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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피, 첫 증명

북서 틈의 첫 발판은 발 하나를 겨우 받아 주는 회색 흙턱이었다.

내 등 뒤 왼쪽 아래로는 공식 진입로와 넓은 광갱 입구가 검게 벌어져 있었다. 수레 두 대와 말은 그 입구와 평지 사이에 비스듬히 묶였고, 방패판은 바깥쪽을 향해 낮게 세워졌다. 세라는 내 허리끈에 묶인 짐줄 끝을 왼손에 감은 채 표지목 옆에 섰다. 리에트는 오른쪽 위 바위턱에 엎드려 사면 중턱과 공식 입구 사이의 빈틈을 동시에 살피고 있었다. 확인 서기는 수레 뒤에서 문서판을 품에 안고 있었고, 후보생 셋은 방패판 뒤에서 숨을 삼켰다.

위험은 정면에서 오지 않았다. 좁은 틈 안쪽엔 마른 풀줄기가 일부러 다시 세워져 있었고, 아래쪽 적재 평지의 무너진 판석 끝에는 회색 가루가 새로 흩어져 있었다. 뒤로 물러서면 넓은 입구로 쓸리고, 앞으로 뛰면 사면 위에서 보이는 자리였다. 누군가 우리에게 길을 고르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고른 길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려고 기다린 자리였다.

나는 둘째 발판에 눈을 뒀다. 검은 돌 두 개 사이였다. 왼발을 비틀어 넣으면 아래 돌무더기를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발끝에 힘을 너무 싣는 순간 위쪽 흙껍질이 미끄러진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줄 당기지 마.”

내가 낮게 말했다.

세라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줄 끝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그녀가 내 말을 들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첫발을 옮겼다.

장화 밑에서 풀줄기가 한 번 꺾였다. 소리는 작았다. 그런데 그 소리보다 먼저 오른쪽 사면 위 돌 하나가 멈칫했다. 굴러야 할 돌이 굴러오지 않고, 누군가 손가락으로 눌러 붙잡은 것처럼 제자리에서 흔들렸다.

리에트의 목소리가 위에서 떨어졌다.

“오른쪽 위. 돌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어.”

세라가 뒤쪽 대열에 손짓했다. 방패판 뒤 후보생 하나가 고개를 들려고 하자 그녀가 바로 눌러 앉혔다.

“보지 마. 판 낮춰.”

후보생이 입술을 깨물고 방패판 윗모서리를 내렸다. 그 순간 사면 위에서 짧은 쇳소리가 났다. 화살도, 창도 아니었다. 얇은 금속 갈고리가 돌을 긁는 소리. 이어서 회색 흙턱 아래가 빈 껍질처럼 내려앉았다.

내 발목이 허공으로 빠졌다.

세라가 반사적으로 줄을 당기려 했다. 줄이 팽팽해지는 첫 느낌이 허리에 닿았다. 그 힘대로 끌려가면 나는 뒤로 빠져 산다. 대신 발밑 빈 껍질이 크게 터지고, 뒤쪽 대열이 내가 빠진 자리로 몰린다. 넓은 입구 쪽으로. 누군가가 바라던 모양 그대로.

“당기지 마!”

나는 거의 이를 갈며 외쳤다.

세라의 손이 멈췄다.

그 멈춤이 나를 살렸다. 아니, 우리 뒤에 선 사람들을 살렸다. 나는 허리가 아니라 왼쪽 팔꿈치로 흙턱을 찍었다.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충격이 올라왔다. 손가락은 아래로 미끄러진 돌 틈을 더듬었다. 젖은 흙이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고, 얇은 뿌리 하나가 잡혔다.

“방패판 오른쪽 끝, 더 안쪽!”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세라는 이번엔 되묻지 않았다.

“하리엔, 오른쪽 끝 안쪽으로! 브렌, 수레 코 틀어! 말은 뒤가 아니라 바위 그림자에 붙여!”

대열이 움직였다. 겁먹은 몸들이라 빠르진 않았다. 그래도 흩어지진 않았다. 방패판 오른쪽 끝이 반 뼘 안으로 밀렸고, 수레 앞바퀴가 회색 흙을 긁으며 비틀렸다. 말 한 필이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보급병이 눈가리개 천을 먼저 눌렀다. 뒤쪽이 무너지지 않았다.

그때 짧은 쇠화살 두 개가 방패판 위로 떨어졌다. 사람 가슴을 노린 높이가 아니었다. 방패판을 세운 손목과 말고삐, 짐줄 매듭을 노린 낮은 각이었다. 하나는 방패판 모서리에 박혔고, 다른 하나는 수레 옆 짐줄을 스치고 지나갔다. 짐줄이 반쯤 갈라졌다.

나는 그 갈라진 줄을 보고 속이 차갑게 식었다.

사람을 죽이려는 공격이면 더 빠르고 깊게 들어왔을 것이다. 지금 날아온 것들은 우리를 끊으려 했다. 손과 줄, 받침과 말. 사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박자를 끊으려 했다.

나는 몸을 밀어 올리려 했다. 뿌리가 버티지 못하고 손바닥을 긁으며 끊어졌다. 손바닥 한복판에서 살이 길게 벗겨졌다. 피가 흙과 섞였다. 통증은 늦게 왔다.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어느 자리에 걸려 있는지, 뒤의 방패판이 어느 각도로 버티는지, 사면 위 그림자가 어디서 다시 움직이는지였다.

“에이드리언!”

세라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화가 아니라 계산에 가까웠다. 어디까지 당기면 내가 살고, 어디부터 당기면 대열이 깨지는지 재는 목소리.

“줄은 왼쪽으로 빼. 뒤로 말고.”

나는 숨을 삼켰다.

“왼쪽?”

“적재 평지. 그쪽 판석이 아직 살아 있어.”

세라가 이를 악문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줄을 뒤로 당기지 않았다. 왼쪽으로 낮게 끌었다. 허리가 찢어질 것처럼 조여 왔지만, 몸이 넓은 입구 쪽으로 빠지지 않았다. 나는 왼쪽 무릎을 판석 가장자리에 걸었다. 손바닥이 다시 미끄러졌고 피가 더 번졌다.

뒤에서 후보생 하나가 소리쳤다.

“제가 잡겠습니다!”

“움직이지 마!”

내가 먼저 외쳤다.

그 후보생은 방패판 뒤에서 발을 빼려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그가 달려오면 빈 자리가 생긴다. 방패판 아래쪽이 들리고, 말이 그 틈을 보고 뒷발을 친다. 그렇게 무너지면 내가 올라와도 아무 의미가 없다.

세라가 바로 받았다.

“네 자리는 판 아래야. 무릎으로 눌러.”

후보생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무릎을 박았다. 떨리는 무릎이 방패판 하단을 눌렀다. 겁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겁난 몸이 할 일을 찾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를 악물고 몸을 끌어올렸다.

오른쪽 위에서 활줄이 튕겼다. 이번엔 우리 쪽 쇠화살 소리가 아니었다. 리에트의 긴 화살이 사면 중턱 돌 사이를 스치고 들어갔다. 사람을 맞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돌을 짚고 있던 무언가가 급히 물러서며 얕은 흙을 긁었다.

“둘.” 리에트가 말했다. “하나는 돌을 붙잡고, 하나는 줄을 본다. 원정대원이 남긴 보폭은 아니야.”

세라가 줄을 잡은 채 고개만 들었다.

“사람이야?”

“사람처럼 걷지만, 훈련받은 인간이 낸 장화 자국은 아니야. 앞꿈치 자국은 너무 얕고, 멈춰 선 자리는 너무 깊어.”

리에트의 두 번째 화살이 날았다. 이번에도 몸을 겨누지 않았다. 그림자가 다음에 밟을 돌 앞쪽을 깨뜨렸다. 디딜 곳이 사라지자 위쪽 그림자 하나가 뒤로 빠졌다. 그 짧은 순간, 사면 위의 공격이 한 박자 늦어졌다.

그 한 박자면 충분했다.

세라가 줄을 왼쪽으로 더 눌러 당겼고, 나는 판석 위로 몸을 던지듯 올라왔다. 무릎이 돌에 부딪혀 둔하게 울렸다. 손바닥은 뜨겁게 젖었다. 흙과 피와 뿌리 잔가시가 섞여 손금 사이에 박혔다.

“일어나지 마.” 세라가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내 몸이 아니라 방패판 아래쪽, 수레 바퀴, 오른쪽 비탈 틈을 훑고 있었다. 지금 바로 일어서면 사면 위에 있는 자들이 내가 중심을 되찾는 순간을 본다. 낮게 버티는 편이 낫다.

나는 기어가듯 적재 평지 안쪽으로 몸을 밀었다.

방패판 뒤의 공기가 바뀌었다. 처음엔 다들 나를 끌어 올리려고 움직이려 했다. 이제는 각자 자기 자리를 붙잡았다. 보급병은 말 눈가리개를 더 낮췄고, 팔꿈치를 긁힌 후보생은 방패판 하단을 무릎으로 눌렀다. 다른 후보생은 갈라진 짐줄을 새 매듭으로 묶었다. 세라는 내 줄을 놓지 않은 채 검집 끝으로 수레 앞바퀴 위치를 찍었다.

“반 뼘만 더 안쪽. 넓은 입구를 등지지 마. 우리가 보는 쪽이 입구가 아니라 사면이다.”

그 말에 대열이 다시 틀어졌다. 넓은 공식 진입로가 우리 뒤쪽 빈 공간으로 밀려났다. 우리 앞에는 좁은 사면과 무너진 적재 평지, 낮은 방패판, 비스듬한 수레가 남았다. 좋은 진형은 아니었다. 그래도 누군가 마음대로 흩어 놓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폐 안으로 회색 먼지가 들어와 목을 긁었다.

“아프냐?”

세라가 물었다.

“묻는 순서가 늦지 않아?”

“죽었는지 먼저 봤어.”

말은 거칠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보자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다. 손바닥의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대신 넓게 벗겨져 있었다. 손을 쥐면 피가 더 배어 나왔다. 세라는 줄 끝을 자기 허리춤에 걸어 둔 뒤, 보조 주머니에서 천끈과 소독포를 꺼냈다.

“펴.”

“지금?”

“네가 또 뿌리나 줄을 붙잡아도 되는 손인지 봐야 하니까.”

나는 손을 폈다. 세라가 소독포를 누르자 통증이 곧게 올라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숨을 삼켰다. 방패판 뒤 후보생 둘이 그걸 봤다. 하나는 시선을 피했고, 하나는 오히려 자기 무릎으로 누른 판을 더 세게 눌렀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를 베어 넘긴 것도 아니고, 적을 쓰러뜨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텼고, 대열이 무너지지 않게 몇 자리를 바꿨다. 그런데 그 작은 순서가 방금 사람들의 발을 멈췄다. 나를 짐칸 옆에 두던 눈들이, 이제 내가 가리키는 각을 먼저 보려 했다.

세라가 천끈을 감았다.

“네가 약한 건 맞아.”

그 말은 상처보다 덜 아팠다. 예상한 말이라서였다.

“근데 방금 네가 없었으면 더 많이 다쳤어.”

나는 세라를 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칭찬을 하려는 얼굴이 아니었다. 자기 판단이 싫은데도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판단이 틀린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기분 나쁜 인정이네.”

“기분 좋으라고 한 말 아니야.”

세라가 매듭을 단단히 묶었다.

“다음에 같은 자리를 보면 네가 먼저 말해. 대신 혼자 뛰지 마.”

“방금은 내가 먼저 안 뛰면 발판이 먼저 꺼졌어.”

“알아.”

그 짧은 대답 뒤에 세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전처럼 내 말을 잘라 내지 않았다. 반박하지도 않았다. 대신 방금 내가 본 순서를 자기 머릿속에 넣는 중이었다.

위쪽 바위턱에서 리에트가 조용히 내려왔다. 그녀는 우리 곁에 바로 오지 않았다. 먼저 내가 빠졌던 흙턱, 쇠화살이 박힌 방패판, 갈라진 짐줄, 사면 위 깨진 돌을 차례로 살폈다. 손으로 만지기 전엔 눈으로 끝까지 훑었다.

“여긴 자연스럽게 무너진 게 아니야.”

세라가 검끝을 낮췄다.

“뭐가 보이는데.”

리에트가 무너진 흙턱 가장자리를 발끝으로 아주 조금 걷어 냈다. 아래쪽 회색 흙이 떨어지자 매끈한 절개면이 드러났다. 바람과 비가 깎은 선이 아니었다. 얕게 파고 다시 덮은 선. 그 위에 최근 긁은 가는 홈이 하나 더 있었다.

“처음에 한 번 깎았고, 그 뒤에 덮었고, 오늘이나 어제 다시 긁었어.”

그녀의 말은 길지 않았다. 대신 위치가 정확했다.

“누가 지나가라고 만든 길이 아니야. 누가 멈춰 서는지 보려고 만든 자리야.”

나는 내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피가 천끈 아래에서 천천히 번졌다. 방금 내가 걸린 곳은 우연한 발판이 아니었다. 내가 북서 틈을 보자마자 발을 디딜 만한 첫 안전지점처럼 보이게 만든 자리였다. 너무 안전해 보이는 곳. 너무 쉽게 두 번째 발을 내딛게 만드는 곳.

공식 입구만 함정이 아니었다.

우회선도 이미 읽혀 있었다.

그 사실이 목덜미를 차갑게 눌렀다. 누군가는 내가 넓은 길을 피할 거라고 예상했다. 피한 뒤 어디에 발을 둘지도 계산했다. 그리고 내가 혼자 살려고 뒤로 끌려오는지, 아니면 뒤쪽 대열을 깨지 않으려고 버티는지까지 보고 있었다.

확인 서기가 그제야 조심스레 앞으로 나왔다. 그는 피 묻은 내 손보다 무너진 흙턱을 먼저 봤고, 그다음에야 방패판에 박힌 쇠화살을 보았다.

“이건 정식 전투 접촉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세라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벨로네 후보, 피가 났습니다.”

“붕괴 지점에서 손을 다쳤다.”

서기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화살이—”

“낙석 위험 확인 중 금속 파편이 튀었다.”

세라의 말은 완전한 진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전투 접촉이란 단어가 올라가면, 다음에 오는 건 구조가 아니라 인계였다. 에이드리언 베일이 위험 반응을 보였고, 외부 엘프가 끼어들었고, 광갱 외연에서 무력 접촉이 있었다. 그런 문장들은 사람을 살리는 쪽보다 먼저 사람을 떼어 놓는 쪽으로 쓰인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세라도 알고 있었다. 리에트도 말없이 서기를 보는 눈으로 이미 알고 있음을 드러냈다.

서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쓰면 나중에 책임이—”

“그럼 이렇게 써.” 세라가 잘랐다. “북서 사면 아래 인공 절개 의심. 공식 진입 전 붕괴 위험 확인 필요. 인원 전원 현 위치 유지. 보고는 현장 안정 뒤 작성.”

“현장 안정 뒤라니요?”

“살아 있으면 쓴다는 뜻이야.”

서기의 입술이 닫혔다. 그 말은 위협이 아니라 순서였다. 지금 이곳에선 문장이 사람보다 앞서면 사람이 사라진다. 세라는 그 순서를 뒤집으려 했다. 그 대가가 나중에 자기 이름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리에트가 무너진 흙턱 아래에서 짧은 칼날 하나를 집어 올렸다. 칼이라기엔 날이 짧고, 송곳이라기엔 등 부분이 넓었다. 피가 묻은 자국은 없었다. 대신 칼끝 안쪽에 섬유가 걸려 있었다. 짐줄 섬유였다.

“사람 찌르는 물건이 아니야.”

세라가 눈을 좁혔다.

“줄 끊는 물건.”

“줄, 고삐, 방패 받침, 손가락. 이어진 걸 끊기 좋게 만들었어.”

리에트가 칼날을 바닥에 놓았다. 손에 오래 들고 싶지 않다는 듯했다.

“너희를 죽이기보다는 엉키게 만드는 게 먼저였어. 여기까지 보면 매복이라기보다 시험이야.”

시험.

그 단어가 너무 정확해서 싫었다. 나는 수련원에서 늘 시험받았다. 검을 얼마나 들 수 있는지, 마나를 얼마나 띄우는지, 계승자라는 각인이 왜 쓸모없는지. 하지만 지금의 시험은 달랐다. 누군가 내 수치를 재는 게 아니었다. 내가 사람과 길과 물건 사이에서 무엇을 먼저 붙드는지 보고 있었다.

그건 숫자보다 더 나쁜 기록이었다.

“나를 본 거야.”

내가 말했다.

세라가 나를 보았다.

나는 피 묻은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폈다.

“공식 입구로 몰아도 안 들어가면 어디로 가는지. 우회선을 보면 첫발을 어디 두는지. 뒤에서 끌면 혼자 빠져나오는지, 아니면 대열이 깨지는 걸 먼저 보는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듣기 싫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더 위험했다. 말하지 않으면 방금 일은 그냥 습격이 되고, 습격은 곧 중단 보고가 되고, 중단 보고는 나를 누군가의 수레로 옮길 구실이 된다.

세라는 오래 말이 없었다.

방패판 뒤 후보생들도 조용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무심코 자기 매듭을 내려다봤다. 방금 끊길 뻔한 줄. 그 줄이 이제는 자기 목숨과도 이어져 있다는 걸 뒤늦게 안 얼굴이었다.

“그럼 반대로 보자.”

세라가 말했다.

“상대도 방금 봤겠지. 네가 혼자 빠지는 쪽이 아니라 뒤쪽 대열까지 같이 봤다는 걸.”

“그게 좋은 소식이야?”

“아니. 더 귀찮은 소식.”

그녀는 다시 방패판과 수레를 보았다.

“하지만 우리도 봤어. 놈들이 뭘 먼저 끊는지.”

리에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보다 연결. 길보다 순서.”

그 말이 적재 평지 안쪽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방금 싸움이 다른 모양으로 보였다. 화살은 사람을 쏜 게 아니라 손을 쐈고, 칼날은 목을 노린 게 아니라 줄을 노렸고, 무너진 턱은 나를 떨어뜨린 게 아니라 뒤쪽 대열을 넓은 입구로 되밀려고 했다. 전부 이어진 것을 끊기 위한 손이었다.

나는 그 반대편에 서야 했다.

내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전열 앞에서 오래 버틸 몸이 아니었다. 세라가 검을 들고, 리에트가 위를 보고, 후보생들이 방패판을 누르고, 보급병이 말을 가라앉혀야 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줄이 먼저 끊기면 다 같이 죽는지 봐야 했다.

그게 내 각인이 처음으로 전장 안에서 자리를 얻는 방식이라면, 참 기분 나쁜 방식이었다.

그래도 쓸모없는 방식은 아니었다.

세라가 후보생들을 다시 나눴다. 팔꿈치를 다친 후보생은 창을 내려놓고 방패판 받침만 맡았다. 손이 덜 떨리는 보급병은 말고삐를 잡았다. 서기는 수레 뒤가 아니라 세라 옆에 서게 됐다. 문서판을 안은 채였지만, 적어도 도망치듯 뒤로 빠지진 못했다. 리에트는 위쪽 바위턱으로 다시 올라가지 않고, 적재 평지 오른쪽의 낮은 돌무더기 뒤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는 사면 중턱과 공식 입구, 둘 다 볼 수 있었다.

“불은 낮게.” 세라가 말했다. “넓은 입구 쪽에 사람 세우지 마. 방패판은 바깥에서 보기에 비뚤게 둬. 바로잡지 마.”

후보생 하나가 숨을 삼켰다.

“비뚤게요?”

내가 대신 답했다.

“곧게 세우면 어디를 막는지 보인다. 비뚤게 둬야 저쪽이 다음 줄을 못 읽어.”

후보생은 이번엔 나를 오래 보지 않았다. 바로 방패판을 밀었다. 그게 더 낯설었다. 인정받는 느낌보다, 내 말이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의 하나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좋다기보다 무거웠다.

세라가 그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인정이었다.

나는 무너진 흙턱 아래로 다시 시선을 내렸다. 리에트가 걷어 낸 절개면 아래에는 더 어두운 틈이 있었다. 바람이 거기서 아주 약하게 빨려 들어갔다가 되밀려 나왔다. 자연 동굴 바람처럼 길게 빠지지 않았다. 막힌 공간 안에서 되돌아오는 숨 같았다.

“안쪽에 빈 곳이 있어.”

리에트가 낮게 말했다.

세라도 들었다. 그녀는 바로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무너진 흙턱과 우리 대열 사이 거리를 다시 쟀다. 내 손, 방패판, 수레, 말, 서기, 리에트의 위치. 방금 전 같았으면 그녀는 공식 절차와 기사단 규정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먼저 어디서 버틸지 세고 있었다.

“지금 바로 들어가진 않는다.”

세라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겁먹었어?”

“그래.”

너무 쉽게 인정해서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세라는 내 표정을 보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겁먹었으니까 순서대로 들어간다. 네 말대로. 첫째, 여기 남은 줄과 칼날을 보존한다. 둘째, 사면 위 둘이 다시 움직이는지 리에트가 본다. 셋째, 방패판 뒤 사람을 바꾼다. 넷째, 너는 손부터 묶고 앉아.”

“나는 마지막이야?”

“너는 첫발을 이미 내디뎠어. 피까지 냈고.”

세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제 혼자 증명하려 들지 마. 네가 봤으면, 우리가 같이 움직여야 의미가 있어.”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걸렸다. 나는 혼자 증명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혼자 검을 들고, 혼자 각인을 보이고, 혼자 쓸모를 입증하라는 말. 그런데 세라는 지금 반대로 말했다. 내가 봤다면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그게 신뢰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마 아닐 것이다. 세라는 나를 여전히 감시하고 있고, 나는 그녀가 찢어 숨긴 문서를 아직 다 보지 못했다. 리에트는 이름을 밝혔지만 왜 먼저 와 있었는지는 전부 말하지 않았다. 서기는 틈만 나면 문장을 골라 위로 올릴 사람이다. 이 대열은 따뜻한 파티가 아니다.

하지만 방금 우리는 같은 줄을 붙잡았다.

그 줄이 끊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다시 폈다. 세라가 묶은 천끈 아래에서 피가 더 번지진 않았다. 통증은 그대로였다. 그 통증 덕분에 내가 어디를 붙잡았는지 잊지 않을 것 같았다.

리에트가 무너진 흙턱 아래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안쪽 벽, 아래쪽이 너무 반듯해. 누가 입구를 숨긴 게 아니라 입구처럼 보이지 않게 덮은 거야.”

“초급 광갱이 아니네.”

후보생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라가 그를 혼내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급이라는 글자는 표지목 앞면에만 남았다. 발밑의 절개면, 짐줄을 노린 칼날, 손을 멈추려던 쇠화살, 안쪽에서 되받는 바람은 전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공식 입구 쪽을 보았다. 넓고 편한 검은 입구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이제는 던전 입구라기보다 누군가 우리를 세워 두기 좋은 무대처럼 보였다. 그 무대를 버리고 좁은 쪽을 택했는데도 함정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광갱은 단순히 길이 둘인 곳이 아니다. 어느 길을 택해도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남기는 장치다.

그 장치를 만든 손이 있다.

그리고 그 손은 내가 살아남은 걸 봤다.

“에이드리언.”

세라가 다시 불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처럼 보이면 바로 말해. 내가 싫어도 들을 테니까.”

“좋게 인정하는 법은 끝까지 없네.”

“너도 좋게 다치지 않았잖아.”

리에트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짧았지만, 긴장이 아주 조금 풀렸다. 바로 그 순간 안쪽 틈에서 다시 바람이 밀려 나왔다. 이번엔 먼지 냄새만이 아니었다. 오래 닫힌 철과 젖은 돌, 아주 희미한 약초 냄새가 섞여 있었다.

로웬 헤일의 낡은 메모에서 맡았던, 그 말라붙은 약초 냄새.

나는 숨을 멈췄다.

손안의 성철 부적은 뜨거워지지 않았다. 대신 아주 약하게 식었다. 방금 전처럼 길을 알려 주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가 보아야 할 자리에 섰다는 듯, 조용히 무게만 더했다.

나는 부적을 꺼내지 않았다. 그걸 먼저 들면 모두의 눈이 물건으로 몰린다. 지금 봐야 할 건 부적이 아니라 안쪽 바람, 절개면 아래 빈 공간, 리에트가 고른 사선, 세라가 다시 세운 대열, 그리고 문서를 아직 올리지 못한 서기의 손이었다.

“안쪽 확인한다.”

세라가 마침내 말했다.

“하지만 전부 들어가진 않는다. 리에트가 위를 보고, 에이드리언은 내 옆. 방패판 둘은 입구를 등지지 말고 적재 평지를 막아. 서기는 여기서 보고를 쓰지 않는다. 내가 부르기 전까지 한 글자도 올리지 마.”

서기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제 권한을—”

“네 권한보다 저 안쪽 바람이 먼저야.”

세라가 잘라 말했다.

“살아 돌아가면 네 문장도 살아. 여기서 틀리면 네 문장만 남고 사람은 없어진다.”

이번엔 서기도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남은 손으로 바닥의 표시를 하나씩 정했다. 짧은 쇠화살은 뽑지 않고 그 아래 흙에 작은 돌 세 개를 눕혔다. 줄 끊는 칼날은 리에트가 보던 방향 그대로 방패판 안쪽 그늘에 밀어 넣었다. 무너진 발판 가장자리엔 세라가 찢어 준 붉은 실 한 올을 묶었다. 나중에 누가 다시 흙을 덮어도, 우리가 본 각과 높이를 잃지 않으려면 눈으로 본 자리를 손으로 남겨야 했다.

“브렌, 저 돌 세 개 건드리지 마. 하리엔은 붉은 실보다 안쪽으로 발 넣지 말고. 보급병은 말 코를 공식 입구 쪽으로 돌리지 마.”

내가 이름을 부르자 셋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전에는 내 말이 명령인지 아닌지부터 봤을 얼굴들이었다. 이번엔 먼저 자기 발밑을 확인했다. 세라는 그 변화를 보고도 끼어들지 않았다. 그 침묵 덕분에 내 말이 허공에서 흩어지지 않고 실제 자리로 내려앉았다.

나는 천으로 묶인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피 냄새가 약초 냄새와 섞였다. 처음 흘린 피가 영웅의 표시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서 내가 치른 첫 대가에 가까웠다. 그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사람들은 내가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지 조금 보기 시작했다.

그게 증명의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작은 됐다.

무너진 흙턱 아래, 반듯하게 숨은 틈이 어둠을 조금 벌렸다. 우리는 넓은 공식 입구가 아니라 피 묻은 적재 평지 쪽으로 몸을 낮췄다. 세라의 검끝이 내 왼쪽에서 낮게 떠 있었고, 리에트의 화살촉은 위쪽 돌그늘을 따라 움직였다. 뒤에서는 방패판이 다시 한번 삐걱이며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앞으로 갔다.

초급이라는 말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제 확인해야 할 건, 누가 이 거짓말을 입구부터 우리 몸에 맞춰 놓았는가였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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