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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의 질투는 유치하다 일러스트

S급의 질투는 유치하다

김치찌개 한 그릇과 함께한 짧은 평온한 시간은, 다음 날 아침 줄리안 크로프트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그는 아침 햇살처럼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한 손에는 에스프레소 잔을, 다른 한 손에는 서아린의 능력 분석 데이터를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굿모닝, 나의 뮤즈. 어젯밤 제 예지 속에서 당신이 나오더군요. 아주… 인상 깊었어요.”

줄리안은 능글맞은 윙크를 날리며 그녀의 옆자리에 바싹 붙어 앉았다. 서아린이 당황해서 몸을 뒤로 물리기도 전에,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이런, 머리카락에 먼지가. 당신처럼 완벽한 존재에게 흠이 있어서는 안 되죠.”

그의 손길은 노골적이었고, 그의 눈빛은 짙었다. 명백한 수작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손 안 떼나.”

지옥의 심연에서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

권이헌이 막 샤워를 마친 듯, 젖은 흑발을 하고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거실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구겨버린 듯한 수건이 쥐어져 있었고, 온몸에서는 ‘내 것 건들지 마’라는 살기가 뚝뚝 흘러넘쳤다.

줄리안은 그 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두었다.

“오, 미스터 권. 좋은 아침. 질투하는 겁니까? 귀엽군요.”

“시끄럽고,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3미터 뒤로 꺼져.”

권이헌의 목소리에 거실의 유리잔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S급의 위압감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심장이 멎었을 테지만, 줄리안은 그저 재미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소유욕 강한 맹수는 건드리는 게 아니랬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권이헌은 성큼성큼 다가와 서아린의 앞을 막아서듯 섰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그녀의 뺨에 묻어있지도 않은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며,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저런 양아치 놈이랑은 말도 섞지 마. 눈도 마주치지 말고. 숨 쉬는 공기도 아까우니까.”

“…유치해요.”

서아린이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S급의 질투는 원래 이렇게 유치한가 해서요.”

그녀의 말에 권이헌의 귀 끝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그걸 놓치지 않은 줄리안이 휘파람을 불며 얄밉게 웃었다.

“와우, 두 분 아주 뜨거운데요? 좋습니다. 사랑의 힘은 때로 제 예지보다 더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니까요.”

“닥쳐.”

권이헌이 으르렁거렸다. 질투와 소유욕, 그리고 서아린의 짓궂은 말에 당황한 감정이 뒤섞여 그의 주변 공기가 다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서아린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두 남자의 싸움에 끼어들 듯, 권이헌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그녀의 시원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흘러들자, 들끓던 그의 감정이 거짓말처럼 차분해졌다.

“두 분 다 그만하시죠. 지금은 애들처럼 유치하게 굴 때가 아니잖아요. 어젯밤 분석한 라비린토스의 자금 흐름, 추가로 나온 거 있어요?”

그녀는 순식간에 분위기를 전환하며 회의를 주도했다.

두 명의 S급 에스퍼는, 이 작은 F급 여성의 카리스마 앞에 잠시 서로를 향한 으르렁거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권이헌은 제 손을 잡은 그녀의 온기에 만족하며 줄리안을 향해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고, 줄리안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라비린토스 추적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한정훈 실장의 끈질긴 추적과 줄리안이 제공한 HSA의 첩보, 그리고 서아린의 프로파일링이 합쳐져, 마침내 라비린토스의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위장 회사 중 하나를 특정해냈다.

“국내에 있는 바이오 연구소입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제약 회사지만, 닥터 최가 과거 몸담았던 곳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곳이 ‘인공 각성’ 약물을 제조하는 생산 기지일 확률이 높습니다.”

비밀 연구실에서 서아린이 브리핑을 마치자, 권이헌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늘 밤, 직접 간다.”

“위험합니다, 도련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한정훈 실장이 만류했지만, 권이헌은 단호했다.

“그래서 가는 거야. 놈들이 쳐놓은 함정이라면, 기꺼이 밟아주고 모조리 부숴버리면 그만이지.”

바로 그때였다.

“그 허락할 수 없다.”

연구실 입구에서, 근엄하고 냉철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수십 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서 있었다. JK그룹의 총수이자, 대한민국 재계를 호령하는 철혈의 제왕, 권이헌의 할아버지 권기태 회장이었다.

그의 등장은 펜트하우스의 모든 공기를 얼려버렸다. 권 회장의 시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권이헌의 곁에 서 있는 서아린에게로 향했다. 그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상대를 압도하는 서늘한 위압감이 있었다.

“네가, 그 F급 계집이냐.”

명백한 적의. 그리고 경멸이었다.

“할아버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권이헌이 앞을 막아서며 차갑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할아버지를 향한 존경심 따위는 없었다. 오직 해묵은 반감과 경계심만이 가득했다.

“네놈이 하도 정신 못 차리고 계집에게 빠져 그룹 일은 내팽개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와서 보니, 과연 그렇구나.”

권 회장은 혀를 차며 서아린을 위아래로 훑었다.

“내 귀한 손자를 홀린 요물이 어떤 것인가 했더니, 고작 이런 비리비리한 F급이라니. 실망스럽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회장님.”

한정훈 실장이 나섰지만, 권 회장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헌아. 당장 저 계집을 내보내고, 그룹으로 복귀해라. 네가 벌인 위험한 불장난은 이 할애비가 깨끗하게 치워주마. 저 계집에게는 두 번 다시 네 앞에 나타나지 않는 조건으로, 평생 먹고 살 돈을 쥐여주도록 하지.”

그것은 제안이 아닌, 통보였다. 권이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싫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뭐라고?”

“제 사람입니다. 할아버님께서 상관하실 바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권이헌의 단호한 대답에 권 회장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네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구나! 저런 근본도 없는 F급 때문에 그룹 후계자 자리를 걸겠다는 것이냐!”

“후계자 자리, 필요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가져가십시오.”

“이… 이놈이!”

권 회장이 분노로 지팡이를 들어 올린 순간, 서아린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맑고 단단한 눈으로 권 회장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서아린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회장님께서 보시기엔 제가 부족하고 미천한 F급이겠지요. 하지만 이헌 씨에게 저는, 그의 지옥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회장님께서는 단 한 번이라도, 이헌 씨가 지난 17년간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들여다보려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녀의 당돌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권 회장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서아린은 말을 이었다.

“저는 돈 때문에 이헌 씨 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 싸우고 싶어서 제 목숨을 걸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저희의 전쟁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펜트하우스 안, 세대와 권력이 다른 세 사람의 팽팽한 대치가 숨 막히게 이어졌다.

서아린의 당돌한 선언에, 권기태 회장은 평생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불쾌감과 당혹감에 휩싸였다. 감히, F급 계집애가 자신에게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를 하다니.

그는 분노로 입을 열려다, 문득 그녀의 눈을 다시 보았다. 그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흔들림 없는 신념과, 제 옆의 남자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아주 오래전 자신의 아들이자 권이헌의 아버지였던 한 남자의 눈빛과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

권 회장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서아린 대신 권이헌을 노려보았다.

“좋다. 네놈이 그깟 계집에게 미쳐서 그룹도, 네 미래도 내팽개치겠다니. 이 늙은이가 막을 수는 없겠지.”

그의 목소리는 분노가 가라앉은 대신,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대신, 내기를 하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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