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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배수 홈의 끝은 산비탈 위 좁은 암반 턱으로 이어졌다.

정면 아래에는 마른 물길이 북서쪽으로 굽어 내려갔다. 왼쪽 사면에는 젖은 마른풀이 낮게 누워 있었고, 오른쪽에는 검은 절벽이 칼자국처럼 곧게 서 있었다. 절벽 중간에는 사람 하나가 어깨를 비틀어 지나갈 만한 틈이 희미하게 이어졌다. 뒤쪽 위로는 우리가 빠져나온 홈 입구가 검은 입처럼 벌어져 있었고, 그 너머에서 기사단 횃불 둘, 성도 흰 등 셋, 불을 들지 않은 그림자 셋이 서로 다른 높이에서 움직였다.

우리는 턱 아래 검은 표식돌에 붙어 몸을 낮췄다. 세라는 정면을 막고 방패를 세웠다. 브론은 왼쪽 자갈 사면을 손등으로 훑었다. 미리엘은 내 뒤에서 은실을 손가락 두 마디에 감아 올렸고, 리에트는 후미에서 오른쪽 절벽 위를 보며 활을 반쯤 당겼다. 나는 가운데에서 한 손은 허리끈을, 다른 손은 옆사람과 뒷사람 사이의 간격을 쟀다. 주머니 속 백은 수액 반쪽이 옆구리를 눌렀지만, 그것만 붙잡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왔다고 길이 열린 건 아니었다.

아래쪽 넓은 물길에서는 기사단이 먼저 움직였다. 횃불은 길을 밝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두 불빛이 좌우로 벌어지며 우리가 내려갈 폭을 재고 있었다. 왼쪽 사면 위 흰 등은 바람을 피해 천으로 감싸여 있었고, 천 아래에서 짧은 종소리가 한 번씩 눌렸다. 반응을 읽는 성도식 신호였다. 오른쪽 높은 절벽의 그림자 셋은 불을 들지 않았다. 대신 걸음 간격이 너무 일정했다. 사람을 놓친 발걸음이 아니라, 어디로 도망치는지 끝까지 보려는 눈이었다.

세라는 아래 기사단 쪽을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가 먼저 말하지 않자 기사단 쪽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벨로네 영애! 생환자 보호 절차입니다.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보호라는 말과 함께 창끝 셋이 사면 위로 올라왔다. 창은 우리를 겨누진 않았지만, 내려갈 길을 미리 막았다. 세라의 손가락이 방패 안쪽 가죽끈을 더 세게 죄었다.

왼쪽 성도 등불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

“반응자와 접촉자는 분리 확보. 읽은 자는 별도 대기.”

미리엘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이름도, 상처도, 지금 함께 빠져나온 사람도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반응자였고, 미리엘은 읽은 자였다.

오른쪽 절벽에서는 말이 없었다. 대신 금속이 돌을 세 번 찍었다.

셋. 둘. 하나.

리에트가 그쪽을 보며 낮게 말했다.

“저쪽은 부르지 않아. 세고 있어.”

“우리 수를?” 브론이 물었다.

“수, 짐, 방향.”

세 갈래 손이 같은 밤공기 안에서 우리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왕국은 보호라 했고, 성도는 분리라 했고, 그림자들은 아무 말 없이 재고 있었다. 뜻은 하나였다. 우리 다섯을 같은 모습으로 두지 않겠다는 것.

검은 표식돌 밑에는 오래된 쇠고리가 반쯤 묻혀 있었다. 브론이 장갑 끝으로 흙을 걷어 내더니 고리 주변을 훑었다.

“이건 길표식만이 아니야.”

그는 돌 밑동에 남은 둥근 쓸림을 보여 주었다. 밧줄이 오래 물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짐을 잠깐 붙들어 두거나, 뒤쫓는 놈 발을 늦추는 돌이야. 여기로 수레가 다닌 건 아니고, 둘이 멘 상자나 들것이 지나갔어.”

나는 표식돌 아래 흙을 봤다. 바퀴 자국은 없었다. 대신 짐끈 끝이 바닥을 긁은 얕은 사선이 몇 번이나 겹쳐 있었다. 사람만 빠져나온 통로가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기록에 남기기 전에 옮겨 빼던 길이었다.

미리엘이 돌 뒤쪽에 붙은 희미한 흰 막을 눈으로 읽었다.

“성도 봉랍이에요. 정식 봉인국 것이 아니에요. 외곽 운반 담당자가 급히 쓰는 얇은 밀랍이에요. 보고서에는 안 남는 쪽입니다.”

세라가 오른쪽 아래를 보며 말했다.

“왕국도 알아. 말발굽은 없는데 기병대 밑창 쇠 자국이 있다. 말을 못 데려오는 길인 걸 알고 내려온 사람들이야.”

브론은 자갈 사면을 다시 눌렀다.

“조합 창고에서 쓰는 미끄럼 가루도 조금 섞였어. 오래됐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누군가 여길 여러 번 임시 인계 자리로 썼다는 뜻이지.”

리에트는 활을 낮추지 않고 오른쪽 절벽 틈만 보았다.

“숲 쪽 표식은 없다. 그런데 오른쪽 셋은 길을 안다. 숲에서 배운 길이 아니야. 사람 잡는 쪽에서 배운 길이다.”

정보는 물건 하나에 묶여 있지 않았다. 돌, 봉랍, 밑창, 가루, 말하지 않는 그림자. 전부 다른 손이 같은 길을 오래 만졌다는 증거였다. 던전 안에서 나누어 가진 파편들이 여기서 다시 사람을 나누려 했다.

나는 정면 물길을 내려다봤다. 넓고 빠른 길이었다. 달리기는 쉽지만, 아래 기사단이 바로 따라붙는 길이었다. 왼쪽 사면은 풀이 낮아 몸을 숨기기 좋아 보였지만, 성도 흰 등이 이미 반응을 읽으며 그쪽을 돌아들고 있었다. 오른쪽 절벽 틈은 좁고 위험했다. 한 사람씩밖에 움직이지 못하고, 잘못 밟으면 바로 아래 자갈로 떨어진다. 대신 말도, 창도, 흰 등도 아직 완전히 막지 못한 길이었다.

쉬운 길은 이미 누군가의 손 안에 있었다.

“정면은 버린다.”

내 말에 네 사람이 동시에 나를 봤다. 나는 손가락으로 길을 나눴다.

“오른쪽 절벽 틈으로 붙는다. 검은 돌은 뒤에 눕혀서 정면 물길 쪽 소리를 크게 낸다. 브론, 받침을 끊을 수 있지?”

브론이 쇠고리를 잡아당겼다. 돌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넘길 수는 있어. 대신 산 전체가 들을 소리가 난다.”

“이미 들켰다. 필요한 건 조용함이 아니라 순서야.”

나는 미리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 밑 성도 봉랍을 직접 건드리지 말고, 마른 물길 쪽으로 약한 떨림만 남겨. 반응을 쫓는 놈들이 정면으로 내려가게.”

미리엘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손끝의 은실이 표식돌 아래를 스치지 않고 지나가, 마른 물길 가운데 자갈 하나를 아주 작게 흔들었다. 눈으로 보면 바람에 밀린 정도였다. 하지만 반응을 읽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정면 아래로 내려간 줄 착각할 만큼의 잔떨림은 남았다.

“오래 못 버텨요.”

“한 박자면 충분해.”

나는 세라를 보았다.

“세라, 네가 먼저 오른쪽 틈 입구를 잡아. 방패는 넓게 세우지 말고 문짝처럼 세로로. 넓은 방패가 좁은 길에서는 길이 된다.”

세라는 대답 대신 방패 각도를 바꿨다. 가문 이름을 부른 기사단 쪽으로 돌아보지 않았다.

“리에트.”

“보인다.”

그녀는 이미 오른쪽 위 그림자 하나가 손을 뻗는 지점을 겨누고 있었다.

“몸 말고 발판. 따라오게 두되 믿지 못하게 만들어.”

리에트의 입가가 차갑게 움직였다.

“그건 잘한다.”

아래에서 다시 외침이 올라왔다.

“생환자 보호 대열 확보! 벨로네 영애를 먼저 모셔라!”

세라의 어깨가 굳었다. 이번에는 보호라는 말보다, 먼저 모신다는 순서가 그녀를 건드렸다. 저들은 세라를 먼저 빼내고 나머지를 뒤에 세울 셈이었다.

“나는 안 간다.”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 누구에게 맹세한 말이 아니라, 자기 발 위치를 고정하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리가 간다.”

브론이 망치자루를 받침 틈에 꽂았다. 세라가 방패 끝으로 검은 돌 윗면을 눌렀다. 나는 돌이 넘어질 방향에 어깨를 붙이고, 병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옆구리를 접었다. 미리엘은 은실 끝을 정면 물길 쪽으로 늘렸다. 리에트는 후미에서 절벽 위 발판을 겨눴다.

“지금.”

브론이 받침을 꺾었다. 검은 돌이 무겁게 흔들렸다. 세라 방패가 낮은 쇳소리를 냈고, 나는 어깨로 돌의 방향을 비틀었다. 돌은 정면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오른쪽 뒤를 막듯 비스듬히 눕고, 자갈과 흙먼지가 마른 물길 쪽으로 쏟아졌다. 소리는 컸다. 바로 그래서 아래쪽 발걸음이 갈라졌다.

성도 흰 등이 먼저 정면 아래로 움직였다.

기사단 횃불 하나도 그쪽으로 기울었다.

오른쪽 그림자 하나가 절벽 위에서 몸을 낮췄다.

리에트의 화살이 그 순간 허공을 갈랐다. 사람 몸에 박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화살은 그가 손을 댄 돌턱 바로 옆을 때렸다. 돌가루가 튀고 발판 끝이 깨졌다. 그림자는 반 박자 물러났다. 죽인 것도, 크게 다치게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발이 믿을 만한지 다시 확인하게 만들었다.

“오른쪽!” 세라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절벽 틈에 방패를 세로로 밀어 넣었다. 튀어나온 바위를 방패 끝으로 눌러 보고, 비어 있는 발판 앞에서는 멈췄다.

“첫 발 왼쪽. 둘째는 낮아. 셋째는 보지 말고 손부터.”

브론이 뒤따르며 자갈턱을 밟았다.

“둘째 아래 비었다. 힘 주면 무너져.”

나는 세 번째로 몸을 틀었다. 오른쪽 절벽이 가슴을 누를 만큼 가까웠고, 왼쪽 아래에는 마른 물길이 검게 벌어져 있었다. 뒤에서는 미리엘이 은실 끝을 끊어 손 안으로 말아 넣었다. 정면 흔적을 너무 오래 남기면 우리 위치까지 같이 읽힌다.

“성도 둘은 정면으로 내려갔어요.” 미리엘이 숨을 낮췄다. “하나는 왼쪽에 남았어요. 이상하다는 걸 곧 알아챌 거예요.”

“그 전에 턱을 지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기사단 목소리가 갈라졌다.

“정면 아래다!”

다른 목소리가 곧장 반박했다.

“아니다. 오른쪽 돌이 움직였다!”

우리가 만든 건 완전한 속임수가 아니었다. 판단을 나누는 틈이었다. 왕국, 성도, 그림자들이 같은 순간 같은 명령을 내리지 못하면 그만큼 우리 발이 살아났다.

절벽길은 얼마 가지 않아 끊겼다. 팔을 세 번쯤 뻗을 만큼 이어진 뒤, 낮은 턱으로 푹 떨어졌다. 아래에는 마른 덤불이 엉켜 있었고, 덤불 너머로 다시 좁은 발판이 이어졌다.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짧지만, 잘못 밟으면 덤불이 크게 울릴 자리였다.

브론이 먼저 몸을 낮췄다.

“내가 내려가서 덤불 잡아 눕힌다.”

“방패부터.” 세라가 말했다.

그녀는 방패를 가로로 눕혀 턱 아래에 밀었다. 브론이 그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덤불 밑동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가지가 부러지려는 순간, 미리엘의 은실이 가지 두 개를 얇게 묶었다. 소리는 갈라지지 않고 낮게 눌렸다.

나는 세 번째로 내려가며 주머니를 팔꿈치로 막았다. 병 반쪽이 옆구리를 찔렀다. 손이 그쪽으로 먼저 가려는 걸 억지로 멈췄다. 지금 확인해야 할 건 병 하나가 아니었다. 세라가 발판을 잡았는지, 브론이 덤불을 눌렀는지, 미리엘 손이 떨리는지, 리에트가 뒤를 잃지 않았는지. 물건이 우리를 살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움직임을 살려야 물건도 남는다.

뒤쪽에서 리에트가 짧게 경고했다.

“오른쪽 위 하나 다시 내려온다. 이번엔 손이 아니라 발부터.”

“보이나?”

“발목만.”

“발판을 쏴.”

화살이 낮게 나갔다. 사람을 맞히는 둔탁한 소리 대신 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림자가 욕을 삼키며 뒤로 밀렸다. 따라오려던 발이 자기 무게를 믿지 못하게 됐다.

정면 넓은 길에서는 기사단이 검은 돌을 치우는 소리가 났다. 성도 등 하나는 아직 우리가 남긴 잔떨림을 쫓아 아래로 내려가고, 남은 하나는 왼쪽 사면 위에서 멈춰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그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생긴 짧은 틈이 우리 발밑에 깔렸다.

그때 오른쪽 아래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잡지 마. 끝을 봐.”

명령은 우리에게 한 게 아니었다. 그림자들 사이에서 떨어진 말이었다. 붙잡지 말고 따라가라는 뜻. 우리를 적으로만 보는 손보다 더 기분 나빴다. 길잡이로 쓰겠다는 소리였으니까.

브론이 낮게 이를 갈았다.

“우릴 미끼로 삼겠다는 건가.”

“그래서 더 빨리 끊어야 해.”

나는 절벽 틈 끝을 보았다. 발판은 조금 더 가다 왼쪽으로 꺾여 마른 물길 아래와 다시 만났다. 그 아래에는 낮은 돌다리처럼 평평한 턱이 놓여 있었다. 자연스러운 모양이 아니었다. 양쪽 끝에는 쐐기를 박았던 작은 구멍이 줄지어 있었고, 구멍 둘은 오래전에 부러진 나무못으로 막혀 있었다.

“저 턱까지.”

나는 손가락으로 순서를 짚었다.

“브론, 쐐기 구멍을 봐. 세라, 왼쪽 아래 창을 막아. 미리엘, 정면 흔적은 끊어. 리에트, 오른쪽 위 눈을 한 번만 더 늦춰.”

명령이라기보다 우리가 살아남는 순서를 소리 내어 맞추는 말이었다. 네 사람은 바로 움직였다. 세라는 방패를 세웠고, 브론은 돌턱 쪽으로 몸을 낮췄다. 미리엘은 은실 끝을 끊어 손 안에 감았다. 리에트는 새 화살을 걸며 뒤와 위를 동시에 세었다.

그 순간 나는 또렷하게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오래 믿어서 같이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각자의 돌아갈 곳이 먼저 우리를 갈라놓으려 들었기 때문에, 함께 움직이는 것 말고는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믿음보다 먼저 자리가 맞았다. 자리가 맞자 말이 짧아졌다. 말이 짧아지자 발이 빨라졌다.

돌턱에 닿자 브론이 쪼그려 앉아 쐐기 구멍을 살폈다.

“판자 다리는 떼 갔어. 구멍은 살아 있다.”

“다시 걸 수 있어?”

“판자가 없지.”

그는 세라의 방패를 보았다. 세라도 바로 알아들었다.

“내 방패를 다리로 쓰자는 말은 하지 마.”

“말 안 했다. 눈으로 했지.”

세라가 낮게 욕을 삼켰지만, 방패를 내밀었다. 넓은 방패를 돌턱과 맞은편 낮은 발판 사이에 걸면 한 사람씩 건널 짧은 판이 생긴다. 문제는 그동안 세라가 방패를 손에서 놓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래에서 기사단 창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찌르려고 들어오는 각이 아니었다. 먼저 멈춰 세우려는 창이었다. 찌르면 피하고 반격하면 된다. 멈추라는 창은 명분을 데리고 온다.

“벨로네 영애! 이쪽은 보호 절차입니다!”

세라가 이를 악물었다.

“보호라면서 창을 들고 오나.”

“내가 잡는다.”

나는 방패 손잡이를 잡았다.

“네가 방패를 놓는 동안 왼쪽 창은 내가 방향만 비튼다.”

세라가 나를 보았다.

“창끝을 네 몸으로 막겠다는 말이면 반대야.”

“창끝이 아니라 방향.”

“그 말이 더 나빠.”

말은 거칠었지만 세라는 방패를 넘겼다. 선택할 시간이 없었다. 브론이 먼저 방패 위를 건넜다. 그는 몸을 낮춰 무게를 거의 싣지 않고 미끄러지듯 넘어가 맞은편에서 끝을 눌렀다.

“버텨.”

미리엘이 두 번째였다. 한 손으로는 은실을 감고, 다른 손으로는 석판 조각 주머니를 눌렀다. 발이 방패 위에서 한 번 미끄러졌지만 브론이 손목을 낚아챘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리에트는 건너기 직전 오른쪽 위로 화살 하나를 더 보냈다. 이번에도 사람을 노리지 않았다. 절벽에 걸린 느슨한 돌을 맞혔다. 돌이 굴러내리며 그림자의 시야를 가렸다. 그 틈에 리에트가 방패 위를 넘어갔다.

이제 세라와 나만 남았다.

왼쪽 아래 창끝이 한 뼘 더 올라왔다. 나는 방패 가장자리를 창대 아래로 밀어 넣었다. 찌르기 전에 방향만 비틀었다. 쇠가 절벽을 긁으며 크게 울렸다. 기사단 병사는 반사적으로 창을 빼려 했고, 그 순간 세라가 방패 없는 손으로 돌턱을 잡아 몸을 틀었다.

“지금!”

브론이 맞은편에서 방패 끝을 당겼다. 나는 손잡이를 놓으며 세라 등 뒤를 밀었다. 세라가 먼저 건넜고, 나는 바로 뒤에서 방패 위로 몸을 던지듯 넘어갔다. 발밑에서 방패가 기울었다. 아래는 검은 자갈과 창끝이었다. 손이 테두리를 놓치려는 순간, 미리엘의 은실이 내 손목을 감았다. 가늘고 아픈 압력이 뼈를 파고들었다.

“당겨요!”

브론과 세라가 동시에 내 팔을 잡았다. 나는 맞은편 발판에 어깨부터 굴렀다. 숨이 막혔다. 손이 반사적으로 주머니로 갔다가 멈췄다. 먼저 봐야 할 건 병이 아니었다.

세라가 바로 물었다.

“다친 사람?”

“없어.” 브론이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미리엘은 손목의 은실 자국을 문지르면서도 석판 조각을 확인했다.

“조각 있어요.”

리에트는 뒤를 보며 말했다.

“오른쪽 셋은 아직 따라온다. 그런데 한 놈은 우리 발판을 못 믿어.”

그제야 나는 백은 수액 반쪽을 눌렀다.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라가 나를 보는 눈은 이미 그 순서를 읽었다.

“사람이 먼저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알아.”

이번엔 변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돌턱 아래로 몸을 낮췄다. 길은 다시 좁아졌고, 위에서 보면 바위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발밑의 마른 진흙에는 오래된 발자국이 겹겹이 눌려 있었다. 발자국 사이에는 흰 조각들이 섞여 있었다. 뼈가 아니라 봉랍 부스러기였다. 누군가 오래전부터 이 길에서 봉인을 뜯고, 이름표를 바꾸고, 다시 묶었다.

미리엘이 그 흰 조각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정식 이송 절차라면 여기서 봉랍을 뜯지 않아요.”

“그럼?”

“기록에 남기기 전에 바꾸는 자리예요. 상자 이름표든 사람 이름이든.”

브론이 낮게 웃었다. 웃음 끝은 거칠었다.

“밖이 더럽게 던전 같군.”

“던전이 아니야.” 세라가 방패를 다시 들며 말했다. “사람들이야.”

그녀는 더는 기사단 쪽으로 돌아보지 않았다. 분노는 있었지만 길을 늦추지 않았다. 방패는 다시 선두에 섰고, 우리는 그 뒤에 붙었다.

뒤쪽에서 금속 신호가 바뀌었다. 빠르게 둘, 길게 하나.

리에트가 곧장 멈췄다.

“앞을 막으라는 신호다.”

우리 모두 정면을 봤다. 턱 밑 좁은 길은 조금 더 가다 왼쪽으로 휘고, 그 너머에서 낮은 푸른빛이 새고 있었다. 횃불빛은 아니었다. 천 뒤에 숨긴 등처럼 바람에 흔들렸고, 빛 끝에는 약재 냄새와 젖은 종이 냄새가 섞였다.

앞에도 누군가 있었다.

세라가 방패를 낮게 세웠다. 브론은 망치자루를 다시 잡았다. 미리엘은 은실을 손등에 감아 빛의 떨림을 읽었다. 리에트는 뒤를 버리지 않은 채 활을 오른쪽 앞쪽으로 틀었다.

나는 가운데에서 길을 다시 나눴다. 뒤에는 왕국과 성도와 그림자가 있었다. 정면에는 낮은 푸른 등불이 있었다. 아래 넓은 길로 빠지면 말과 창이 붙고, 여기서 멈추면 양쪽에서 좁혀 온다. 푸른빛 쪽으로 무작정 뛰어들면 기다리던 손에 바로 들어간다.

“등불 쪽으로 바로 뛰지 않는다.”

내가 말했다.

“세라, 방패는 낮게. 브론, 왼쪽 벽에 숨은 홈이 있는지 보면서 가. 미리엘, 저 빛이 봉인인지 약재인지 먼저 읽어. 리에트, 뒤쪽 발소리가 빨라지면 한 번만 끊어.”

“너는?” 세라가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떼고, 대신 허리끈에 묶은 작은 돌조각을 꺼냈다. 글자는 없지만 석판에서 깨져 나온 방향이 남아 있는 조각이었다.

“가운데서 저쪽 반응을 본다. 우리 이름을 먼저 부르는지, 물건을 먼저 부르는지.”

브론이 짧게 덧붙였다.

“사람 이름부터 불러도 적일 수 있어.”

“그래서 방패를 낮추지 말라는 거야.”

푸른빛 쪽 천이 한 번 흔들렸다.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천 뒤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화살도, 봉인 끈도, 기사단 창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섯이 다 왔나.”

우리 중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백은 수액부터 찾지도 않았다. 세라의 가문, 미리엘의 성도 소속, 브론의 조합, 리에트의 숲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다섯이라는 수만 세었다.

그게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를 쫓던 손들과는 다른 첫마디였다.

뒤쪽에서는 기사단과 성도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오른쪽 위 그림자들도 더는 멀리 보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정면으로 붙는지, 도망치는지, 누군가와 만나는지 확인하려 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누구냐.”

푸른빛 뒤 목소리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천 아래에서 작은 물건 하나가 굴러 나왔다. 금속도, 약병도, 봉랍도 아니었다. 낡은 나무패였다. 표면에는 글자가 없고, 가장자리에는 열세 번째 줄이 지워진 석판과 같은 각도의 칼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미리엘이 숨을 삼켰다.

“같은 손이에요.”

세라가 내 앞을 반 걸음 막았다.

“믿을지는 나중에 정해.”

“그래.”

나는 나무패를 줍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둔 채, 칼자국 방향과 푸른빛이 비추는 틈을 함께 봤다. 나무패가 초대장인지, 또 다른 이름표인지는 아직 몰랐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손부터 내밀면 끝이었다.

“우리가 먼저 묻고,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

내 말에 네 사람이 동시에 자리를 고쳤다. 세라는 선두에서 방패를 낮췄고, 브론은 왼쪽 벽을 손등으로 훑었다. 미리엘은 빛의 떨림을 읽을 만큼만 고개를 들었고, 리에트는 뒤쪽 시야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돌아갈 집은 뒤에서 우리를 이름표로 불렀다. 앞의 목소리는 아직 우리를 다섯 명으로만 세었다. 작은 틈인지 더 깊은 함정인지는 걸어 들어가 봐야 안다.

나는 나무패를 밟지 않고 옆으로 지나쳤다.

“길을 보여. 사람을 먼저 세워.”

푸른빛 뒤 천이 천천히 걷혔다. 안쪽에는 넓은 길이 아니라 한 사람씩만 들어가는 낮은 틈이 있었다. 틈 아래에서 찬 바람이 올라왔고, 바람 끝에는 약재 냄새와 오래 젖은 종이 냄새가 섞였다.

뒤쪽 포위망이 마침내 우리 위치를 다시 잡았다.

“오른쪽 턱 밑이다!”

외침이 협곡을 때렸다.

늦었다.

세라가 먼저 낮은 틈으로 몸을 넣었다. 브론이 왼쪽 벽을 짚으며 뒤따랐다. 나는 셋째 자리에서 병이 아니라 사람 사이 간격을 붙들었다. 미리엘의 손끝에서 은실이 푸른빛을 살짝 긁었고, 리에트의 마지막 화살이 뒤쪽 바위에 박혀 추격자들의 시선을 한 번 더 흔들었다.

낮은 틈 안쪽은 바로 좁아지지 않았다. 두 걸음쯤 들어간 곳에 사람 허리 높이의 짧은 작업대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마른 천 조각과 얇은 나무못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방금까지 쓰던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먼지 위에는 손가락 네 개가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우리를 환영하려고 치운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따라올 수 있는지 시험하려고 필요한 만큼만 남겨 둔 자리였다.

나는 작업대 위 물건을 한꺼번에 챙기지 않았다. 마른 천 한 조각을 세라의 방패 손잡이에 감았다. 금속 냄새를 줄이는 데 썼다. 나무못 둘은 브론에게 건넸다. 낡은 문틈에 잠깐 물려 둘 수 있는 굵기였다. 미리엘은 봉랍 부스러기가 붙은 천 끝만 잘라 은실에 묶었다. 리에트에게는 아무것도 넘기지 않았다. 후미에서는 빈손이 가장 빠른 무기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순서로 간다.”

내가 말했다.

세라가 앞에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두는 내가 잡아.”

“막힌 건 내가 본다.” 브론이 나무못을 허리끈에 끼웠다.

“흔적은 제가 지울게요.” 미리엘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낮았다.

리에트가 뒤를 보며 말했다.

“후미는 내가 닫는다. 따라붙으면 눈부터 뺏어.”

나는 가운데에 섰다.

“앞뒤 간격과 증거 위치는 내가 맞춘다. 누가 누구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 다섯이 같이 움직인다.”

밖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는 아직 들렸다. 벨로네 영애, 반응자, 읽은 자, 소지품, 생환자. 어느 말에도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들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우리는 아직 안전하지 않았다. 푸른빛 안쪽이 더 깊은 포위인지도 몰랐다. 오른쪽 그림자는 아직 따라왔고, 왕국과 성도는 곧 길을 좁힐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누군가의 보호 명령이나 분리 절차가 아니라, 우리가 정한 순서로 몸을 넣었다.

세라 방패의 천이 바위에 덜 부딪치게 소리를 죽였다. 브론은 지나온 틈 아래에 나무못 하나를 물려 뒤따르는 손이 바로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미리엘은 푸른빛이 봉인이 아니라 은폐등에서 나는 빛임을 낮게 알려 주었다. 리에트는 대답 없이 뒤쪽 어둠에 귀를 댔다. 나는 병 반쪽을 확인하기 전에 네 사람의 발소리를 먼저 세었다.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지금 우리가 가진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우리는 던전 밖으로 나온 게 아니라, 처음으로 남이 붙인 이름표의 길을 버렸다.

그리고 우리 이름으로 갈 다음 길을 골랐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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