당신의 과거를 파고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전화가 끊기고, 연구실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강지훈의 정보는 충격적이었다. 윤세라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여론 공격 외에, 또 다른 세력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

‘닥터 최의 세력일 가능성이 높아.’

서아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권이헌의 곁에 나타난 나의 존재를, 그들이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권이헌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강지훈의 말은, 자신의 보호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성벽에 균열이 생기고 잡초가 자라난 듯한 불쾌감을 느꼈다.

“더 이상 펜트하우스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어.”

그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아니요, 나가야 해요.”

서아린이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숨어있는 건 해결책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줄 뿐이죠.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그들이 제 과거를 파고 있다면, 역으로 그들의 흔적을 잡을 기회이기도 해요.”

그녀는 프로파일러의 본능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역이용할 기회로 보고 있었다.

“어떻게?”

“제 유일한 연결고리, 가장 명확한 약점. 그들이 반드시 건드릴 수밖에 없는 곳이 있어요.”

서아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하나. 제 친구요.”

며칠 후, 서아린은 이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에 함께 쇼핑을 하자고 제안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밝은 목소리였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계획하에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약속 당일, 서아린은 권이헌과 한정훈 실장, 그리고 JK그룹의 최고 경호팀과 함께 움직였다. 권이헌은 그녀를 미끼로 쓰는 것을 극도로 반대했지만, 이것이 적의 꼬리를 잡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녀의 설득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죄책감이 왜 들지 않았는지 그녀도 잘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그녀에게 소설 속이고, 마주하는 인물들은 소설 속의 조연 일 뿐이었다.

백화점은 그들의 무대였다. 서아린은 이하나와 함께 쇼핑을 즐기는 평범한 20대 여성의 모습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신경은 주변을 향해 있었다. 김윤아 시절, 잠복 근무를 하던 때처럼, 그녀는 군중 속에서 이질적인 흐름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리고, 발견했다.

여러 명의 남녀가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그들을 에워싸듯 따라붙고 있었다. 프로의 움직임이었다.

‘걸렸어.’

서아린은 가방 속의 비상 버튼을 누르며, 이하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었다.

“하나야, 우리 저쪽 카페 가서 잠시 쉴까?”

그녀가 특정한 카페를 가리키는 순간, 주변에 잠복해 있던 권이헌의 경호팀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행하던 자들이 당황한 틈을 타, 순식간에 그들의 퇴로가 차단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예상보다 훨씬 거칠었다. 그들은 순순히 잡히는 대신, 품속에서 무기를 꺼내 들고 인파 속에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백화점은 순식간에 비명과 혼란으로 가득 찼다.

“아린아!”

이하나가 겁에 질려 그녀에게 매달렸다. 혼란의 중심에서, 한 괴한이 날카로운 단검을 들고 서아린과 이하나를 향해 돌진했다. 경호원들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그 순간.

콰앙-!

백화점의 강화유리 천장이 박살 나며, 검은 형체가 그들 위로 내려왔다.

권이헌이었다.

그는 분노로 이성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극한의 상황에서 그의 능력은 더욱 정교하고 강력해졌다. 그는 염력으로 자신과 서아린, 이하나의 주변에 투명한 방어막을 생성했다. 괴한의 단검이 방어막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내 것에게서… 손 떼라.”

그의 눈이 붉게 빛났다. 주변의 모든 금속 물질들-마네킹, 진열대, 샹들리에-이 공중으로 떠올라, 수십 개의 창이 되어 괴한들을 겨눴다. S급 에스퍼의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힘이, 백화점 한복판에서 해방되려 하고 있었다.

권이헌의 등장은 전장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그것은 단순한 힘의 개입이 아니라, 게임의 법칙 자체를 바꾸는 절대자의 강림과도 같았다.

공중에 떠오른 수십 개의 금속 창들은 괴한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선사했다. 그들은 훈련받은 전문가들이었지만, 초자연적인 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무력했다.

“이, 이런… 괴물 녀석이…!”

그들 중 하나가 공포에 질려 중얼거렸다. 권이헌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맞춰, 백화점의 바닥 타일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