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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쪽이 먼저 닫힌다

문틀 앞 착지대는 네 사람이 각자 숨을 따로 쉬기에도 좁았다.

위쪽 계단에서는 추적자들이 다시 장대를 걸었다. 쇠끝이 무너진 문턱을 긁을 때마다 돌가루가 세라 방패 위로 떨어졌고, 횃불빛은 계단 벽을 타고 길게 늘어졌다가 끊겼다. 아래쪽 문틀은 등불 아래에서 열두 홈과 지워진 열세 번째 잔선을 희미하게 드러냈다. 왼쪽 벽은 세라의 방패 모서리가 겨우 스칠 폭이었고, 오른쪽 배수 홈에는 깨진 쇠거울 조각과 피인지 녹인지 모를 붉은 얼룩이 섞여 있었다.

세라는 위를 막았다. 방패를 정면으로 세우면 문틀 쪽이 비고, 옆으로 접으면 위쪽 장대가 들어왔다. 그래서 그녀는 몸을 비틀어 방패 윗모서리로 계단을 긁듯 걸고, 아랫모서리로 내 앞을 막았다. 리에트는 한 칸 높은 곳에서 활줄을 반쯤 당긴 채 위쪽 손목과 아래 문틀을 번갈아 겨눴다. 미리엘은 문틀 앞에 무릎을 낮추고 은실 구슬 셋을 다섯째 홈과 아홉째 홈 사이에 걸어 둔 채, 내 발끝과 지워진 잔선 사이를 보고 있었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우리를 세고 있었다.

내 발밑 은회색 선은 왼쪽으로 비껴 들어가라는 미리엘의 말에 맞춰 아주 얕게 떨렸다. 허리춤의 균열난 성철 부적도 같은 박자로 떨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놈들은 그 떨림을 보지 못했지만, 소리는 들은 모양이었다. 장대 끝이 한 박자 늦게 멈췄고, 위쪽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아래 문이 반응한다. 성도 사람은 떼어 내고, 가운데 놈은 다치게 하지 마.”

미리엘의 손끝이 굳었다.

세라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네 사람들인가.”

“저를 아는 사람은 있을 거예요.”

미리엘은 그렇게 답했다. 변명보다 더 나쁜 대답이었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 안에는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여지도, 잡아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함께 묻어 있었다.

리에트가 활끝을 조금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그럼 네가 먼저 정해. 저쪽으로 갈 건지, 여기서 문을 읽을 건지.”

미리엘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등불빛이 그녀 눈 아래를 흔들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치유 도구와 기도문뿐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 둘이 칼보다 위험했다. 문을 읽을 사람도 그녀였고, 위쪽이 분리해서 데려가려는 사람도 그녀였다.

나는 벽에 손을 짚고 몸을 낮췄다. 문틀 아래에는 발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얕은 턱이 있었다. 미리엘이 말한 왼쪽 반 걸음은 그 턱의 중앙이 아니라 왼쪽 가장자리, 마른 피 같은 붉은 가루가 얇게 끼어 있는 곳이었다. 누군가 오래전에 같은 자리에서 멈췄고, 그 뒤로 아무도 제대로 지우지 못한 흔적.

“조건을 다시 말해.”

내가 말했다.

미리엘이 숨을 들이켰다.

“당신 발이 먼저 들어가야 해요. 가운데가 아니라 왼쪽. 제가 남은 문장을 이어 읽으면 첫 잠금이 풀려요. 그 뒤엔 문이 어느 쪽을 먼저 막을지 봐야 해요.”

“어느 쪽이 막히는지 모른다고 했지.”

“네.”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

“들어가는 쪽이 먼저 막히면 안으로 못 가요. 돌아가는 쪽이 먼저 막히면 위로는 못 돌아가요.”

세라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숨을 잘라 낸 소리였다.

“좋은 장치군. 살려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되돌아갈 길이 사라지고.”

“그래서 성도 기록에서 지웠어요.”

미리엘은 말해 놓고도 입술을 다물었다. 하지만 늦었다. 세라와 리에트가 동시에 그녀를 봤다. 나도 문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지웠다는 걸 어떻게 아는데.”

미리엘은 은실 구슬을 하나 더 조정했다. 대답을 피하기 위한 손놀림이 아니라, 떨리는 손을 붙잡기 위한 동작이었다.

“기록 정리실에서 봤어요. 같은 문을 두 번 적어 놓은 장부가 있었어요. 겉장에는 정화문이라고 되어 있었고, 안쪽에 접힌 초안에는 다른 말이 있었어요.”

“무슨 말.”

“귀환 보류문.”

말이 떨어지자 문틀의 열세 번째 잔선이 아주 짧게 밝아졌다. 그 반응 때문에 미리엘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말이 문 안쪽과 맞물렸다. 이 문은 그녀의 침묵보다 정확했다.

리에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귀환을 보류한다고.”

“돌아온 사람을 축복하는 문이 아니라, 돌아갈 수 있는 사람과 여기 남겨 둘 사람을 가르는 문이라는 뜻이에요.”

미리엘의 목소리가 마른 돌처럼 갈라졌다.

“성도 쪽 필사본에는 그 문장이 빠졌고, 왕국 쪽 분류표에는 이 구역 자체가 광갱 폐선으로 바뀌었어요. 둘 다 거짓말이었어요. 서로 다른 거짓말.”

위쪽에서 장대가 더 깊이 들어왔다. 세라 방패가 충격을 받으며 낮게 울렸다. 리에트가 곧바로 화살을 놓았다. 화살은 사람을 노리지 않고 장대 끝의 가죽 끈을 끊었다. 장대가 비스듬히 떨어지며 계단 벽을 때렸고, 위에서 욕설이 터졌다.

시간이 끊겼다.

더 묻고 싶었지만 묻는 동안 문도, 위쪽 손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세라와 리에트를 차례로 봤다.

“내가 먼저 밟는다. 세라는 내 어깨가 아니라 허리끈을 잡아. 몸이 굳으면 당기지 말고 왼쪽으로 비틀어. 정면으로 빼면 문이 중심으로 읽을 거야.”

세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몸이 장치에 잡히면?”

“그때는 방패 모서리로 내 발목 앞을 막아. 발을 빼는 게 아니라 문이 읽는 선을 끊어야 해.”

리에트가 물었다.

“나는.”

“위쪽 손목 하나. 그리고 미리엘 손.”

미리엘이 나를 봤다. 그녀 얼굴에 상처 입은 표정이 스쳤지만, 나는 거기에 맞춰 줄 여유가 없었다.

“네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야. 네 손이 멈추면 우리가 다 여기서 갈린다.”

“알아요.”

미리엘은 이번엔 변명하지 않았다.

“제가 멈추면 쏘세요.”

리에트가 바로 대꾸했다.

“그 말은 마음에 드네.”

세라가 방패를 조금 더 낮췄다. 방패 윗모서리에는 장대 끝이 긁고 간 새 흠이 남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허리끈 뒤쪽을 잡았다. 손아귀가 거칠었다. 당겨 구하려는 손이라기보다, 필요한 순간 부러뜨려서라도 떼어 낼 손이었다. 지금은 그게 더 믿을 만했다.

나는 왼쪽 반 걸음을 밟았다.

발바닥 아래 판석이 먼저 식었다. 그다음 아주 낮은 울림이 올라왔다. 수문장 때처럼 몸을 밀치는 힘은 아니었다. 발목 안쪽, 뼈와 힘줄 사이를 지나 내 이름이 아니라 내 위치를 읽는 감각이었다. 허리춤 부적이 한 번 더 떨렸고, 문틀 열두 홈이 순서 없이 짧게 빛났다.

미리엘이 기도문을 읽기 시작했다.

기도라기보다, 지워진 문장을 다시 맞추는 작업이었다. 익숙한 성도식 어미가 나오다가 중간중간 끊겼고, 그 틈으로 더 오래된 말이 드러났다. 그녀는 처음엔 성도식 문장으로 덮으려 했지만, 문은 덮은 말을 받지 않았다. 열두 홈 가운데 다섯째와 아홉째만 떨었다. 미리엘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읽었다.

“귀환을 늦춘 자를… 아니.”

그녀가 스스로 말을 고쳤다.

“돌아온 이를 묶지 말고, 증언할 자리를 남겨라.”

그 순간 문틀 안쪽에서 깊은 돌마찰음이 났다.

세라가 내 허리끈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리에트는 위를 겨눈 채 숨을 낮췄다. 미리엘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방금 성도식 문장을 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위쪽에서 들으면 변명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틀 오른쪽 열세 번째 잔선이 얇게 살아났다. 빛은 밝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막혔던 틈에 공기가 들어가듯 어둠이 먼저 움직였다. 문 안쪽에서 축 하나가 풀리고, 아래쪽 턱이 왼쪽으로 손가락 한 마디만큼 밀렸다.

동시에 위쪽 계단 첫 칸이 내려앉았다.

“뒤!”

리에트가 외쳤다.

돌계단이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세라가 막고 있던 바로 위 첫 칸의 앞부분이 사라지듯 접혔다. 장대를 밀던 추적자 하나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렸다. 세라는 방패를 들어 사람을 받지 않았다. 방패 모서리를 옆으로 비틀어 추적자의 손목과 장대 사이를 쳤다. 손은 우리 쪽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계단 턱에 부딪혔다. 비명 대신 이를 악문 소리가 들렸다.

“돌아갈 쪽이 움직인다!”

미리엘이 소리쳤다.

그 말과 함께 착지대 뒤쪽, 우리가 내려온 세 칸의 판석 사이에서 얇은 석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높이는 무릎 아래였지만, 한 번 완전히 올라오면 방패도 활도 제대로 돌리지 못할 위치였다. 문은 우리를 안으로 밀어 넣는 대신, 되돌아갈 발자리를 먼저 잘라 내고 있었다.

내 발은 아직 왼쪽 반 걸음 위에 붙어 있었다. 빼려는 순간 발목 안쪽이 얼어붙듯 굳었다. 통증은 크지 않았다. 더 나쁜 건 내 몸이 이 자리에 맞춰진 부품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 문은 내 의지를 붙잡는 게 아니라, 내가 제때 발을 떼지 못할 만큼 정확히 필요한 자리에 내 발을 고정했다.

세라가 내 허리끈을 잡은 손을 당기려 했다.

“아직.”

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면으로 빼면 중심이 켜져.”

“그러다 네 발이 남는다.”

“왼쪽으로 비틀어.”

세라는 욕을 삼키며 내 몸을 정면이 아니라 왼쪽 벽 쪽으로 밀었다. 어깨가 돌벽에 부딪혔다. 발목이 꺾이는 듯했지만, 그 순간 은회색 선의 떨림이 한 박자 끊겼다. 리에트가 계단 위쪽을 쏘았다. 화살은 추적자의 손이 아니라, 올라오는 석판 틈에 끼워 둔 작은 쇠쐐기를 맞혔다. 쐐기가 튀어나오자 뒤쪽 석판 하나가 반쯤 멈췄다.

“오래 못 버틴다.”

리에트가 말했다.

“알아.”

나는 미리엘을 봤다.

“문장 남은 거.”

미리엘은 이미 다음 홈으로 손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 손끝에 피가 맺혔다. 돌홈이 날카로워서가 아니라, 그녀가 너무 세게 누른 탓이었다. 피가 홈에 닿자 열두 홈 가운데 셋이 어둡게 죽었다. 그녀가 놀라 손을 떼려는 순간, 문틀 안쪽에서 다시 돌마찰음이 났다.

“떼지 마.”

내가 말했다.

“네 피를 원하는 게 아니라 네가 어느 쪽에 서는지 읽는 거야.”

미리엘 눈이 흔들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금 문이 네 기도문보다 네 망설임에 먼저 반응했으니까.”

말하면서도 등골이 식었다. 내가 문을 이해한 게 아니다. 사람을 세워 두고 고르는 장치라면, 손끝 피보다 멈칫하는 박자를 더 잘 읽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미리엘은 그 말을 붙잡았다. 그녀는 손을 떼지 않았다. 대신 등을 펴고, 조금 전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읽었다.

“돌아온 자의 말은 봉하지 않는다. 그러나 증언할 자는 혼자 남기지 않는다.”

문틀 왼편 아래가 열렸다.

우리가 기대한 정면 통로가 아니었다. 정면은 여전히 낮은 턱만 밀린 채 어둠을 숨기고 있었고, 왼쪽 하단 돌판이 안으로 꺼지며 사람 하나가 몸을 낮춰야 들어갈 틈을 드러냈다. 그 틈 안쪽으로 눅눅한 금속 냄새가 훨씬 짙게 올라왔다. 오래된 작업실 같은 냄새였다. 기름, 녹, 젖은 돌, 그리고 누군가 최근에 건드린 회색 흙.

세라가 바로 방패 각도를 바꿨다.

“정면이 아니라 왼쪽?”

미리엘도 당황했다. 그녀가 아는 기록에도 이 틈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정화문 기록에는 없었어요.”

“진짜 기록에는.”

내가 묻자 그녀는 잠깐 말을 삼켰다가 대답했다.

“초안에도 없었어요. 적어도 제가 본 장부에는.”

리에트가 활끝을 틈 쪽으로 돌렸다.

“그럼 누가 나중에 뚫었군.”

위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내려왔다.

“미리엘 하센! 그 자리에서 물러나. 하층 문장 낭독 중지. 반응자는 손상 없이 확보한다.”

그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이상했다. 동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미 장부 칸에 적어 둔 이름을 확인하는 목소리였다. 미리엘의 어깨가 굳었고, 세라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저들이 널 구하러 온 게 아니군.”

미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나는 문틀 왼쪽 틈을 봤다. 안쪽에는 낮은 작업대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벽에 박힌 고리, 부러진 집게, 바닥에 흩어진 금속 비늘 같은 조각들. 누군가 이 문을 고치거나, 망가뜨리거나, 다른 용도로 바꾸기 위해 드나든 흔적이었다. 성도 문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손이 여기 있었다.

“들어간다.”

세라가 바로 반박했다.

“정면 문도 다 안 열린 상태에서 모르는 틈으로?”

“뒤는 닫히고 있어. 정면은 우리를 가운데로 다시 세우려 하고, 왼쪽 틈은 사람이 손댄 흔적이 있어.”

“사람이 손댔으면 더 위험할 수도 있지.”

“그래서 한꺼번에 들어가지 않아.”

나는 빠르게 자리를 나눴다. 말이 길어지면 위쪽 손이 먼저 도착한다.

“세라가 틈 앞을 막아. 리에트는 위쪽 석판 멈춘 틈과 왼쪽 안쪽을 번갈아 봐. 미리엘은 문장 계속 읽지 말고 손을 홈에 둔 채 멈춰. 네가 갑자기 떼면 뒤쪽이 바로 닫힐 거야.”

미리엘이 물었다.

“그럼 당신은요.”

“내 발을 뺀다.”

세라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나는 발밑의 떨림을 다시 느꼈다. 문은 아직 내 왼쪽 반 걸음을 원했다. 하지만 방금 왼쪽 틈이 열리며 떨림이 한 줄 갈라졌다. 정면 문틀은 내 발을 붙잡고, 왼쪽 틈은 내 위치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같은 장치 안에 두 선택이 겹친 것이다. 그 사이를 비틀면 빠질 틈이 생겼다.

“내가 몸을 낮추면, 세라는 허리끈이 아니라 등 뒤 옷깃을 왼쪽 아래로 눌러. 리에트는 문틀 중앙 홈을 쏘지 마. 저건 미끼야. 오른쪽 잔선 아래 짧은 가로흔을 긁어.”

리에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화살로 긁으라고?”

“맞히지 말고 스치게. 흔적만 내.”

“정확히 이상한 주문이군.”

“그래도 해.”

리에트는 대답 대신 활끝을 아주 조금 낮췄다. 세라는 내 등 뒤 옷깃을 잡았다. 미리엘은 손을 홈에 붙인 채 이를 악물었다.

나는 숨을 뱉고 몸을 낮췄다.

리에트의 화살이 오른쪽 잔선 아래 가로흔을 스쳤다. 금속촉이 돌을 긁으며 짧은 불꽃을 냈다. 문틀의 빛이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쏠렸다. 그 틈에 세라가 내 등을 왼쪽 아래로 눌렀다. 발목 안쪽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올랐지만, 발바닥 아래 떨림이 끊겼다. 나는 발을 빼며 거의 무릎으로 떨어졌다.

세라가 나를 잡아 올렸다.

“살아 있나.”

“아직.”

“그럼 움직여.”

좋은 확인이었다.

미리엘이 손을 떼지 않은 채 얕게 웃었다.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위쪽 석판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리에트가 멈춰 둔 틈은 더 버티지 못했다. 첫 석판이 완전히 올라오면 위쪽 추적자는 바로 내려오지 못한다. 대신 우리도 위로 돌아갈 수 없다. 문이 말한 선택이 실제로 시작되고 있었다.

세라가 왼쪽 틈 앞으로 방패를 세웠다. 방패는 정면을 막는 자세가 아니라, 틈 안쪽에서 무엇이 튀어나와도 어깨로 흘릴 수 있는 각도였다. 나는 세라 뒤쪽으로 몸을 붙이고 안쪽을 봤다. 작업대 아래쪽에 발자국이 있었다. 오래된 먼지 위를 최근에 누른 자국. 키 큰 인간 발자국이 아니었다. 폭은 넓고 길이는 짧았다. 무거운 장비를 찬 사람이 옆으로 비비며 지나간 흔적.

“안에 누군가 있다.”

내 말에 리에트 활끝이 틈 안으로 들어갔다.

“살아 있나.”

“방금까지 움직였어. 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어.”

미리엘이 숨을 삼켰다.

“성도 사람은 아니에요. 저 틈은 장부에 없었어요.”

“그 말이 위로가 되진 않는군.”

세라가 짧게 답했다.

그때 위쪽에서 쇠사슬 같은 소리가 났다. 추적자들이 장대를 버리고 다른 도구를 꺼내는 소리였다. 석판이 올라와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 분리해서 가져갈 대상을 찾으러 왔다. 문이 돌아갈 쪽을 막는 동안, 위쪽 사람들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서 우리를 끊어 놓아야 한다는 결론.

“미리엘.”

나는 그녀를 불렀다.

“손 떼면 어떻게 돼.”

“뒤쪽은 완전히 닫히고, 정면 문은 아직 안 열릴 거예요. 왼쪽 틈도 유지될지 몰라요.”

“얼마나 버텨.”

“제가 아는 기도문으로는 몰라요.”

“네가 아는 거 말고, 네가 방금 읽은 원문 기준으로.”

미리엘은 잠깐 숨을 멈췄다. 그녀에게는 아직 그 둘이 다르다. 성도식으로 배운 문장과, 지워진 밑문장. 어느 쪽을 자기 지식으로 인정할지 고르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증언할 자리를 남기면, 혼자 남기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럼 넷이 붙어 있으면 버틴다.”

“아마도요.”

“아마도 말고.”

세라가 끊었다.

미리엘은 홈에 붙인 손가락을 펴고, 피 묻은 손끝으로 열세 번째 잔선 아래를 짚었다.

“넷이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으면 닫히고, 서로의 자리를 빌려 서면 버텨요. 이 문은 한 사람을 골라 남기도록 만든 게 아니라, 누가 혼자 남겨지는지를 보려고 덧씌워진 거예요.”

그 말은 문장 해독이면서 고백이었다. 성도 기록은 사람을 나누는 쪽으로 바꿔 적었고, 원래 문은 적어도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완전히 선한 장치였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성도가 덧씌운 말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세라와 리에트를 봤다.

“역할을 바꾼다. 세라가 계속 막는 게 아니라, 틈을 열어 주면 내가 앞을 보고 리에트가 위를 끊는다. 미리엘은 손을 떼지 말고 우리 박자에 맞춰 한 칸씩 움직여. 혼자 고정되지 마.”

리에트가 짧게 물었다.

“저 여자를 같이 움직인다고?”

“여기 남기면 위쪽이 데려간다. 위쪽이 데려가면 이 문장도 우리 손에서 끝난다.”

미리엘이 나를 봤다. 고마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 여유도 없었다. 대신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 한 걸음 옮겼다. 손을 뗀 게 아니라, 손끝을 홈 위로 미끄러뜨리며 몸만 왼쪽으로 옮겼다. 문틀 빛이 흔들렸지만 꺼지진 않았다.

그 선택 하나로 충분했다.

세라는 방패를 반쯤 열었다. 나는 틈 앞 첫 발자국 위에 무릎을 낮췄다. 리에트는 위쪽 쇠사슬 소리 쪽으로 화살을 겨눴다. 미리엘은 문틀 홈을 짚은 채 옆으로 이동했다. 네 사람이 같은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서로의 빈칸을 조금씩 빌렸다. 문은 그 움직임을 따라가느라 한 박자 늦었다.

그 한 박자로 살아남았다.

위쪽에서 갈고리 달린 사슬이 내려왔다. 리에트의 화살이 갈고리와 사슬 사이 고리를 끊었다. 갈고리는 세라 방패에 부딪혀 튕겼고, 세라는 그 충격을 이용해 방패 모서리로 왼쪽 틈 가장자리의 loose한 돌을 밀었다. 돌이 안쪽으로 빠지며 틈이 조금 넓어졌다. 나는 손을 뻗어 안쪽 바닥을 짚었다. 차갑고 기름졌다. 사람 손이 자주 닿은 금속가루가 손바닥에 묻었다.

작업실이다.

확실했다. 자연스럽게 열린 통로가 아니라, 누군가 장치를 옆에서 만지기 위해 만든 보조 공간. 성도도 왕국도 장부에서 지운 틈. 진짜 문장이 남은 곳과, 그 문장을 뜯어고친 손이 드나든 곳이 같은 문틀 안에 붙어 있었다.

나는 안쪽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 문은 한 번 더 고쳐졌어. 성도식 덧씌움만이 아니야. 누가 옆에서 물리적으로 손댔어.”

미리엘이 숨을 들이켰다.

“그럼 기록이 세 개예요. 원문, 성도식 수정, 그리고 현장 개조.”

리에트가 차갑게 받았다.

“왕국은 광갱 폐선이라고 적었고.”

세라가 방패를 고쳐 잡았다.

“그럼 넷이군. 원래 있던 것, 성도가 덮은 것, 왕국이 이름 바꾼 것, 누군가 실제로 뜯어고친 것.”

그 말이 착지대의 공기를 바꿨다. 우리는 하나의 거짓말을 쫓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손이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장소를 덮었다. 누군가는 사람을 가르려고, 누군가는 귀환자를 숨기려고, 누군가는 광갱으로 낮춰 부르려고, 누군가는 실제 장치를 고쳐 자기 길을 만들려고.

그리고 그 모든 손이 결국 우리 발밑에 겹쳤다.

미리엘은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피 묻은 손끝을 홈에 붙인 채, 다른 손으로 허리춤 안쪽에서 작은 납판 하나를 꺼냈다. 성도 확인반 표식이었다. 은색 테두리는 벗겨졌고, 가운데 찍힌 문장은 절반쯤 닳아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내게 내밀지 않았다. 위쪽 계단을 향해 보이도록 문틀 가장자리 위에 눕혔다.

“이걸 보면 저쪽은 제가 아직 명령 아래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럼 왜 꺼내.”

세라가 물었다.

“저들이 한 박자 망설이게 하려고요.”

미리엘은 표식을 문틀 홈과 자기 손 사이에 끼웠다. 납판이 열두 홈 중 둘을 가리자 뒤쪽 석판 올라오는 속도가 아주 조금 늦어졌다. 성도 표식이 문을 멈춘 게 아니었다. 위쪽 사람들이 납판을 보고 바로 갈고리를 던지지 못한 것이다. 그 짧은 망설임은 미리엘이 처음으로 자기 소속을 방패처럼 쓴 순간이었다.

리에트가 그걸 보고 말했다.

“배신치고는 소박하군.”

“아직 배신이라고 부를 만큼 용감하지 않아요.”

미리엘은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

“그래도 저 사람들 손에 당신들을 바로 넘기지는 않겠어요.”

그 말은 서약이 아니었다. 오래 믿을 약속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착지대에서는 약속보다 동작이 먼저였다. 미리엘은 우리를 살리겠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자기 표식을 꺼내 위쪽 손을 늦췄다. 그 행동 하나가 지금 필요한 답이었다.

세라는 그제야 방패 아래쪽 끈을 풀어 내게 던졌다. 잡아끌기 위한 끈이 아니라, 틈 안으로 들어간 뒤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한 짧은 묶음이었다. 리에트는 남은 화살 세 발을 손가락 사이에 나눠 끼우고, 하나는 위쪽, 하나는 틈 안, 하나는 미리엘 손목 앞에 맞췄다. 누구도 서로를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 끊어야 할 손과 붙잡아야 할 몸을 정했다.

그 사이 뒤쪽 석판은 허벅지 높이까지 올라왔다. 완전히 벽이 되기 전인데도 위쪽 사람들의 발목과 무릎만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몸을 던지지 못하고, 낮은 틈 사이로 갈고리와 짧은 칼만 밀어 넣었다. 사람 얼굴이 지워지고 도구만 들어오는 모습은 이상하게 낯익었다. 이 문도, 위쪽 손도, 우리를 먼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 빼내려 했다.

나는 왼쪽 틈 안쪽의 발자국을 다시 봤다. 최근 흔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넓고 짧은 발자국 옆에 끌린 자국이 있었다. 무거운 가방이나 도구 상자를 당긴 흔적. 벽 아래에는 금속 조각 하나가 반쯤 박혀 있었다. 색은 검푸르고, 단면은 문틀 열세 번째 잔선과 다른 빛을 품었다. 수문장 잔해에서 본 성도식 인장과도 달랐다.

손을 뻗으려는 순간, 안쪽 어둠에서 낮은 금속음이 났다.

리에트가 바로 활을 겨눴다. 세라는 방패를 틈 앞에 붙였다. 미리엘은 손을 홈에서 떼지 못한 채 굳었다. 위쪽 사슬도 잠깐 멈췄다. 착지대 전체가 한 번에 귀를 세운 것처럼 조용해졌다.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사람이다.

상처 입은 숨은 아니었다. 참다못해 욕을 삼키는 숨처럼 들렸다. 곧 낮고 거친 목소리가 틈 안쪽에서 굴러 나왔다.

“야.”

말투는 기도실도, 기사단도, 성도도 아니었다. 금속을 물고 말하는 사람처럼 거칠고 둔탁했다.

“그 손, 거기서 떼지 마.”

세라 방패가 더 높이 올라갔다.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기도문으로 문 여는 척하는 건 좋은데, 왼쪽 보강쐐기까지 깨우면 다 같이 깔린다.”

나는 안쪽 검은 틈을 노려봤다. 등불빛이 닿지 않는 낮은 작업대 아래, 넓은 어깨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빛을 받아 잠깐 푸르게 번뜩였다.

“그리고 그 파편.”

어둠 속 사람이 덧붙였다.

“버릴 거면 이쪽으로 던져. 단면 살아 있으면 값이 더 붙어.”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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