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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의 거래

왼쪽 보조실 틈은 사람 하나가 몸을 접어야 겨우 통과할 만큼 낮았다.

등불빛은 틈 안쪽까지 닿지 못했다. 착지대 뒤쪽에서는 돌아갈 길을 막는 석판들이 허벅지 높이까지 올라와 있었고, 위쪽 계단에서는 갈고리 사슬이 다시 돌턱을 긁었다. 정면 문틀에서는 아직 반쯤 벌어진 틈 사이로 열두 홈과 지워진 열세 번째 잔선이 번갈아 떨렸다. 세라는 방패를 왼쪽 틈 앞에 비스듬히 세우고 내 어깨와 미리엘 손목 사이를 가렸다. 리에트는 한 칸 위에서 활끝을 틈 안쪽 그림자와 위쪽 갈고리 사이로 번갈아 돌렸다. 미리엘은 문틀 홈에 피 묻은 손을 붙인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는 넓은 어깨의 그림자가 낮은 작업대 뒤에서 꿈틀거렸다.

“그 손, 거기서 떼지 마.”

목소리는 다시 그렇게 말했다. 말보다 먼저 금속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작고 무거운 파편 하나가 어둠 속에서 바닥을 긁고 세라 방패 아래까지 굴러왔다. 검푸른 단면이 등불을 받아 번쩍였다.

“왼쪽 보강쐐기까지 깨우면 다 같이 깔린다. 기도문 잘못 읽어서 죽는 건 사제들 취미고, 나는 남의 취미에 깔릴 생각 없다.”

세라의 방패 윗모서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누구냐.”

대답 대신 작업대 아래에서 짧은 망치 하나가 먼저 나왔다. 그다음 두꺼운 손, 짧은 팔, 금속 가루가 묻은 가죽 소매가 보였다. 어둠이 밀리자 드워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는 낮았지만 넓었다. 몸을 숙인 채로도 틈 안쪽을 꽉 채우는 체격이었다. 짙은 갈색 머리는 땀과 먼지로 눌렸고, 짧은 수염 사이에는 검은 금속 가루가 박혀 있었다. 그는 우리 얼굴보다 바닥, 문틀, 세라 방패가 물고 있는 각도를 먼저 봤다.

마지막에야 내 허리춤의 균열난 성철 부적을 흘겨봤다.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을 본 게 아니라, 물건의 쓸모와 가격을 한 번에 재는 눈이었다.

“브론 카르트.”

드워프가 말했다.

“공방 주인은 아니고, 빚쟁이는 많고, 지금은 이 구멍에 갇힌 사람이지. 네놈들이 문을 덜 깨운 덕에 아직 머리가 붙어 있고.”

리에트가 활끝을 조금 더 안으로 밀었다.

“갇힌 사람치고는 파편값부터 묻더군.”

“살아 나가려면 값부터 세야지. 울고 기도해서 살아 나가는 건 성도 사람들 장부에나 있는 얘기다.”

미리엘의 손끝이 홈 위에서 굳었다. 성도라는 말이 그녀 어깨를 작게 때렸다. 위쪽 계단에서는 다시 사슬이 당겨졌다. 갈고리가 석판 끝을 걸었고, 돌이 낮게 울었다. 우리 뒤의 길은 조금씩 벽이 되고 있었다.

나는 틈 안쪽 바닥을 봤다. 최근 발자국은 하나가 아니었다. 넓고 짧은 발자국이 작업대 쪽과 벽 아래를 오갔고, 그 옆으로 도구 상자 바닥이 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벽에는 새로 박은 쐐기와 오래전에 빠진 못자국이 섞여 있었다. 이 공간은 자연 틈이 아니었다. 누군가 장치를 옆에서 만지고, 고치고, 다시 막은 자리였다.

브론은 우리를 구하려 나온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방을 읽을 수 있는 얼굴이었다.

“왼쪽 보강쐐기가 뭐지.”

내가 물었다.

브론의 눈이 그제야 나에게 멈췄다.

“가운데 선 놈 발목 잡는 장치.”

“가운데엔 안 섰다.”

“그래서 아직 살아 있겠지.”

그는 내 발목을 봤다. 조금 전 문틀이 붙잡았던 자리엔 감각이 둔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네놈 발이 빠지면서 힘이 왼쪽으로 왔다. 저 사제 손이 홈에서 떨어지면 쐐기가 혼자 깨어난다. 쐐기가 깨면 틈 위 판석이 내려오고, 여기 있는 넓적한 방패든 엘프 활이든 전부 납작해진다.”

세라가 낮게 말했다.

“말은 잘하는군. 증거.”

브론은 바로 움직였다. 그는 작업대 옆에서 굽은 못 하나를 집어 던졌다. 못은 세라 방패 앞 돌바닥에 떨어져 두 번 튀었다. 머리 부분이 이상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휜 게 아니라, 한쪽에서 일부러 눌러 하중을 비틀어 받은 모양이었다.

“보수용 못이면 머리를 넓게 펴서 무게를 받친다. 이건 무게를 버티려고 박은 게 아니야. 무게가 올 때 옆으로 미끄러지게 만든 못이지. 문 여는 놈이 제일 안전해 보이는 가운데를 밟으면, 발목을 붙잡고 왼쪽 쐐기를 늦게 깨워서 보조실까지 같이 잘라 먹는다.”

미리엘이 홈에 붙인 손가락을 조금 폈다. 피가 굳으며 검게 변했다.

“성도 기록에는 보조실이 없었어요.”

“기록에 없는 게 원래 제일 비싸다.”

브론이 대꾸했다.

“누가 숨겼든, 숨기는 데 든 돈이 있다는 뜻이니까.”

리에트가 비웃듯 숨을 뱉었다.

“돈 냄새 맡고 기어든 건가.”

“그럼 명예 냄새 맡고 들어왔겠나?”

그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외곽 북사면 배수 틈이 막힌 척만 하고 살아 있더군. 바람이 들어오고, 녹 냄새가 새고, 누가 못질한 자국이 비에 씻기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면 안쪽에 값이 있지. 들어왔더니 성도 껍데기와 군용 보강재가 문 하나에 붙어 있고, 오래된 본체는 또 다른 말을 하고 있더라. 내가 욕심을 낸 건 맞다. 그런데 욕심 많은 놈이라고 눈까지 멀진 않아.”

위쪽 갈고리가 석판을 세게 당겼다. 돌과 쇠가 맞물리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세라가 몸을 비틀어 방패 윗모서리를 올렸다. 갈고리 끝이 방패에 걸렸다가 미끄러졌고, 리에트의 화살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가 사슬의 작은 고리를 끊었다. 끊어진 고리가 튀어 브론의 작업대 앞까지 굴러왔다.

브론은 그 작은 고리를 발끝으로 눌렀다.

“좋은 강철은 아니네. 성도 놈들 장비는 겉만 번쩍거리지.”

“잡담할 시간 없다.”

세라가 말했다.

브론은 세라를 봤다. 이번에도 얼굴보다 방패 각도를 먼저 봤다.

“방패 왼쪽 아래를 한 치만 빼. 아니, 그렇게 말고. 무게를 버티는 팔이 아니라 미는 팔을 낮춰. 네 어깨가 너무 높아. 위쪽 놈들 받다가 왼쪽 판석 내려오면 그 방패가 네 목을 누른다.”

세라의 눈이 매서워졌다.

“명령하지 마.”

“죽기 싫으면 들어.”

두 사람 사이에 짧은 불꽃이 튀었다. 세라가 브론을 믿어서 움직인 건 아니었다. 그녀는 갈고리 소리와 판석 떨림을 직접 들었다. 그다음 방패 왼쪽 아래를 아주 조금 내렸다. 금속면이 틈 가장자리를 스치며 자세가 바뀌었다. 동시에 위쪽에서 다시 날아든 갈고리가 방패를 긁고 지나갔지만, 이번엔 방패가 목 쪽으로 밀리지 않았다. 충격이 세라 무릎 아래로 흘렀다.

브론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말귀는 있군.”

세라가 이를 드러냈다.

“다음엔 네 머리로 시험해 보지.”

“살아서 나가면 싸게 해 주지.”

이상하게도 그 말이 상황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드워프가 지금 무엇을 우선하는지 분명하게 보였다. 사람을 달래지 않는다. 호감을 사려 하지 않는다. 대신 어느 각도가 죽이고 어느 각도가 살리는지, 그것만 빠르게 재서 던진다.

지금 필요한 건 호의가 아니었다.

나는 브론에게 말했다.

“길을 열 수 있나.”

“값부터.”

세라가 방패 뒤에서 욕을 삼켰고, 리에트 활끝이 브론 목 아래로 더 낮아졌다. 브론은 활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내 손에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조금 전 줍지 못한 검푸른 파편 쪽이었다.

“그 조각. 그리고 이 방 안에 남은 내 공구집. 거기서 내가 먼저 고르는 두 장. 나머지는 나가서 따진다.”

“우리 목숨값으로 파편을 달라는 건가.”

“네 목숨값은 내가 못 매긴다. 너무 싸면 네 친구들이 화낼 테고, 너무 비싸면 내가 손해다. 대신 길값은 매길 수 있지.”

리에트가 낮게 말했다.

“탐욕스러워서 오히려 알아듣기 쉽군.”

나는 브론을 보았다. 위쪽 사슬, 뒤쪽 석판, 문틀 홈에 붙은 미리엘의 피, 세라의 방패 각도, 리에트의 남은 화살. 시간이 줄어드는 게 눈으로 보였다. 브론에게 파편을 주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이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조건을 바꾼다.”

내가 말했다.

브론의 눈썹이 꿈틀했다.

“흥정할 시간이 있나?”

“있어야 한다. 네가 먼저 고르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파편은 문 밖으로 나간 뒤에 고른다. 여기서는 네 손이 먼저 움직인다. 쐐기를 눌러서 세라가 방패를 뺄 시간을 만들고, 미리엘 손이 떨어져도 틈이 바로 닫히지 않게 한다. 우리 중 하나라도 여기 눌려 죽으면 네 값도 같이 묻힌다.”

브론은 말없이 내 눈을 봤다.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거짓말하면 네가 고르는 두 장은 없어. 리에트가 먼저 네 공구집 끈을 끊고, 세라가 방패로 네 손을 벽에 박을 거야.”

리에트가 활줄을 아주 조금 당겼다.

“그건 마음에 드네.”

세라도 이번엔 반박하지 않았다.

브론은 한 박자 동안 우리를 보았다. 세라의 방패, 리에트의 활, 미리엘의 피 묻은 손, 내 발목의 굳은 자세. 그는 사람 얼굴보다 배치와 대가를 읽었다. 그러더니 낮게 웃었다.

“좋다. 말은 허술한데 계산은 되네.”

그는 작업대 아래로 몸을 낮췄다. 짧은 체격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팔만 빠르게 움직였다. 금속 쐐기 둘, 굽은 쇠자 하나, 짧은 망치가 바닥 위에 놓였다. 그는 쇠자를 틈 가장자리와 내려오려는 판석 사이에 끼우고, 망치로 딱 한 번 쳤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문틀 떨림이 한 박자 바뀌었다.

미리엘이 바로 느꼈다.

“홈이 느려졌어요.”

“느려진 게 아니라 속인 거야.”

브론이 말했다.

“왼쪽 보강쐐기가 아직 네 손이 붙어 있다고 읽게 만든 거지. 오래 못 간다. 사제 아가씨, 손은 천천히 떼. 겁먹고 빼면 문이 네 겁부터 먹는다.”

미리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뭘 느끼는지 장치가 읽는다고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못이 울고, 못이 울면 쐐기가 깬다. 감정 같은 건 모르겠고, 떨림은 읽는다.”

나는 그 차이를 붙잡았다. 브론은 사람 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돌과 금속이 받는 힘만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믿을 수 있었다. 거창한 말보다, 우리가 지금 만지고 있는 것과 맞았다.

“미리엘.”

내가 말했다.

“기도문 생각하지 마. 손가락 힘만 줄여. 첫째 손가락, 그다음 둘째. 세라가 방패를 반 치 더 뺄 때 맞춰.”

미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도 확인반 표식은 아직 문틀 가장자리 위에 놓여 있었다. 위쪽 사람들이 그 표식을 보고 한 번씩 멈칫하는 동안, 그녀는 손끝 힘을 아주 조금 풀었다. 문틀 빛이 흔들렸다. 브론이 바로 망치 손잡이로 쇠자를 눌렀다.

“지금.”

세라가 방패를 반 치 뺐다.

리에트가 동시에 위쪽 석판 틈을 향해 화살을 쐈다. 화살은 사람을 맞히지 않고 사슬이 통과하는 작은 틈을 스쳤다. 돌가루가 쏟아졌고, 위쪽 갈고리가 한 박자 늦었다. 나는 세라 방패 아래로 몸을 낮춰 틈 안쪽에 손을 넣었다. 차갑고 기름진 바닥을 짚으며 안쪽 작업실 첫턱을 확인했다.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오래 버려진 방이라면 먼지가 한 방향으로 눌려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 먼지는 발자국, 공구 상자 자국, 무릎을 댄 자국으로 계속 깨져 있었다. 벽 아래에는 누군가 최근에 긁어낸 판재 가루가 남아 있었고, 작업대 아래쪽에는 물이 아니라 기름이 얇게 고였다. 이 문은 잊힌 게 아니었다. 잊힌 척 관리된 것이다.

브론이 내 옆으로 기어 나와 금속판 하나를 붙잡았다. 그는 판을 뜯지 않고 손가락으로 단면을 문질렀다. 그의 손톱 밑에 검푸른 가루가 끼었다.

“이건 성도 물건이 아니야.”

미리엘이 숨을 멈췄다.

“하지만 표식은 성도식이에요.”

“겉면만.”

브론은 판을 기울였다. 등불빛에 표면이 매끈하게 반사됐다. 가까이 보면 성도식 곡선처럼 보이는 선들이 얇게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뒷면은 달랐다. 사선 홈이 군용 보강재처럼 일정하게 지나갔고, 그 아래 더 오래된 본체에는 홈도 표식도 아닌 짧은 찍힘들이 남아 있었다.

“겉간판은 성도 흉내. 힘 받는 곳은 왕국 군수 공방에서 쓰는 보강법. 그런데 뼈대는 더 오래됐다. 못 박은 순서도 달라. 성도식 표식이 먼저가 아니야. 안쪽 보강이 먼저 들어가고, 그 위에 성도 얼굴을 씌웠다. 그리고 제일 안쪽 본체는 그 둘보다 늙었어.”

세라가 방패를 붙든 채 물었다.

“한 손이 한 번에 한 일이 아니라는 뜻인가.”

“한 손이면 이렇게 못 남긴다.”

브론이 판재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봐. 겉면은 마감이 깔끔하지. 보는 사람을 속이려고. 그런데 힘 받는 뒤쪽은 급하게 조였다. 누가 보고용 얼굴을 씌운 뒤, 다른 누가 하중을 바꿨거나, 반대로 힘을 바꾼 뒤 겉얼굴을 급히 맞췄다. 순서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둘 다 원래 뼈대는 아니야.”

로웬의 메모 조각이 떠올랐다.

도시 안이 더 위험하다.

열세 번째 줄을 다시 읽어라.

나는 처음엔 그 말이 숨은 길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문은 길보다 이름을 먼저 속였다. 정화문이라고 부르면 사제는 씻어 내는 문으로 읽는다. 광갱 폐선이라고 적으면 왕국 사람은 버려진 구역으로 여긴다. 가운데가 안전해 보이면 들어온 사람은 스스로 미끼 자리에 선다. 하나씩은 작은 거짓말인데, 겹치면 몸을 가르는 장치가 된다.

위쪽에서 목소리가 다시 내려왔다.

“하층 반응자 확보 우선! 성도 확인반은 분리한다!”

반응자.

그 단어가 나를 향해 떨어지는 걸 모두가 들었다. 세라의 방패 각도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리에트의 화살촉은 위를 향했지만, 한순간 내 쪽으로도 시선이 돌아왔다. 미리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브론만 눈을 좁혔다.

“반응자라.”

그가 중얼거렸다.

“그 말은 또 값이 붙겠는데.”

세라가 바로 한 걸음 틈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방패 모서리가 브론 어깨 앞을 막았다.

“그 값까지 입에 올리면 네 이빨부터 세겠다.”

브론은 손을 들었다.

“아직 안 셌다. 듣기만 했지.”

나는 그를 노려보다가, 위쪽 계단을 봤다. 분노할 시간은 없었다. 브론이 내게 어떤 값을 보든, 위쪽 사람들은 이미 값을 매겼다. 손상 없이 확보한다. 성도 확인반은 분리한다. 반응자는 가운데에 둔다. 그들의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분류였다. 사람을 보고 부르는 말이 아니라, 가져갈 물건에 붙이는 표찰처럼 들렸다.

“브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 값은 네가 정하지 않는다. 네가 정할 수 있는 건 이 문에서 네 손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뿐이야.”

브론은 잠깐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말은 점점 나아지는군.”

그는 다시 판재를 붙잡았다.

“그럼 네 쓸모도 보여 봐라. 이 문은 중심을 좋아한다. 너는 중심에 서면 죽고, 사제 아가씨는 손을 떼면 죽고, 방패 든 아가씨는 힘으로만 버티면 목이 눌린다. 엘프는 사람을 쏘면 길이 막히고, 쇠를 쏘면 길이 산다. 각자 제일 익숙한 짓을 버려야 한다.”

리에트가 낮게 웃었다.

“낯선 놈이 우리를 꽤 빨리 재는군.”

“느린 놈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브론이 짧게 대꾸했다.

나는 바닥에 몸을 낮췄다. 정면 문틀은 아직 우리를 가운데로 부르듯 은회색 선을 떨었다. 그 떨림을 따라가면 편했다. 서기 좋은 자리, 잡히기 쉬운 자리, 보기에 그럴듯한 자리. 나는 그 반대편을 봤다. 왼쪽 보조실 턱 아래, 사람들이 공구 상자를 끌며 만들어 놓은 낮은 흠. 그 흠은 문이 원래 읽도록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나중에 몸으로 만든 자리였다.

“세라, 방패를 막는 데 쓰지 말고 받침으로 써.”

“뭘 받쳐.”

“브론이 끼운 쇠자. 네 방패 아래턱으로 눌러. 힘을 사람 쪽으로 받지 말고 돌 쪽으로 흘려.”

세라가 곧바로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보다 바닥을 봤다. 쇠자가 끼인 틈, 내려오는 판석, 방패 아래턱이 닿을 자리.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방패를 더 낮췄다.

“리에트, 위쪽 갈고리 말고 사슬이 지나가는 돌턱을 긁어. 떨어뜨리지 말고 흔들어.”

“사람을 안 쏘는 주문이 또 나왔군.”

“쏠 사람은 나중에도 많아.”

리에트는 짧게 숨을 내쉬고 화살을 바꿔 잡았다.

“미리엘.”

그녀가 나를 봤다.

“손을 떼지 마. 대신 기도문도 읽지 마. 네가 아는 성도식 문장을 덮으면 문이 그 덮은 말을 따라간다. 방금 읽은, 그 밑의 문장만 떠올려. 소리 내지 않아도 돼.”

미리엘의 입술이 떨렸다. 성도식 기도를 버리고 말 없는 문장을 붙드는 일은, 그녀에게 손가락을 홈에 꽂는 것보다 더 아픈 선택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지 않고, 손끝 힘만 천천히 줄였다.

브론이 쇠자를 다시 눌렀다.

“지금부터 한 박자다.”

“한 박자면 충분해.”

내가 말했다.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야 했다.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면 문이 아니라 우리 쪽 손이 먼저 늦어진다.

세라의 방패가 쇠자를 눌렀다. 리에트의 화살이 돌턱을 스치며 불꽃을 튀겼다. 미리엘의 손끝이 홈 위에서 떨림을 줄였다. 브론의 망치가 내려왔다. 나는 중심선이 아니라 왼쪽 흠 위로 손을 넣고, 검푸른 판재 아래쪽을 밀었다.

문틀이 낮게 울었다.

처음엔 실패한 줄 알았다. 위쪽 석판이 더 빨리 올라왔고, 틈 위 판석도 내려왔다. 세라가 이를 악물며 방패를 눌렀다. 브론의 쇠자가 휘었다. 리에트가 두 번째 화살을 준비했지만 각도가 없었다. 미리엘 손끝에서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그때 판재 아래쪽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성도식 외피가 아니라, 그 아래 오래된 뼈대가 반응하는 소리였다. 둔하고 깊은 울림. 수문장 때의 거친 밀침도, 성도 기도문의 얇은 떨림도 아니었다. 오래 묻힌 문이 자신을 덮은 껍질을 잠깐 잊고 본래 무게를 되찾는 소리였다.

왼쪽 보조실 턱이 손가락 한 마디 더 벌어졌다.

공기가 바뀌었다. 젖은 쇳내 아래에서 오래된 돌가루 냄새가 올라왔다. 막혀 있던 숨구멍이 열린 듯했다. 세라는 방패를 눌러 길을 붙들었고, 브론은 쇠자를 빼내며 대신 짧은 쐐기 둘을 박았다. 리에트는 위쪽 돌턱을 한 번 더 스쳤다. 사슬이 헛돌았다. 미리엘은 홈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옆으로 한 칸 이동했다.

네 사람이 동시에 다른 일을 했다.

그리고 그 다른 일이 한 방향으로 맞았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작업실 안으로 몸을 밀었다. 무릎이 기름진 바닥에 미끄러졌다. 세라가 등 뒤 끈을 잡아 중심을 잡아 줬고, 리에트가 내 머리 위를 지나 안쪽 어둠을 겨눴다. 브론은 내 옆으로 굴러 들어오듯 따라붙었다. 마지막으로 미리엘이 손끝을 홈에서 떼며 몸을 낮췄다. 문틀 빛이 흔들렸지만, 이번에는 바로 꺼지지 않았다. 브론의 쐐기와 세라 방패 아래턱이 그 짧은 시간을 벌었다.

작업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밖에서 본 낮은 틈은 입구뿐이었다. 안쪽은 성인 네 명과 드워프 하나가 겨우 움직일 만한 폭으로 이어졌고, 왼쪽 벽에는 오래된 공구 고리와 새로 박은 못이 함께 남아 있었다. 천장은 낮아 세라가 방패를 세로로 들 수 없었다. 리에트는 활을 완전히 당기지 못하고 짧게 눕혀야 했다. 미리엘은 숨을 고르기도 전에 문틀 안쪽 홈을 다시 찾았다. 브론은 자기 공구집부터 발로 끌어당겼다.

세라가 그를 노려봤다.

“지금 공구집?”

“내 손이 움직이려면 내 공구가 있어야지.”

브론은 공구집 끈을 어깨에 걸었다. 그러고는 바로 작업대 위에 쌓인 판재 세 장을 밀어냈다. 말과 달리 챙기는 동작보다 읽는 동작이 빨랐다. 그는 가장 위의 성도식 외피를 걷어 내고, 아래 군용 보강판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마지막으로 제일 밑 오래된 판을 보자, 처음으로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됐다.”

“얼마나.”

내가 물었다.

“왕국 군수 공방보다 전. 성도식 개편보다도 전. 광갱 보수 같은 말은 갖다 붙인 놈이 양심도 없다는 정도.”

그는 낡은 판재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먼지 아래에서 짧은 획 하나가 드러났다. 열두 홈의 규칙과 맞지 않는 위치였다. 지워진 열세 번째 잔선과 같은 높이, 하지만 방향은 아주 조금 달랐다.

미리엘이 가까이 오려 했다가 멈췄다. 손끝의 피가 아직 굳지 않았다.

“그 획.”

그녀가 작게 말했다.

“성도식 글자가 아니에요.”

“왕국 표식도 아니다.”

브론이 받았다.

리에트가 낮은 천장 때문에 몸을 반쯤 틀고 섰다.

“그럼 뭔데.”

브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판재를 더 벗겼다. 성도식 외피는 얇았다. 보고서에 붙이기 좋은 얼굴이었다. 군용 보강판은 두꺼웠다. 사람을 가운데로 몰고 하중을 비트는 힘줄이었다. 그 아래 오래된 본체는 둘과 달랐다. 투박하고, 마감도 거칠고, 하지만 이상하게 정직했다. 숨기려는 표식이 아니라 남기려는 흠처럼 보였다.

나는 그 세 층을 눈으로 따라갔다.

겉간판.

힘줄.

오래된 뼈.

브론이 처음 던진 말이 이제야 자리를 찾았다. 우리는 성도와 왕국 중 어느 쪽이 거짓말을 했는지 고르는 자리에 온 게 아니었다. 누군가 오래된 문 위에 힘줄을 바꾸고, 그 위에 간판을 씌우고, 다시 장부 이름을 갈아 끼웠다. 한 겹을 벗기면 다른 겹이 나왔다. 한 사람의 음모라기엔 손이 많았고, 우연이라기엔 방향이 같았다.

사람을 중심으로 세운다.

이름을 먼저 읽게 만든다.

돌아갈 길을 늦춘다.

분리해서 가져간다.

나는 브론에게 물었다.

“원래 문은 사람을 가르는 장치였나.”

브론은 투박한 손으로 오래된 판재를 쓰다듬었다. 장비공이 좋은 금속을 만질 때의 조심스러움이었다.

“모른다.”

예상보다 정직한 대답이었다.

“다만 원래 뼈대는 사람을 속이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야. 흠을 남겼다. 누가 어디 섰는지, 무엇이 지나갔는지 남기는 쪽이지. 그런데 뒤에 붙은 힘줄은 다르다. 가운데 선 놈을 잡고, 옆에 선 놈을 끊고, 돌아가는 쪽을 막는다. 그리고 성도 얼굴은 그걸 정화문처럼 보이게 만든다.”

미리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성도식 표식이 장치를 만든 건 아니지만, 장치가 그렇게 보이도록 덮었군요.”

“네가 그렇게 말하면 믿을 놈이 있나?”

브론이 물었다.

미리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성도 확인반 표식을 꺼내 우리를 늦게나마 지켰다고 해서, 그 표식이 곧바로 증거가 되는 건 아니었다. 위쪽 사람들은 그녀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문장을 읽었는지도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분리하려 했다.

세라가 대신 말했다.

“증거는 챙긴다. 사람도 챙긴다.”

그녀는 방패를 낮게 세우고 작업실 안쪽 통로를 막았다. 낮은 천장 때문에 움직임은 불편했지만, 그녀가 서자 공간의 방향이 생겼다. 우리가 더 안쪽으로 갈 곳, 뒤에서 버틸 곳, 위쪽에서 들어오는 갈고리를 막을 곳이 눈에 들어왔다.

리에트는 활을 짧게 고쳐 잡았다.

“갈고리가 다시 온다.”

위쪽에서 사슬이 석판을 넘는 소리가 났다. 뒤쪽 석판은 완전히 올라오지 않았지만, 사람 얼굴이 들어올 틈은 없었다. 대신 갈고리와 짧은 칼, 얇은 창끝이 낮은 틈을 따라 들어올 수 있었다. 작업실은 우리에게 길을 줬지만 동시에 우리를 낮게 눌렀다. 방패도 활도 검도 평소처럼 쓰기 어려웠다.

브론은 작업대 아래에서 납작한 금속 받침 셋을 꺼냈다.

“받침 세 개. 하나는 방패 아래, 하나는 사제 손 밑, 하나는 네 발 앞.”

“왜 내 발 앞이지.”

“문이 아직 네 위치를 좋아하니까. 네가 아무 데나 움직이면 저 오래된 뼈대가 다시 깬다. 깨는 건 나쁘지 않은데, 힘줄까지 같이 일어나면 우리도 같이 간다.”

그는 받침 하나를 내 발 앞에 던졌다. 이번에도 물건을 던졌지만, 그것은 단순한 파편이 아니었다. 내가 어디에 설지 정하는 조각이었다. 내가 그 받침을 밟으면 중심을 피하고, 밟지 않으면 문이 익숙한 자리로 나를 다시 부를 것이다.

나는 받침 위에 발끝을 올렸다.

“좋아. 계약은 계속 유효하다.”

“파편 두 장.”

“나가서.”

“그리고 내 공구집은 건드리지 마라.”

“살아서 나가면.”

브론은 씩 웃었다.

“점점 장사할 맛이 나는군.”

리에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 탐욕 때문에 배신도 싸게 못 하겠군.”

“비싸게는 할 수 있겠지.”

브론이 바로 받아쳤다.

“그래서 네놈들이 값을 계속 올려야 한다. 살아 있는 파티는 죽은 파편보다 비싸야 하니까.”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내 귀에는 다르게 남았다. 살아 있는 파티. 브론이 우리를 처음으로 그렇게 불렀다. 친구도 동료도 아니었다. 하지만 물건 더미보다 비싼 묶음으로는 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정도면 시작이었다.

미리엘이 받침 위에 손을 옮겼다. 손끝이 떨렸지만, 이번엔 문틀보다 자기 숨을 먼저 골랐다.

“더 읽어야 해요.”

“소리 내서?”

내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기서는 소리보다 표식이 먼저예요. 성도식 문장으로 덮은 곳이 아니라, 그 밑에 남은 획을 봐야 해요.”

브론이 오래된 판재를 더 들어 올렸다. 판재 아래에는 작은 홈들이 줄지어 있었다. 열둘처럼 보였지만, 마지막에 아주 얕은 흠이 하나 더 있었다. 지워진 게 아니라, 여러 번 덮였다가 다시 긁힌 자리였다.

나는 숨을 멈췄다.

열세 번째.

그 획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흠을 보자, 지금까지 우리가 밟아 온 길이 한 줄로 묶였다. 수련원에서 나를 보조직으로 밀어낸 배정표. 성철 부적이 내 피에만 늦게 반응하던 순간. 수문장이 내 위치를 읽던 감각. 미리엘이 숨긴 귀환 보류문. 브론이 말한 겉간판과 힘줄과 뼈.

모두 이름보다 먼저 자리를 재고 있었다.

그때 작업실 안쪽, 더 깊은 어둠에서 낮은 바람이 불었다. 단순한 통풍이 아니었다. 오래 막힌 길이 아주 조금 열릴 때 나는 식은 숨. 등불이 흔들리고, 오래된 판재 위의 흠들이 한꺼번에 그림자를 바꿨다. 미리엘이 그 그림자를 보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세라가 물었다.

“왜 멈춰.”

미리엘은 나를 보았다. 이번엔 성도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잘못 읽으면 사람 하나를 바로 넘겨주게 된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이 표식은 이름이 아니에요.”

“그럼.”

“이름을 지운 뒤에도 남기는 자리예요.”

브론이 낮게 말했다.

“그러니까 더 비싸지.”

세라는 그를 노려봤지만, 나는 브론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는 얄미울 만큼 정확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이름을 지우고, 직업을 낮추고, 기록을 바꾸고, 문을 덮어도 남는 자리. 그 자리를 누가 갖느냐에 값이 붙는다. 위쪽 사람들이 나를 손상 없이 확보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나는 받침 위 발끝에 힘을 주었다. 문틀은 다시 아주 낮게 떨었다. 중심으로 오라는 부름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소리를 그대로 믿을 생각은 없었다.

“브론.”

“왜.”

“그 오래된 뼈대, 더 벗길 수 있나.”

“값은 올랐다.”

“알아.”

나는 세라, 리에트, 미리엘을 차례로 봤다.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라는 방패 받침을 더 깊이 눌렀고, 리에트는 다음 화살을 돌턱이 아니라 안쪽 어둠으로 돌렸고, 미리엘은 성도식 기도문 대신 그 밑에 남은 획을 계속 보고 있었다. 대답은 충분했다.

“살아 나가면 네가 먼저 두 장 고른다.”

브론의 눈이 번쩍였다.

“세 장.”

“두 장. 대신 네 이름을 우리가 먼저 지워 주진 않는다.”

그는 잠깐 멈췄다. 그 말이 파편보다 더 큰 값으로 들렸는지, 아니면 내가 흥정 흉내라도 냈다고 웃겼는지 알 수 없었다. 곧 그는 짧게 웃고 망치를 들어 올렸다.

“좋다. 보조직 나리. 두 장에 이름값 하나.”

망치가 내려갔다.

오래된 판재 가장자리에서 성도식 외피가 손톱만큼 더 벌어졌다. 그 아래 군용 보강판이 힘없이 삐걱였고, 더 안쪽의 흠 하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열세 번째 잔선의 마지막 획이었다. 그런데 그 획은 정면 문틀을 향하지 않았다. 왼쪽 아래, 우리가 기어 들어온 보조실 쪽으로 비스듬히 꺾여 있었다.

문은 처음부터 정면만 보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꺾인 획을 덮었다. 누군가는 그 위에 가운데로 몰아넣는 힘줄을 붙였다. 누군가는 다시 성도식 얼굴을 씌웠다. 그리고 왕국 장부는 그 모든 것을 외곽 광갱 폐선으로 낮춰 불렀다.

나는 그제야 이 장소가 왜 길보다 먼저 이름을 요구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문은 통로가 아니었다.

길보다 먼저 이름을 가려 받고, 이름보다 먼저 값을 매기는 자리였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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