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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실패의 호출

뒤집힌 사당 바깥의 마른 뜰은 유리숲 한가운데에서 혼자 색이 빠져 있었다. 정면에는 뿌리와 유리수액 줄기가 문처럼 내려와 있고, 그 아래 어두운 거울면이 바닥을 거꾸로 비췄다. 왼쪽 비탈은 위령 수로로 내려갔고, 오른쪽 흰 나무 셋 뒤로는 사람 둘이 나란히 서기 어려운 우회길이 붙어 있었다. 뜰 뒤쪽 반원 바깥에는 엘프 원로와 경계병이, 그보다 더 멀리에는 왕국 사절단이 등불을 낮춘 채 같은 문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바로 앞에는 세라의 검집 끝이 흙을 눌렀다. 그녀는 사당 문턱을 정면으로 막되, 내 꾸러미와 미리엘의 젖은 소매가 바깥 시선에 한꺼번에 잡히지 않도록 어깨를 비스듬히 세웠다. 리에트는 오른쪽 흰 나무 쪽에 반쯤 돌아서서 활을 낮게 들었고, 브론은 가짜 꾸러미를 발뒤꿈치 뒤로 밀어 놓았다. 미리엘은 위령석 가루가 묻은 천끈을 소매 안으로 한 겹 더 감쌌다.

위험은 사당 안쪽에서만 오지 않았다. 왕국 사절은 장부를 펼친 손으로 문턱 쪽 빈칸을 재고 있었고, 엘프 강경파는 창대를 우회길 쪽으로 낮춰 우리 이동을 끊으려 했다. 원로들은 대답을 아꼈다. 멀리 선 자들이 오히려 가장 넓게 보고 있었다. 사당은 방금 우리 이름을 불렀고, 바깥 세력들은 그 이름이 남긴 흔적을 자기 손에 먼저 넣으려 했다.

환청은 이미 멎었다.

리에트, 세라, 에이드리언.

젖은 항아리 속에서 올라온 듯한 이름들이 귓속에 남아 있었다. 내 이름이 마지막으로 불렸다는 사실보다, 나는 발밑 흙을 먼저 봤다. 겁에 눌린 사람이 흩어진 자리라면 발자국이 뒤엉켰을 텐데, 문턱 앞 마른 흙에는 발자국 셋이 또렷했다. 한 사람은 문턱 바로 앞에서 멈췄고, 두 사람은 오른쪽 우회길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 뒤에는 짐 밑바닥이 끌리다 멎은 자국이 반 뼘 길게 남았다.

나는 무릎을 낮췄다. 손가락 끝으로 흙을 건드리자 마른 가루 아래 얇게 굳은 수액 막이 갈라졌다. 발자국 안쪽은 다른 곳보다 매끈했다. 잠깐 지나간 발이 아니라, 누군가 오래 서서 자기 무게와 짐 무게를 나눠 놓은 자리였다. 이름이 먼저가 아니었다. 자리가 먼저 정해졌고, 이름은 그 뒤에 붙었다.

“여기서 기다렸어.”

세라가 고개만 틀었다.

“안쪽에서?”

“문턱 밖에서. 한 명은 멈추고 둘은 우회했어. 짐 든 손도 따로 있었고.”

나는 문턱 양옆의 낮은 위패 홈을 가리켰다. 사람 허벅지보다 낮은 줄이었다. 위패를 세우기보다 손을 걸고 버티거나 상자를 잠깐 기대기에 알맞았다. 홈 아래 흙결은 반대로 누워 있었다. 오래전 이곳에 선 사람은 혼자 서지 않았다. 누구를 뒤로 보낼지, 무엇을 먼저 숨길지 정해 놓고 버틴 사람의 흔적이었다.

엘프 경계병 하나가 창대를 한 뼘 내밀었다.

“문턱 앞 흙을 더 건드리지 마라.”

왕국 사절도 곧바로 붙었다.

“방금 음성과 현장 흔적은 공식 관찰 기록으로 묶어야 합니다. 외부 증언자가 들은 이름까지—”

세라가 검집을 옮겼다. 말보다 먼저 흙 위에 선이 생겼다. 검집 끝은 사절의 시야를 끊었고, 동시에 엘프 창대가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도 막았다.

“기록은 나중에 해.”

벨로네의 이름을 앞세운 말이 아니었다. 검집과 어깨가 먼저 세운 대답이었다. 왕국이 더 밀면 엘프와 부딪치고, 엘프가 더 밀면 왕국 장부가 그 장면을 받아 적는다. 세라는 그 틈을 계산해 중앙 길목을 좁혔다. 그녀가 몸을 반 칸만 틀었는데도 바깥 두 손이 동시에 멎었다.

리에트는 그 충돌에 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오른쪽 흰 나무 앞에 서 있었다. 우회길 초입에서 가장 굵은 줄기였다. 흰 껍질은 뼈처럼 말라 있었고, 수액이 지나간 자리만 은빛으로 굳어 있었다. 그 사이에 세 갈래로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오래된 흠집은 거의 닳아 있었다. 그래도 가운데 획 하나는 유난히 깊었다. 그 아래에는 나중에 누른 듯한 짧은 선이 비스듬히 얹혔다. 먼저 긁힌 세 갈래와 아래 꺾인 획은 손버릇이 달랐다. 오래된 쪽은 결을 찢으며 들어갔고, 나중에 생긴 쪽은 껍질을 밀듯 눌렀다.

리에트 손끝이 활줄이 아니라 나무껍질 위에서 멈췄다. 흔들림은 아주 짧았지만 숨길 수 없었다. 숲길에서 눈길 하나 놓치지 않던 리에트의 손이 그 작은 흠집 앞에서 굳었다.

“이거.”

리에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원정대 표식이야.”

세라는 바로 묻지 않았다. 먼저 왕국 사절과 엘프 기록 담당의 시선이 리에트 손끝으로 몰리는지 확인했다. 그런 뒤에야 낮게 물었다.

“뜻은.”

리에트는 가운데 깊은 홈을 손톱으로 눌렀다.

“사람 수가 아니야. 지나가라는 뜻도 아니고.”

그녀는 숨을 한 번 삼켰다.

“살아 있지만 이름을 크게 부르지 말라는 표시야. 기억이 흔들리는 사람이 있거나, 뒤에서 듣는 귀가 붙었을 때 남겼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로웬 헤일이 남긴 설계통의 꺾인 모서리와 수첩 끝의 짧은 획이 머릿속에서 겹쳤다. 방향을 똑바로 적지 않고 한 번 꺾어 둔 우회 기호. 왕도 지하에서 본 벽의 사선 표식. 리에트 원정대의 오래된 표식 아래 붙은 꺾인 선은 로웬의 손버릇과 닮았다.

“아래쪽은 로웬 기호야.”

말이 나오자마자 미리엘이 나무 곁에 무릎을 낮췄다. 그녀는 표식을 바로 문지르지 않았다. 손수건 가장자리로 수액 말라붙은 부분을 가리고, 작은 뼈침 끝으로 홈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오래된 흠집의 가루와 나중에 눌린 획의 벗겨진 결을 따로 보려는 손놀림이었다.

“한 사람이 남긴 게 아니에요.”

미리엘이 말했다.

“위쪽은 오래 말라 벌어졌고, 아래쪽은 나중에 한 번 더 눌렸어요. 뒤에 온 사람이 먼저 있던 신호를 읽고 답을 단 겁니다. 크게 보이라고 단 답이 아니에요. 따라온 사람만 보라는 답이에요.”

브론이 허리를 굽혀 나무 밑동을 살폈다. 검은 뿌리 사이에 먼지가 덜 앉은 곳이 있었다. 누군가 무릎을 낮추고 손을 짚은 자리였다.

“답만 남기고 튄 건 아니군.”

“왜?”

브론은 뿌리와 줄기 사이를 가리켰다.

“몸을 기대고 오래 버틴 자국이다. 표식 하나 긁고 도망칠 자리면 이렇게 눌리지 않아.”

그 말이 리에트 얼굴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죽은 표식이면 접어 둘 수 있다. 끝난 실패라면 혼자 떠안고 걸을 길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 와서 답을 남겼고, 그 자리에서 오래 버텼다면 리에트가 떠난 뒤에도 그 실패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지금 리에트에게 필요한 건 고백이 아니라 다음 발을 디딜 자리였다.

우회길은 흰 나무 셋 사이로 굽어 들어갔다. 발목 아래에는 마른 낙엽이 얇게 깔렸고, 그 밑으로 검은 뿌리가 사선으로 엉켰다. 어깨를 세우면 줄기에 닿고, 짐을 든 채 지나가려면 허리를 틀어야 했다. 낮은 가지에는 오래된 천 올이 몇 가닥 걸렸고, 한 밑동에는 활집 모서리가 여러 번 스친 듯한 매끈한 자국이 남았다. 길은 좁았지만 한 번만 쓰인 길은 아니었다.

뒤에서 왕국 사절의 발이 움직였다. 세라가 검집을 한 번 더 눌렀다. 흙선이 길어졌다. 사절은 멈췄고, 엘프 경계병도 창끝을 더 넣지 못했다. 세라는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녀는 중앙 뜰을 막은 채, 내가 그녀 뒤에 몸을 숨기고 움직일 작은 틈을 냈다.

우회길 끝에는 허리 높이의 납작한 돌턱 둘과 뒤집힌 위패함 하나가 있었다. 위패함은 반쯤 흙에 묻혀 있었고, 옆면에는 밧줄이 팽팽히 당겨졌다가 끊긴 마찰선이 남았다. 바닥에는 화살깃을 일부러 눌러 꺾은 흔적도 있었다. 돌턱 하나는 앞 모서리만 닳았고, 다른 하나는 윗면이 매끈했다. 한쪽은 사람이 버틴 자리, 다른 한쪽은 무언가를 밀어 돌린 자리였다.

브론이 먼저 쪼그려 앉았다. 그는 돌턱 사이 폭을 손바닥으로 재고, 밧줄 자국이 끝에서 어떻게 비틀렸는지 봤다. 손끝이 마찰선 위를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다른 결로 일어났다.

“여기서 막았네.”

브론이 돌턱 뒤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한 명이 뒤를 붙잡고, 둘이 한 사람을 아래로 내렸다.”

“상자?”

세라가 뜰 쪽을 막은 채 물었다. 목소리만 가까웠다.

“상자면 줄이 더 곧게 남아.”

브론은 끊긴 자국 한가운데를 손끝으로 눌렀다.

“이건 중간에 몸이 돌아간 흔적이다. 버티는 놈 하나, 내려가는 사람 하나, 옆에서 받쳐 준 손 하나.”

리에트가 돌턱 뒤 얕은 칼집 자국을 봤다. 입술이 아주 조금 굳었다.

“우리 대장.”

“확실해?”

내가 묻자 리에트는 칼집 자국 옆의 짧은 세로 흠을 짚었다.

“이렇게 남겼어. 후퇴하라는 말이 아니야. 자기가 남아 막겠다는 표시였어.”

말을 끝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날… 그 사람이 도망쳤다고 생각했어.”

아무도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할 말이 아니었다. 돌턱, 밧줄, 화살깃, 칼집 자국이 이미 답을 바꾸고 있었다. 누가 버렸느냐보다 누가 끝까지 남아 무엇을 먼저 내보냈느냐가 더 또렷했다.

미리엘은 위패함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함을 바로 열지 않고, 바닥에 얇은 천을 먼저 깔았다. 브론이 작은 쐐기로 흙을 받쳐 주자 함이 조금 들렸다. 안쪽에는 이름판 대신 가느다란 홈이 여러 줄 나 있었다. 세로 칸처럼 보였지만 폭이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홈은 두 손가락보다 좁았고, 어떤 홈은 끝만 깊었다. 몇몇 홈은 입구가 무너져 있었다. 이름판을 가지런히 꽂아 두던 자리라기보다, 넣었다 빼고 다시 바꾼 순서표처럼 보였다.

나는 홈 둘을 번갈아 봤다. 깊은 홈은 마지막까지 남겨 둔 칸 같았고, 얕은 홈은 급히 지운 자리였다. 이름을 묻은 게 아니라 순서를 감춘 판. 누가 먼저 나가고, 누가 마지막에 남고, 누가 바깥 사람 눈에 먼저 보일지를 한 번은 여기 적었을 것이다.

“장례판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세라가 짧게 되물었다.

“그럼.”

“사람을 넘기던 자리야. 누가 먼저 나가고 누가 끝까지 남는지 적던 자리.”

미리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기억하려고 만든 홈이면 폭을 맞췄을 겁니다. 여긴 먼저 보이게 둔 줄과 나중에 숨겨 둔 줄이 달라요. 애도하는 모양 안에 운반 순서를 넣어 놨어요.”

리에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전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

목소리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누군가를 빼냈다면, 그 뒤 침묵까지 전부 남아 있다는 말이니까.”

우회길이 더 좁아진 듯했다. 오래된 실패가 끝난 무덤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밟은 길은 아직 누군가의 도망길이거나 누군가를 넘겨주던 길이었다. 리에트는 자기 과거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끊기지 않은 길의 마지막 목격자 자리로 밀려나고 있었다.

바깥 뜰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표식과 위패함은 즉시 보관 대상입니다.”

왕국 사절이 장부를 들고 더 안쪽으로 붙었다.

“외부인이 만지기 전에 숲 안에서 봉해야 한다.”

엘프 강경파도 창대를 낮췄다. 서로 반대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손은 같은 곳을 향했다. 왕국은 먼저 적어 자기 문장으로 바꾸려 했고, 엘프 강경파는 밖으로 나갈 입을 막아 숲 안의 침묵으로 덮으려 했다. 둘 다 표식이 가리키는 다음 길보다 자기 손에 남을 꼬리표부터 챙겼다.

세라가 몸을 돌렸다.

“시간 끝났어.”

우리에게 건넨 경고이면서 바깥을 향한 선언이었다. 나는 위패함을 들려는 미리엘 손목을 잡아 멈췄다.

“함 자체는 네가 품어. 홈을 드러내지 마.”

미리엘은 위패함 안쪽에 얇은 종이를 먼저 끼우고, 그 위에 천을 덮었다. 천이 홈에 바로 닿지 않도록 가장자리만 받쳤다. 손기름이 묻지 않게 하고 빛도 닿지 않게 하려는 손놀림이었다. 브론은 작은 돌 하나를 주워 가짜 꾸러미 안쪽에 넣었다. 겉으로 보면 묵직한 물증을 넣은 것처럼 보였다.

“브론, 바깥에 보일 미끼 하나.”

“이미 만들었다.”

그는 가짜 꾸러미 매듭을 일부러 헐겁게 했다. 한 번 잡아당기면 속이 쏟아질 모양이었다. 숫자를 세고 표찰부터 찾는 손은 늘 그런 곳으로 먼저 간다. 진짜 위패함은 미리엘 품 안으로 들어가고, 바깥 눈에는 헐거운 꾸러미가 먼저 보인다.

“리에트, 오른쪽 그림자 각을 잡아.”

리에트는 대답하지 않고 문턱 옆 뿌리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녀는 발을 바로 놓지 않았다. 먼저 마른 흙인지, 수액이 얇게 밴 자리인지 발끝으로 확인한 뒤 한 뼘 옮겼다. 활을 드는 손보다 설 자리를 고르는 발이 먼저 움직였다.

“세라, 길목만 막아. 말 길게 하지 마.”

세라는 검집을 더 세웠다. 그 각도 하나로 왕국 사절의 장부 끝과 엘프 창대가 동시에 멈췄다. 검집은 내 손과 미리엘 품을 가리는 낮은 벽도 됐다. 사절은 세라 어깨 너머를 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세라가 반 칸씩 몸을 틀었다.

“그 물건은 숲 안 물건이다.”

강경파가 말했다.

“손대기 전에 이미 이름이 긁혀 나갔는데.”

세라가 바로 받았다.

“이제 와서 더럽혀진다는 말로 덮지 마.”

왕국 사절은 그 틈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공식 기록이 필요한 겁니다. 지금 적지 않으면—”

“지금 가져가면 남는 건 네 문장뿐이야.”

세라 목소리가 낮아졌다.

“표식은 지워지고, 홈은 닳고, 물 아래 소리만 남겠지.”

왕국 사절이 입을 다문 순간, 미리엘이 위패함 덮개를 소매 아래로 완전히 숨겼다. 브론은 가짜 꾸러미를 잘 보이는 돌 위에 올렸다. 나는 그 사이 머릿속에서 순서를 다시 세웠다. 사람 증언, 길 증언, 물건 증언. 리에트가 말한 표식, 우회길과 돌턱이 남긴 하중, 위패함 안쪽 홈. 셋 중 하나라도 먼저 빼앗기면 나중엔 누군가 쓰기 편한 문장 하나만 남는다.

내가 중앙 뒤로 반 걸음 빠진 순간, 리에트가 낮게 말했다.

“문턱 오른쪽.”

뿌리와 유리수액 줄기 사이에 손바닥 하나 들어갈 홈이 있었다. 활시위를 오래 걸어 둔 듯 얕고 매끈했다. 그 앞 유리수액 면에는 가지 사이로 들어온 빛 한 줄이 걸렸다가 문턱 안쪽 거울물에 닿아 비스듬히 튕겼다. 그냥 빛이 아니었다. 먼저 빛으로 사람이 선 자리를 읽고, 같은 각으로 화살을 쏘는 장치였다.

나는 그 선을 눈으로 따라갔다. 빛은 흰 나무 줄기 사이에서 한 번 꺾이고, 문턱 아래 얕은 물막 위에서 한 번 더 눕는다. 안쪽에 있는 무언가는 우리 얼굴을 볼 필요가 없었다. 누가 어느 뿌리 앞에 서고, 누가 위패함을 품고, 누가 검집을 세웠는지만 읽으면 된다. 환청이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이 반사선이 먼저 자리를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리에트 눈이 가늘어졌다.

“반사궁.”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턱 안쪽 거울면이 어둡게 떨렸다. 빛이 튕긴 선을 따라 은빛 화살 하나가 미끄러져 나왔다. 소리는 늦었다. 먼저 밝은 선이 지나갔고, 다음 순간 리에트 발 앞의 뿌리가 얇게 찢겼다.

화살은 바깥 돌에 박혔다. 나무가루와 젖은 유리 조각이 동시에 튀었다. 경고였지만 빗나간 건 아니었다. 리에트가 한 치만 더 나갔으면 발등을 꿰었을 각도였다. 안쪽에 있는 손은 이름보다 자리부터 알고 있었다.

세라가 검집을 세우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번엔 단순히 길목을 막는 자세가 아니었다. 두 번째 화살이 같은 각으로 오면 리에트보다 자기 허벅지 쪽을 먼저 스치게 할 위치였다. 브론은 가짜 꾸러미를 발로 차서 사절들 시야 앞에 더 크게 밀어 놓았고, 미리엘은 위패함을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리에트는 활을 들었지만, 시위보다 화살 깃을 먼저 봤다.

나는 돌에 박힌 화살 가까이 다가갔다. 손을 대지 않은 채 무릎만 낮췄다.

깃 아래에 표식이 둘 있었다.

세 갈래로 긁힌 자국.

그 아래, 한 번 꺾였다가 이어지는 로웬의 우회 기호.

깃 끝은 일부러 짧게 잘렸고, 깃을 묶은 실에는 엘프식으로 맺은 부분과 인간식으로 감은 부분이 섞여 있었다. 한 사람의 손버릇만으로 만든 화살이 아니었다. 오래된 원정대 신호와 바깥 운반자의 답장이 같은 깃 아래 묶여 있었다. 우리가 막 읽어 낸 흔적이 화살 하나에 실려 되돌아온 셈이었다.

리에트가 숨을 들이켰다. 그녀 손은 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장 표식이야.”

이번엔 숨기지 못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로웬 답장이 같이 있어.”

왕국 사절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화살을 자기 장부의 기록으로 삼으려 했다. 세라가 몸을 틀어 그 시선을 막았다. 엘프 강경파도 창끝을 내밀었다. 리에트는 그 둘을 보지 않았다. 화살 깃 아래 묶인 매듭만 봤다.

“저 매듭은 신호를 되돌려 보낼 때 썼어.”

그녀가 낮게 말했다.

“살아 있는 쪽이, 뒤에 오는 쪽에게.”

사당 안쪽은 조용했다. 그 침묵 때문에 오히려 분명해졌다. 저 안에 있는 건 배신자의 유령도, 단순한 함정도 아니었다. 아직 자기 이름을 내놓지 못한 채 각을 읽고 신호를 보내는 누군가였다. 사람인지, 장치인지, 오래된 의지와 숲의 장치가 겹친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그래도 밀어내는 방식에는 살아 있는 손이 일부러 남긴 망설임이 있었다.

왕국 사절이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뒤로 빠져야 합니다. 저건 명백한 적대 신호입니다.”

“물러서면 안 돼.”

나는 화살대와 문턱 오른쪽 홈을 번갈아 봤다.

“죽일 생각이면 반사선을 두 번 꺾지 않아. 이름을 부르고, 자리를 재고, 멈추게 할 각도에 꽂았어. 우리가 어디를 먼저 지키는지 보는 거야.”

엘프 경계병이 눈썹을 세웠다.

“그 판단을 네가 한다고?”

“방금까지 당신들은 이 자리도 안 읽었잖아.”

내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리가 물러나면 저쪽은 우리가 버리는 자리를 배운다. 그러면 이어지는 화살은 사람을 겨눌 거야.”

세라가 짧게 물었다.

“들어가?”

나는 문턱 안쪽 어두운 거울면을 봤다. 물 아래에는 우리 다섯의 그림자가 바깥보다 먼저 서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발목 높이, 꾸러미 모서리, 검집 끝, 활 끝만 읽혔다. 저 안쪽은 우리 표정보다 배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먼저 버틴다.”

자리부터 고쳤다. 세라는 문턱 정면에서 반 걸음 왼쪽으로 옮겼다. 같은 반사선이 다시 오면 검집으로 튕길 각이었다. 리에트는 흰 나무 표식과 문턱 홈을 동시에 보는 사선에 섰다. 브론은 가짜 꾸러미 뒤에서 몸을 낮췄다. 그는 낮은 돌턱처럼 보였고, 누군가 달려들면 발목을 걸기 좋은 위치였다. 미리엘은 위패함을 품은 채 빛이 바로 닿지 않는 그림자선으로 들어갔다. 나는 화살, 홈, 반사된 빛을 한눈에 담는 중앙 뒤쪽에 섰다.

그다음에는 손댈 순서를 정했다. 화살은 뽑지 않는다. 깃은 리에트가 눈으로만 읽고, 매듭의 방향은 미리엘이 종이에 베낀다. 브론은 돌에 박힌 각도와 문턱 홈 사이 거리를 재고, 세라는 바깥 세력이 우리 사이로 손을 넣는 순간 검집으로 끊는다. 나는 화살대와 위패함, 흰 나무 표식이 같은 사건인지 다른 사건인지 가를 순서만 붙잡는다. 손이 한 번 엇갈리면 물증이 아니라 변명이 남는다.

미리엘은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그녀는 화살에 닿지 않고 그림자만 따라 선을 베꼈다. 깃 묶음의 첫 바퀴는 엘프식으로 안쪽에서 밖으로 빠졌고, 두 번째 바퀴는 인간 운반줄처럼 위에서 아래로 눌렸다. 그녀가 그 차이를 짚자 리에트 얼굴이 다시 굳었다. 옛 대장의 신호뿐이면 숲 안의 과거로 끝난다. 로웬이 쓰던 감는 방식이 같이 있으면 바깥 사람도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움직였다는 말이 된다.

브론은 가죽끈 한 줄을 꺼내 화살이 날아온 선 위에 낮게 띄웠다. 끈은 흰 나무 줄기, 문턱 아래 물막, 돌에 박힌 화살을 곧게 잇지 않고 중간에서 한 번 어긋났다. 그는 그 어긋난 지점에 작은 돌을 놓았다. 바로 그곳이 세라 검집이 처음 서 있던 자리였다. 안쪽 손은 리에트를 겨눈 척했지만, 실제로는 세라가 누구를 가리는지까지 읽고 있었다. 방패가 어디에 서는지 보려는 화살이었다.

“내 자리도 봤다는 거네.”

세라가 짧게 말했다.

두려움보다 불쾌함이 먼저 섞인 목소리였다. 누군가 자기를 겨눈 게 아니라, 자기가 누구를 지키는지 재고 있었다. 세라에게 그건 몸을 다치는 일보다 더 거슬리는 침범이었다.

“그래서 네가 더 움직이면 안 돼.”

나는 대답했다.

“저쪽은 네가 빠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왕국 사절은 그 말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들었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가 적는 순간, 그 말은 세라가 화살을 유도했다는 문장으로 쉽게 바뀐다. 엘프 강경파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외부인이 사당 장치를 흔들었다는 말로 우리를 밀어낼 것이다. 같은 사실이 어느 입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공격 명분이 갈라졌다.

우리가 한 걸음 물러나지 않자 뜰의 공기가 바뀌었다. 왕국 사절은 장부를 들고도 더 다가오지 못했다. 엘프 강경파는 창끝을 문턱 안으로 넣지 못했다. 원로들은 서로 눈을 교환했지만, 누구도 우리를 바로 끌어내지 않았다. 우리가 버티는 방식이 사당 안쪽뿐 아니라 바깥 세력들에게도 새로운 조건이 됐다.

브론은 발끝으로 미끼 꾸러미 매듭을 조금 더 풀었다. 안쪽에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 돌과 낡은 천뿐이었다. 그래도 바깥 사람들 눈에는 가장 눈에 띄는 물증처럼 보였다. 미리엘은 숨을 죽인 채 위패함을 품었고, 천과 종이 사이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세웠다. 세라 검집은 흙 위에 눌린 선을 더 깊게 만들었다. 리에트는 화살 깃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세 걸음을 다시 쟀다. 문턱 오른쪽 홈에서 돌에 박힌 화살까지는 세 걸음이 채 되지 않았다. 이 거리는 사람을 죽이려는 거리라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먼저 지키는지 묻고 있었다. 무엇을 버리는지, 누구를 앞세우고 누구를 뒤로 감추는지. 사당 안쪽은 그 답을 기다렸다.

리에트가 아주 낮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오래전에 놓친 문장을 다시 손끝에 건졌을 때 나오는 짧은 숨이었다.

“그 사람답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에트가 말한 그 사람이 옛 대장인지, 그 표식 위에 답장을 단 로웬인지, 아니면 둘 사이에 남은 아직 이름 없는 누군지 묻지 않았다. 지금 묻는 순간 리에트의 기억은 다시 누군가의 장부로 떨어진다. 우리는 먼저 지켜야 했다.

화살 깃 아래 두 표식이 같은 선 위에서 떨렸다. 하나는 살아 있지만 이름을 크게 부르지 말라는 신호. 다른 하나는 뒤에 오는 사람만 읽으라는 우회 기호. 누군가는 오래전에 숨어 살아남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살아남은 길 위에 답을 남겼다. 지금 사당 안쪽 어둠은 그 답장을 우리 앞에 꽂아 놓고, 우리가 도망칠지 버틸지 보고 있었다.

바람이 흰 나무를 스쳤다. 낙엽이 돌에 박힌 화살 주위를 둥글게 돌았다. 세라 검집 아래 눌린 흙선, 미리엘 품 안 위패함의 가벼운 흔들림, 브론 발끝이 미끼 꾸러미를 건드리는 소리, 리에트가 활시위를 조금 더 팽팽하게 당기는 숨. 다섯 사람의 자세가 같은 박자로 맞물렸다.

나는 다시 한 번 문턱 안쪽을 봤다. 어둠은 더 깊어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고친 자리마다 물결이 낮게 따라붙었다. 그 안쪽의 누군가도, 혹은 무언가도, 이제 우리 배치를 읽었다.

이어질 화살은 더 이상 경고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발을 빼지 않았다.

사당 안쪽 어둠이 아주 낮게 한 번 더 물결쳤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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