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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내기 일러스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내기

“내기요?”

권이헌이 되물었다.

“네놈들이 말하는 그 같잖은 ‘전쟁’이란 걸, 딱 한 달 주겠다. 한 달 안에 네놈들이 쫓고 있다는 그 ‘라비린토스’인지 뭔지의 실체를 밝혀내고, 모든 것을 해결해. 만약 성공한다면, 저 계집의 존재를 인정해주겠다. 네 옆자리에 둘 가치가 있는 아이라고, 이 할애비가 직접 인정해주지.”

권 회장의 눈이 번뜩였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는 서아린을 향해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그땐 저 계집을 내 손으로 직접, 네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거다. 두 번 다시 네 눈앞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도록. 알아들었나?”

그것은 내기가 아니었다. 잔인한 협박이자, 마지막 통첩이었다. 성공하면 본전,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불공평한 게임.

“하실 말씀 끝났습니까?”

권이헌이 차갑게 물었다.

“그렇다.”

“그럼 이제 돌아가시죠. 저희는 바빠서요.”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기를 받아들였다. 아니, 무시했다. 그에게 할아버지의 인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서아린의 안전뿐이었다.

권 회장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경호원들을 이끌고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서아린을 돌아보며 나직이 경고했다.

“네년 때문에 내 손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가 반드시 네년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펜트하우스의 현관문이 쾅, 하고 닫혔다. 권이헌이 염력으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폭풍이 지나간 연구실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남았다.

“괜찮아요?”

서아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권이헌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했지만, 그의 감정 파도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그 어떤 공격보다 깊은 법이다.

“신경 쓸 거 없어. 원래 저런 분이시니까.”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자, 그럼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슬슬 사냥 준비나 해볼까?”

하지만 서아린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뺨에 아주 가볍게, 깃털처럼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쪽.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권이헌은 물론이고, 옆에 서 있던 한정훈 실장과 모니터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던 줄리안마저 그대로 얼어붙었다.

권이헌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그의 뺨에 닿았던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온몸의 신경을 타고 번개처럼 퍼져나갔다.

“이… 이게 지금 무슨….”

그가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서아린이 맑게 웃으며 말했다.

“보상이에요.”

“보상?”

“나를 지켜준 것에 대한 보상이자, 앞으로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선금. 그리고….”

그녀는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나의 약속.”

그 순간, 권이헌의 세상에서는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그를 괴롭히던 감정 과부하도, 라비린토스를 향한 분노도,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도. 오직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소리와, 눈앞의 사랑스러운 여자의 미소만이 전부였다.

그는 깨달았다.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을.

권 회장의 방문은 오히려 기폭제가 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제한은 두 사람을 더욱 절박하고,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그들은 예정대로 라비린토스의 비밀 연구소로 향했다. 강지훈 팀장이 이끄는 관리국 정예 요원들과, 줄리안의 원격 서포트까지 함께하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버려진 연구소는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먼지 쌓인 복도를 지나는 내내, 서아린은 벽과 바닥에 스며든 희미한 감정의 잔향을 읽어냈다. 고통, 절망, 그리고 비인간적인 실험이 남긴 원념들.

“이쪽이에요.”

그녀는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가장 강한 잔향이 느껴지는 곳으로 팀을 이끌었다. 그곳은 굳게 닫힌 지하 실험실이었다.

강지훈의 요원들이 최첨단 장비로 문을 개방하려 했지만, 특수한 마나 잠금장치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젠장,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겠어!”

바로 그때, 서아린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해볼게요.”

그녀는 차가운 철문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세레니티 터치’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단순히 정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문에 걸린 잠금장치의 마나 회로를 ‘이해’하고, 그 흐름에 자신의 파장을 ‘동기화’시키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녀가 최근 권이헌과의 교감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게 된, 새로운 능력의 활용법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정화하는 것을 넘어, 마나의 흐름 자체를 감지하고 공명하는 힘.

그녀는 스스로 이 능력을 ‘사이킥 레조넌스(Psychic Resonance)’라 이름 붙였다.

치이익-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빛 스파크가 튀더니, 육중한 철문이 마침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게… 어떻게….”

강지훈과 요원들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F급 능력자가 관리국의 최첨단 장비도 뚫지 못한 보안을 맨손으로 열어젖힌 것이다.

오직 권이헌만이, 그녀의 손을 잡을 때마다 느꼈던 그 경이로운 감각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실험실 내부는 17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앙의 배양 캡슐 안에서, 그들은 충격적인 광경과 마주했다.

캡슐 안에는 한 소녀가, 마치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열일곱, 열여덟쯤 되었을까. 소녀의 몸에는 수많은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녀의 주변으로 불안정한 마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생체 반응이 있습니다! 살아있어요!”

한 요원이 외쳤다. 바로 그 순간, 소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눈은 텅 빈 것처럼 공허했지만, 이내 붉은빛이 감돌며 주변의 모든 것을 향한 강렬한 적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위험해! 모두 물러서!”

강지훈이 소리쳤다. 소녀의 몸에서 폭풍 같은 염력이 터져 나오며 실험실의 집기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 힘은 어설펐지만, 등급을 매기자면 최소 A급 이상이었다.

권이헌이 방어막을 펼쳐 모두를 보호하는 사이, 서아린은 공포에 질린 소녀의 눈동자 속에서, 과거 닥터 최의 영상 속에서 보았던 어린 권이헌의 모습을 보았다.

‘이 아이도… 피해자야.’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권이헌의 방어막을 뚫고, 폭주하는 소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서아린! 위험해, 돌아와!”

권이헌이 절규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날아오는 파편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소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줄게.”

그녀는 손을 뻗어, 소녀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사이킥 레조넌스’의 힘이, 소녀의 폭주하는 정신세계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서아린의 손길이 닿는 순간, 소녀의 몸을 휘감던 붉고 폭력적인 마나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펄펄 끓는 용암 위로 차가운 단비가 내리는 것처럼. 소녀의 공허한 눈동자에 아주 희미하게, 인간적인 감정의 빛이 돌아왔다. 두려움, 고통, 그리고 깊은 슬픔.

“서아린! 위험해, 돌아와!”

권이헌이 절규하며 방어막을 뚫고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줄리안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기다려, 권. 지금 저건 우리가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야.”

“비켜. 저 여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너부터 죽여버릴 거야.”

“흥분하지 마, 친구. 저길 봐. 당신의 뮤즈는 지금, 기적을 행하고 있어.”

줄리안의 말대로였다. 서아린은 단순히 소녀의 폭주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녀의 일그러진 정신세계에 접속해, 그 근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이킥 레조넌스’는 그녀를 단순한 힐러가 아닌, 영혼의 조율사로 만들고 있었다.

서아린의 머릿속으로, 소녀의 이름 모를 기억들이 파편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은영. 그것이 소녀의 이름이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소녀는 어느 날 라비린토스에게 납치되어, 이곳 지하 실험실에서 끔찍한 인공 각성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수십, 수백 번의 실패 끝에 기적적으로 A급 염동력을 발현했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자아는 산산조각 나고, 정신은 닥터 최의 코드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꼭두각시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이 연구소를 지키는 ‘잠자는 파수꾼’이었던 것이다.

‘아팠구나… 무서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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