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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전초의 균열

숙영칸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쉬라는 말부터 거짓으로 만들었다.

문틀에 박힌 쇠걸쇠가 바깥에서 한 번씩 울릴 때마다 서리가 얇게 떨어졌고, 감시탑 불빛은 창틈 아래를 흰 칼날처럼 쓸고 지나갔다. 방 한가운데에는 아직 젖은 진흙 냄새가 눌어붙어 있었고, 벽 쪽에는 누군가 먼저 들어와 훑고 나간 장화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병사 다섯이 눕기엔 좁지 않았지만, 누굴 재워 두기보다 잠깐 묶어 두기 좋게 생긴 칸이었다.

리에트는 창가에 얼굴도 붙이지 않은 채 발소리만 세고 있었다. 감시탑 위로 올라가는 장화 둘, 내려오는 둘, 창고 쪽으로 꺾이는 무게 하나.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낮게 말했다.

“첫 교대 뒤 열두 박. 서쪽 사각이 제일 길어.”

브론은 문 옆에 쪼그려 앉아 쇠갈고리 길이를 손으로 재고 있었다.

“열두 박이면 창고 문 다시 여는 데는 모자라지 않겠군.”

세라는 방패끈을 조여 매며 벽에서 등을 뗐다. 숙영칸 안에서도 그녀가 서 있으면 저절로 시선이 몰리는 자리가 있었다.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 창틈 바깥 병사 그림자가 닿는 곳. 전초는 벌써부터 세라를 앞줄 얼굴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나는 바닥 진흙 위에 부츠 끝으로 세모 하나와 선 셋을 그었다.

첫째, 감시탑.

둘째, 보급 창고.

셋째, 기록칸.

셋을 둘러 감싸듯 바깥 성책선과 서사면 말뚝선을 그려 넣고, 기록칸 뒤쪽 아래엔 아주 오래된 점선 하나를 덧그었다. 어젯밤 원본 지도에서 눈에 못이 박히도록 본 자리였다.

“정오 전 재배치.”

나는 설명실에서 받아 낸 말을 짧게 꺼냈다.

“그 전에 창고가 다시 열리고, 기록칸 원본이 발췌본으로 갈려. 먼저 잡아야 하는 건 그대로야. 지도, 보급, 기록.”

미리엘이 조용히 덧붙였다.

"거기에 성도 쪽 확인 표식이 붙어 있어요. `안정화 전 임시 격리`, `현장 사제 확인 후 접촉 허용`. 북방 전초 문장인데 종루랑 말버릇이 같았어요."

“같은 결로지.” 브론이 코끝으로 웃었다. “남쪽에서 건져 온 병이든, 북쪽에서 울리는 땅이든, 저놈들 눈엔 전부 장부 한 칸이군.”

나는 바닥에 반원 셋과 사선 둘을 이어 그렸다.

반원 셋은 북사면.

짧은 사선 하나는 북동 냉각선.

겹사선 둘은 서사면 말뚝선.

“북사면 진동, 북동 냉각, 서사면 흔들림.”

세라가 내 부츠 끝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적이 옮겨 다닌 흔적으로는 안 보였다고 했지.”

“응. 병력이면 계곡 이름, 이동 화살표, 보급 시간이 먼저 붙어야 해. 그런데 저건 `전`, `후`, `지속`, `끊김` 같은 판정어가 더 많았어.”

나는 겹사선 둘이 만나는 자리를 다시 꾹 눌렀다.

“군세보다 박자를 적어 둔 지도 같았습니다.”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저마다 그 조용함 안에서 다른 걸 계산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리에트는 교대 박자를, 브론은 창고 홈을, 미리엘은 보고 줄의 말투를, 세라는 바깥에서 자기 얼굴이 어떻게 쓰일지를.

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밖으로 나갈게.”

브론이 고개를 들었다.

“지휘관이 제일 좋아할 말이군.”

“좋아하게 둬.”

세라가 짧게 받았다.

“병사들 눈이 내 쪽으로 쏠리면 안쪽이 비어.”

리에트가 창틈 밖 발소리를 한 번 더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록칸 앞도 잠깐 헐거워져.”

나는 바닥에 그은 선 위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흐리게 만들었다.

“좋아. 세라는 바깥 시선. 브론은 창고 수량표. 미리엘은 기록칸 문장. 리에트는 교대 박자.”

“넌?”

세라가 묻자 나는 오래된 점선을 다시 그었다. 감시탑 아래를 지나 기록칸 뒤를 스치고, 창고 뒤 경사면을 타고, 서사면 말뚝선 아래로 묻혀 들어가는 선.

“겹친 지도를 읽을 거야.”

나는 말했다.

“저 반응선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문밖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곧 첫 교대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세라는 방패를 들고 문을 열었다. 걸쇠가 짧게 울리자 바깥 공기가 칼처럼 밀려들었다. 병사 둘이 즉시 몸을 돌렸고, 감시탑 아래에 있던 서기도 허리를 폈다. 그 순간부터 전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벨로네 경!”

누군가 반가운 척 부르는 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세라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성책 쪽으로 걸어갔다. 병사 셋이 따라붙었다. 앞줄 얼굴이 움직이면 보고할 사람도, 길을 열 사람도 같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 브론이 수레 옆으로 미끄러지듯 붙었다. 그는 어젯밤부터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로 눌러 두었던 자루 묶음을 일부러 더 풀어헤쳤다.

“어이, 서기.”

브론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잘 퍼졌다.

“어제 못 본 줄이 또 생겼다. 수량표 다시 맞춰.”

창고 앞에 있던 군수 서기가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정오 전에 일괄 정리하면 됩니다.”

“정리라는 말 뒤에 사라지는 게 제일 비싸.”

브론은 장부판을 거의 빼앗다시피 들여다봤다. 나는 그 옆으로 붙어 납인과 홈을 같이 봤다. 문 아래 진흙에는 밤새 새긴 자국이 더 늘어 있었다. 짐수레 바퀴 홈보다 짧고 깊은 끌림 자국, 말발굽보다 사람 발꿈치가 많이 찍힌 자리, 문턱에서 한 번 꺾였다가 안으로 들어간 박스 모서리 자국. 들이기 전에 따로 세워 두고 대조한 물건이 늘었다는 뜻이었다.

브론이 장부 한 줄을 손톱으로 툭 쳤다.

“이건 뭐냐. `북사면 냉각포 여섯`.”

그가 다음 줄을 짚었다.

“`공명 후 보온천 네 묶음`.”

또 하나.

“`서사면 말뚝 교체 못 열세 통`.”

군수 서기는 눈을 깜빡였다. 창고 숫자를 외운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어느 줄을 숨겨야 하는지 먼저 계산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전초 특수 물자입니다.”

나는 그제야 줄 아래 붙은 작은 메모를 읽었다.

`남부 사례 대조 후 지급`

남부 사례.

미리엘 시선이 바로 그 밑의 더 작은 글씨에 멈췄다.

“`성흔열 유사 안정화 관련 품목.`”

그녀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엘레나만의 일이 아니었어요. 적어도 저들 장부 안에선.”

군수 서기는 얼른 장부를 접으려 했다. 하지만 브론이 먼저 손등으로 덮었다.

“아니, 이건 닫을 줄이 아니지.”

나는 창고 안쪽 선반까지 빠르게 훑었다. 상단엔 일반 군량 자루, 중단엔 보강재와 말뚝 다발, 맨 안쪽엔 천으로 감싼 기다란 통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통마다 반원 셋과 짧은 사선이 번갈아 찍혀 있었다. 종루 안 분획관에 남아 있던 표식과 같은 계열이었다. 차이는 하나뿐이었다. 종루에서는 약병과 기록을 함께 가르던 표식이, 여기선 보강재와 냉각 물자, 말뚝까지 같이 묶고 있었다.

전초는 북방의 흔들림을 전투와 봉인 반응으로 따로 보지 않았다.

둘을 한 자물쇠 아래 넣어 두고 있었다.

선반 맨 끝에는 납작한 목상자 셋이 더 있었다. 뚜껑 바깥엔 군량 표식이 그려져 있었지만, 모서리엔 성도식 점획이 아주 얇게 덧발라져 있었다. 하나는 `즉시 냉각`, 하나는 `접촉 후 보온`, 마지막 하나는 `반응 지연 시 재대조`였다. 군수품이라면 무게와 수량만 맞추면 될 말을, 여기선 상태와 박자까지 함께 묶고 있었다. 누군가는 북방의 흔들림을 적의 침공처럼 설명하면서도, 실제로는 병막이 언제 식고 어디서 다시 울리는지까지 같은 상자 안에 넣어 관리해 왔다는 뜻이었다.

브론도 그걸 읽었는지 낮게 혀를 찼다.

“이건 전장 준비가 아니라 작업칸 운영표에 가깝군.”

그는 상자와 말뚝 다발 사이 간격까지 눈으로 재고 있었다.

“못 열세 통을 창고 한가운데 두면 꺼내기 편해. 그런데 저놈들은 굳이 맨 안쪽에 묶어 놨어. 급할 때 사람 손보다 장부 확인이 먼저 들어가게 하려는 배치야.”

그 말이 맞았다. 바깥에서 서사면이 흔들려도, 누군가 봉함 끈을 풀고 납인을 대조하고 서기 손을 거쳐야만 저 물건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진열돼 있었다. 전초는 적보다 먼저 자기 절차에 발목 잡히도록 세워진 거점처럼 보였다.

그때 현장 사제가 창고 쪽으로 걸어왔다. 회색 겉옷 자락은 진흙을 최대한 피한 채 움직였고, 손에는 이미 작은 밀랍 인장판이 들려 있었다. 지휘관처럼 큰 소리로 명령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닿는 것마다 봉함할 준비를 끝낸 사람의 손이었다.

“그 물품들은 접촉 권한이 없습니다.”

그는 장부를 먼저 보지 않았다. 창고 안쪽 통과 자루, 그 위에 찍힌 표식부터 봤다.

“확인 전 이동, 개봉, 개인 대조 모두 금지입니다.”

브론이 피식 웃었다.

“숫자보다 봉함이 먼저냐.”

사제는 브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선은 오직 표식과 통에 붙어 있었다.

“숫자는 나중에도 셀 수 있습니다. 흔들린 물품은 나중에 되돌릴 수 없죠.”

지휘관이 사람의 줄을 앞세운다면, 이쪽은 물건의 줄부터 닫는 식이었다.

나는 브론에게 아주 작게 말했다.

“창고는 됐어. 기록칸 보자.”

미리엘이 한 발 먼저 움직였다. 그녀가 기록칸 앞을 지나며 일부러 현장 사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환 반응자 보고 정리 안 합니까?”

문 앞에 서 있던 다른 병사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지휘부와 성도 확인 절차가—”

“뒤늦게 적으면 원본 순서가 바뀌잖아요.”

미리엘이 태연하게 잘랐다.

“현장 기록은 지금 남겨야 해요.”

사제는 `원본`이라는 말을 듣자 아주 짧게 멈칫했다. 그는 사람 얼굴보다 단어에 더 크게 반응했다. 북방 전초에서 저 단어는 함부로 튀어나오면 안 되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그 한 박자 틈으로 나는 문턱을 넘었다.

기록칸 안은 어젯밤보다 더 차가웠다. 얼어붙은 먹물병이 책상 위에 누워 있었고, 지도 몇 장은 급히 다시 걸어 둔 것처럼 못 사이가 비뚤어져 있었다. 누군가 밤새 손을 댄 자리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벽 왼편에 붙은 발췌본이었다.

`서쪽 능선 잡음 보고`

`북사면 소규모 출몰`

`보급 지연 우려`

겉표지는 그렇게 적혀 있었지만, 밑에서 비쳐 올라오는 눌린 자국은 전혀 달랐다. 나는 종이를 비스듬한 빛 쪽으로 기울였다.

`공명 지속`

`병막 지연`

`봉인선 편차`

말이 갈아입혀져 있었다.

전투 보고가 먼저가 아니라, 봉인 반응 기록이 먼저였다.

나는 원본 지도에서 외운 반원과 사선 위치를 발췌본 위에 손가락으로 다시 얹었다.

북사면 바깥선에 반원 셋.

북동 낮은 경사에 짧은 사선 하나.

서사면 방책 아래에 겹사선 둘.

그리고 그 셋을 이은, 전초를 둥글게 감싸는 오래된 점선 하나.

병력 이동이라면 골짜기를 가르거나 성책을 향해 직선으로 내려왔어야 했다. 그런데 이 선은 성벽을 향해 닫히지 않고, 전초 아래를 한 바퀴 휘감으며 돌아가고 있었다.

감시탑 아래.

창고 뒤쪽 경사면.

서사면 말뚝선.

나는 지도 중앙에 그려진 오래된 점선을 봤다. 일반 순찰로보다 연했고, 새 먹으로 덧대지도 않았다. 전초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던 연결축처럼 보였다.

점선은 방책을 향해 곧게 뚫리지 않았다. 대신 감시탑 아래 목재 마당을 한 번 감고, 창고 뒤 경사면을 타고 내려가다 서사면 말뚝선 밑에서 다시 꺾였다. 병사들이 매일 밟는 길과는 박자가 달랐다. 사람 길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재고 눌러 보고 다시 덮어 두기 위해 만든 검사선 같았다. 종루 안에서 병과 기록과 음성축을 한 줄로 맞추던 감각이, 여기선 땅 밑으로 옮겨 와 있었다.

미리엘도 그 흐름을 읽은 듯 발췌본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여기, 먹이 한 번 더 덧칠됐어요.”

그녀가 종이를 들어 보였다.

“`북사면 소규모 출몰` 밑에 원래는 `첫 공명 후 반각 유지`가 있었고, `보급 지연 우려` 밑엔 `냉각 실패 시 서사면 이관`이 남아 있어요. 출몰하고 지연됐다는 말로 바꿔 적었지만, 실제론 어디서 반응을 붙들고 어디로 넘겼는지 기록한 거예요.”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적이 어디에 있다는 보고서가 아니었다. 흔들림을 어디서 재고, 어디서 식히고, 어디서 다른 말로 갈아 적는지 적어 둔 작업표 같았다.

미리엘이 내 옆에서 숨을 삼켰다.

“처음엔 북사면이 울고, 그다음엔 북동이 식고, 마지막으로 서사면이 흔들린 거네요.”

“응.”

나는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한 자리가 계속 맞은 게 아니야. 연결된 축이 차례로 반응했어. 누군가 이걸 군세 이동처럼 적어 올리고 있지만 실제론…”

“봉인선 연쇄.”

미리엘이 말을 이었다.

책상 아래 더미에서 작은 양피 조각 하나가 삐죽 나와 있었다. 그녀가 그걸 꺼내 펼치자 성도식 짧은 필체가 드러났다.

`남부 생환 반응자 도착 시 원본 열람 제한`

`현장 사제 확인 후 발췌본만 공유`

어젯밤 본 줄과 같은 계열이었다. 다만 이번엔 더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서사면 흔들림 지점, 외부 충격 시 개방 가능성 있음`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바깥 지형이 머릿속에서 다시 펼쳐졌다.

감시탑 아래 널판 마당.

그 뒤 창고 옆 경사.

경사를 타고 내려가 서사면 방책 끝에 박힌 새 말뚝 세 줄.

그리고 그 아래 묻힌 오래된 연결축.

라그나드 전위가 정말 북방 전초를 시험하러 왔다면, 병사 많은 정문이 아니라 저쪽부터 건드릴 가능성이 컸다. 성벽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겨진 반응선을 울려 보기 위해서.

리에트가 문밖에서 기침을 짧게 두 번 했다. 오래 버티지 말라는 신호였다.

나는 종이를 제자리에 밀어 넣으며 지도 위 선만 다시 눈에 담았다.

“놈들이 치면 서쪽부터야.”

기록칸을 나오자 마당 공기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세라는 감시탑 아래 병사 넷에게 둘러싸인 채 순시를 요구받고 있었고, 현장 사제는 밀랍 인장판을 챙긴 채 설명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기사단, 성도, 전초. 셋 다 이름은 달라도 결국 먼저 입을 여는 자리를 쥐려는 손이었다.

설명실 문이 닫히자마자 파견 지휘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북방 병사들 앞에선 벨로네 경이 서는 편이 좋겠습니다.”

벽난로 불빛이 그의 손등을 비췄다. 그는 문서를 넘길 때마다 꼭 필요한 줄보다 상대가 듣기 싫어할 줄을 먼저 다른 종이로 덮는 습관이 있었다. 방 안 사람을 움직이기 전에 말의 순서를 먼저 정리하는 인간이었다.

“종루 생환은 좋은 신호입니다. 전초 사기 유지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대신 현장 판단은 이쪽 체계로 가야 합니다.”

현장 사제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하며 지도를 가리키지 않았다. 대신 탁자 구석의 회수 상자 명단, 장부 봉함 끈, 기록칸 열쇠 꾸러미 위에 차례대로 손끝을 얹었다.

"반응 물품과 원본 기록은 성도 쪽 확인을 거쳐야 합니다. 손탄 흔적이 바뀌면 판정이 통째로 흔들립니다."

둘은 같은 통제를 말하면서도 잡는 것이 달랐다.

지휘관은 사람과 배치를 먼저 쥐었다.

사제는 물건과 원본을 먼저 닫았다.

결국 파티를 가르는 가위가 두 자루인 셈이었다.

세라는 탁자 끝에 선 채 방패를 내려놓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올릴 보고라면 내가 본 것과 다른 문장은 빼십시오.”

지휘관 입꼬리가 잠깐 움직였다. 거절하고 싶지만 대놓고는 못 하는 표정이었다.

“벨로네 경의 우려는 이해합니다. 다만 조사권과 보고선은—”

“조사권 달라는 말 아닙니다.”

세라가 다시 끊었다.

“적어도 현장을 도는 눈과 보고서 첫 줄이 완전히 다른 사람 것이 되진 말자는 뜻입니다.”

현장 사제가 차갑게 끼어들었다.

“첫 줄보다 먼저 지켜야 할 건 원본입니다. 발췌가 늦는 편이 낫지, 접촉 흔적이 섞이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는 사람의 체면보다 기록의 봉함을 먼저 걱정했다. 그 말 속에는 우리 중 누가 다치든, 누가 밀려나든, 원본만 닫히면 된다는 식의 건조한 우선순위가 있었다.

지휘관이 그 말을 바로 받았다.

“봉함이 필요하면 더더욱 병사선을 비워 둘 수 없습니다. 말뚝선이 흔들리면 창고 뒤 경사부터 비게 됩니다. 벨로네 경은 순시, 병사 둘은 서사면, 서기 둘은 창고 앞 대기.”

그는 사람을 숫자로 끊어 배치했다. 반면 사제는 곧바로 다른 종이를 당겨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기록칸 열쇠는 제가 관리합니다. 발췌 전 원본 이동 금지, 접촉 인원 재기록, 회수 상자 재봉함까지 먼저 끝나야 합니다.”

둘이 주고받는 말 사이에서 병사 하나가 문밖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 누구 명령을 먼저 따라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실제 충격이 오면 이런 한 박자들이 방책보다 먼저 무너질 수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쪽 능선 순찰은 언제 나갑니까.”

지휘관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지금 같은 질문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정오 전.”

“보강재 이동은요.”

“순찰 후.”

“기록 발췌는?”

현장 사제가 먼저 받았다.

“확인 뒤.”

순서가 나왔다.

서쪽 순찰.

보강재 이동.

그 뒤에 발췌.

만약 서사면이 먼저 흔들리면, 저 셋은 한 박자에 같이 꼬인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급보 종이 세 번 짧고 마르게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어서 방책 쪽에서 터지는 둔탁한 충격음이 설명실 바닥을 얇게 떨게 했다. 마른 나무가 한순간 비틀릴 때 나는, 속 빈 갈라짐 소리였다. 창틀 위에 걸린 성에가 모래처럼 후두두 떨어졌다.

“서쪽 방책선 충격!”

바깥 병사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숨이 먼저 멎는 대신 머릿속 축이 먼저 이어졌다. 기록칸 양피에 적혀 있던 그대로였다. 외부 충격 시 개방 가능성. 라그나드 전위는 정문을 두드리러 온 게 아니었다.

설명실 문이 벌컥 열리고 병사 하나가 뛰어들었다. 어깨엔 눈가루가 들러붙어 있었고, 오른쪽 팔꿈치엔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서사면 말뚝선이 흔들립니다! 검은 깃 확인, 소규모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두 번째 충격이 왔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방책 바깥을 쓸고 들어온 무언가가 말뚝 하나를 비껴 치며 미끄러진 듯, 길고 삐걱대는 쇳소리가 경사면을 타고 올라왔다. 이어서 바깥 병사 하나가 발을 헛디디며 욕설을 내질렀고, 보강재 묶음이 바닥에 쏟아지는 둔중한 소리가 겹쳤다. 눈가루와 검은 먼지가 문틈 아래로 먼저 밀려들었다.

지휘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즉시 병사 수를 묻기보다 탁자 위 출동표부터 접었다. 현장을 보러 가기 전, 누구를 어디에 세울지 머릿속 칸을 닫는 버릇이었다.

현장 사제도 따라 움직였지만, 그의 손은 벽걸이 창보다 기록칸 열쇠 꾸러미를 먼저 향했다. 저쪽은 사람이 몰리는 곳보다 원본이 있는 방부터 잠글 생각이었다.

둘 다 같은 충격을 보고도 먼저 움켜쥐는 것이 달랐다.

그 차이만으로도 대응은 늦어질 수 있었다.

나는 세라를 봤다.

세라도 이미 이해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방패를 들어 올리며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밖은 내가 잡아.”

브론이 탁자 끝에 있던 북방 능선 지도를 확 끌어와 바닥에 펼쳤다.

“서사면이면 창고 뒤 보강재부터네.”

미리엘은 아까 챙긴 양피 조각을 소매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공명 잔향이 다시 울릴 거예요. 그냥 병사 충돌이면 이렇게 안 퍼져요.”

리에트는 이미 창밖으로 빠질 각도를 재고 있었다.

“감시탑 사각에서 셋까지 끊어 줄게.”

나는 바닥 지도 위에 서사면 말뚝선과 창고 뒤 경사, 기록칸 옆 인계 통로를 한 줄로 그었다.

그리고 그제야 분명하게 보였다.

라그나드 전위가 노리는 건 성벽 바깥이 아니었다.

전초가 숨겨 둔 연결축이었다.

서사면을 치면 병사들이 서쪽으로 쏠리고, 창고 보강재가 먼저 움직이고, 기록칸 발췌가 늦어진다. 그 틈에 원본과 물건이 더 깊숙이 잠길 수도 있고, 반대로 숨겨 둔 반응선이 강제로 드러날 수도 있다. 시험하듯 한 번 건드려 보기엔 이보다 좋은 자리도 없었다.

게다가 방금 설명실에서 확인한 순서까지 겹치면 더 치명적이었다. 순찰대는 사람을 빼 가고, 창고는 봉함 확인 때문에 늦고, 기록칸은 열쇠가 묶여 발췌가 멈춘다. 적이 서사면 한 곳만 흔들어도 전초는 스스로 지도를 가리고 스스로 보강재를 늦추게 된다. 라그나드 쪽은 칼끝만 들이민 채, 이 거점이 무엇을 먼저 지키는지 보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문턱을 넘기 직전 짧게 말했다.

“놈들은 성벽이 아니라 축을 치러 왔어.”

바깥 공기는 아까보다 더 매서웠다. 감시탑 아래 마당을 가로지르는 병사 발소리, 창고 쪽에서 끌려 나오는 보강재, 방책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마른 충격음이 한꺼번에 겹쳤다. 눈가루가 일었고, 서사면 끝 말뚝 하나가 실제로 반 박자씩 비틀리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그 밑 경사면 흙은 단순히 파인 게 아니라, 안쪽에서 한 번 들썩였다가 다시 가라앉은 것처럼 울퉁불퉁하게 솟아 있었다.

세라는 가장 먼저 뛰어나가 병사들 시선을 붙들었다. 그녀는 방책선 바로 앞에서 멈춰 서더니 무작정 돌진하지 않고, 먼저 병사 셋의 어깨 방향부터 돌려 세웠다. 정면을 보던 둘은 서사면 쪽으로, 흩어지려던 하나는 감시탑 아래 보급 길목으로 밀어 넣었다. 북방의 얼굴 노릇을 하라는 명령을, 북방 전열을 다시 세우는 권한으로 바꿔 쓴 셈이었다.

브론은 곧장 창고 뒤로 꺾었다. 그는 넘어진 보강재를 일으키는 대신, 먼저 길게 묶인 못 통 두 개를 발로 굴려 경사 아래로 보내지 못하게 막았다. 통 하나가 더 굴러 떨어졌다면 서사면 말뚝선 하나를 세우는 데 필요한 길이가 통째로 비었을 터였다.

미리엘은 손끝으로 바람을 느끼듯 공명 방향을 더듬다가, 보강재 더미 한복판이 아니라 그 아래 흙이 울리는 자리를 바로 짚어 냈다. 그녀가 멈춰 선 곳에서는 차가운 공기 속에 금속 긁히는 소리와는 다른, 물속에서 울린 종 같은 떨림이 아주 얇게 섞여 올라왔다.

리에트는 감시탑 그늘을 타고 이미 높은 자리로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위에서 병사들을 쏘아보는 대신, 서사면 아래 검은 점 셋이 어디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흩어지는지부터 읽고 있었다. 적은 사람을 베러 온 부대라기보다, 어느 말뚝과 어느 통로가 먼저 움직이는지 시험하는 손처럼 보였다.

나도 달렸다.

이번엔 적이 얼마나 강한지보다 먼저, 어디를 어떻게 건드렸는지가 중요했다.

북방 전초의 진짜 균열은 성벽 바깥에 있는 게 아니었다.

지도와 장부와 원본 사이, 그 셋이 맞물린 연결축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 연결축 위로 병사 발, 보강재, 보고 문장이 한꺼번에 엉키기 시작했다. 한순간만 늦어도 누가 처음 틀렸는지조차 남지 않은 채, 지휘관은 병사 탓을 하고 사제는 접촉 흔적 탓을 하며 다시 다른 문장을 올릴 게 분명했다. 그러면 북방에서 실제로 흔들린 것은 봉인선인데도, 장부 위엔 또 `소규모 출몰` 같은 무딘 말만 남을 터였다. 그 한 줄이 쌓일수록 다음 판단도 다시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막으려면 지금 여기서 먼저 읽어야 했다. 늦으면 또 남의 문장이 된다. 그건 안 됐다. 바로 지금뿐이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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