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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고백

검푸른 색인판이 문틈에서 비스듬히 솟아오른 뒤, 착지대 공기는 전보다 더 차갑고 얇아졌다. 다섯 칸은 비어 있었지만 아무 답이나 받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세라의 방패가 막는 정면, 리에트의 화살촉이 덮는 위쪽 턱, 미리엘의 은실이 떨리는 홈 가장자리, 브론의 쐐기가 박힌 보강층, 그리고 내가 비껴 선 열세 번째 잔선 자리가 칸마다 하나씩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위 계단에서는 늦게 닿은 발소리가 돌가루를 밀었다. 장대로 아래를 더듬는 소리 사이에 짧고 무거운 구둣발이 섞였다. 아래에서는 문턱 밑 가는 선 셋이 번져 나와 우리 발등과 장비 끝을 한 줄씩 훑었다.

도망칠 곳은 위로도 아래로도 없었다.

세라가 방패 아랫변을 조금 더 내리며 말했다.

“자리부터 고정해.”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색인판만 봤다. 누구 차례인지 따지기 전에, 방패 높이와 내 어깨에 실린 하중, 리에트가 쏠 수 있는 각도, 미리엘이 문장을 읽을 수 있는 거리, 브론이 쐐기를 다시 박을 틈부터 계산하는 목소리였다.

브론이 낮게 중얼거렸다.

“좋아. 사람 입보다 장치가 먼저 순서를 정하겠군.”

미리엘이 떨리는 은실을 감아 쥔 채 바닥을 살폈다. 다섯 칸 아래 홈은 모두 폭이 달랐다. 가장 왼쪽 둘은 칼등처럼 좁았고 가운데 칸은 유난히 깊었다. 오른쪽 끝 칸 아래에는 성도식 정리 부호와 닮은 짧은 선 셋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리에트가 위쪽 턱을 겨눈 채 입술만 움직였다.

“위는 세 걸음 남았다.”

그 말과 함께 상단 비탈에서 돌 하나가 튀어 굴렀다. 세라는 방패 각도를 반 치수 비틀어 그쪽을 막아 두고도 시선을 아래 칸들에서 떼지 않았다.

나는 문턱 잔선을 다시 봤다. 조금 전까지는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 읽는 선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무엇을 내놓을지 재촉하는 줄처럼 느껴졌다. 로웬 메모, 막사의 별도 확인, 세라가 숨겼던 조항들, 미리엘이 기억한 삭제 장부, 리에트의 선점 흔적, 브론의 합금 욕심이 한꺼번에 목을 조였다.

색인판 안쪽에서 평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대답해라."

목소리라기보다 오래된 금속판에 새긴 문장을 그대로 읽어 내리는 소리였다. 감정도 높낮이도 없었다.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

세라가 먼저 결론을 냈다.

“신뢰 확인은 아니야. 통과 답을 내놓으라는 거다.”

브론이 짧게 웃었다.

“고백을 서류처럼 받는 문이네.”

“그 편이 낫지.”

세라의 대답은 차갑고 짧았다.

“사람 좋은 말은 여기서 아무 값도 못 할 테니까.”

위에서 다시 구둣발이 긁혔다. 리에트가 활끝을 조금 더 들어 올리자 푸른 선 하나가 두 번째 칸으로 번졌다.

미리엘이 숨을 삼켰다.

“자리별 반응이 와요. 먼저 선 사람이 먼저 답해야 할지도 몰라요.”

세라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방패를 정면에 세운 채 손목 힘만으로 아랫변을 버티고, 문서 낭독처럼 짧게 입을 열었다.

“왕립기사단 후보 세라 벨로네. 대상 접촉 시 즉시 보고. 단독 이탈 금지. 현장 위험 확대 시 재량 보호 가능. 상급 인계 우선.”

그 말은 사과도 변명도 아니었다. 실제 문서에 적혀 있던 조항을 그대로 꺼내는 식이었다. 끝 음절이 떨어지자 두 번째 칸 아래 잔선이 가늘게 밝아졌고, 방패 아랫변을 누르던 무게가 한순간 덜컥 풀렸다가 다시 걸렸다.

세라는 그 미세한 변화를 느끼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나는 널 지키라고 붙은 게 아니었어. 먼저 붙잡고, 위에서 시키는 손으로 넘기라는 줄에 서 있었지.”

그녀가 한 번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보고를 늦춘 이유도 신뢰가 아니라 봉쇄를 늦추기 위해서였다. 네가 사람 취급을 받을 마지막 시간이 현장에만 남아 있었으니까.”

색인판 두 번째 칸 안쪽에서 얇은 금속이 안으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미리엘이 그 소리에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곧 제 자리를 더 정확히 잡고 은실 구슬을 네 번째 홈 위에 걸쳤다.

“성도 정리실 하급 사제 미리엘 하센.”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무서워도 읽어야 하는 사람의 얼굴로 색인판 가장자리를 훑었다.

“회수 보류 문장 이관. 삭제 교리 색인 정리. 보관자 확인 전 임시 침묵. 기록 계통 재개 시 외부 낭독 금지. 왕좌 계열은 현장 보고보다 상위 봉쇄 절차 우선.”

말이 길어질 듯했지만 그녀는 장부 조각처럼 끊어서만 냈다. 뜻을 품은 문장이 아니라 처리 순서만 남은 잔해들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또렷했다.

미리엘의 목이 한 번 떨렸다.

“나는 치료하러 내려온 줄로 버텼어요. 하지만 반쯤은 거짓이었어요. 여기 있는 누군가를 살리라는 명령보다, 여기서 반응하는 무언가를 먼저 확인하라는 줄에 더 가까웠어요.”

그 순간 네 번째 홈 아래 은실이 푸르게 번쩍이며 가라앉았다. 색인판 오른쪽 끝 칸 안에서 먼지 섞인 숨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세라가 그 소리를 듣고 물었다.

“그래서 지금도 성도 쪽으로 우릴 넘길 생각이 있나.”

미리엘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넘기면 사람으로 안 남아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자기 조직을 등지는 공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위 계단 끝에서 누군가가 낮게 뭐라고 외쳤다. 말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선명했다. 리에트는 그쪽을 향한 화살촉을 내리지 않은 채 세 번째 칸 자리로 발끝을 미세하게 옮겼다.

“서방 숲 감시선 비공식 추적자, 리에트 아르셸.”

리에트는 자기 이름부터 내밀지 않았다. 먼저 바닥과 위턱을 번갈아 짚고 입을 열었다.

“나는 원정대에 합류하려고 따라붙은 게 아니다. 북서 사면 먼저 밟힌 선점 흔적, 로웬 헤일 탈출선과 겹치는 엘프식 지움 자국, 성도와 기사단이 따로 숨긴 길의 교차점을 확인하러 왔다.”

리에트는 숨을 길게 빼지 않았다. 쏘기 직전의 호흡처럼 짧고 단단하게 말을 이었다.

“숲 감시단은 오래전부터 지워진 줄 하나를 추적해 왔다. 네 후견인이 남긴 흔적이 그 줄과 겹쳤다. 그래서 나는 널 구하려고가 아니라, 네가 어디로 밀려나는지 보려고 따라왔다.”

내 어깨가 순간 굳었다. 하지만 리에트는 나를 달래려는 눈을 하지 않았다. 사실을 더 정확히 맞추려는 추적자의 눈만 하고 있었다.

"지금은 계산이 바뀌었다. 이 길은 널 미끼로 쓴 흔적이 아니라, 우리 전부를 서로 다른 미끼줄에 묶어 같은 문으로 몰아넣은 함정이다."

세 번째 칸 위에 가느다란 빛이 세 번 떨렸다. 동시에 위 계단 어둠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잠깐 끊겼다.

브론이 혀를 찼다.

“좋지. 이제 내 차례군.”

그는 쐐기 머리를 두드리며 다섯 번째 칸 쪽으로 무게를 옮겼다. 금속이 돌을 긁는 소리가 귀 밑에서 바싹 울렸다.

“드워프 장비공 브론 카르트. 목적은 단순했어. 금지 합금 파편 선점, 봉인재 단가 확인, 회수대보다 먼저 손대기.”

브론은 부끄러워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았다. 계산서를 읽듯 건조했다.

"사람 목숨보다 쇳값을 먼저 본 적도 있다. 여기 내려온 것도 반쯤은 그 버릇 때문이지. 이 아래에 국가 승인 합금이랑 성도 보강층이 한데 묻혀 있으면, 한 덩이만 빼도 내 채무 몇 줄은 지울 수 있었을 테니까."

그는 거기서 말을 멈추지 않았다. 쐐기를 다시 눌러 보강층 진동을 읽어 낸 뒤 아주 짧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더 익숙한 꼴이 보였어. 겉간판 따로, 힘줄 따로, 오래된 뼈 따로. 위에 있는 놈들이 필요한 부분만 덧대고 나머진 묻어 버리는 방식. 우리 가문 설계가 남의 이름으로만 팔리고, 사람은 닳는 부속처럼 잘려 나가던 방식이랑 똑같더군.”

브론이 처음으로 나를 정면으로 봤다.

"그래서 인정하지. 나는 거래하러 왔지만, 여기선 나도 거래 물건이 될 수 있다. 금속을 고르러 내려왔는데 여기 자체가 먼저 내 몫부터 재고 있더군."

다섯 번째 칸 아래에서 묵직한 울림이 한 번 올라왔다. 브론이 박아 둔 쐐기 둘 중 하나가 아주 조금 더 안으로 박히며 문턱 밑 선이 한 칸 넓어졌다.

이제 남은 칸은 하나였다. 가장 깊고 가장 어두운, 내가 비껴 선 열세 번째 잔선과 맞물린 자리.

위에서 다시 발소리가 쏟아졌다. 이번에는 돌을 긁는 소리 사이로 금속이 부딪히는 짧은 충격음까지 섞여 있었다. 세라가 방패를 더 세우자 하중이 내 어깨를 짓눌렀고, 리에트는 위턱 빈틈 하나를 끝까지 지워 버리려는 사람처럼 활시위를 더 당겼다.

색인판이 다시 말했다.

“잔여 응답자 제출.”

나는 손바닥 안의 성철 부적을 한 번 쥐었다. 하지만 차갑게 굳은 금속은 방향 공명만 남길 뿐,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판단 근거는 이미 다른 데 있었다. 배정 문건의 문장, 검문 막사의 별도 확인, 세라가 숨겼던 조항, 미리엘 장부의 처리 순서, 리에트가 본 선점 동선, 브론이 읽어 낸 보강층의 손길. 모든 줄이 결국 내 이름 앞에서만 한 점으로 모였다.

나는 색인판을 보며 말했다.

"수련원 배정 문건엔 나는 처음부터 전력 외였다. 그런데 생환 시 한시 유예 조항은 내 이름 앞에만 붙어 있었다. 성문 밖 막사에선 원정 전원 확인이 아니라 나한테만 따로 확인이 붙었다. 로웬 헤일은 도시 안이 더 위험하다고 남겼고, 공식 원정로보다 북서 우회선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부적을 남겨 뒀다."

내 목소리가 갈라질까 봐 더 짧게 끊었다. 이건 감상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답을 제출하는 자리였다.

“처음엔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하위 직업이라 밀려났고, 가족이 아파서 붙잡히기 쉬웠고, 후견인이 사라져서 더 외로워졌다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니다. 나는 특별해서 선택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분류돼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밀려왔다. 사람보다 먼저 표식으로 읽히고, 동료보다 먼저 확보 대상으로 적히고, 도움보다 먼저 인계선에 묶였다.”

말을 끝내는 순간 가장 안쪽 칸이 깊은 우물처럼 푸르게 가라앉았다. 발밑 열세 번째 잔선이 살아나며 내 발뒤꿈치와 세라의 방패선, 리에트의 사선, 미리엘의 홈, 브론의 쐐기를 한 번에 엮었다.

동시에 위 계단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이상하게 멀어졌다.

아니, 멀어진 게 아니었다. 바로 위에 있어야 할 소리가 한순간 너무 오래전 기억처럼 뒤로 밀려난 것이었다. 내 귀 안쪽에서 다른 소리가 겹쳤다. 점호장 자갈밭, 교관의 무심한 목소리, 엘레나의 마른 기침, 막사 앞에서 나만 따로 불리던 순간의 공기.

세라의 방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니, 그건…”

그녀 목소리는 지금 이 착지대가 아니라 훨씬 밝은 훈련장 한가운데서 나온 것처럼 울렸다. 내 어깨로 실린 하중이 잠깐 아래로 처졌다. 누군가가 평가석에서 방패 각도를 비웃던 기억이 그녀 팔힘을 한순간 늦춘 듯했다.

리에트도 바로 욕설을 삼켰다.

“기억을 만진다.”

그녀 화살촉은 여전히 위를 겨누고 있었지만 시선은 잠깐 허공을 빗나갔다. 숲 어딘가에서 놓친 후퇴 신호를 다시 들은 사람처럼, 눈동자 가장자리가 딱 한 번 늦게 돌아왔다.

미리엘의 은실이 갑자기 마구 떨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기도문을 삼켰다. 손끝이 잠깐 홈을 놓쳤다가 다시 같은 자리를 더듬었다. 장부에서 이름을 지우던 손놀림이 떠오른 듯, 손가락 끝이 사람 살갗을 만지듯 주저했다.

브론은 쐐기를 잡은 손을 더 세게 눌렀다. 금속 하나가 짧게 삐걱거렸다. 공방 불길 속에서 자기 설계 위에 남의 인장이 찍히던 기억이 스친 듯, 그가 처음으로 욕설 대신 이를 악물었다.

“좋군. 비밀만 뜯는 게 아니라 손발도 엇갈리게 만든다는 거네.”

아래에서 올라오는 진동이 발바닥에 닿았다. 문 안쪽 더 깊은 곳에서 크고 무거운 무언가가 자기 무게를 한 번 실어 보는 듯한 진동이었다. 검푸른 색인판 표면의 긁힌 자국들 사이로 희미한 사람 그림자 같은 것이 번졌다가 지워졌다.

그것은 살아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 가장 늦게 치운 장면을 억지로 비춰 보는 거울 같았다.

세라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다들 지금 들리는 거 믿지 마.”

그녀는 방패를 더 낮게 눌러 내 어깨와 연결했다. 조금 전까지 우리를 갈라놓던 문장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중을 나눠 버티기 위한 실무적 명령이었다.

“위는 아직 위에 있다. 아래는 지금 우리 틈을 벌리려는 거고.”

리에트가 그 말을 받았다.

“패턴은 둘이다. 하나는 기억을 먼저 흔들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서로 늦게 움직이길 기다린다.”

브론이 쐐기를 한 번 더 두드렸다.

“그럼 해결도 둘이어야지. 누가 무슨 소릴 듣든 손은 지금 자리에서만 움직인다.”

미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공포로 하얗게 질렸지만 눈은 오히려 조금 더 또렷해져 있었다.

“다섯 칸은 열렸어요. 다음엔 각 역할이 제때 들어맞는지 확인할 거예요. 서로를 믿는지가 아니라, 비밀을 안 뒤에도 제 자리를 지키는지를 보려는 쪽이에요.”

그 말이 끝나자 색인판 뒤 어둠이 천천히 갈라졌다. 안쪽에서 올라온 것은 왕좌도 제단도 아니었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검푸른 철석상 같은 몸통과, 그 앞면을 가로지르는 얇은 거울판 세 장이었다.

거울은 우리 모습을 그대로 비추지 않았다.

세라 앞에는 평가장에서 등을 돌리던 기사단 그림자가 번졌다. 방패를 들면 들수록 더 무겁게 눌러 오던 시선이었다.

미리엘 앞에는 장부를 넘기며 침묵하던 손이 떠올랐다. 사람 이름이 아니라 분류 줄만 남기던 손이었다.

리에트 앞에는 후퇴 신호를 놓친 숲의 불빛이 스쳤다. 한 번 늦게 돌아본 눈이 평생 따라붙게 만든 밤의 각도였다.

브론 앞에는 자기 설계가 남의 인장 아래 찍히던 공방 불꽃이 튀었다. 강철보다 먼저 자기 이름이 갈려 나가던 순간의 불꽃이었다.

내 앞 거울에는 수련원 배정 통지서가 아니라 빈 칸 하나가 떠 있었다. 이름을 적기 전의 줄. 누군가가 적기만 하면 사람 하나를 곧장 다른 분류로 넘길 수 있는, 너무 깨끗해서 더 잔인한 빈칸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숨을 들이켰다.

저건 과거를 보여 주는 장치가 아니었다. 우리가 가장 약해지는 기억을 꺼내 서로의 박자를 늦춘 뒤, 그 틈에서 역할선을 끊어 내는 적이었다.

위 계단 끝에서 마침내 추적선의 발이 착지대 가장자리를 밟았다. 동시에 아래 검푸른 석상이 첫걸음을 떼며 거울판 셋을 우리 쪽으로 기울였다.

위와 아래가 같은 순간에 닫혀 왔다.

세라가 방패를 들어 올렸고, 리에트가 시위를 끝까지 당겼으며, 브론은 쐐기 옆 새 홈을 찾기 위해 몸을 낮췄다. 미리엘은 떨리는 손으로 홈과 거울 사이 문장 선을 읽었고, 나는 열세 번째 잔선 위에서 발을 반 걸음 비껴 옮겼다.

이제는 다 알고 있었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품고 내려왔는지, 누가 누구를 넘기려 했는지, 누가 무엇을 숨긴 채 버텨 왔는지.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그걸 안 채로 역할부터 맞춰야 했다.

검푸른 거울판 셋이 동시에 들리며 우리 각자의 늦은 기억을 서로의 얼굴 위로 던질 준비를 마쳤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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