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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의 침대 일러스트

엑스트라의 침대

칼에 찔린 것 같다. 그런데 왜 난 생각할 수 있는 거지?

​

‘의식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

​

김윤아는 그런 뜬구름 잡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마지막 기억은 차가운 빗물이 고인 아스팔트 바닥의 감촉과, 제멋대로 흐르는 피 때문에 점점 흐려져 가던 시야, 그리고 멀어지던 사이렌 소리였다.

​

모든 감각이 꺼져가는 그 순간, 의식은 마치 촛불처럼 깜빡이다가 훅, 하고 불어 끈 듯이 사라졌다.

​

죽음은 그런 것이었다. 무(無)로의 회귀.

​

그런데 지금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후각이었다.

​

퀴퀴한 먼지 냄새와 오래된 나무 가구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값싼 섬유유연제 냄새.

​

그 다음은 촉각이었다.

​

등이 배기는 딱딱하고 눅눅한 매트리스의 감촉,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묵직한 피로감.

​

‘…여긴 어디지?’

​

병원인가? 아니, 병원이라면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났을 것이다. 이건 다르다.

​

여긴… 누군가의 방 냄새다. 그것도 썩 유쾌하지 않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방 같은 냄새.

​

많은 범죄 현장에서 봐왔던 그런 곳.

​

윤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

흐릿한 시야 속으로 들어온 것은 얼룩덜룩한 무늬가 새겨진 낡은 천장이었다.

​

빛바랜 형광등이 힘겹게 깜빡이며 희미한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

그녀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

온몸의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죽기 직전에 느꼈던 복부의 끔찍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

그녀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배를 더듬었다.

​

칼에 찔렸던 바로 그 자리. 하지만 점퍼는커녕 환자복도 아닌, 얇고 낡은 티셔츠 아래의 피부는 상처 하나 없이 매끈했다.

​

“…뭐지?”

​

혼란스러움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

좁은 방이었다.

​

한쪽 벽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지만, 창밖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낡은 책상과 의자, 옷 몇 벌이 위태롭게 걸린 행거가 가구의 전부였다. 누가 봐도 가난한 자취방의 풍경.

​

납치된 건가? 아니, 정태수는 분명 체포되었을 것이다.

​

그렇다면 모방범? 하지만 몸에는 결박의 흔적조차 없다.

​

그때, 윤아는 자신의 손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

이건… 내 손이 아니다.

​

그녀의 손은 고된 훈련과 사건 현장에서 얻은 자잘한 흉터, 그리고 거친 피부와 굳은살이 박여 있는, 투박하지만 단단한 형사의 손이었다.

​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햇빛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것처럼 창백하고, 뼈대가 가늘고 긴,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손이었다.

​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

‘이건 꿈인가? 아니면 죽기 직전에 꾸는 환상?’

​

윤아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지럼증에 잠시 벽을 짚었지만, 이내 방 한구석에 놓인 작은 전신 거울로 다가갔다.

​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보고, 그녀는 숨을 멈췄다.

​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

푸석한 빨간 머리, 병약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 그리고 겁에 질린 사슴처럼 커다란 눈동자.

​

스물한두 살쯤 되었을까.

​

영양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이는, 가녀리고 위태로운 인상의 여자.

​

김윤아의 날카롭고 다부진 인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

“…….”

​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만졌다. 거울 속의 여자도 똑같이 따라 했다.

​

차갑고 생경한 감촉. 이건 꿈이 아니었다.

​

바로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 듯한 끔찍한 두통이 덮쳐왔다.

​

“으윽…!”

​

윤아는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

마치 고장 난 영사기처럼,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 머릿속으로 강제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

고아원에서 보낸 외로운 유년 시절. 열여덟 살에 발현한 F급 능력.

​

쓸모없는 능력이라며 손가락질받던 기억.

​

겨우 독립해서 구한 이 반지하 단칸방.

​

그리고… 능력의 부작용으로 하루하루 생명력이 깎여나가며 죽어가던 고통스러운 시간들.

​

그리고 그 기억의 파편 속에서, 하나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서아린.’

​

이 몸의 주인의 이름.

​

“…서아린?”

​

윤아는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듯한 충격과 함께, 하나의 기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그것은 그녀의 얼마 안 되는 취미 생활 중 하나였다.

​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파일러, 김윤아.

​

그녀는 현실의 괴물들을 상대하는 직업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끔 잠들기 전 웹소설을 읽곤 했다.

​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 되는 설정이 가득한 판타지 소설은 머리를 비우기에 제격이었다.

​

그녀가 마지막으로 읽던, 아니, 지루해서 중반부쯤에서 하차했던 웹소설의 제목은…

​

<멸망 세계의 그림자 군주>.

​

전형적인 S급 헌터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의, 조금은 유치하고 클리셰 가득한 헌터물이었다.

​

그리고 그 소설에서, 서아린은…

​

‘…아.’

​

탄식이 흘러나왔다.

​

서아린.

​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시한부 F급 엑스트라.

​

주인공이 처음으로 조우하는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

​

자신의 쓸모없는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 주변의 부정적인 기운에 중독되어, 결국 3개월도 채 버티지 못하고 고독하게 죽어가는 인물.

​

소설에서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 세상의 비정함과 약자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말도 안 돼. 이건 미친 소리야.

​

윤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

과다출혈로 인한 뇌 손상, 혹은 임사체험 같은 거겠지. 그래, 그럴 거야.

​

그녀는 애써 이성적인 결론을 내리려 했다.

​

하지만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은 서아린의 기억과,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얼굴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능력.”

​

윤아, 아니, 서아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소설 속에서 서아린의 능력은 ‘세레니티 터치’였다.

​

전투 능력은 전무하지만, 타인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화하는 희귀한 F급 능력.

​

그리고 그 능력의 부작용은, 정화되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노출되면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 먹히는 것.

​

만약, 만약 정말로 여기가 소설 속이라면.

​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집중했다.

​

소설 속에서 헌터들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

‘상태창.’

​

마치 오래된 컴퓨터가 부팅되듯, 눈앞에 희미한 푸른빛이 일렁였다.

​

그리고 곧,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허공에 나타났다. 윤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하지만 창은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그녀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

[서아린]

클래스: 오라 정화사 (Aura Purifier)

등급: F급

고유 능력: [세레니티 터치 Lv.1]

상태: 마나 부조화 (생명력 저하 진행 중)

남은 시간: 87일 11시간 42분

​

“…씨발.”

​

김윤아의 입에서, 아니, 이제는 서아린이 되어버린 그녀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

이건 꿈도, 환각도 아니었다.

​

그녀는 죽었고, 하필이면 즐겨 보던 웹소설 속, 3개월 안에 죽을 운명을 가진 최약체 엑스트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

“이건 진짜… B급 소설만도 못한 거지 같은 상황이잖아.”

​

창밖으로 희미하게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

‘씨발.’

​

욕설은 공허한 방 안을 낮게 맴돌다 사라졌다.

​

허공에 떠 있는 반투명한 푸른색 창.

​

[남은 시간: 87일 11시간 41분 59초].

​

숫자는 1초가 흐를 때마다 정확하고 무자비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

시시각각 줄어드는 숫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명백한 사형 선고였다.

​

패닉에 빠져 소리를 지르고, 현실을 부정하며 머리를 쥐어뜯어야 정상일까.

​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

하지만 김윤아의 뇌는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차갑게 식어 내렸다.

​

지난 10년간 강력계에서 범죄자들의 뒤틀린 심리를 분석하며 살아온 시간은 그녀에게서 평범한 감정 반응을 앗아갔다.

​

패닉은 사치였다.

​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그녀의 머리는 자동으로 ‘상황 분석’ 모드로 전환되었다.

​

생존의 제1원칙: 주어진 사실을 기반으로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다.

​

​

​

사실 1. 나는 죽었다. 연쇄살인범 정태수의 칼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

사실 2. 나는 웹소설 속 엑스트라인 ‘서아린’의 몸으로 환생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눈앞의 상태창과 이질적인 신체, 그리고 머릿속에 남은 생생한 기억이 증명하고 있다.

​

사실 3. 이 몸의 주인, 서아린은 87일 안에 죽을 운명이다. 원인은 ‘마나 부조화’. 소설 속에서는 ‘주변의 부정적인 감정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갔다’고 한 줄로 서술되어 있었다.

​

​

​

김윤아, 아니, 이제는 서아린이 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몸 상태를 체크했다.

​

손을 쥐었다 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지럼증이 일었다.

​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무기력증. 이것이 서아린의 디폴트 상태였다.

​

이런 몸으로 3개월간 범죄자들을 쫓았더라면, 체력장에서 진작에 탈락했을 것이다.

​

‘젠장, 몸뚱이가 이래서야…’

​

그녀는 한숨을 쉬며 서아린의 기억을 더듬었다.

​

고아원에서 나온 뒤,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

하지만 그녀의 능력 ‘세레니티 터치’가 문제였다. 이 능력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

특히 분노, 슬픔, 질투,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그녀에게 그대로 독이 되어 스며들었다.

​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어김없이 원인 모를 고열과 통증에 시달렸다. 진상 손님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며칠을 앓아누워야 했다.

​

결국 그녀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고립은 가난을, 가난은 영양실조를, 영양실조는 쇠약을 낳았다.

​

악순환의 반복. 그것이 서아린의 짧은 생이었다.

​

“결국, 사람을 피해야 살 수 있다는 건가.”

​

하지만 동시에,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

완벽한 딜레마.

​

소설 속 서아린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어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아니.”

​

서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

“나는 서아린이 아니야.”

​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

이전의 무기력했던 눈빛이 아닌 수많은 괴물들의 심연을 들여다보던 프로파일러, 김윤아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

“나는 김윤아야. 무력하게 죽어줄 생각, 눈곱만큼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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