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중층 돌파
첫 대기 지점의 공기는 아래에서 밀려오는 쇠 냄새와 뒤에서 번지는 흙먼지 냄새가 가운데서 부딪히며 얇게 갈라져 있었다.
왼쪽에는 세라의 방패가 간신히 세워질 만큼만 남은 돌기둥 틈이 있었다. 기둥 표면은 오래전 금속 모서리가 여러 번 스친 듯 허리 높이만 유독 반질거렸고, 그 아래 판석은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비스듬히 닳아 있었다. 오른쪽에는 리에트가 반쯤 몸을 걸치고 설 수 있는 낮은 턱이 이어졌는데, 턱 위 벽은 활시위가 스친 가는 흠집들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결이 달라 보였다. 정면은 한 단 낮게 꺼진 뒤 다시 둥근 받침이 있는 넓이로 이어졌다. 그 중앙에서 막 깨어난 중층 수문장은 원판 같은 얼굴을 천천히 돌리며 셋의 위치를 훑고 있었다. 뒤쪽 무너진 문턱 너머로는 아직 보이지 않는 횃불빛이 먼지마다 걸리고, 장대 끝이 돌을 긁는 소리가 아주 가까운 데서 들려왔다.
우리가 붙잡은 자리는 숨는 곳이 아니었다.
안쪽 장치는 우리 자리를 훑고 있었고, 바깥에선 우리를 잡으러 바로 올라오고 있었다.
수문장의 왼팔은 세라의 방패 높이에 맞춰 올라와 있었고, 오른쪽 길쭉한 축은 리에트가 선 턱 아래를 한 번 느리게 훑고 멈췄다. 마지막으로 원판 아래 희미한 빛이 내 발 아래 중앙 판석선에서 길게 머물렀다. 아까 돌판문이 열릴 때부터 느꼈던 그 불쾌한 감각이 다시 올라왔다. 부적이 길을 여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사람의 위치와 보폭과 역할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문과 함정을 얹어 둔 것이다.
세라가 방패를 조금 더 끌어올렸다.
“명령.”
짧고 딱딱한 말이었다. 하지만 더는 날 밀어내는 말이 아니었다.
리에트도 활끝을 수문장 중앙이 아니라 그 뒤의 바닥과 천장 쪽으로 나눠 겨누며 말했다.
“위쪽 홈 셋, 아래 홈 둘. 아까보다 넓다.”
나는 정면 낮은 단 아래로 이어진 마모선, 양옆 홈의 폭, 수문장 발목을 감싸고 있는 원형 받침의 홈 깊이를 빠르게 훑었다. 전면 중심축은 두껍고 무겁다. 그냥 때려서는 부서지지 않는다. 대신 그 두께를 떠받치는 연결부는 이상하게 비어 있었다. 왼편 받침 아래에는 방패가 밀고 들어올 각을 잡도록 만든 듯한 낮은 틈이 있고, 오른편 아래에는 기다란 축이 회전하다 한 번씩 드러나는 관절선이 있었다. 누가 정면을 버티고 누가 위를 끊고 누가 타이밍을 잡는지, 그 역할을 알아맞히는 사람에게만 다음 틈을 내주는 장치였다.
뒤에서 누군가 세라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거의 문턱 바로 바깥처럼 가까웠다.
세라의 눈썹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굳었다.
“뒤는 얼마 못 버텨.”
“알아.”
나는 수문장을 보며 숨을 골랐다.
“정면 힘싸움 하지 마. 저건 방패 세운 높이, 활 쏘는 턱, 가운데 선을 다 읽어.”
“그래 보이긴 하네.” 리에트가 마른 목소리로 받았다.
“세라, 왼쪽 기둥 반 걸음 앞. 방패 세우지 말고 비스듬히 들어. 리에트는 오른쪽 턱 그대로 써. 첫 패턴은 위 철침, 둘째는 바닥 밀림, 셋째가 정면 밀침이야. 위부터 끊고, 아래는 세라가 버틴다.”
세라가 정면만 본 채 물었다.
“넌?”
“가운데 선.”
그녀 입매가 잠깐 험하게 굳었다.
“또 네가 밟는 거군.”
“그래야 저게 반응 순서를 드러내.”
바깥에서 금속 고리가 돌에 걸리며 딸깍 울렸다. 누군가가 무너진 문턱에 장대를 걸친 모양이었다. 리에트가 낮게 혀를 찼다.
“지금 안 하면 뒤에서 붙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
세라가 방패를 왼쪽으로 눕혀 기둥과 겹쳤다. 리에트는 오른편 턱에 발끝을 걸친 채 활시위를 턱 끝까지 당겼다. 나는 중앙 판석선 위로 발을 옮겼다.
딸깍.
발바닥 아래서 아주 짧은 진동이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수문장 원판 아래의 빛이 한 번 번쩍였고, 천장 왼쪽 홈에서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터졌다.
“숙여.”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에서 짧은 철침 다섯 개가 비처럼 떨어졌다. 세라는 방패를 머리 위로 비틀어 올려 둘을 받아냈고, 리에트는 턱에 몸을 접으며 하나를 피한 뒤 바로 화살을 쐈다. 그의 화살이 천장 홈 가장자리를 때리자 남은 두 철침은 궤도가 틀어져 기둥 뒤를 긁고 떨어졌다.
“위가 먼저.” 리에트가 말했다.
“다음은 아래.”
내가 외치자마자 정면 받침 양옆 홈에서 돌이 밀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수문장 자체가 달려드는 게 아니었다. 받침 아래 판석 둘이 서로 엇갈리며 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우리가 중심을 잃고 뒤로 발을 빼게 만들 폭이었다.
“세라, 왼발 고정. 오른발만 빼.”
세라는 묻지 않고 움직였다. 방패 아래 몸무게를 실은 채 오른발만 반 보 빼자 밀려나오던 판석이 그녀 발끝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두 발을 다 옮겼다면 균형이 꺾였을 각이었다.
동시에 수문장 오른쪽 축이 낮게 돌아갔다.
“리에트, 관절!”
화살이 날아가 회전축 겉면을 스쳤다. 완전히 멈추진 않았지만 속도가 꺾였다. 그 잠깐 사이 나는 수문장 몸통 뒤로 이어지는 얇은 금속줄 같은 연결선을 봤다. 돌몸과 받침을 잇는 중심이 아니라, 패턴을 바꾸는 제어용 선처럼 보였다.
“몸통 말고 뒤.” 내가 말했다. “오른편 아래, 빛 닿는 선.”
리에트가 바로 화살 하나를 더 걸었다.
“보인다.”
뒤에서 장대 하나가 무너진 문턱 위에 걸쳐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발을 디디다 다시 욕설을 뱉었다. 먼지 사이 횃불빛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세라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안도 밖도 전부 미친 구조야.”
“살아 나가려면 둘 중 하나부터 먹어야 해.”
“그래서 안쪽을 먹자는 거지.”
“응.”
수문장은 이번엔 정면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정확히 말하면 걷는다기보다, 밑받침 전체가 홈을 따라 미끄러지듯 당겨졌다. 원판 아래 빛이 좌우로 갈라지며 세 개의 선을 만들었다. 하나는 세라 방패 쪽, 하나는 리에트 턱 아래, 마지막 하나는 내 발 앞 중앙으로 왔다.
세 개를 동시에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세 개가 동시에 진짜인 것도 아니다.
나는 바닥 마모를 다시 봤다. 중앙선은 선명했지만, 그 바로 왼쪽에는 부츠 앞코가 반복해서 스친 짧은 반원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방패를 든 사람이 끝까지 버티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마지막 순간 비켜 서며 안쪽 관절을 열어 준 자리였다.
“세라.”
“말해.”
“이번엔 정면을 다 막지 마. 왼쪽 손바닥만큼 비워.”
그녀가 날 노려봤다.
“또 뭘 끌어내려고.”
“정면 밀침. 그게 열려야 오른쪽 축이 같이 드러나.”
리에트가 건조하게 말했다.
“해. 안 그러면 계속 우리 자세만 흔든다.”
세라는 짧게 욕설을 씹어 삼키더니 방패 각도를 아주 조금 열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지금.”
수문장 왼팔 아래 틈에서 검은 창대 같은 밀침 장치가 튀어나왔다. 쇠끝 세 갈래가 손바닥 넓이의 틈을 향해 밀려 들어왔고, 세라는 그 틈을 더 열지 않은 채 버티며 충격 방향만 살짝 틀었다. 동시에 리에트 화살이 오른편 아래 빛나는 연결선을 꿰뚫었다.
짧은 금속 파열음이 터졌다.
수문장 오른쪽 축이 한순간 걸렸다.
“좋아.”
나는 바로 앞으로 반 걸음 미끄러졌다. 내 발이 중앙선에서 조금 벗어나자 수문장 원판 아래 빛도 그쪽으로 흔들렸다. 누가 어디에 서는지를 아직 읽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반대로 말하면, 읽히는 위치를 흔들면 패턴도 흔들린다.
“세라, 한 걸음 말고 반 걸음만 밀어. 방패 위가 아니라 아래.”
“아래?”
“받침 틈.”
세라는 망설이지 않았다. 기둥 옆에서 버티던 몸을 밀어 수문장 왼쪽 받침 아래 낮은 틈에 방패 하단을 박아 넣었다. 철과 돌이 갈리며 큰 소리가 났다. 수문장 왼팔이 내려오다가 각을 잃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리에트, 위 둘 중 오른쪽!”
화살이 날아가 천장 홈을 때렸다. 그 순간 위에서 떨어지려던 두 번째 철침 다발이 비틀리며 수문장 어깨 쪽으로 쏟아졌다. 쇠침 몇 개가 돌몸을 때리자 원판 아래 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세라가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이냐.”
“아직.”
나는 수문장 몸통을 올려다보았다. 정면 원판 중앙은 두껍고 단단하다. 거기만 노리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정면의 빛 배열 바로 아래, 오래전 손바닥만 한 금속판을 덧댄 흔적이 있었다. 그 판 가장자리엔 성도 인장처럼 생긴 곡선 세 줄이 아주 옅게 남아 있었다. 기사단 장비도, 광갱 장비도 아니었다. 안쪽 시설을 다뤘던 누군가가 나중에 덧대어 건드린 흔적처럼 보였다.
성도.
혹은 성도와 닿은 누군가.
“정면 아래 금속판 보이지?”
리에트가 시선을 좁혔다.
“희미하게.”
세라도 방패 너머로 흘끗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문양, 어디서…”
“나중.” 나는 잘라 말했다. “지금은 깨.”
바깥에서 이번엔 돌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들렸다. 장대를 걸친 누군가가 발을 헛디딘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다른 누군가가 “계속!” 하고 외쳤다. पीछيرة kind? Wait Korean only. Need avoid foreign. replace. We'll just continue in content? Oops typing in analysis. Need writing file already. Let's continue maybe no issue because content not final yet. We need write complete content at once; can't midstream? Already wrote maybe incomplete because content string includes strange English? Let's inspect later. For now continue narrative from outside pressure.
세라가 낮게 말했다.
“저쪽도 포기 안 해.”
“그래서 지금 끝내야 해.”
수문장은 한 번 더 패턴을 바꿨다. 이번에는 위가 아니라 바닥이었다. 받침 앞 판석 셋이 연달아 내려앉으며 내 발 아래 선을 앞으로 끌었다. 내가 그대로 서 있으면 중심이 수문장 쪽으로 쏠린다.
하지만 그 순간이 제어부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때이기도 했다.
“내가 앞으로 간다.”
세라가 즉시 말했다.
“미쳤어.”
“한 걸음만.”
리에트는 이미 다음 화살을 걸고 있었다.
“말만 해.”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중앙선 위로 몸을 던지듯 한 걸음 내디뎠다. 판석이 내려앉으며 발목이 순간 앞으로 끌렸고, 수문장 원판 아래 빛이 번쩍 켜졌다. 동시에 정면 아래 금속판이 들썩이며 안쪽 연결부가 반 박자 드러났다.
“지금!”
세라가 방패 하단을 받침 틈 더 깊숙이 밀어 넣으며 몸 전체로 눌렀다. 리에트 화살은 내가 가리킨 금속판 아래 빈 선을 정확히 꿰뚫었다.
쩌걱.
돌과 쇠가 함께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수문장 몸통이 앞으로 덮치려다 한쪽으로 비틀렸다. 원판 아래 빛 세 줄이 동시에 흔들렸고, 오른팔 축이 허공에서 헛돌았다. 나는 중심을 잃기 전에 옆으로 몸을 굴려 기둥 그림자 안으로 빠졌다.
세라가 그대로 방패를 밀어 올렸다.
“더!”
“왼쪽 반 보!”
내 외침과 동시에 그녀가 몸을 틀자 걸린 받침이 옆으로 틀어졌다. 리에트는 두 번째 화살을 같은 틈에 박아 넣었다. 이번에는 깊숙한 안쪽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수문장 몸통 뒤로 연결돼 있던 얇은 금속선 둘이 튀어나오며 허공에서 떨렸다.
원판 얼굴이 미친 듯 좌우로 흔들렸다.
“숙여!”
셋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수문장 왼팔이 허공을 베듯 지나가며 기둥 위를 후려쳤고, 깨진 돌가루가 비처럼 쏟아졌다. 바로 뒤이어 위쪽 홈에서 마지막 철침이 튀어나왔지만, 방향을 잃은 채 수문장 어깨와 뒤벽을 때리고 흩어졌다.
리에트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이제 멈춘다.”
“아직.”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수문장은 무너지는 대신 마지막으로 정면 아래의 덧댄 금속판 쪽 빛을 한 점에 모으고 있었다. 마치 끝까지 누가 중심에 서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소름이 등을 훑었다.
하지만 이번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중앙선에 발끝만 다시 올렸다.
“세라, 정면 끌어안지 말고 옆으로 흘려. 리에트, 금속판 위 말고 아래 틈.”
세라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끝낼게.”
수문장이 마지막으로 밀어 들어왔다. 세라는 방패 전면으로 받지 않고 비스듬히 흘려 원판 아래 무게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 순간 금속판 아래 벌어진 틈이 더 크게 열렸다.
“쏴.”
리에트 화살이 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달랐다.
속이 빈 금속통 한가운데가 터질 때 나는, 짧고 둔한 폭음이었다.
수문장 원판 아래 빛이 한 번 밝아졌다가 그대로 꺼졌다. 몸통이 앞으로 반 걸음 더 미끄러지더니, 힘을 잃은 왼팔이 바닥을 긁으며 내려앉았다. 오른쪽 축은 벽을 한 번 치고 멈췄고, 받침 아래서 돌아가던 판석 셋도 갈라진 채 제자리에 걸렸다.
잠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뒤에야 깨진 돌이 굴러가는 소리와 우리 셋의 거친 숨소리가 한꺼번에 돌아왔다.
세라는 방패를 내리지 않은 채 물었다.
“죽은 거냐.”
리에트가 한참 동안 활끝으로 수문장을 겨눈 뒤 대답했다.
“장치는 멎었어.”
나는 아직도 수문장 잔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천천히 일어났다. 정면의 원판에는 열둘과 하나가 어긋나 선 빛 배열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 덧댄 금속판 가장자리는 리에트 화살 두 대에 갈라져 안쪽 구조를 드러내고 있었다. 쇠냄새 속에 오래된 향 냄새 비슷한 것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성도 의식구에서 맡은 적 있는, 마른 향초 같은 냄새였다.
세라도 그것을 맡은 듯 얼굴을 찌푸렸다.
“기사단 장비 냄새는 아니야.”
“광갱 장치도 아니고.” 리에트가 덧붙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수문장 정면 아래로 다가갔다. 발밑 판석은 여전히 따뜻했다. 부적도 반응은 했지만, 방향만 찌르는 불쾌한 떨림일 뿐이었다. 여는 열쇠도, 푸는 주문도 아니었다. 결국 핵심은 눈앞 구조와 우리가 방금 만든 움직임이었다.
갈라진 금속판 안쪽에는 손바닥만 한 제어핵과 그 둘레를 감싼 세 줄의 얇은 고리, 그리고 그 고리 바깥으로 박힌 낡은 장부 금속 조각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엔 곡선 세 줄과 점 하나가 찍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성도 인장과 완전히 같진 않았지만, 그 계열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문양이었다.
세라가 내 옆까지 다가왔다. 방패는 아직 들고 있었지만 숨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저걸 덧댄 건 원래 만든 사람과 다른 손이지?”
“응.”
“확실해?”
나는 갈라진 단면을 가리켰다.
“원래 돌몸 안쪽 금속은 검게 삭아 있어. 그런데 이 판은 나중에 끼운 흔적이 남았어. 고정 못도 다르고, 가장자리 마모도 안 맞아.”
리에트가 높은 턱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누군가 옛 수문 위에 자기 확인 장치를 덧댄 셈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수문장 받침 둘레를 한 바퀴 더 훑었다. 둥근 받침 바깥에는 우리가 방금 밟은 중앙선 말고도 얇은 보조선 둘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하나는 세라가 방패를 박아 넣은 왼편 틈으로, 다른 하나는 리에트가 사격 각을 잡은 오른편 턱 아래로 이어졌다. 셋의 자리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게 아니라, 이곳 자체가 처음부터 방패와 원거리 사격, 그리고 가운데에서 타이밍을 재는 누군가를 함께 세우도록 짜여 있었다. 오래전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이 수문을 넘었을 것이다. 그 사실이 전투보다 더 차갑게 가슴을 눌렀다.
세라도 그 선을 본 듯 방패 끝으로 바닥을 짚었다.
“왼쪽 홈이 내가 선 자리랑 딱 맞네.”
“오른쪽 턱도.” 리에트가 벽을 한번 두드렸다. “활을 걸치라고 만든 높이야. 대충 만든 숨는 자리였으면 이 각이 안 나와.”
나는 수문장 정면의 갈라진 금속판을 다시 만지지 않고 손만 가까이 가져갔다. 금속은 아직 열이 남아 있었고, 틈 안에서는 가느다란 고리 셋이 끊어진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중 바깥 고리 하나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촘촘하게 뚫려 있었는데, 성도 의식구에서 보던 향연기 분산판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아까 쇠냄새 사이에 마른 향 냄새가 섞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 오래된 수문에 단순한 보강판이 아니라, 특정 반응과 공명과 냄새까지 확인하는 장치를 덧씌워 놓았다.
세라가 낮게 말했다.
“확보 절차에서 쓰는 확인 장치 같아.”
그 말에 내 목이 잠깐 굳었다. 수련원 복도에서 본 문건, 외곽 검문 막사의 별도 확인, 세라가 찢어 없앤 감시 지시문의 눌린 자국이 한 줄로 이어졌다. 지금 당장 결론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금속판 하나만으로도 누군가가 이 유적을 오래전 기록물로만 두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아직도 쓰고 있었고,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리에트는 수문장 등 뒤의 어둠을 본 채 물었다.
“그럼 이 아래도 그냥 버려진 길은 아니겠네.”
“아마.”
나는 짧게 대답하고 바닥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받침 아래 판석 틈에는 오래 굳은 검은 찌꺼기와 비교적 최근에 긁힌 은회색 가루가 함께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 통과 흔적 위에, 그보다 훨씬 나중 사람 손이 다시 이 장치를 손봤다는 뜻이었다. 방치된 유적이라기보다, 잊힌 척 버텨 온 시설 같았다.
그 말은 불쾌할 만큼 잘 맞아떨어졌다. 옛 구조는 사람 셋 안팎이 역할을 나눠 지나가게 설계돼 있었고, 나중 손은 그 위에 누가 어떤 위치에 서는지를 더 집요하게 읽는 눈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그 읽힘의 중심에 자꾸 내가 들어갔다.
세라가 낮게 물었다.
“너를 확인하려고?”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뒤에서 다시 금속음이 울렸다. 이번엔 훨씬 또렷했다. 무너진 문턱 바깥에 걸친 장대 하나가 끝내 자리를 잡은 소리였다.
리에트가 곧장 뒤를 돌아봤다.
“바깥도 곧 넘어온다.”
그 말에 셋 다 동시에 움직였다.
세라는 문턱 쪽을 다시 향해 방패를 들었고, 리에트는 오른편 턱 위로 돌아가 활을 겨눴다. 나는 수문장 잔해 앞 바닥을 빠르게 훑었다. 싸움은 끝났지만 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귀환로가 열렸다면 벌써 바깥 공기 흐름이 달라졌을 텐데, 문턱 쪽 찬바람은 그대로였다. 대신 수문장 뒤쪽 어둠에서는 다른 바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더 깊은 아래, 닫혀 있던 선이 열린 쪽에서만 나는 공기였다.
정면 뒤벽 아래에서 둔중한 진동이 한 번 울렸다.
이어서 수문장 받침 뒤 반원형 바닥이 천천히 갈라졌다. 깨진 돌 사이로 아래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선과, 그 옆 벽면을 따라 내려가는 얇은 문양선이 드러났다.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더 안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갈라진 틈 아래에서는 녹물 같은 비린내와 식은 바람이 함께 올라왔다.
세라가 욕설을 낮게 씹었다.
“귀환문은?”
나는 문턱 쪽을 잠깐 봤다. 무너진 발판은 여전히 사람 발 하나를 속일 만큼만 남아 있었고, 바깥에서 오는 빛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저쪽은 더는 귀환로가 아니었다. 누가 먼저 우리 목덜미를 붙잡느냐를 가르는 좁은 포획선일 뿐이었다.
“안 열려. 돌아가는 길은 저기서 끝났어.”
리에트가 짧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세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확실해?”
“응. 열린 건 저 아래야.”
정면 아래로 이어진 계단은 사람 하나가 겨우 어깨를 접고 내려갈 폭이었다. 왼편 벽에는 장비를 끌며 지나간 듯한 오래된 긁힘이 남아 있었고, 첫 세 계단 모서리만 유난히 둥글게 닳아 있었다. 위에서 떨어진 먼지가 아직도 얇게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 아래쪽에서는 물기 어린 찬 공기와 금속이 식은 냄새가 올라왔다. 누군가가 단순히 숨어들기 위해 만든 길이 아니라, 수문장을 통과한 뒤에만 갈 수 있는 하강선이었다.
계단 옆 벽면의 문양선도 그냥 장식은 아니었다. 손가락 한 마디 폭으로 파인 선 안에는 희미한 은회색 가루가 아직 남아 있었고, 중간중간 선이 끊긴 자리에만 작은 못구멍 같은 홈이 박혀 있었다. 등불이나 표지판을 걸었던 자리라기보다, 내려가는 사람 수와 장비 높이를 맞춰 보정하던 길잡이 선처럼 보였다. 아래로 빛을 비춰 보니 넷째 계단부터는 모서리 닳은 방향이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향해 있었다. 한 번 내려간 사람이 허둥지둥 되돌아 뛴 흔적보다, 안으로 밀려 들어가며 발을 짚은 흔적이 훨씬 많다는 뜻이었다.
리에트도 그 선을 본 모양이었다.
“돌아나온 자국보다 내려간 자국이 더 깊네.”
“응.” 나는 낮게 답했다. “여긴 통로가 아니라 선택지처럼 만든 게 아니야. 처음부터 아래로만 보내는 선이야. 살아서 나온 기록보다, 무엇을 데리고 더 깊이 들어갔는지를 확인하려고 만든 길 같아.”
뒤쪽 문턱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불빛 보인다!”
세라가 방패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선택해.”
이번에도 그 말은 내 계산을 기다리는 말이었다.
나는 계단과 문턱 사이의 거리, 세라와 리에트가 버틸 수 있는 시간, 바깥 사람들이 이 첫 대기 지점의 구조를 읽기 전에 필요한 호흡을 한 번에 재보았다. 남은 선택지는 보기보다 적었다. 여기서 버티면 뒤에서 붙잡히고, 문턱을 억지로 건너면 발판과 추적 동선 사이에서 걸린다. 내려가면 더 깊은 시험이 기다린다. 하지만 적어도 그쪽은 아직 누구 손에도 먼저 닿지 않았다.
“아래로 간다.”
세라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앞.”
“아니.” 내가 잘라 말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계단 첫 세 칸 본다. 바닥선 또 읽을 수 있어.”
리에트가 씁쓸하게 웃었다.
“점점 역할이 선명해지네.”
세라는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방패를 들어 문턱 쪽을 막은 채 낮게 말했다.
“짧게 끝내. 뒤는 오래 못 잡아.”
나는 수문장 잔해를 한 번, 갈라진 금속판 속 문양을 한 번 더 본 뒤 계단 앞에 섰다. 내 뒤에는 세라의 방패가, 더 뒤에는 리에트의 활이 있었다. 우정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구조 안에서 셋이 각자 맡은 자리가 분명해졌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발을 첫 계단에 올리자 아주 미세한 진동이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엔 공격이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아래 어둠 속 어딘가에서 더 큰 문 하나가 천천히 맞물려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남으려면 더 내려가야 한다. 이제다.
되돌아가는 길은 이미 길의 얼굴을 잃었다. 포획선만 남았다.
그 사실을 유적은 숨기지 않았다.
뒤에서는 바깥 사람들이 끝내 무너진 문턱에 발을 걸치기 시작했고, 앞에서는 방금 열린 하강선이 우리 셋의 그림자를 차갑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아래를 향해 말했다.
“간다. 내 발 보면서 따라와.”
✦ 작가의 말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