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적이 된 마녀
서아린은 은영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꼈다. 프로파일러로서 분석하던 객관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맨몸으로 받아내는 생생한 아픔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괜찮아, 은영아. 이제 다 끝났어.”
그녀는 소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온 마음을 다해 속삭였다. 그녀의 세레니티 터치가 은영의 정신을 옭아매고 있던 닥터 최의 악의적인 ‘코드’를 찾아내, 부드럽게 감싸 안고 정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듯, 그녀의 순수한 마나가 오염된 코드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마침내, 은영의 눈동자를 지배하던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소녀는 긴장이 풀린 인형처럼, 서아린의 품으로 쓰러지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실험실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이 흘렀다. 강지훈과 그의 요원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F급 힐러가 A급 폭주 에스퍼를, 그것도 정신 지배 상태의 능력자를 맨손으로 잠재웠다. 이것은 관리국의 교과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권이헌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서아린에게 달려갔다. 그는 은영을 부축하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괜찮은 거야? 제발 괜찮다고 말해.”
평소의 냉정함은 온데간데없고, 어린아이처럼 불안에 떠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녀를 잃을 뻔했다는 공포가 가득했다. 서아린은 그런 그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저 괜찮아요. 이 아이도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권이헌은 안도하며 그녀를 자신의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는 다시는, 절대로 그녀를 위험한 곳에 혼자 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F급이라….”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줄리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건 F급이 아니야. 이건… 등급을 매길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야. 신의 변수(Deus ex Machina). 그녀는 이 게임의 판도를 뒤엎을 조커였어.”
그의 푸른 눈이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지가, 서아린이라는 존재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섰다는 사실도.
강지훈은 복잡한 심경으로 서아린을 바라보았다.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지금 즉시, 10년 전 순직 처리된 대한민국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소속, 프로파일러 ‘김윤아’의 모든 파일을 내 개인 단말기로 전송해. 보안 등급 SSS급으로.”
그는 마침내, 흩어져 있던 퍼즐의 가장 중요한 조각을 찾아낸 것 같았다.
은영의 구출은 라비린토스 추적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의식을 되찾은 그녀는, 비록 정신적인 충격으로 많은 기억이 손상되었지만, 서아린의 지속적인 심리 치료와 사이킥 레조넌스를 통해 조금씩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라비린토스는 전국의 고아원이나 보호시설에서 잠재력이 높은 아이들을 비밀리에 ‘입양’하는 형식으로 데려가, 인공 각성 실험의 재료로 쓰고 있었다. 은영은 그 수많은 실패작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성공작’에 가까운 케이스였다.
“그들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하데스’라고 불렀어요.”
은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그녀는 펜트하우스의 가장 안전한 방에서, 서아린이 끓여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하데스…?”
권이헌이 되물었다. 줄리안은 즉시 HSA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게 뭔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닥터 최가 항상 말했어요. 하데스가 완성되면, 세상의 모든 S급 에스퍼들은 자신들의 왕 앞에 무릎 꿇게 될 거라고….”
은영의 말에, 비밀 연구실 안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코드명: 하데스’.
그것은 전 세계의 S급 에스퍼들을 무력화시키거나, 혹은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對) S급용 정신 오염 병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최종 목표는 단 한 사람, 대한민국 유일의 S급 염동력자이자 그들의 첫 번째 ‘걸작’이었던 권이헌이었다.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들은 닥터 최가 17년 전 심어놓았던 ‘정신적 각인’을 원격으로 재활성화시켜, 권이헌을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꼭두각시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줄리안의 모니터에 붉은색 경고창이 떠올랐다.
“맙소사….”
그가 경악한 얼굴로 화면을 가리켰다. 라비린토스가, 처음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
전 세계의 모든 방송과 통신망이 해킹되었다. TV, 스마트폰, 거리의 전광판까지. 모든 화면이 검게 변하더니, 미로를 형상화한 기괴한 문양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면을 쓴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스스로를 라비린토스의 수장, ‘아키텍트’라고 소개한 남자는 기계로 변조된 목소리로 세상에 선포했다.
[인류여, 우리는 너희에게 새로운 진화의 길을 제시하려 한다. 낡고 부패한 구시대의 질서는 무너질 것이며,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화면이 바뀌고, ‘인공 각성’ 실험으로 폭주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모습이 편집된 영상으로 송출되었다. 도시를 파괴하고, 불을 지르고, 서로를 공격하는 끔찍한 모습들.
[보아라. 이것이 너희의 나약함이다. 하지만 두려워 말라. 우리는 너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할 것이다.]
아키텍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은, 펜트하우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는, 구원자인 척하는 마녀가 존재한다. 그녀는 S급 에스퍼의 곁에 기생하며, 그의 힘을 빨아먹고 세상의 균형을 어지럽히고 있다.]
화면에는 파파라치에게 찍힌 서아린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떠올랐다. 그녀가 권이헌과 함께 있는 모습, 이하나와 카페에 있는 모습까지.
[그녀의 능력은 정화가 아니다. ‘오염’이다. 그녀는 에스퍼들을 폭주시키는 바이러스의 근원이다. 우리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 마녀를 심판하고, 진정한 질서를 바로 세울 것이다.]
그것은 최악의 선전포고이자, 가장 악랄한 프레임 씌우기였다. 라비린토스는 자신들이 저지른 테러의 책임을, 모두 서아린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었다. 그녀를 세상의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권이헌의 곁에서 떼어놓으려는 비열한 수작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권이헌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모니터를 향해 염력을 쏘았다. 수억 원짜리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서아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그녀는 세상을 구원할 열쇠에서, 종말을 불러올 마녀가 되어 있었다.
아키텍트의 방송이 끝난 후, 세상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인터넷과 SNS는 순식간에 ‘서아린’이라는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마녀_서아린_심판하라]
[#S급기생충_F급의진실]
[#에스퍼폭주바이러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해시태그가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했다.
라비린토스가 조작한 가짜 뉴스들과, 그에 선동된 대중의 무분별한 분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서아린의 신상 정보는 이미 공공재처럼 퍼져나갔고, 그녀가 살던 반지하 방 앞에는 방송사 기자들과 분노한 시위대, 그리고 정체불명의 유튜버들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펜트하우스 안,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서아린에게는 마치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수천만 개의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으로 차갑고 깊은 절망의 기운이 내려앉아 있었다.
“괜찮아, 아린아. 다 거짓말인 거 알잖아. 저 사람들, 그냥 미친놈들이야.”
이하나가 그녀의 곁에 꼭 붙어 앉아 등을 토닥였다. 그녀는 사건 직후 권이헌의 지시로 펜트하우스에 피신해 있었다.
웹소설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던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위로도 지금의 서아린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녀는 프로파일러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중의 광기는 한번 불붙으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분노를 쏟아낼 ‘마녀’가 필요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