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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임시 동맹

돌판 안쪽 첫 공간은 방이라고 부르기엔 좁고, 틈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정확했다.

우리 뒤에는 반쯤 열린 문턱과 무너진 발판이 있었다. 문턱 바깥 넓은 길 쪽에서는 횃불 불빛이 먼지 사이로 굵어졌다 얇아졌고, 깨진 판석 아래 검은 빈틈은 발목 하나를 삼키고도 남을 깊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정면은 다시 한 단 낮아져 어둠으로 꺼졌으며, 왼쪽 벽에는 방패 모서리가 반복해서 긁은 흠집이 허리 높이에 줄지어 있었다. 오른쪽은 사람 하나가 몸을 걸칠 만한 얕은 턱이 있었고, 그 위쪽 벽에는 작은 화살구멍들이 별자리처럼 박혀 있었다.

세라는 왼쪽 벽 가까이 붙어 방패를 낮게 세웠다. 몸은 정면을 향했지만 오른쪽 어깨만 살짝 뒤로 열어 나와 리에트가 빠질 폭을 남겼다. 리에트는 오른쪽 턱 위에 한쪽 무릎을 걸고, 활끝을 문턱 바깥과 천장 홈 사이에서 천천히 옮겼다. 나는 둘 사이 반 걸음 뒤, 중앙 판석 앞에 섰다. 발밑의 바닥선은 곧고 매끈했지만 가운데만 이상하게 닳아 있었다. 누가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사람을 세워 놓고 같은 자세를 되풀이시킨 흔적처럼 보였다.

바깥에서 휘파람이 짧게 두 번 울렸다.

그 뒤에 금속 장대가 판석을 긁는 소리가 이어졌다. 누군가 무너진 길 끝을 건너오려고 했다. 정규 구조대라면 먼저 이름을 부르고 안전한 발판을 찾았을 것이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달랐다. 장대 끝이 사람을 건져 내려는 각이 아니라 문턱 안쪽을 더듬는 각으로 움직였다.

세라가 낮게 말했다.

“저쪽은 우리를 꺼내려는 게 아니야.”

리에트가 대답 대신 활시위를 더 당겼다.

나는 뒤로 물러날 폭을 다시 쟀다. 한 명씩 몸을 비틀면 나갈 수는 있다. 세라가 먼저 나가면 방패가 걸리고, 리에트가 먼저 나가면 사선이 끊긴다. 내가 먼저 나가면 바닥이 다시 울릴 가능성이 컸다. 밖은 넓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손이 많다. 안은 좁지만 아직 우리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버텨.”

내 말에 세라가 눈만 움직였다.

“얼마나.”

“바깥에서 첫 사람이 문턱 밟기 전까지. 그 전에 이 공간 규칙을 잡아야 해.”

“규칙 틀리면?”

“셋 다 떨어져.”

짧게 말하자 세라는 더 묻지 않았다. 방패 하단을 왼쪽 흠집 아래로 밀어 넣고 발끝을 비스듬히 고정했다. 리에트도 오른쪽 턱에서 뒤꿈치를 낮추며 몸을 안정시켰다. 서로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서로를 쓰지 않으면 각자 죽는다는 계산이 세 사람 손을 같은 박자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발밑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중앙 판석이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깊게 꺼진 게 아니라, 무게를 확인하듯 한 손가락 마디만큼 눌렸다가 멈췄다. 동시에 오른쪽 위 화살구멍 셋에서 먼지가 흘렀다.

“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리에트의 화살이 첫 구멍을 스쳤다. 쇠못만 한 화살촉 둘이 어둠에서 튀어나와 문턱 중앙을 갈랐다. 하나는 내가 방금 지나온 빈자리만 긁었고, 다른 하나는 세라 방패 바깥 모서리에 부딪혀 튕겼다.

세라가 방패를 더 낮췄다.

“죽이는 각이 아닌데?”

“후퇴하는 허리를 자르는 각이야.”

나는 화살이 지나간 높이를 눈으로 따라갔다. 목을 노린 게 아니었다. 뒤로 몸을 빼는 순간 팔꿈치와 허리를 굳히게 만드는 높이였다. 놀라서 물러나면 오른쪽 홈을 밟고, 홈을 밟으면 몸이 안쪽 낮은 단으로 미끄러진다.

“뒤로 빼지 마. 앞으로도 아직 아니야. 왼쪽 반 보.”

세라가 바로 움직였다. 방패가 벽 흠집과 거의 같은 각도로 눕자, 오른쪽 턱의 사선이 좁아졌다. 리에트는 그 틈을 보고 활을 낮췄다.

“오른쪽 두 번째 구멍, 살아 있어.”

“쏴.”

리에트의 화살이 날아갔다. 화살촉이 구멍 안 금속 턱을 때리자, 안에서 딱딱한 장치음이 엇갈렸다. 곧 뒤늦게 튀어나온 작은 침들이 힘을 잃고 아래로 흩어졌다.

그 순간 왼쪽 바닥이 열렸다.

방패를 벽에 붙이지 않았으면 세라 왼발이 빠질 자리였다. 검은 틈이 발끝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흙과 깨진 돌가루가 모래처럼 빨려 들어갔다. 세라는 방패 윗부분을 축으로 몸을 틀어 발을 뺐다. 나는 중앙 판석선에서 오른발을 떼지 않은 채 세라 어깨와 리에트 활끝 사이 거리를 다시 계산했다.

“세라, 발 고정. 리에트, 위 말고 정면 낮은 홈.”

리에트가 내 말을 듣자마자 활끝을 내렸다. 정면 한 단 아래 어둠 속에서 검은 쇠줄 하나가 꿈틀거렸다. 세라가 보는 방향에서는 방패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각이었다.

“거기서 뭐가 올라와.”

“열어.”

세라가 고개를 돌렸다.

“뭘.”

“방패 왼쪽. 손바닥만.”

세라가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열었다. 방패와 벽 사이에 손바닥만 한 어둠이 생기자, 정면 아래에서 갈고리처럼 벌어진 쇠끝이 그 틈으로 솟구쳤다. 쇠끝은 사람을 찌르기보다 방패를 밀어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모양이었다.

“지금.”

리에트 화살이 관절 같은 부분을 맞혔다. 쇠끝이 방향을 잃고 벽을 긁으며 옆으로 밀렸다. 세라가 즉시 방패를 닫아 남은 충격을 받아 냈다. 금속과 방패가 맞물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세게 때렸다.

세라 숨이 거칠어졌다.

“좋아. 저건 한 번 잡았다.”

리에트가 말했다.

“하지만 순서는 계속 돌아.”

맞았다. 위 화살, 왼쪽 바닥, 정면 밀침. 그리고 우리가 자세를 고치려는 순간 천장 쪽 낙하석이 떨어질 것이다. 이 공간은 무작정 죽이는 방이 아니었다. 사람을 놀라게 하고, 발을 빼앗고, 어깨를 밀고, 결국 정해진 자리로 다시 몰아넣는다.

나는 성철 부적을 쥔 손을 펴지 않았다. 주머니 안에서 약하게 떨렸지만, 지금 반응을 알려 주는 건 부적보다 바닥이었다. 세라 방패가 닿는 왼쪽 흠집, 리에트 무릎이 걸린 오른쪽 턱, 내 발 아래 중앙선. 셋이 동시에 맞물릴 때마다 장치음의 박자가 달라졌다.

그 사실이 더 기분 나빴다.

내 힘이 갑자기 강해진 게 아니었다. 내가 둘을 지휘하는 영웅이 된 것도 아니었다. 이 유적은 방패 든 사람, 활 든 사람, 중앙에서 읽는 사람을 이미 상정한 것처럼 움직였다. 나는 오래 비어 있던 세 번째 칸에 발을 올렸고, 구조는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바깥에서 누군가 낮게 소리쳤다.

“문턱 안쪽에 셋!”

세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봤나?”

“불빛으로 그림자만 잡았을 거야.” 리에트가 말했다. “그래도 빨라. 장대 두 개가 더 붙는다.”

바깥 장대 끝이 깨진 발판 위를 긁었다. 나무가 돌을 타고 밀리는 둔탁한 소리, 사슬이 흔들리는 얇은 소리, 신발이 무너진 흙을 밟아 미끄러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다가왔다. 그들은 성급하게 뛰어들지 않았다. 우리가 안쪽 규칙을 읽는 동안 자기들도 바깥 길을 재고 있었다. 구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고 거리를 맞추는 사람들이었다.

세라는 방패를 정면에 둔 채 말했다.

“여기 오래 못 버텨.”

“알아.”

나는 정면 낮은 단을 비췄다. 단 아래에는 사람 둘이 몸을 낮춰 숨을 만한 움푹한 홈이 왼편에 있었고, 그 앞에는 허리 높이 돌기둥이 솟아 있었다. 돌기둥 발치에는 반달 모양 마모가 남았다. 누군가 무릎을 굽힌 채 그 돌을 끼고 여러 번 버틴 흔적이었다. 오른쪽 벽 아래에는 화살이나 긴 막대 끝이 부딪힌 자국이 이어졌다. 중앙에는 발끝 마모가 또렷했다.

“아래에 두 번째 자리 있어.”

리에트가 바로 물었다.

“숨을 자리?”

“숨는 자리라기보다 자세 고치는 자리. 왼쪽 방패, 오른쪽 사수, 가운데 읽는 사람. 여기랑 같은 배치가 아래에도 있어.”

세라가 방패 너머로 짧게 숨을 뱉었다.

“사람을 훈련시키는 방 같네.”

“아니.”

나는 바닥선과 벽 흠집을 번갈아 봤다.

“기다리는 방이야. 누가 어느 자리에 서는지 확인하고, 맞으면 다음으로 넘기는 방.”

말하고 나니 목 안쪽이 서늘해졌다. 확인. 넘김. 이름보다 위치를 먼저 읽는 방식. 앞선 방에서 본 기록 받침과 열세 번째 빛, 지워진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 유적은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어디에 서는지, 어떤 반응을 내는지, 누구와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지만 묻는다.

세라가 한 박자 늦게 말했다.

“그럼 네가 가운데 서는 이유도 우연이 아니겠네.”

그 말은 날 찔렀지만, 세라는 비난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방패 뒤에서 정면을 보느라 표정은 반쯤 가려졌지만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판단에 필요한 사실을 꺼낸 것뿐이었다.

“아마.”

나는 인정했다.

“그래서 더 먼저 읽어야 해. 저쪽이 나를 쓰기 전에.”

리에트가 짧게 코웃음 쳤다.

“그 말은 마음에 드네.”

“뭐가.”

“당하는 쪽으로만 말하지 않는 거.”

세라가 바로 끊었다.

“잡담 그만. 다음 움직임.”

좋았다. 화해는 아니었다. 걱정과 신뢰를 구분할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세라가 내 판단을 요구했고, 리에트가 그 판단에 맞춰 사선을 옮겼다. 둘 다 내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세 번이나 그 말에 맞춰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손바닥을 펴 중앙 판석 위에 아주 짧게 올렸다.

차가운 돌이 손끝에 달라붙었다. 반응은 발밑에서 먼저 왔다. 얕은 떨림이 중앙선에서 시작해 정면 낮은 단으로 흘렀고, 곧 오른쪽 벽 중간의 작은 홈에서 딸깍 소리가 따라왔다.

“오른쪽 중간.”

리에트가 바로 쐈다. 화살은 작은 홈 바로 아래를 때렸다. 숨겨진 금속 침들이 튀어나오다가 방향을 잃고 벽에 박혔다.

“세라, 방패 아래.”

세라는 묻지 않고 방패 하단을 내렸다. 정면에서 튀어 오른 낮은 밀침대가 방패 아래쪽을 세게 밀었다. 세라 무릎이 잠깐 흔들렸지만, 발끝은 왼쪽 흠집 아래 그대로 박혀 있었다.

“반 보 전진.”

“지금?”

“지금.”

세라가 방패를 몸에 붙인 채 딱 반 보 내려섰다. 그 순간 위쪽 화살구멍 넷이 동시에 열렸다.

“위 둘, 뒤 하나.”

리에트가 첫 화살로 왼쪽 위를 끊고, 바로 몸을 틀어 두 번째 화살을 뒤쪽 문턱 위로 날렸다. 마지막 화살촉 하나가 내 오른쪽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옷감이 찢겼지만 살은 깊게 베이지 않았다. 따끔한 통증이 뒤늦게 올라왔다.

세라가 곧바로 물었다.

“맞았어?”

“스쳤어. 계속.”

세라는 더 묻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내 상처가 움직임을 늦추는지 먼저 확인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계속 명령을 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 냉정했지만, 그 냉정함 덕분에 우리는 버텼다.

바깥에서 장대 하나가 문턱 틈 안쪽으로 들어왔다.

긴 쇠갈고리가 깨진 판석을 훑다가 세라 방패 뒤쪽을 향해 미끄러졌다. 정면 함정과 바깥 손이 동시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리에트는 위를 보고 있었고, 세라 방패는 정면 아래 밀침대를 막느라 낮게 내려가 있었다.

“리에트, 뒤!”

리에트가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화살을 새로 걸기엔 반 박자 늦었다. 나는 중앙선에서 오른발을 들어 장대 끝을 밟았다. 발바닥 아래로 쇠가 밀리며 미끄러졌고, 그 충격에 중앙 판석이 다시 눌렸다.

천장이 울었다.

“숙여!”

세라가 방패를 위로 세우며 몸을 접었다. 리에트도 오른쪽 턱 아래로 몸을 내렸다. 천장에서 작은 낙하석 셋이 엇갈려 떨어졌다. 하나는 장대 중간을 때렸다. 바깥에서 욕설이 터졌고, 쇠갈고리는 힘을 잃고 문턱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두 개는 방패 위와 돌기둥 옆을 때려 돌가루를 뿌렸다.

먼지가 눈앞을 흐렸다. 나는 기침을 삼키고도 중앙선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아래로.”

세라가 바로 알아들었다.

“지금 내려가?”

“바깥 장대가 끊겼어. 다시 걸기 전까지 짧아. 아래 왼쪽 홈 잡아.”

리에트가 먼지 사이로 바깥을 보았다.

“셋이 더 붙는다.”

“그러니까 지금.”

세라가 먼저 낮은 단 아래로 몸을 밀었다. 방패를 앞으로 세우지 않고 왼쪽 돌기둥 옆으로 비스듬히 눕혀 사선을 끊었다. 나는 세라 어깨 뒤를 따라 내려가며 중앙 판석 끝에 발을 걸었다. 리에트는 오른쪽 턱에서 마지막까지 바깥을 겨누다가, 활을 가슴 가까이 당긴 채 옆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낮은 단 아래 공기는 더 찼다.

왼쪽 움푹한 홈은 사람 둘이 어깨를 접고 들어갈 폭밖에 되지 않았다. 돌기둥은 허리 높이였고, 앞면에는 방패가 닿아 닳은 흔적이 반달처럼 패여 있었다. 오른쪽 벽 아래 얕은 턱은 리에트가 무릎을 걸고 쏘기 좋은 높이였다. 중앙 바닥에는 오래된 발끝 자국이 모여 있었다. 위 첫 공간과 같은 배치였다. 다만 더 좁고, 더 노골적이었다.

“여기서 다시 자리.”

내가 말했다.

“세라는 돌기둥 왼쪽. 방패를 기둥에 기대. 리에트는 오른쪽 턱에 무릎 걸어. 위 말고 정면 아래도 봐. 나는 중앙선.”

세라가 방패를 고정하며 낮게 말했다.

“명령이 짧아졌네.”

“길게 말하면 죽으니까.”

리에트가 활끝을 정면 어둠으로 옮겼다.

“쓸모는 있어.”

“칭찬처럼 들리진 않는다.”

“칭찬 아니야.”

그 말에 이상하게 숨이 조금 트였다. 여전히 서로 마음에 들지 않고, 여전히 각자 다른 계산을 한다. 하지만 이 좁은 자리에서만큼은 말의 껍데기가 벗겨졌다. 세라는 막고, 리에트는 끊고, 나는 둘 사이 움직임을 잇는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보다 누가 어떤 순간에 어디를 보는지가 더 중요했다.

정면 어둠에서 무거운 축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오래 굳은 쇠와 돌이 서로를 밀어내며 깨어나는 소리였다. 횃불을 들어 올리자 어둠 속에서 둥근 철면의 가장자리가 비쳤다. 그 뒤로 세로 축 하나가 서 있었고, 양옆에 접혀 있던 팔 같은 구조물이 천천히 펼쳐졌다. 살아 있는 괴물보다는 오래된 수문 장치처럼 보였다. 하지만 앞면 중앙에는 위 방에서 본 빛 배열과 닮은 문양이 남아 있었다. 열둘이 반원을 이루고, 바깥으로 밀린 하나가 끝에 붙은 모양이었다.

세라가 방패를 더 높였다.

“저게 중층 수문장인가.”

리에트가 숨을 죽였다.

“수문장이라기보다 시험 장치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장치의 움직임을 봤다. 원판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먼저 세라 방패 높이를 보듯 왼쪽 팔을 멈추고, 오른쪽 축을 리에트 무릎 턱 아래까지 돌렸다. 마지막으로 중앙 바닥선과 내 발목 앞에서 아주 오래 멈췄다.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저것도 보고 있었다.

“날 읽는다.”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세라가 곧장 물었다.

“부적?”

“아니. 위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선 자리. 방패, 활, 중앙선. 저건 순서를 본다.”

수문장의 원판 가장자리에 희미한 빛이 돌았다. 밝은 빛이 아니었다. 먼지 아래 묻힌 은빛이 아주 얕게 깨어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작은 빛만으로도 장치가 어느 방향을 겨누는지 드러났다. 왼쪽 팔은 세라 방패를 밀 각도로 내려오고, 오른쪽 축은 리에트가 쏘는 손목 높이를 가늠했다. 중앙의 둥근 면은 내 발밑 판석선과 맞물려 있었다.

바깥에서 다시 금속 장대가 걸렸다.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깨진 문턱 바깥에서 누군가 판자를 얹고, 그 위로 발을 올리는 소리가 났다. 판자는 곧바로 삐걱거리며 휘었고, 뒤에서 누군가 “낮춰!” 하고 소리쳤다. 추적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를 안쪽으로 몰아넣는 구조와, 바깥에서 잡으려는 손이 같은 시간에 다가오고 있었다.

세라가 짧게 말했다.

“결정해.”

아까와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무게가 달랐다. 방금 전까지 세라는 내가 길을 잘못 보면 팔을 낚아채 끌어내려 했다. 지금은 방패를 세운 채 내 판단을 기다렸다. 리에트도 활을 겨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둘 다 나를 믿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저 장치의 첫 박자와 바깥 장대를 동시에 못 막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정면 수문장과 뒤 문턱 소리를 나눠 들었다.

수문장은 아직 첫 공격을 하지 않았다. 우리 위치를 맞추는 중이다. 바깥 손은 문턱을 넘기 직전이다. 후퇴하면 장대에 걸리고, 돌격하면 수문장 첫 동작을 모른 채 맞는다. 남은 길은 한 가지였다. 이 첫 대기 자리를 우리가 먼저 쓰는 것.

“전진하지 마. 여기서 저쪽 첫 동작을 빼낸다.”

세라가 방패를 더 단단히 붙였다.

“받을까?”

“완전히 받지 마. 왼쪽 팔을 돌기둥으로 흘려. 맞받으면 바닥이 빠진다.”

리에트가 물었다.

“나는?”

“오른쪽 축이 네 손목을 볼 거야. 일부러 당기는 척해. 진짜 화살은 내가 둘 셀 때 아래 관절.”

“너는.”

“중앙선 밟고 저걸 깨운다.”

세라는 짧게 욕을 삼켰다.

“또 네 몸을 미끼로 쓰네.”

“미끼가 아니라 눈금이야.”

그 말이 더 싫었다. 하지만 정확했다. 이 구조는 내 몸을 표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위치값으로 삼았다. 내가 어디에 서는지에 따라 다음 박자가 갈린다. 그러면 그 박자를 내가 먼저 빼앗아야 했다.

나는 중앙선 위에 오른발을 더 깊게 올렸다.

바닥이 대답했다. 낮은 떨림이 발바닥에서 무릎까지 올라왔다. 수문장의 원판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하나.”

왼쪽 팔이 천천히 들렸다.

“둘.”

리에트가 활을 크게 당기는 척했다. 오른쪽 축이 리에트 손목을 따라갔다. 동시에 세라가 방패 왼쪽을 돌기둥 모서리에 붙였다.

“지금.”

수문장의 왼쪽 팔이 세라 방패를 향해 내려왔다. 세라는 정면으로 받지 않고 방패를 돌기둥 옆으로 비틀었다. 충격이 기둥을 타고 바닥으로 빠졌다. 중앙 판석은 내려앉지 않았다. 리에트의 화살은 오른쪽 축 아래 관절에 꽂혔다. 금속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수문장 오른쪽 팔이 한 박자 멈췄다.

그 틈에 나는 뒤를 향해 소리쳤다.

“문턱!”

리에트는 이미 두 번째 화살을 걸고 있었다. 바깥에서 장대를 밀던 손이 문턱 안으로 들어오자, 화살은 손목이 아니라 장대 끝 고리에 박혔다. 쇠고리가 틀어지며 판자가 아래로 미끄러졌다. 바깥에서 사람이 욕설과 함께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세라가 숨을 거칠게 뱉었다.

“둘 다 막았다.”

“아직 첫 동작이야.”

나는 수문장을 노려봤다. 원판 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장치는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세 자리에 들어맞았다는 걸 확인한 듯 아주 느리게 다음 자세로 넘어갔다. 왼쪽 팔은 세라 방패 높이를 기억했고, 오른쪽 축은 리에트 사선을 피해 아래로 접혔다. 중앙 면은 여전히 내 발밑을 보고 있었다.

리에트가 이를 악물었다.

“학습한다.”

“응.”

세라가 말했다.

“그럼 우리도 바꿔야 해.”

그 말에 나는 세라를 봤다. 이제 세라는 단순히 내 지시를 받아 막는 게 아니었다. 방금 장치가 우리를 읽는다는 사실을 자기 방어 판단에 바로 반영했다. 리에트도 마찬가지였다. 수문장 오른쪽 축이 내려간 뒤 생긴 사각을 이미 훑고 있었다.

순간 아주 짧게, 이상한 감각이 왔다.

둘의 움직임이 따로 보이지 않았다. 세라가 방패를 돌기둥에 기대는 박자, 리에트가 활시위를 느슨하게 풀었다가 다시 거는 박자, 내 발밑 판석의 떨림이 하나의 얇은 줄처럼 이어졌다. 내가 새로운 힘으로 둘을 끌어올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둘 사이 빈 박자가 보였다. 거기에 말을 끼워 넣으면 다음 움직임이 한 호흡 빨라졌다.

“세라, 다음엔 반 박자 늦게 받아. 리에트, 먼저 쏘지 말고 세라 방패 소리 듣고.”

리에트가 눈썹을 찌푸렸다.

“방패 소리?”

“쇠가 아니라 돌기둥 울림. 그때 오른쪽 축이 열려.”

세라가 바로 방패 각도를 바꿨다.

“해 본다.”

해 본다. 그 말 하나가 이 좁은 공간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 세라는 내 판단을 의심하면서도 그냥 따라만 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자기 손으로 시험하려 했다. 리에트도 대꾸 없이 활끝을 낮췄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구조를 상대하며, 각자 잘하는 것을 서로에게 맡겼다.

바깥 불빛이 다시 가까워졌다. 누군가 무너진 발판 위에 새 장대를 걸었고, 뒤쪽에서 낮게 명령이 오갔다. 그들은 우리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안쪽 반응이 끝나기 전에”라는 말이 먼지 사이로 희미하게 흘러왔다.

세라 눈빛이 바뀌었다.

“저쪽도 반응을 알고 있어.”

“완전히는 아닐 거야.”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읽어야 해.”

정면 수문장이 두 번째 동작을 준비했다. 왼쪽 팔은 이번엔 바로 내려오지 않았다. 방패 높이보다 조금 위, 세라가 늦게 받으면 어깨가 밀릴 각도에서 멈췄다. 오른쪽 축은 접힌 채 바닥 가까이 숨었다. 아래에서 튀어 올라 리에트 무릎을 노릴 준비였다.

“세라, 늦게. 리에트, 아래.”

둘은 동시에 움직였다. 세라는 의도적으로 방패를 반 박자 늦게 올렸다. 수문장 왼쪽 팔이 빈 공기를 먼저 밀고 지나가다 돌기둥에 비스듬히 걸렸다. 그 울림이 좁은 방을 채우자 리에트가 아래를 쐈다. 화살은 바닥 가까이 접힌 오른쪽 축의 얇은 틈을 꿰뚫었다.

쇠가 부러졌다.

수문장 오른팔이 완전히 멈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속도가 죽었다. 그사이 나는 중앙선에서 한 발을 빼며 뒤 문턱을 봤다. 바깥 장대 둘이 다시 걸렸다. 이번엔 판자까지 얹혔다. 한 사람이 몸을 낮춰 넘어오려는 그림자가 먼지 위에 비쳤다.

“뒤쪽 하나 넘어온다.”

리에트가 몸을 틀었다. 하지만 수문장 오른쪽 축을 막느라 자세가 낮아져 있었다. 세라는 왼쪽 팔 충격을 흘리느라 바로 뒤돌 수 없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움직였다.

중앙선에서 발을 완전히 빼 문턱 쪽 닳은 판석을 밟았다. 유적이 내 위치 변화를 읽고 짧게 울었다. 수문장의 원판 빛이 나를 따라오려는 순간, 나는 일부러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턱 아래로 몸을 낮췄다. 장치의 시선이 한 박자 흔들렸다.

“리에트, 지금 뒤.”

리에트 화살이 문턱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 사람을 맞히지 않았다. 판자 끝을 묶은 밧줄을 끊었다. 판자가 아래로 기울고, 넘어오던 그림자가 뒤로 물러났다. 바깥에서 욕설과 함께 먼지가 다시 쏟아졌다.

세라가 수문장 팔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돌아와!”

나는 다시 중앙선으로 뛰었다. 발바닥이 선을 밟자 수문장 원판이 내 쪽에 고정됐다. 너무 가까웠다. 둥근 철면 아래 작은 틈에서 짧은 쇠침이 튀어나왔다. 세라 방패가 늦었다.

리에트가 내 옷깃을 뒤에서 잡아당겼다.

쇠침은 목이 아니라 어깨 앞을 스쳤다. 옷이 찢어지고 피부가 따갑게 갈라졌다. 피가 바로 흘렀다.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통증이 내 정신을 되돌렸다.

“멋대로 뛰지 마.”

리에트 목소리가 낮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세라가 방패를 다시 세우며 딱 잘라 말했다.

“사과는 나중. 위치.”

그 말이 좋았다. 지금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었다. 누구 잘못인지 따지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튀어나가면 리에트가 잡고, 세라가 빈 앞을 막는다. 세라가 밀리면 내가 반 박자를 읽고, 리에트가 관절을 끊는다. 리에트가 뒤를 보느라 늦으면 세라 방패가 각을 만든다. 책임을 미루는 관계가 아니라, 빈틈을 메우는 관계가 처음으로 생기고 있었다.

나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왼손으로 눌렀다. 오른손은 바닥선을 가리켰다.

“셋이 같이 바꾼다. 세라는 오른쪽 반 보. 리에트는 왼쪽 턱으로 내려와. 내가 중앙을 비우면 수문장 시선이 늦게 따라온다.”

세라가 놀란 눈으로 봤다.

“중앙을 비운다고?”

“계속 가운데에 있으면 저게 나만 익힌다. 한 번 비워야 해.”

리에트가 빠르게 물었다.

“그러면 바닥이 어떻게 움직여.”

“첫 박자는 멈추고, 두 번째 박자에 가까운 금속을 잡을 거야. 세라 방패 모서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해.”

세라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건 위험을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내 위치 대신 세라 방패가 장치의 눈금을 끌어야 한다. 충격이 잘못 들어가면 방패가 빠지고, 왼쪽 바닥이 다시 열린다.

“좋아.”

세라가 말했다.

“대신 네가 돌아오는 길은 내가 정한다.”

나는 바로 끄덕였다.

“좋아.”

리에트가 활을 고쳐 쥐었다.

“나는 네가 비운 중앙선 위를 끊는다. 바깥 장대 오면 두 번째 화살.”

이제 누구도 완전히 기다리지 않았다. 각자 자기 몫을 내고 있었다.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형태가 바뀌었다. 상대를 못 믿으니 더 또렷하게 자기 역할을 말했고, 그 말이 겹치며 하나의 작전이 됐다.

수문장이 세 번째로 움직였다.

“지금.”

나는 중앙선에서 빠졌다. 세라가 오른쪽 반 보를 밟으며 방패 모서리를 판석 위에 낮게 꽂았다. 바닥이 잠깐 멈췄다. 수문장 원판이 내 빈자리를 보다가, 세라 방패 모서리로 시선을 틀었다. 그 한 박자가 열렸다.

리에트 화살이 중앙선 위 작은 홈을 꿰뚫었다.

딱, 하고 짧은 소리가 났다. 수문장 몸통 안쪽에서 돌아가던 축 하나가 어긋났다. 왼팔이 내려오다 멈췄고, 오른쪽 축은 리에트가 예상한 것보다 더 깊게 접혔다.

“뒤!”

내가 외쳤다.

리에트는 두 번째 화살을 바로 문턱 쪽으로 보냈다. 바깥에서 들어오던 장대 끝이 깨진 판석에 박히기 직전, 화살이 밧줄 매듭을 끊어 버렸다. 이번엔 장대만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 뒤에 매달려 있던 작은 쇠갈고리 여러 개가 한꺼번에 아래로 쏟아졌다. 바깥 추적자들이 한 박자 물러났다.

세라가 방패를 빼며 말했다.

“지금 밀어?”

“아니. 잡아.”

“왜?”

“저게 멈춘 게 아니야. 길을 열고 있어.”

수문장 몸통 아래 중앙 받침이 옆으로 천천히 밀렸다. 그 뒤에서 더 좁은 하강 계단이 드러났다. 사람이 정면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아니라, 몸을 옆으로 틀어 한 명씩만 들어가게 만든 낮은 통로였다. 계단 왼쪽 벽에는 방패 모서리 마모가 없었다. 오른쪽에는 화살 자국도 없었다. 대신 중앙 벽면에 손바닥 자국이 줄지어 있었다.

세라가 표정을 굳혔다.

“저 아래는 혼자 내려가게 만들었네.”

리에트가 바로 말했다.

“그럼 안 내려간다.”

“안 내려가면 바깥이 온다.”

나는 문턱 쪽 불빛을 봤다. 다시 장대가 걸리고 있었다. 이번엔 더 넓은 판자를 가져온 듯 소리가 묵직했다.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버티면 수문장이 계속 배운다.”

세라가 정면을 노려봤다.

“결국 안쪽으로 보내려고 한 거군.”

“응.”

나는 하강 계단 첫 턱을 비췄다. 손자국은 모두 아래쪽을 향했다. 억지로 끌려간 자국이라기보다, 스스로 벽을 짚고 내려간 흔적이었다. 그게 더 싫었다. 누군가 이 구조를 알고도 내려갔다는 뜻이니까. 혹은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두었다는 뜻이니까.

뒤쪽에서 판자가 걸리는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바깥 목소리 하나가 똑똑히 들렸다.

“안쪽으로 몰렸다. 들어간다.”

리에트가 낮게 욕했다.

세라는 방패를 내리지 않았다.

“에이드리언.”

“알아.”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여기서 바깥 손과 수문장 사이에 끼여 소모되거나, 저 좁은 하강 계단을 우리가 먼저 장악하거나.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좁은 첫 대기 자리는 더 이상 우리의 공간이 아니었다. 수문장도, 바깥 추적자도 이 자리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세라와 리에트를 번갈아 봤다.

“하강 계단 입구까지만 내려간다. 혼자 내려가지 않아. 세라가 앞에서 방패를 옆으로 접고, 내가 가운데 손자국을 읽고, 리에트가 뒤에서 바깥과 위를 끊어. 한 명씩 내려가게 만든 통로면, 셋이 내려가는 순서를 우리가 바꾼다.”

세라가 물었다.

“어떻게.”

“세라가 한 계단, 나 반 계단, 리에트는 문턱. 내가 두 번째 손자국 확인하면 세라가 멈추고 리에트가 내려온다. 절대 줄처럼 길게 벌어지지 마.”

리에트가 말했다.

“내가 마지막이면 뒤에서 맞아.”

“그래서 첫 장대가 들어오면 네가 먼저 쏘고 바로 내려와. 세라가 방패로 계단 입구를 막고, 네가 발 디딜 자리는 내가 비운다.”

세라는 잠깐 나를 봤다.

“이건 네가 우리를 살리려고 하는 판단이야, 아니면 저 구조가 널 부르는 쪽이야.”

정확한 질문이었다. 나도 답을 몰랐다. 그래서 거짓말하지 않았다.

“둘 다일 수 있어.”

세라 눈이 흔들렸다.

나는 바로 덧붙였다.

“그래서 혼자 안 간다. 내가 끌려가는지, 우리가 들어가는지 계속 확인해 줘.”

그 말에 세라는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끌려가면 내가 잡아챈다.”

리에트가 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잡아채기 전에 쏠 거야. 네가 우리까지 끌고 가면 곤란하거든.”

“그 정도면 충분해.”

정면 수문장은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원판 빛은 여전히 우리를 훑었다. 다만 팔 같은 구조물은 계단 입구 양쪽으로 접혀 길을 비켜 주고 있었다. 초대처럼 보였지만, 나는 초대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이건 길을 열어 주는 행위가 아니라, 다음 시험 장소로 사람을 보내는 절차였다.

바깥 판자가 문턱에 걸렸다.

“지금.”

세라가 먼저 하강 계단 첫 턱을 밟았다. 방패를 세우지 않고 옆으로 접어 몸과 벽 사이에 끼웠다. 나는 세라 뒤 반 계단에 붙어 손자국이 닳은 벽을 보았다. 첫 손자국은 어른 손 크기였다. 둘째는 조금 작았다. 셋째는 손끝만 닳아 있었다. 사람마다 키와 보폭이 달랐지만 모두 같은 위치에서 벽을 짚었다.

“멈춰.”

세라가 멈췄다.

뒤쪽에서 리에트 화살이 날아갔다. 판자 위로 들어오던 첫 발 앞에 꽂혀 나무를 쪼갰다. 추적자가 반사적으로 물러났고, 리에트는 그 틈에 오른쪽 턱에서 몸을 떼 계단 쪽으로 미끄러졌다.

나는 중앙을 비웠다. 리에트가 내 옆을 스치며 내려오자, 수문장 원판 빛이 짧게 흔들렸다. 세라 방패가 계단 입구를 막고, 리에트가 뒤쪽 위 사선을 잡고, 나는 손자국과 발밑 떨림 사이를 봤다. 좁은 통로가 셋을 한 줄로 찢어 놓으려 했지만, 우리는 한 줄이 되기 직전마다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빌렸다.

그때 처음으로, 움직임이 끊기지 않았다.

세라가 발을 내리기 전에 내가 손자국 높이를 말했고, 리에트가 뒤를 쏘기 전에 세라가 방패 옆면을 열어 사선을 만들어 줬다. 내가 중앙선에서 빠질 때 리에트가 내 옷깃을 밀어 균형을 맞췄다. 누구도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말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도 셋의 몸은 한 덩어리처럼 좁은 계단을 통과했다.

바깥에서 판자가 다시 얹혔다.

수문장의 원판 빛이 등 뒤에서 낮게 번졌다.

우리는 아직 탈출하지 못했다. 더 깊이 내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과 한 가지가 달랐다. 밀려난 게 아니었다. 적어도 이 몇 걸음만큼은 우리가 순서를 정했다.

계단 아래 첫 모서리에 닿자, 세라가 몸을 틀어 방패를 다시 세웠다. 리에트는 바로 뒤에서 활을 겨눴고, 나는 벽 손자국 끝에 이어진 얇은 문양선을 봤다. 선은 더 아래로 이어졌다. 거기서 아주 희미한 바람이 올라왔다. 바깥 불빛도, 수문장 빛도 닿지 않는 방향이었다.

세라가 낮게 말했다.

“임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지금의 공조도, 내 판단을 따르는 일도, 서로의 목숨을 맡긴 일도 전부 임시였다. 이 계단을 벗어나면 다시 따질 게 많다. 감시 문서, 리에트의 숨긴 목적, 내 몸이 구조에 반응하는 이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면 충분해. 지금은.”

리에트가 뒤를 겨눈 채 말했다.

“충분하지 않으면 죽고.”

“그러니까 정확히 움직여.”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놀랄 만큼 차분했다. 겁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겁이 너무 많아서, 움직일 순서만 남긴 것이다.

위쪽 첫 대기 자리에서는 수문장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바깥 추적자들은 다시 판자를 고정하고 있었다. 양쪽 모두 우리 뒤를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좁은 하강 계단 안에서 세라의 방패, 리에트의 화살, 내 발밑을 읽는 판단은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향했다.

나는 아래 어둠을 향해 횃불을 낮췄다.

짧은 계단 끝, 검은 벽면에 또 다른 손자국들이 있었다. 이번엔 셋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손이었다. 크기도, 높이도, 누른 깊이도 달랐다. 오래전 이 길을 내려간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한 명을 보내기 위해 만든 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서로의 자리를 바꿔 가며 내려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이 작지만 분명한 틈을 만들었다.

이 구조가 우리를 정해진 칸에 세우려 한다면, 우리는 그 칸을 서로 바꿔 쓰면 된다. 방패 든 사람이 읽고, 활 든 사람이 문턱을 막고, 내가 중앙을 비우는 식으로. 정해진 역할을 그대로 따라가는 대신, 살아남기 위해 임시로 서로의 자리를 빌리는 식으로.

나는 세라와 리에트를 봤다.

“다음 구획도 이 방식으로 간다. 구조가 우리를 갈라 세우면, 우리는 자리를 바꾼다.”

세라가 방패를 고쳐 쥐었다.

“명령은 짧게.”

리에트가 활시위를 당기며 덧붙였다.

“틀리면 바로 끊는다.”

“알아.”

위쪽에서 수문장의 원판 빛이 마지막으로 번쩍였다. 그 빛이 계단 입구를 타고 내려오다 우리 발치에서 끊겼다. 바깥 판자가 문턱에 다시 걸리는 소리도 같은 순간 들렸다.

앞은 더 깊은 어둠이었다. 뒤는 닫히지 않았지만 더는 돌아갈 길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 않은 채, 그래도 같은 박자로 한 계단 더 내려갔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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