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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실 전의 재배치

색인판 뒤 어둠이 갈라진 자리에는 방 하나가 통째로 계단처럼 꺾여 있었다. 우리 발밑 첫 착지대는 사람 둘이 겨우 나란히 설 폭이었고, 그 아래로는 사각 돌판 셋이 얇은 틈을 두고 한 단씩 내려가 있었다. 왼쪽 돌판은 세라의 정강이쯤 되는 높이, 가운데 돌판은 내 무릎 바로 아래, 오른쪽 돌판은 그보다 반 치수 더 낮았다. 세 단 끝에 검푸른 철석상이 몸을 반쯤 세운 채 멈춰 있었고, 그 가슴 앞에는 거울판 세 장이 서로 다른 높이로 매달려 있었다. 왼쪽은 세라 방패 윗변 높이, 가운데는 내 얼굴선, 오른쪽은 리에트가 선 턱 아래와 거의 맞물렸다. 위쪽으로는 우리가 내려온 계단 끝이 사선으로 열려 있었다. 추적선이 닿는다면 저기서 먼저 발이 보일 자리였다.

세라는 내 왼쪽 정면에서 방패를 비스듬히 세우고 있었다. 방패 아랫변은 내 무릎선보다 조금 높고, 윗변은 위 계단에서 쏟아질 화살을 받을 만큼만 올라가 있었다. 리에트는 오른쪽 높은 턱 끝에 발끝 하나만 걸친 채 활을 들었고, 미리엘은 아래 홈 가장자리에서 은실 구슬을 걸어 둔 손으로 문장선 떨림을 더듬고 있었다. 브론은 착지대 오른편 보강층 틈에 쐐기 둘을 박아 둔 채, 어디를 치면 하중이 미끄러질지를 먼저 재고 있었다.

내 발밑 열세 번째 잔선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푸른빛으로 세라 방패 아랫변과 아래 거울판 매단 고리까지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아래 석상이 첫발을 옮겼다. 돌을 찍는 소리는 무겁지 않았다. 대신 닿은 자리 하중이 한 박자 늦게 위로 밀려 올라왔다. 왼발이 가운데 돌판을 누른 뒤, 늦게 살아난 압력이 오른쪽 아래로 흘렀다. 그와 동시에 왼쪽 거울판이 세라 쪽으로, 가운데 거울판이 내 정면으로, 오른쪽 거울판이 리에트와 미리엘 사이로 천천히 기울었다. 아래가 움직인 순간 위 계단 끝에서도 금속이 돌을 긁는 소리가 겹쳤다. 위아래가 같은 박자로 맞물려 움직였다.

“오른쪽 보강층, 아직 산다.”

브론이 무릎을 더 낮추며 말했다.

“겉판은 죽었는데 안쪽 힘줄은 남았어. 저놈은 밟는 쪽보다 기울이는 쪽으로 먼저 먹인다.”

세라는 대답 대신 방패를 반 치수 낮췄다. 방패 모서리가 내 어깨 하중과 맞물리며 숨통이 한 번 정리됐다. 그녀는 아래 석상이 아니라 발판 간격과 위 계단 입구를 번갈아 재고 짧게 말했다.

“정면은 내가 센다. 넌 끊어.”

따뜻한 격려는 없었다. 누가 어느 틈을 먼저 읽고, 누가 어느 하중을 받아야 사는지만 남았다.

위 계단에서 돌가루가 한 번 더 쓸렸다.

“위 셋.”

리에트가 활끝을 미세하게 틀며 말했다.

“맨 앞은 창, 뒤 둘은 짧은 활. 그런데 지금 먼저 위를 쏘면 아래 반사가 빨라져.”

거울판 셋 표면이 물결처럼 떨렸다. 세라 앞 거울에는 훈련장 모래밭과 평가석 그림자가 겹쳐 떠올랐다. 리에트 쪽에는 숲 가장자리의 늦은 후퇴 신호가 시위 끝에 걸렸다. 내 앞에는 배정 문건의 빈 칸 하나가 다시 열렸다. 이름 하나만 적히면 사람을 다른 줄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지나치게 깨끗한 칸이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흔들렸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를 흔드는지, 어디서 박자를 끊으려 드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거울이 아니라 돌판 틈으로 내렸다. 왼쪽 거울판이 세라를 붙들고, 가운데 거울판이 내 중심을 늦추고, 오른쪽 거울판이 리에트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빼앗는 사이, 위쪽 창 하나가 방패 윗변을 찍으면 전열이 벌어진다.

“세라, 방패 낮게. 막지 말고 세.”

세라가 바로 이해했다. 그녀는 방패를 올려 받지 않고 아래로 내리눌렀다. 철이 돌판을 긁으며 짧고 단단한 소리를 냈다.

딱.

석상이 두 번째 발을 들기 직전이었다.

“리에트, 위 말고 아래 오른쪽 고리.”

“반사 먼저?”

“지금은 그게 먼저다. 위는 한 박자 늦출 수 있어.”

활시위가 울렸다. 화살은 추적선이 아니라 오른쪽 거울판을 매단 고리 아래를 스쳤다. 고리가 끊어지진 않았지만 거울판이 예정보다 더 깊게 꺾였다. 세라 앞에 드리우던 평가석 그림자도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

그 틈에 미리엘이 숨을 짧게 삼켰다.

“지금. 셋째 문장선이 먼저 꺾여요.”

그녀는 기도문을 읽지 않았다. 거울판 아래를 타던 선 셋 중 어디가 먼저 서로를 건너뛰는지만 보고 있었다. 사람을 달래는 사제가 아니라 반사 타이밍을 읽는 실무자의 얼굴이었다.

브론이 곧장 쐐기 머리를 내리쳤다.

텅.

오른쪽 보강층이 반 치수 주저앉으며 석상 몸통이 정면이 아니라 약간 오른쪽으로 틀렸다. 발판 하중이 새자 내 발밑 잔선이 잠깐 더 푸르게 살아났다.

“세라, 한 발.”

세라가 앞으로 반걸음 옮겼다.

“리에트, 그 각 유지.”

리에트가 두 번째 화살을 걸었다.

“미리엘, 선만 봐.”

미리엘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브론, 받침 말고 목줄.”

브론이 씩 웃었다.

“이제야 사람답게 부려먹는군.”

거울판 셋이 동시에 떨렸다. 이번엔 더 노골적이었다. 세라 귀에는 방패 각도를 비웃는 조롱이, 리에트 눈앞에는 후퇴 신호를 놓친 숲 불빛이, 미리엘 손끝에는 사람 이름이 지워지던 장부 줄이, 브론 시야에는 자기 설계 위에 남의 인장이 박히던 공방 불꽃이 겹쳤다.

세라 방패가 아주 잠깐 들렸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라, 지금 내려.”

명령은 짧았고 그녀도 묻지 않았다. 방패가 다시 발판을 치며 같은 소리를 냈다.

딱.

그 박자에 맞춰 리에트 화살이 위 계단 가장자리를 밟으려던 창잡이 손등을 스쳤다. 창끝이 돌에 부딪혀 각도가 틀어진 소리가 아래 반사와 겹쳤다.

“가운데 셋째 선, 비어요!”

미리엘 외침과 동시에 브론이 왼쪽 보강층 틈에 짧은 못을 박았다. 철과 돌이 맞물리며 석상 몸통이 내 쪽이 아니라 세라 방패 가장자리 쪽으로 비틀렸다. 가운데 거울판은 내 얼굴을 곧게 겨누지 못하고 방패 윗변을 스치듯 지나갔다.

기억은 여전히 밀려왔지만 박자는 아직 살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입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서 보이는 것만 붙들었다. 세라 방패가 먼저 기준점을 찍고, 리에트 화살이 그 기준점에 맞춰 반사 예고를 찢고, 미리엘이 선 꺾임을 읽고, 브론이 하중을 틀었다. 내 몫은 그 넷이 한 박자 늦기 전에 다시 같은 틀에 들어오게 만드는 일이었다.

석상이 처음으로 속도를 올렸다. 철석 몸통이 가운데 돌판 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오르며 세 장의 거울을 번갈아 세웠다. 이번엔 각자 과거만 비추지 않았다. 세라 앞에는 리에트의 숲 불빛이 겹쳐 들었고, 리에트 앞에는 평가장의 조롱이 얹혔다. 미리엘 앞에는 브론의 공방 불꽃과 삭제 장부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서로의 가장 늦게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엇갈려 던져 역할선을 통째로 잘라 내려는 수였다.

“서로 얼굴 보지 마.”

내가 말했다.

“자리만 봐. 세라는 내 어깨, 리에트는 위턱, 미리엘은 셋째 선, 브론은 왼쪽 받침.”

브론이 코웃음을 삼켰다.

“좋군. 남의 상처 감상할 틈도 없네.”

“감상하면 죽어.”

세라가 먼저 받아쳤다. 그녀는 이번엔 방패를 드는 대신 착지대와 가운데 돌판 경계에 방패 모서리를 세워 네 사람의 기준 좌표가 되려 했다. 수치심이 팔 힘을 빼는 대신 자세를 더 정확히 고치게 만들고 있었다.

리에트는 위 계단과 아래 거울 사이를 번갈아 재다가 고개를 아주 조금 틀었다.

“위보다 아래가 먼저 닫혀. 후퇴 신호보다 반사 예고가 빨라.”

그녀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판단은 더 빨랐다.

“왼쪽 거울이 먼저 온다.”

“왼쪽 받침 터뜨릴까요?”

브론이 묻자 미리엘이 손끝으로 문장선을 짚었다.

“안 돼요. 받침이 아니라 매다는 홈 아래가 비어요. 받침을 터뜨리면 셋째 선이 우리 쪽으로 꺾여요.”

둘은 서로를 좋아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데 같은 판을 다른 감각으로 읽는 손놀림만은 이미 딱 맞았다.

“브론, 홈 아래.”

“확인.”

브론이 망치 자루를 거꾸로 쥐고 홈 아래를 비틀었다. 미리엘은 그 순간 문장선이 끊기는 타이밍에 맞춰 은실 구슬을 들어 올렸다. 왼쪽 거울판 아래가 잠깐 허공이 되자 리에트 화살이 그 틈으로 곧장 박혔다.

쩍.

왼쪽 거울판 모서리에 얇은 금이 갔다.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지만 반사면이 갈라지며 세라 앞에 겹치던 리에트의 숲 불빛이 찢겨 나갔다.

세라가 짧게 숨을 삼켰다.

“먹힌다.”

안도가 아니라 계산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아직 아냐.”

나는 바로 잘랐다.

“이제부터 더 깊게 찌른다.”

말이 떨어지자 석상 몸통 안쪽에서 낮은 울림이 터졌다. 이번 진동은 발판으로만 오지 않았다. 손등, 잇몸, 목 안쪽까지 같이 떨렸다. 거울판 셋이 한 번에 뒤집히며 방금 전보다 더 선명한 장면을 품었다.

세라 앞에는 방패를 들어도 아무도 살리지 못하던 기억이 아니라, 그녀가 직접 나를 상급 인계선에 넘기는 상상이 떠올랐다. 리에트 앞에는 후퇴 신호를 놓친 밤이 아니라, 이번에는 자기가 일부러 신호를 끊어 누군가를 남겨 두는 미래가 비쳤다. 미리엘 앞에는 엘레나 이름 옆에 보류 도장이 찍히는 장부가 떴고, 브론 앞에는 쐐기 하나를 잘못 박아 우리 전부를 잘라 버리는 공방 그림이 번졌다.

내 앞 빈 칸에는 처음으로 글자가 적혔다.

“보관자.”

그 단어가 뜨는 순간 심장이 한 박자 비어 버렸다. 가슴 안쪽이 서늘하게 꺼지고 혀끝에 쇠맛이 올라왔다. 시야 가장자리가 잠깐 접히는 찰나를 아래 석상이 놓치지 않았다. 가운데 거울판이 곧장 세워지며 반사가 내 얼굴을 지나 세라 방패 윗변과 리에트 활시위 사이에 길게 걸렸다. 동시에 위 계단에서도 짧은 활 둘이 같은 각도로 내려앉았다.

“에이드리언!”

세라 외침이 들렸다.

나는 억지로 시선을 돌판 경계에 박았다. 이름을 읽는 순간 늦어진다. 이 적은 과거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그 이름에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들어 박자를 끊는다.

“내 쪽 보지 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세라, 셋 센다. 리에트는 둘에 쏴. 미리엘 셋째 선만. 브론, 내 발 오른쪽 아래.”

브론은 놀라지 않았다. 내 발밑 잔선이 어디로 살아나는지 그도 보고 있었다.

“하중 받친다.”

세라 방패가 한 번 더 발판을 쳤다.

하나.

리에트 손가락이 시위를 더 당겼다.

둘.

미리엘이 숨을 삼키며 외쳤다.

“지금, 셋째 선 꺾여요!”

셋.

브론 쐐기가 내 발 오른쪽 아래 보강층을 때렸다. 동시에 리에트 화살이 가운데 거울판 아래 연결못을 스쳤다. 세라는 방패를 위로 올리지 않고 앞으로 밀어 석상 몸통을 반 치수 비껴 세웠다. 위에서 막 내려오던 화살 하나가 방패 윗변을 긁고 튀었고, 빗나간 가운데 반사는 세라 방패 옆 철면에 부딪혀 날카롭게 갈라졌다.

금속음이 착지대 전체를 긁었다. 아래 석상 몸통이 처음으로 중심을 잃고 한쪽 무릎을 꺾었다.

우리는 동시에 숨을 토했다.

첫 합이었다. 우세가 아니라, 겨우 반 박자도 어긋나지 않고 한 번 버텨 낸 결과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위 계단 끝에서 추적선 둘이 동시에 착지대 가장자리를 밟았다. 한 놈은 짧은 활을 들어 올렸고 다른 하나는 창을 비스듬히 겨눴다. 아래 석상은 무릎을 꺾은 채로도 거울판 셋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갈라진 왼쪽 거울판 틈으로는 세라의 과거 대신 미리엘의 장부 줄이, 가운데 거울판에는 내 빈 칸 대신 브론의 공방 불꽃이, 오른쪽 거울판에는 리에트 숲길 대신 엘레나의 창백한 손이 번지기 시작했다.

적은 더 깊게 섞어 던질 생각이었다. 우리가 방금 맞춘 첫 합 자체를 기억하고, 다음에는 그 합을 역이용하려는 셈이었다.

세라가 방패를 다시 세우며 낮게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리에트는 위턱과 아래 거울을 번갈아 겨눈 채 대꾸했다.

“한 번 통했다고 같은 박자가 다시 통할 거라 믿으면 끝장이야.”

미리엘이 은실을 다시 감아 쥐었다. 손은 떨렸지만 눈은 조금 전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문장선도 바뀌고 있어요. 방금 전 합을 기억해요.”

브론이 쐐기를 뽑지 않고 더 깊게 눌렀다.

"좋아. 저놈이 우리가 한 짓을 익혔다면 우리도 바로 바꾸면 되지."

나는 열세 번째 잔선 위에서 발을 반 치수 더 옮겼다. 세라 방패선, 리에트 사선, 미리엘의 홈, 브론의 받침이 머릿속에서 다시 다른 각도로 물렸다. 지금까지는 적의 첫 패턴을 겨우 견뎠을 뿐이다. 다음부터는 서로의 가장 늦게 버릴 수 없는 것을 더 깊게 찌르고, 우리가 맞춘 박자 그 자체를 베끼려 들 것이다.

위쪽 화살촉이 내려오고 아래 거울판이 다시 들렸다.

이제 남은 건 누가 누구를 속였는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안 채로 얼마나 빠르게 제자리를 다시 맞출 수 있는가였다.

검푸른 석상이 갈라진 거울면을 한 번 더 세우며 두 번째 반사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누구 하나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늦게 버릴 수 없는 것을 서로의 눈앞에 던질 기세였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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