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밟힌 우회선
해가 산등성이 뒤로 내려앉기 전, 우리는 광갱 외연의 넓은 평지 한가운데에 섰다.
왼쪽 아래에는 공식 원정로가 진흙 위로 곧게 내려와 검은 갱도 입구로 이어졌다. 정면의 입구는 수레 두 대가 나란히 들어갈 만큼 넓었고, 그 앞에는 반쯤 쓰러진 작업 표지목과 비어 있는 짐칸 자리들이 줄지어 있었다. 오른쪽 위로는 북서 사면이 회색 소금가루를 뒤집어쓴 채 비스듬히 솟았다. 사면 아래에는 사람 하나 겨우 몸을 넣을 만한 틈이 있었고, 그 주변 풀줄기만 이상하게 한 방향으로 눌려 있었다.
위험은 칼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넓은 평지가 먼저 위험했다. 여기서는 사람을 모으기 쉽고, 모인 사람은 세기 쉽고, 그 숫자는 문서에 옮기기 쉽다. 수레와 말, 후보생과 보급병이 한눈에 잡혔다. 내가 어느 줄에 서는지도, 누가 나를 막는지도, 나를 누구에게 넘기기 좋은지도 모두 보였다.
세라 벨로네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선두에서 검을 뽑지 않고 손만 들었다. 흰 망토 끝은 하루 종일 흙탕물에 젖어 무거워졌고, 갑옷 어깨에는 수레 사고 때 묻은 진흙이 아직 굳어 있었다. 그래도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레는 평지 안쪽으로. 말은 입구가 아니라 바깥을 보게 묶어. 방패판은 짐칸 뒤에 넣지 말고 바깥쪽에 세워.”
후보생들이 잠깐 서로를 보았다. 초급 광갱 앞에서 방패판을 밖으로 세우는 건 과한 배치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라는 되묻는 얼굴을 보자마자 손가락으로 위치를 찍었다.
“넓은 곳일수록 안심하지 마. 사람은 넓은 곳에서 더 잘 흩어진다.”
그 말에 보급조 막내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아침 수레 사고 때 팔이 고삐에 끌려갈 뻔했던 후보생도 말 옆으로 뛰었다. 그는 내 쪽을 한 번 보더니, 내가 말하기 전에 눈가리개 천부터 챙겼다. 그 작은 변화가 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아직 나를 앞줄에 세울 사람으로 보진 않았다. 그래도 내가 본 끊김을 이제 아주 무시하진 못했다.
확인 서기가 말에서 내렸다. 그는 문서판을 양팔로 끌어안고 세라에게 다가왔다. 판 위에는 왕국 원정 허가서, 성도 임시 확인장, 광갱 진입 신고서가 서로 다른 끈으로 묶여 있었다. 바람이 종이 모서리를 들었다. 세라가 몸을 돌려 막았지만, 늦었다. 맨 아래 얇은 종이에서 잉크 한 단어가 보였다.
확보.
나는 발을 멈췄다.
보호가 아니었다. 동행도 아니었다. 이름도 아니었다. 저 문서 속에서 나는 에이드리언 베일이 아니라, 위치를 확인해 넘겨야 할 반응자였다. 성문 밖으로 나왔다고 장부에서 빠진 게 아니었다. 장부가 길을 따라온 것뿐이었다.
세라도 내가 봤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문서를 접는 손에 힘을 주었다. 종이 모서리가 갑옷 손가락 사이에서 구겨졌다.
“진입 신고는 제가 직접 올리겠습니다.”
서기가 고개를 저었다. “광갱 외연 도착 즉시 인원 대조가 규정입니다. 특히 성도 확인 대상은—”
“대조는 내가 한다.”
“벨로네 후보, 기록 지연은 제 책임으로도 남습니다.”
“그럼 더 조심해. 책임질 문장이 늘기 전에 말부터 안쪽에 묶어.”
세라가 문서판을 되돌려 주자 서기는 입술만 달싹였다. 항의할 수는 있었지만, 방금 배치가 틀렸다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 말들이 입구를 향해 묶인 채 놀라면 평지 전체가 뒤집힌다. 방패판을 밖에 세우면 적어도 사람이 모인 쪽으로 돌이 굴러올 때 한 번은 막는다. 세라는 문서보다 현장을 먼저 앞세웠다. 그게 지금 그녀가 규정을 늦추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녀 옆으로 갔다. 너무 가까이는 아니었다. 검을 뽑기에도, 나를 붙잡기에도 알맞은 거리. 세라는 공식 입구를 보며 낮게 말했다.
“지금 따지지 마.”
“방금 단어도 내가 못 본 걸로 해야 해?”
“못 본 척하라는 말이 아니야. 여기서 네가 소리 높이면 저 서기가 가장 먼저 쓸 문장이 정해진다. 반응자 불안정. 단독 이탈 우려. 즉시 분리 필요.”
“이미 그런 문장을 들고 왔잖아.”
“그 문장을 꺼낼 핑계를 주지 말라는 거야.”
나는 세라를 보았다. 그녀는 나를 달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말이 곧바로 족쇄가 되는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 차가움이 싫었지만, 거짓 위로보다는 쓸모가 있었다.
“그럼 넌 왜 신고를 늦춰?”
세라의 시선이 북서 사면을 스쳤다. 회색 가루가 바람에 얇게 일었다.
“아까 갈림목 흔적. 네 부적 반응. 로웬 헤일의 메모. 전부 이쪽을 가리켰지.”
“네 문서는 나를 입구로 밀고.”
“그래서 늦추는 거야. 지금 보고가 올라가면 기사단이든 성도든 다른 손이든, 전부 저 입구 앞에서 널 세려고 들어. 그 사이에 우회로 흔적은 먼저 지워진다.”
“날 믿어서?”
“아니.”
세라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네가 뭘 읽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어쩐지 안심이 됐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서였다. 세라는 나를 믿지 않는다. 나도 세라를 믿지 않는다. 그래도 둘 다 같은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공식 입구 앞에서 숫자로 세어지는 것. 그리고 북서 사면에 남은 로웬의 흔적이 누군가 손에 먼저 고쳐지는 것.
나는 평지 가장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쓰러진 작업 표지목 앞면에는 광갱 등급이 얕게 새겨져 있었다. 초급. 글자 밑에는 새로 칠한 검은 먹이 남아 있었지만, 나무 안쪽은 오래전에 갈라져 있었다. 등급 표시는 최근에 덧댄 것처럼 보였다. 그보다 눈에 띄는 건 표지목 뒷면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가 조금씩 흔들렸고, 그 뒤에 회색 가루가 묻은 긁힘이 보였다.
로웬의 메모 가장자리에 있던 짧은 꺾임과 닮은 선.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새 선.
나는 바로 다가가지 않았다. 먼저 수레와 말의 위치를 확인했다. 방패판은 아직 절반만 세워졌고, 보급병 둘은 짐줄을 풀다 말고 서기 눈치를 보고 있었다. 후보생 하나는 공식 입구를 향해 창을 든 채 서 있었지만, 창끝이 너무 높았다. 위쪽 사면에서 뭔가 떨어지면 막지 못한다.
물건 하나에 눈이 박히면 사람이 다친다. 오늘 아침 수레가 가르친 건 그거였다.
“방패판 왼쪽 끝 더 낮춰.”
내가 말했다. 보급병이 나를 봤다.
“입구 쪽 말고 사면 쪽. 돌이 오면 위에서 온다.”
“누가 명령했는데?” 창 든 후보생이 툭 뱉었다.
세라가 돌아보았다.
“내가 방금 들었다. 움직여.”
그 한마디로 후보생의 입이 다물어졌다. 세라는 나를 두둔하지 않았다. 내 말을 자기 명령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렇게 해야 대열이 움직인다. 그렇게 해야 내가 혼자 튀어나온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현장 배치에 필요한 눈이 된다.
나는 숨을 고르고 표지목 뒤로 돌아갔다.
뒷면의 오래된 선은 북서 사면 아래의 좁은 틈을 가리켰다. 나무가 닳아 둥글어진 자리였다. 오랫동안 비를 맞고 손을 탄 흔적이었다. 그런데 그 위를 가로지르는 새 선은 달랐다. 날카롭고 얕았다. 새 선 끝은 공식 입구 쪽으로 꺾였다. 누군가 오래된 표식을 알고, 그 위에 다른 방향을 얹었다.
“에이드리언.”
세라가 내 옆이 아니라 반 걸음 뒤에 섰다. 검을 뽑으면 내 어깨 너머로 바로 나갈 거리였다.
“손대지 마.”
“안 대.”
나는 손바닥을 뒤로 뺐다. 대신 눈으로만 선을 따라갔다. 새 긁힘 끝에는 아직 털리지 않은 가루가 남아 있었다. 회색에 은빛이 아주 조금 섞여 있었다. 광갱 흙가루라기엔 너무 고왔다. 누군가 일부러 묻힌 표식일지도 모른다.
“원래 선은 북서 틈.” 내가 말했다. “새 선은 공식 입구.”
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를 넓은 쪽으로 돌리려고?”
“나를.”
그 말이 입에서 나오자 목 안쪽이 서늘해졌다.
“내가 어느 선에 반응하는지 보려고.”
세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문서, 표지목의 새 긁힘, 공식 입구 앞의 넓은 평지. 전부 나를 보는 모양으로 서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길을 읽는지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표식을 보면 어디서 멈추는지 알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그 순간 세라가 나를 막는지도 보고 싶어 했다.
북서 사면에서 자갈 하나가 굴렀다.
소리는 작았다. 자연스럽게 떨어진 돌은 길게 구르다가 멈춘다. 지금 돌은 두 번 튀고 바로 멈췄다. 누군가 발끝으로 건드린 게 아니라, 어디까지 들리는지 재보듯 놓아 보낸 소리였다.
세라의 검이 반쯤 빠졌다.
나는 위를 보지 않았다. 위를 먼저 보면 위에 있는 자가 우리가 알아챘다는 걸 안다. 대신 표지목 아래 흙을 봤다. 눌린 발자국이 있었다. 원정대 장화보다 얕고, 성도 사제의 얇은 밑창보다 넓었다. 보폭은 짧았다. 그러나 멈춘 자리가 이상했다. 바위 그늘 앞에서 끊기고, 한 걸음 뒤에서 다시 이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다 몸을 접은 흔적. 우리 뒤를 따라온 발자국이 아니라, 우리가 멈출 곳을 먼저 알고 기다린 발자국이었다.
“한 명?” 세라가 입술만 움직였다.
“적어도 한 명.”
“성도?”
“아니. 사제 신발이면 흙 가장자리가 더 얇게 갈라져. 기사단 장화면 풀줄기가 옆으로 더 꺾이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늘 뒤에서 걸었으니까.”
말이 나온 뒤에야 손끝이 저렸다. 나는 늘 앞줄을 보지 못했다. 대신 앞사람이 남긴 발자국, 버려진 끈, 잘못 묶인 짐, 곧 무너질 바퀴를 봤다. 누구도 기술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들이 내 몸에 남았다. 그게 지금 나를 잡으려는 손을 먼저 보게 했다.
뒤쪽에서 확인 서기가 외쳤다.
“벨로네 후보! 정식 진입 신고 전 외곽 이탈은 기록해야 합니다!”
세라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그녀가 검을 뽑으면 보고가 올라간다. 내가 표지목 앞에 있었다는 사실도 같이 적힌다. 그러면 나는 공식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뒤쪽 수레 안으로 옮겨질 것이다. 북서 틈은 다시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
“돌아가.” 내가 말했다.
세라가 눈을 돌렸다. “너 혼자 두라고?”
“혼자 두라는 게 아니야. 네가 여기 서 있으면 일이 커져. 넌 수레 배치 확인하러 온 거고, 난 표지목 뒤 흙이 무너졌는지 본 거야.”
“말이 안 맞으면?”
“내가 거짓말한 걸로 해.”
세라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넌 너무 쉽게 네 이름을 내놔.”
“이미 다른 종이에 올라간 이름이야.”
그녀가 대답하기 전, 바람이 끊겼다.
소리보다 침묵이 먼저 왔다. 사면의 풀잎이 한순간 같은 방향으로 눕고, 위쪽 검은 돌 사이에서 아주 얇은 쇳빛이 반짝였다. 나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세라의 팔목을 잡아 아래로 끌었다.
쨍!
쇠붙이가 표지목 모서리를 때렸다. 짧은 쇠화살 하나가 내가 손을 뻗으려던 높이로 스쳐 지나가 표지목 옆에 박혔다. 깃이 없고 짧았다. 치명상을 노린 화살이 아니었다. 손목, 손등, 눈. 표식을 읽는 데 필요한 곳을 노린 물건이었다.
“습격!”
뒤쪽 후보생 하나가 소리치려 했다. 세라가 그보다 크게 외쳤다.
“방패판 세워! 말고삐 놓지 마! 위로 뛰지 말고 수레 옆에 붙어!”
대열이 터지지 않았다. 그 한 번의 명령 때문에 후보생들이 위쪽 사면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방패판 두 장이 바깥쪽으로 기울었고, 보급병은 말 눈가리개를 먼저 잡았다. 말이 뒷발질하지 않았다. 평지 한복판에서 말 한 필이 미치면 사람 셋은 밟힌다. 세라는 적보다 먼저 그 피해를 막았다.
나는 그 틈에 사람부터 다시 셌다. 오른쪽 방패판 뒤의 후보생은 팔꿈치를 긁혔고, 보급조 막내는 말고삐를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둘 다 움직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겁먹은 손이 다음 매듭을 망친다. 나는 막내에게 물통 상자를 가리켰다.
“말 옆에서 빠져. 물통 세 개만 안쪽으로 밀어. 지금 네 손엔 고삐보다 상자가 맞아.”
막내가 멍하니 나를 보았다. 세라가 바로 받았다.
“들었으면 움직여.”
그제야 막내가 고삐를 다른 보급병에게 넘기고 물통 쪽으로 갔다. 팔꿈치를 긁힌 후보생에게는 방패판 아래쪽을 맡겼다. 창을 들면 팔이 떨리지만, 판을 누르면 떨림도 무게가 된다. 그는 이를 악물고 무릎으로 방패판 하단을 눌렀다. 나는 그 작은 재배치가 마음에 들었다. 겁을 없애는 건 어렵다. 대신 겁난 손이 덜 위험한 일을 하게 만들 수는 있다.
서기는 그 모습을 보고 문서판 가장자리를 더 세게 쥐었다. 그의 눈은 다친 팔보다 박힌 쇠화살을 먼저 찾았다. 사람 하나가 피를 흘리는지보다 어떤 항목으로 적을지 계산하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보고 더 확실히 알았다. 지금 여기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건 적의 발도, 우리의 칼도 아니다. 사건이 문장으로 바뀌는 속도였다.
나는 표지목에 박힌 쇠화살을 보았다. 박힌 각도는 낮았다. 날아온 곳은 사면 중턱. 그러나 진짜 위험은 그보다 위에 있었다. 두 걸음 위 돌무더기 하나가 이상하게 반듯했다. 누군가 올라가면 발이 닿는 자리. 발이 닿으면 아래로 쏟아질 모양새.
“쫓아가면 안 돼.”
“알아.” 세라가 짧게 답했다. 그리고 후보생 하나를 손짓으로 눌렀다. “올라가지 마. 미끼다.”
후보생은 얼굴이 벌게진 채 멈췄다. 그의 창끝이 떨렸다. 겁보다 분노가 먼저 올라온 얼굴이었다. 세라가 그를 혼내지 않고 방패판 쪽을 가리켰다.
“네가 올라가면 뒤의 말이 빈다. 네 자리는 거기야.”
후보생은 이를 악물고 방패판 옆으로 돌아갔다. 그 한 걸음이 사람 하나를 살릴 수도 있다. 세라가 그걸 알았고, 나도 보았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쇠화살 아래 나무가 패인 자리를 한 번 눌렀다. 가루가 묻었다. 은빛 섞인 회색. 표지목의 새 선 끝에 남아 있던 가루와 같은 결이었다. 하지만 화살은 뽑지 않았다.
“그대로 둬.”
세라가 나를 봤다.
“화살?”
“각이 증거야. 뽑으면 누가 어디서 내 손을 노렸는지 잃어.”
“보고서처럼 말하지 마.”
“그럼 이렇게 말할게. 뽑으면 우리가 바보가 돼.”
세라는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반박하지 않았다.
확인 서기가 달려왔다. 얼굴은 창백했고 문서판은 가슴에 붙어 있었다.
“금속음이 났습니다. 정식 진입 전 무력 접촉이면 즉시 중단 보고를—”
세라는 검끝을 낮췄다. 그러나 몸은 내 앞과 서기 사이를 막은 채였다.
“낙석 전조 확인. 표지목이 흔들리며 금속 장식이 부딪힌 소리다.”
“하지만 방금 후보생이 습격이라고—”
“겁먹은 후보생이 외친 말을 보고서 첫 줄에 올릴 건가? 아니면 내가 확인한 배치부터 쓸 건가?”
서기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가 원하는 건 진실보다 책임을 피할 문장이었다. 세라는 그걸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준 문장은 완전한 거짓이 아니었다. 표지목은 흔들렸고 금속음도 났다. 다만 표지목을 흔든 것이 바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인원 대조는?” 서기가 물었다.
“내가 한다. 너는 문서판을 말 안장에 묶어. 바람에 날리면 네가 주우러 가야 한다.”
서기는 물러섰다. 불만은 남았지만, 평지의 방패 배치와 말의 방향을 보자 더 따지지 못했다. 현장이 그의 문장보다 빨랐다.
그때 위쪽 사면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이번엔 숨기지 않은 발소리였다. 바위턱 위에 한 사람이 섰다. 낡은 녹색 망토가 어깨에 걸려 있었고, 긴 귀가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났다. 활은 들고 있었지만 시위는 당겨져 있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에 낀 화살도 아래를 향했다. 쏘지 않겠다는 걸 보이려는 자세였다.
세라가 검끝을 들어 올렸다.
“이름.”
그 여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먼저 표지목, 박힌 쇠화살, 내 손수건, 방패판 위치, 말의 방향을 차례로 보았다. 사람을 보는 눈보다 흔적을 보는 눈이 먼저였다. 그 점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 발자국, 인간 원정대 것이 아니야.”
세라의 눈썹이 움직였다.
“이름부터.”
“이름을 먼저 적으면 네 서기가 더 빨리 달려가겠지.”
“내 서기가 어디로 가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여자는 바위턱에서 내려오지 않고 발끝으로 사면 아래 눌린 풀줄기를 가리켰다.
“왕국 장화는 저렇게 멈추지 않아. 성도 밑창은 저만큼 깊게 눌리지도 않고. 저건 너희 뒤를 밟은 게 아니야. 먼저 와서 기다린 발자국이지.”
내가 본 것과 같았다. 다만 그녀는 훨씬 위에서, 훨씬 넓게 읽었다.
“네가 쐈어?” 내가 물었다.
여자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았다. 눈빛은 차가웠다. 오래 경계하다가 표정을 짓는 법마저 덜어 낸 사람 같았다.
“내 화살이면 네 손등 옆 나무껍질만 벗겼을 거야. 저건 손을 멈추는 물건이지만, 쏜 사람은 네가 어디까지 몸을 낮추는지도 보고 싶어 했어.”
세라의 검끝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멈췄다.
“증명해.”
여자는 손가락 사이 화살을 위로 들어 보였다. 깃이 달린 긴 화살이었다. 표지목에 박힌 짧은 쇠화살과 전혀 달랐다.
“리에트 아르셸.”
이름이 바람 사이로 내려왔다. 뒤쪽 후보생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번졌다. 엘프 궁수.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얼굴들 위로 스쳤다. 세라는 여전히 검을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리에트의 발밑 돌무더기도 보고 있었다. 한 걸음 잘못 올라가면 쏟아질 자리. 경계심이 늦지 않았다.
“왜 먼저 와 있었지?” 세라가 물었다.
리에트는 공식 입구를 보았다. 넓고 편해 보이는 검은 입. 초급이라는 글자가 붙은, 너무 넓은 입.
“저 입구가 먼저 나를 불렀으니까.”
“수수께끼로 말하지 마.”
“초급 광갱은 사람 발길부터 세지 않아. 초급 광갱은 표식을 고쳐 손이 가게 만들지도 않고, 바깥에서 누가 반응하는지 보려고 짧은 쇠화살을 쓰지도 않아.”
나는 손안의 부적을 움켜쥐었다. 금속은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안쪽 균열이 아주 얇게 떨렸다. 북서 틈과 공식 입구 사이에서 방향을 고르지 못하는 듯했다. 그 떨림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 지금 봐야 할 건 세라의 검끝, 리에트의 발밑, 방패판 뒤의 후보생들, 서기가 품에 안은 문서판, 표지목에 남은 두 방향의 선이었다.
“누가 쐈는지 봤어?” 내가 물었다.
리에트가 고개를 저었다.
“소리만 들었다. 너무 가볍고, 너무 짧았다. 인간 원정대가 쓰는 물건은 아니야. 성도 하급 사제들도 저런 걸 들고 다니지 않아. 누군가는 이 광갱을 초급으로 부르는 사람들보다 먼저 여기 와 있었고, 너희가 공식 입구 앞에서 멈추기를 기다렸다.”
“우리 말고 나를 기다렸겠지.”
말이 나오자 평지가 조용해졌다. 세라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리에트도 부정하지 않았다. 문서 속 단어, 표지목의 새 선, 손을 노린 화살, 북서 틈 앞의 눌린 풀. 모두 나를 향해 있었다.
그 사실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손바닥 안에서 땀이 났고, 부적의 모서리가 살을 눌렀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까처럼 혼자 뒤로 밀려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세라는 검을 든 채 내 옆을 막고 있었다. 리에트는 위에서 발자국을 읽고 있었다. 후보생들은 방패판 뒤에서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누구도 나를 전부 믿지 않는다. 나도 누구 하나 온전히 믿지 않는다.
그래도 같은 거짓 표식을 보고 있었다.
세라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검을 내리지 않은 채 뒤쪽 대열을 향해 명령했다.
“야영 반경 좁혀. 불은 피우지 마. 말은 안쪽, 방패판은 바깥쪽. 수레 두 대를 입구와 사면 사이에 비스듬히 세워.”
확인 서기가 급히 다가왔다.
“벨로네 후보, 그러면 정식 진입 신고가 늦어집니다.”
“북서 사면 낙석 위험 확인 후 신고한다.”
“그건 규정상 우회 탐색으로—”
세라가 그를 돌아보았다.
“지금 네가 보고를 올리면, 이 넓은 평지에 사람을 세워 둔 책임부터 네 문서에 적힌다. 쓸 자신 있나?”
서기는 입을 닫았다. 종이는 늘 사람을 누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종이를 쥔 사람도 종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라는 그 약한 부분을 정확히 눌렀다.
나는 표지목 앞에 다시 무릎을 굽혔다. 손수건에 묻은 회색 가루를 작게 접은 종이 안에 넣었다. 쇠화살은 그대로 뒀다. 박힌 각도와 표지목의 새 선, 북서 틈의 풀줄기를 눈에 새겼다. 물건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주변을 다시 세었다. 수레 간격, 말머리 방향, 방패판 높이, 후보생들의 떨리는 손, 세라가 서기와 나 사이에 선 거리, 리에트가 바위턱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유.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공식 입구는 넓고 편했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북서 틈은 좁고 위험했다. 그래서 로웬이 남긴 표식과 닮았다. 누군가는 오래된 선 위에 새 선을 덧그어 우리를 넓은 쪽으로 돌리려 했다. 누군가는 그 순간 내 손을 노렸다. 누군가는 위에서 그 흔적을 읽었다.
“공식 입구로 곧장 들어가지 않는다.”
내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세라와 리에트는 들었다.
세라가 눈을 돌렸다.
“명령은 내가 내려.”
“그럼 그렇게 내려. 수레는 평지에 남기고, 방패판은 바깥쪽. 서기는 네 옆에 묶어 둬. 나는 저 틈의 첫 세 걸음만 본다. 거기서도 덫이면 돌아온다.”
“돌아올 수 있으면.”
리에트가 위에서 말했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네가 보는 거잖아.”
리에트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이 되진 않았다. 세라도 웃지 않았다. 그래도 둘 다 반박하지 않았다.
세라는 검을 검집에 완전히 넣지 않은 채 뒤로 물러섰다.
“북서 사면 확인 후 진입한다. 에이드리언은 내 시야 안에서만 움직인다. 리에트 아르셸, 네가 거짓말하면 첫 화살 쏘기 전에 내가 먼저 올라간다.”
“거짓말이면 네가 올라오기 전에 돌이 먼저 내려갈 거야.”
“그럼 돌부터 봐.”
짧고 거친 합의였다. 신뢰가 아니라, 당장 살아남기 위한 배치였다. 그게 우리에게 맞았다.
해가 더 낮아졌다. 공식 입구 안쪽은 검게 식었고, 북서 틈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얇게 빨려 나왔다. 풀줄기 사이에 누군가 지나간 자리가 있었다. 꺾였다가 일부러 세워 놓은 흔적. 숨기려 했지만 급했던 손. 그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첫 세 걸음을 눈으로 먼저 그었다. 첫째는 풀줄기 바깥, 발목이 빠지지 않는 회색 흙. 둘째는 검은 돌 두 개 사이, 왼발을 비틀면 아래쪽 돌무더기를 건드리지 않는 자리. 셋째는 틈 안쪽의 낮은 뿌리, 손을 짚으면 소리가 작게 나는 곳이었다. 나는 허리끈에 짧은 짐줄 하나를 묶고 남은 끝을 세라 쪽으로 던졌다.
“당기지 마. 내가 멈추면 그때만 잡아.”
세라는 줄 끝을 감아 쥐었다. “네가 넘어지면?”
“넘어지는 소리보다 돌 굴러가는 소리가 먼저 나면 놓아.”
“기분 나쁜 주문이네.”
“살려면 순서가 필요해.”
리에트가 바위턱 위에서 위치를 바꿨다. 그녀는 북서 틈만 보지 않고, 공식 입구와 사면 중턱 사이의 빈 각도까지 함께 살폈다. 누군가 다시 손을 노리면 화살이 날아올 길, 누군가 돌을 밀면 먼저 흔들릴 돌. 그녀가 말없이 그 둘을 재는 동안, 세라는 방패판 쪽 후보생들에게 손짓했다. 한 사람은 판을 낮추고, 한 사람은 말고삐를 짧게 잡았다. 나 혼자 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내 한 걸음을 받쳐 줄 배치가 뒤에서 같이 움직였다.
나는 첫걸음을 옮기기 전에 한 번 더 뒤를 봤다. 세라는 표지목과 내 등 사이에 서 있었다. 방패판 뒤의 후보생들은 겁먹은 얼굴로도 자리를 지켰다. 서기는 문서판을 안은 채 세라 곁에서 발만 굴렀다. 리에트는 바위턱 위에서 북서 틈보다 더 먼 사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부적의 떨림만 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디 서 있는지, 누가 누구를 막고 있는지, 어떤 문장이 아직 올라가지 않았는지, 어느 길이 우리를 세려고 하는지 함께 보았다.
누군가 먼저 이 우회선을 밟았다.
누군가는 우리가 그 흔적을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 한 걸음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 한 걸음을 누가 대신 정하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북서 틈으로 발을 넣었다. 회색 가루가 장화 밑에서 짧게 밀렸다. 풀줄기가 부러지는 소리와 광갱 입구의 검은 숨이 겹쳤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길을 고르기로 했다.
✦ 작가의 말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