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조사실 일러스트

조사실

“누가 보냈지?”

그의 목소리는 모든 감정이 제거된 채, 사실 확인만을 요구하는 심판자의 그것과 같았다. 괴한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권이헌은 그들에게서 답을 들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그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자, 공중에 떠 있던 마네킹의 팔 하나가 총알처럼 날아가 괴한의 어깨를 꿰뚫었다. 비명과 함께 남자가 쓰러졌다.

“다시 묻지. 누가. 보냈나.”

그의 폭력적인 모습에 서아린은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것 또한 그의 일부였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는 남자.

그때, 괴한들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품속에서 작은 캡슐을 꺼내 망설임 없이 깨물었다. 그의 입가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자결용 독극물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하려 했다.

“어림없지.”

권이헌이 손을 뻗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들의 턱을 강제로 벌리고, 손에 든 캡슐을 빼앗아 공중에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순식간에 제압된 그들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권이헌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상황은 백화점의 CCTV와 수많은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특수능력관리국의 통제실에서 강지훈 팀장이 지켜보고 있었다.

“현 시간부로 백화점 일대 통제하고, 현장 진압팀 투입해. 권이헌 에스퍼의 신변을 확보하고, 괴한들은 전원 생포한다. 단, 절대 권 에스퍼를 자극하지 마.”

강지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는 권이헌의 압도적인 힘과 그 힘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는 냉혹함에 위기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 현장의 중심에서 유일하게 평온을 유지시키는 서아린의 존재에 다시 한번 주목했다.

사건이 정리된 후, 서아린과 이하나, 그리고 권이헌은 관리국의 특별 조사실로 연행되었다. 이하나의 기억은 관리국의 지침에 따라 일부 소거 및 수정 처리되었다. 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가스 누출로 인한 작은 소동 정도로 기억하게 될 터였다.

조사실 안에는 서아린과 권이헌, 그리고 강지훈 단 세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백화점을 전쟁터로 만들 뻔했습니다, 권이헌 에스퍼.”

강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민간인 피해가 없었으니 문제없지 않나.”

권이헌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의 손은 테이블 아래에서 서아린의 손을 굳게 잡고 있었다.

강지훈은 한숨을 쉬며 서아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생포한 괴한들을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용병이었습니다. 기억과 정신을 조작당해, 의뢰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자결을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단서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는 작은 증거물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봉투 안에는 괴한의 몸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마크가 새겨진 작은 칩이 들어 있었다.

“이 칩에서 미량의 특수 약물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17년 전, 불법 생체 실험 연구소에서 사용되었던 약물과 동일한 성분입니다. 당시 그 연구소를 이끌던 총책임자는… 모든 기록을 삭제하고 잠적했죠.”

강지훈의 시선이 서아린의 눈을 똑바로 꿰뚫었다.

“당신, 무언가 알고 있죠, 서아린 씨? 당신은 단순한 F급이 아닙니다. 당신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야. 당신은 이 모든 사건의 핵심에 있어. 대체… 정체가 뭡니까?”

강지훈의 집요한 추궁에 서아린은 침을 삼켰다. 권이헌의 몸에서 다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심했다. 이대로 숨기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고 판을 흔들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강지훈은 원리원칙 주의자이지만, 동시에 정의감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를 아군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다.

“팀장님의 추측이 맞습니다.”

서아린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권이헌과 강지훈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저는 이 사건의 배후, 닥터 최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잡기 위해선, 관리국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프로파일러로서,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적대적 관계였던 엘리트 경찰과 손을 잡는 형사처럼, 강지훈에게 비공식적인 공조를 제안했다.

서아린이 던진 폭탄선언에, 조사실의 내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F급 엑스트라가 아니었다. 거대한 사건의 중심에서, S급 에스퍼와 국가기관을 움직이는 플레이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서아린의 입에서 나온 ‘닥터 최’라는 이름은, 조사실 안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주문과도 같았다.

권이헌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지난 17년간 악몽 속에서만 되뇌던 이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원흉의 이름을, 그녀가 알고 있었다. 놀라움을 넘어선 충격이 그의 전신을 휩쓸었다. 그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자신도 모르게 더욱 꽉 쥐었다.

강지훈 팀장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그의 냉철한 포커페이스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한 몸을 간신히 억눌렀다.

“닥터 최… 그 이름을 어떻게….”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닥터 최. 특수능력관리국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아는 이름. 17년 전, 불법적인 에스퍼 생체 실험을 자행하다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사라진, 관리국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범죄자이자 잊고 싶은 오점이었다. 관리국은 그의 존재 자체를 극비에 부치고 있었다.

서아린은 두 남자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도박이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팀장님. 중요한 건, 제가 닥터 최가 권이헌 씨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강지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그 눈빛은 더 이상 평범한 F급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진실과 거짓을 꿰뚫어 보던 프로파일러의 예리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권이헌 씨의 잠재력을 강제로 각성시키기 위해 ‘카오스’라는 약물을 주입했고,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감정 과부하>라는 정신적 각인을 심었습니다. 언제든 그를 통제 불능의 병기로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시한폭탄을 심어둔 거죠. 오늘 백화점에서 저희를 공격했던 괴한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는 배후 세력. 모두 닥터 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아린이 쏟아내는 정보들은 하나하나가 관리국의 1급 기밀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강지훈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여자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권이헌은 충격 속에서 서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파편적으로만 기억하던 고통의 조각들을, 하나의 명확한 진실로 꿰맞추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의 사건 파일을 검토해온 전담 수사관처럼.

의심보다 먼저 든 감정은, 기묘한 안도감이었다. 드디어 자신의 지옥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존재를 만났다는 안도감.

강지훈은 애써 평정을 되찾으려 심호흡을 했다.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지? 당신이 닥터 최와 한패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

그것은 수사관으로서 던져야 할 당연한 의심이었다.

“제가 그의 편이었다면, 권이헌 씨를 안정시키는 대신 폭주하도록 유도했을 겁니다. 그게 그들이 원하는 바일 테니까요.”

서아린의 대답은 논리 정연했다.

“팀장님, 당신은 원리원칙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이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죠?”

서아린은 이제 그의 심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통제 불가능한 S급 에스퍼는 관리국에 있어 가장 큰 위협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 S급 에스퍼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병기’라면? 그건 차원이 다른 재앙이 되겠죠. 저는 그 재앙을 막고 싶은 겁니다. 당신과 목표가 같아요.”

그녀는 강지훈에게 선택지를 제시했다.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고 이 모든 진실을 묵살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과 손을 잡아 거대한 악의 뿌리를 뽑을 것인가.

강지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서아린과 권이헌을 번갈아 보았다. 살얼음판 같던 두 사람의 관계가, 서아린의 등장 이후 기묘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을 그는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왔다.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 대화는 여기서 없었던 걸로 하지. 공식적인 기록은 남기지 않겠네.”

마침내, 강지훈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비공식적인 공조를 수락하겠다는 의미였다.

“대신, 앞으로의 모든 정보는 나와 공유해야 한다. 당신들 단독 행동은 절대 용납 못 해. 그리고 서아린 씨, 당신의 정체에 대해선 언젠가 반드시 듣도록 하겠어.”

그는 날카로운 경고를 남기고 조사실을 나갔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