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뒤로 밀린 자의 자리

해 뜨기 전 야영지는 사람보다 먼저 자리를 드러냈다.

가운데 화덕은 밤새 꺼지지 못한 불씨를 잿더미 밑에 숨기고 있었고, 수레 네 대는 그 둘레를 반쯤 찌그러진 원으로 감싸고 서 있었다. 말들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향해 묶여 있었다. 누가 들이닥치면 먼저 고삐와 짐줄이 엉키게 만드는 배치였다. 북서쪽 흙턱 위에는 무너진 감시초소가 비뚤게 남아 있었다. 지붕은 반쯤 내려앉고 기둥 둘만 서 있었지만, 저기 서면 야영지 불빛과 사람 수, 수레 간격까지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담요를 걷자마자 그쪽을 먼저 봤다.

어젯밤 흔적이 사라지길 바랐지만 흙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수레바퀴가 짓뭉갠 바깥 가장자리 옆으로 더 가볍고 더 일정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안으로 파고든 자국은 없었다. 대신 초소 쪽으로 올라가 한참 머문 뒤 다시 북서 사면으로 빠진 선이 더 선명했다.

누군가는 밤새 우리를 훔쳐본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자는지 계산했다.

“발자국보다 자리네.”

오른쪽 수레 그림자 끝에서 세라 벨로네가 말했다. 그녀는 검집이 아니라 팔꿈치에 손을 얹고 있었다. 곧 뽑을 사람보다, 뭘 참는 사람의 자세였다.

“네가 먼저 봤구나.”

“저 자리를 아는 쪽이 문제야.”

나는 초소와 북서 사면을 번갈아 봤다. 맞는 말이었다. 어둠 속에서 처음 온 자가 야영지 가장 잘 보이는 높이를 바로 고를 리 없었다.

세라가 흙턱 아래 짓눌린 풀대를 턱으로 가리켰다.

“혼자 올라갈 생각은 하지 마.”

“명령이야?”

“지금은 그러지 말라는 뜻이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두 쪽에서 욕설이 터졌다. 앞 수레 하나가 새벽 안개에 젖은 돌턱을 비껴 세우는 과정에서 왼쪽 바퀴가 깊게 꺼졌다. 짐 상자 두 개가 기울고, 수레 옆에 서 있던 후보생 하나가 말고삐에 팔을 감긴 채 옆으로 끌려갔다.

세라는 곧장 몸을 돌렸다.

“전원 대열 앞으로 붙어!”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먼저 달렸지만, 나는 수레보다 비탈을 먼저 봤다. 바퀴가 빠진 자리는 좁았다. 뒤 수레가 그대로 밀려들면 앞 수레가 더 기울고, 말이 놀라면 짐줄이 먼저 터진다. 그 뒤에 사람 다리가 깔린다.

“뒤 수레 멈춰!”

내가 소리치자 누군가 코웃음쳤다.

“네가 뭔데 지시해!”

대답 대신 나는 옆 수레의 접이식 방패판을 잡아 뽑았다.

“세라! 앞축부터 세워! 검 말고 방패판!”

세라가 반 박자 늦게 나를 봤다. 그 짧은 시선 뒤에 짜증도 있었고,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기울어진 수레가 한 번 더 비명을 내자 그녀는 바로 움직였다. 세라는 검을 빼지 않고 내 손의 방패판을 낚아채 앞바퀴 아래로 밀어 넣었다. 나는 뒤쪽 후보생 둘을 가리켰다.

“너 둘은 말머리 돌리지 말고 눈만 가려! 고삐 당기면 더 튄다! 너, 짐줄 끊지 말고 오른쪽 짧은 매듭만 풀어!”

뒤 수레를 밀던 후보생들이 여전히 우왕좌왕했다. 나는 삽자루 하나를 발로 차서 굴렸다.

“바퀴 뒤에 박아! 더 깊게!”

한 명이 욕을 삼키며 삽자루를 박았다. 그 사이 세라가 방패판 위로 체중을 실어 앞 수레 기울기를 억눌렀다. 말이 한 번 크게 머리를 치켜들었지만, 눈앞을 가린 천 조각 덕에 더 미친 듯 날뛰지는 못했다.

“지금!”

내 외침에 오른쪽 짐 매듭이 풀렸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던 상자 하나가 진창에 떨어졌고, 수레가 비명을 멈췄다. 바퀴가 더 내려앉지 않는 틈에 세라가 몸을 낮춰 어깨로 수레 옆판을 밀었다.

“밀어!”

이번에는 그녀 쪽 외침에 다른 후보생들이 붙었다. 삽자루, 방패판, 어깨가 한꺼번에 들어가자 앞바퀴가 진창에서 절반쯤 빠져나왔다. 곧이어 뒤 수레까지 멈춰 서며 대열 전체가 가까스로 숨을 돌렸다.

말고삐에 팔을 감겼던 후보생은 흙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다리는 깔리지 않았고 발목도 꺾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적어도 둘은 못 걸었을 자리였다.

잠깐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세라는 방패판을 빼내며 나를 봤다. 망설임과 짜증,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해가 한꺼번에 떠 있는 얼굴이었다.

“네가 아까부터 그 자리만 보던 이유가 이거였어?”

“길이 아니라 끊기는 점을 보고 있었으니까.”

뒤에서 누군가 코웃음쳤다.

“운 좋았네.”

나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운이면 다음엔 더 크게 터지겠지.”

세라가 먼저 그 말을 받았다.

“입 닥치고 매듭부터 다시 묶어.”

그녀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방금 전까지와는 달랐다. 나를 뒤로 밀어 두려는 차가움이 아니라 대열을 다시 세우기 위한 차가움이었다. 세라는 넘어진 상자와 진창 자국을 빠르게 훑더니 나를 지나치며 낮게 덧붙였다.

“뒤처지지 마. 이제 네 위치는 맨뒤 보조가 아니야.”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 말이 칭찬이 아니라 더 귀찮은 자리로 끌어올린다는 통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성문 밖으로 나왔는데도, 내가 설 자리는 이미 누군가 정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세라도 그걸 안다.

***

해가 걸린 뒤 원정대는 마른 개울 갈림목에서 다시 멈췄다.

개울바닥은 오래전에 물이 빠져나간 회색 자갈만 남기고 벌어져 있었다. 공식 원정로는 남쪽으로 완만하게 휘어 내려갔고, 북서쪽 사면으로는 사람 하나 간신히 오를 만한 잡목길이 옅게 이어졌다. 갈림목 가운데 박힌 낮은 말뚝에는 기사단 표식이 덧대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붉은 밀랍 자국이 반쯤 긁혀 남아 있었다.

세라는 대열 점검을 핑계로 그 앞에 섰다. 겉으로는 단순 통과 확인처럼 보였지만, 손끝이 밀랍 가장자리에 닿을 때만 한 박자 늦었다.

나는 그 옆까지 가서 낮게 물었다.

“성문에서 끝난 줄 알았는데.”

세라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끝난다고 한 적 없어.”

그녀 허리춤 주머니 입구가 바람에 조금 벌어졌다. 접힌 종이 가장자리가 보였다. 새벽 수레 그늘에서 봤던 그 문서였다. 나는 더 가까이 붙지 않았지만 세라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빼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보고를 남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다.

“지금 안 올리는 이유는?”

“여기선 안 올리는 게 낫다고 봐서.”

“나 때문이야?”

세라가 그제야 나를 봤다.

“방금처럼 길이 틀어질 때 누가 먼저 필요한지 확인했으니까.”

그 말은 호의가 아니라 계산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을 만했다.

우린 더 얘기하지 못했다. 뒤쪽에서 앞바퀴가 또 덜컥하며 흔들렸고, 세라는 몸을 틀어 바로 소리쳤다.

“앞줄 둘은 오른쪽으로 반 걸음! 뒤 수레는 간격 벌려!”

이번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나는 갈림목 말뚝 아래 밀랍 자국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훑었다. 붉은 밀랍 가장자리에 갈라진 삼각형 같은 선이 남아 있었다. 훈련 사고 뒤 바닥에서 봤던 봉인 파편 스케치와 닮았다. 로웬이 남긴 메모 끝자락의 잘린 기호와도.

장부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선이 다른 얼굴로 겹쳐진다는 감각도 그만큼 선명해졌다.

***

정오 무렵, 대열이 북서 사면이 내려다보이는 바위턱 아래서 짧게 숨을 돌렸다.

공식 원정로은 아래쪽으로 넓게 꺾이며 회색 흙을 길게 드러냈고, 멀리 북서쪽에는 폐광처럼 주저앉은 사면과 검은 돌가루 줄기가 흐릿하게 이어졌다. 다른 후보생들은 마른 빵과 물주머니에 매달렸지만, 내 눈에는 길보다 공백이 먼저 들어왔다.

나는 수레 그늘에 쪼그려 앉아 로웬이 남긴 메모를 펼쳤다. 선 몇 개, 비워 둔 칸, 일부러 다 적지 않은 것 같은 공백. 처음엔 조잡한 지도 같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감춰 둔 선 같았다. 공식 원정로은 그 메모의 바깥선과 어긋났다. 대신 북서 사면 아래 비탈이 비어 있는 부분 끝과 닿았다.

주머니 속 부적을 꺼내 메모 위에 올렸다. 공식 원정로 쪽으로 손목을 틀었을 때는 차갑기만 했다. 북서 사면으로 돌리자 금 간 틈 안쪽이 가늘게 데워졌다. 활활 타는 열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금속이 숨을 고르는 것 같은 미세한 떨림이었다.

“또 그쪽이네.”

세라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다른 후보생들에게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굳이 보자면 대화를 숨기기보다, 다른 눈을 막아 주려는 자세였다.

“공식 원정로은 아니야.” 내가 말했다.

“보이네.”

세라는 메모보다 부적을 더 오래 봤다. 곧 그녀 시선이 메모 끝 잘린 공백으로 옮겨갔다.

“로웬이 네가 이걸 읽길 바랐다고 생각해?”

“적어도 정직한 길 따라가라고 남긴 건 아니겠지.”

세라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낮게 말했다.

“나도 저 북서쪽이 비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네 문서엔 뭐라고 적혀 있는데?”

세라의 턱선이 굳었다. 대신 그녀는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반쯤 꺼냈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그 짧은 틈에 문구 두 줄만 보였다.

`대상 접촉 시 보고`

`단독 이탈 금지`

설명은 필요 없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나를 뒤로 밀어 두려던 이유가 저거였구나.”

세라가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골랐다.

“후방에 두면 움직이기 쉽다고 본 거겠지.”

“살리기 쉬워서가 아니라 붙잡기 쉬워서.”

“그 말까지는 나도 안 부정해.”

바람이 바위턱 위 마른 풀을 훑었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세라는 처음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도 방금 수레에서 본 건 따로 남는다.”

“무슨 뜻이야.”

“네가 뒤에 있어야 안전하다는 계산이 틀렸다는 뜻.”

세라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묘하게 목 안이 메말랐다. 인정이라기보다 사고 보고서의 정정 문장 같았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나는 메모를 접어 넣었다.

“그럼 다음엔 뒤로 안 밀리겠네.”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늦출 수는 있지.”

세라는 대답 대신 북서 사면을 한번, 공식 원정로을 한번 봤다.

“오늘 안에 저 선을 다시 볼 기회가 있으면 본다.”

약속이라기보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말투였다. 지금 단계에선 그 정도면 충분했다.

***

해가 기울 무렵 길은 다시 좁아졌다.

공식 원정로는 아래 협곡 쪽으로 휘어졌고, 북서쪽 사면에는 오래된 수레자국인지 사람 발선인지 애매한 눌림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완전한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들어오면 자꾸 거슬리는 종류의 흔적이었다. 돌 몇 개가 같은 방향으로 긁혀 있었고, 눌린 풀대는 바람 방향과 다르게 한 줄로 꺾여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흙을 짚어 봤다. 겉은 말라 있었지만 아래는 아직 약간 눅눅했다. 최근에 누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선이 남지 않는다. 깊은 장화 자국은 아니었다. 무게를 분산해 딛는 가벼운 사람의 발이었다.

“최근이네.” 세라가 바로 뒤에서 말했다.

“공식 진입로 쪽으로 간 게 아니야.”

“응.”

나는 부적을 손안에 쥐었다. 북서 사면을 향하자 금속이 다시 얇게 뛰었다. 우연이라고 넘길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세라도 그걸 봤다. 그녀 손이 허리춤 주머니로 올라갔다가 멈췄다. 문서를 꺼내면 여기서 바로 보고가 올라간다. 그런데 세라는 끝내 꺼내지 않았다.

“왜 안 올려.”

세라는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지금 올리면, 저 선이 누구 것인지 확인하기 전에 다른 손이 먼저 붙을 수 있어.”

“기사단?”

“그럴 수도.”

“성도?”

“그럴 수도.”

“아니면 우리도 모르는 다른 쪽?”

세라의 침묵이 제일 길었다. 그게 대답이었다.

바람이 한 차례 세게 불며 위 사면의 마른 자갈을 굴렸다. 나와 세라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바위턱 위 그림자는 길었고 사람 하나 숨기기엔 충분히 어두웠다.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저 선을 밟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루 종일 이어진 단서들이 한 군데로 모였다. 성문 검문, 갈림목 밀랍, 세라 문서, 로웬의 공백, 북서 사면 반응. 전부 같은 대답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식 원정로로 가면 그대로 남 손에 넘어간다.

옆길로 새면 바로 뒤를 밟힌다.

문제는 어느 쪽이 더 늦게 죽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로웬의 흔적에 닿느냐였다.

세라가 낮게 말했다.

“오늘 밤, 야영지 배치가 끝나면 저쪽을 다시 본다.”

나는 그녀를 봤다.

“허락처럼 들리네.”

“허락 아니야.”

세라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지금은 그게 제일 급하다는 뜻이야.”

그 말은 명령도 약속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같은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히 하는 말이었다. 세라는 자기 보고를 늦추기 위해, 나는 내 이름이 장부 끝으로 밀리기 전에 먼저 보기 위해.

대열 앞쪽에서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라가 먼저 몸을 돌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북서 사면의 눌린 풀대를 봤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 얕은 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로웬은 도망친 게 아니라 쫓기며 길을 남긴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길에는 이미 다른 발이 먼저 올라가고 있다.

작가의 말

연재 중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