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나무위키 누나는 알려주고 싶어 2화 가장 남자다운 취미 일러스트

나무위키 누나는 알려주고 싶어 2화 가장 남자다운 취미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2학년 3반 교실은 다가올 문화제 준비로 마치 시장통처럼 어수선했다.

칠판 한가운데에는 누군가가 형광 핑크색 분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적어 놓은 글자가 악운의 징조처럼 빛나고 있었다.

[✨메이드 카페 담당자 모집!! (※남녀 무관)✨]

그 아래에 적힌 자원자(혹은 희생양)들의 이름은 이미 절반쯤 지워져 있었고, 남은 건 짓궂은 낙서와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뿐이었다.

그리고,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온 중학교 2학년 스나오 스구루는 칠판 맨 아래, 유독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눈을 의심했다.

"...어?"

뇌 정지가 온 스구루의 어깨를, 지나가던 반 친구 하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쳤다.

"아, 스구루 왔네. 너 메이드 역."

"...제가요? 아니, 잠깐. 왜?"

"응. 너 얼굴 하얗고 얌전하게 생겨서 잘 어울릴 것 같더라. 다수결로 통과됐어."

"아니, 잠깐만. 왜 그런 결론이 다수결로 통과되는 건데?!"

스구루가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옆자리 남학생이 낄낄 웃으며 스구루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야, 이건 벌칙이라기보다 적임자지, 적임자. 너 말고 누가 하냐?"

"그게 더 이상하거든?!"

교실 여기저기서 빵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스구루를 더 미치게 만드는 것은, 그 웃음 속에 악의가 1그램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정말 놀리는 건가?

단순한 장난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내가 메이드복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 스구루를 향해, 반장 역할을 맡은 여학생이 턱을 괸 채 고개를 갸웃했다.

"싫으면 빼도 되는데? 근데 솔직히 스구루가 제일 거부감 없긴 해."

"거부감이 없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인데..."

"그, 너무 남자답게 우락부락한 애가 프릴 달린 거 입으면 눈 썩고 웃기기만 하잖아. 넌... 음... 어..."

반장은 잠시 적절한 어휘를 고르는 듯 허공을 응시하더니, 아주 맑은 눈으로 쐐기를 박았다.

"왜 말을 하다 마는데요."

"잘 어울릴 것 같아."

명치를 정확히 찌르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칭찬이었다.

스구루는 끝내 아무 대답도 못 한 채,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다리가 풀려 책상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방과 후.

텅 빈 운동장 끝, 늦가을의 찬 바람이 휑하게 부는 체육관 창고 옆 벤치.

스구루는 세상의 모든 번뇌를 짊어진 철학자처럼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차인 직후 공원에서 수상한 바바리코트 누나에게 연애 이론 강의를 들었던 날 이후로, 자기 인생엔 이상한 이벤트가 너무 많이 생기고 있었다.

"왜 하필 나지..."

바닥에 굴러가는 돌멩이를 발끝으로 툭 차며, 그는 무릎 위에 턱을 괴었다.

문화제에서 여장을 하라니.

단순 벌칙이라면 차라리 이해가 갔다. 친한 친구끼리 웃자고 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장난, 그 정도라면 세상엔 흔하니까. 그런데 반 친구들의 반응은 묘하게 진지했다.

'벌칙'이라기엔 너무 자연스러웠고,

'칭찬'이라기엔 너무 수치스러웠다.

무엇보다 스구루가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건 따로 있었다.

"대체... 남자한테 여장을 시키고 싶어 하는 심리는 뭘까..."

스구루가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린 그 순간이었다.

"좋은 질문이다, 소년!!!!"

또였다.

정적을 와장창 깨부수는 우렁찬 사자후와 함께, 익숙한 실루엣이 체육관 모퉁이를 돌아 석양을 등지고 나타났다.

웨이브 져서 찰랑이는 머리카락.

각 잡힌 바바리코트.

쓸데없이 당당한 모델 워킹.

그리고 그녀가 치켜든 스마트폰 스피커에선, 90년대 마법소녀물 변신 테마곡이 웅장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구루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왜 항상 제가 혼잣말할 때마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시는 거예요..."

"훗. 지식의 수호자는 무지한 자의 고민 앞에 반드시 나타나는 법!"

시라나이 코토하가 스마트폰 음악을 끄며, 허공을 향해 검지를 척 치켜세웠다.

"소년이여, 방금 네가 뱉어낸 그 딥(Deep)한 물음은 단순한 학급 행사에 대한 징징거림이 아니다. 그것은 곧바로 서브컬처, 연극사, 미의식사, 그리고 젠더 기호론을 관통하는 거대한 인문학적 질문이지!"

"...그냥 문화제 여장 이야기인데요?"

"그 문화제가 곧 문명의 축소판인 것이다!!"

스구루는 벌써부터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누나. 전 진짜 이해가 안 가요."

스구루는 벤치에서 일어나 진지하게 호소했다.

"남자가 여장을 하면 웃기다는 건 알겠어요. 장난이니까. 근데 애들 반응은 그거랑 좀 달랐단 말이죠. '어울릴 것 같다'느니, '거부감이 없다'느니... 대체 남자를 여자로 꾸며놓고 즐거워하는 그 심리가 뭐예요?"

그 순간, 코토하의 안경(쓰지도 않은)이 번쩍 빛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좋다! 오늘의 특강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녀가 바바리코트 안주머니에서, 대체 평소에 왜 들고 다니는지 모를 '접이식 지휘봉'을 촤락! 소리 나게 뽑아 들었다.

"왜 인간은 남자에게 여성성을 부여하려 드는가!"

"말이 너무 거창하잖아요."

"그리고 부제는 이거다. 가장 남자다운 취미란 무엇인가!"

"...설마."

"TS다."

"아니 왜요?!"

코토하가 벤치 위에 한 발을 척 올리며, 세상을 향해 선언하듯 외쳤다.

"인터넷 심연의 바다를 떠도는 오래된 진리의 밈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가장 남자다운 취미는 상남자식 격투기도, 자동차도 아니다. 바로 TS라고!"

"전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데요, 그런 밈."

"정확한 출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정서다!"

"또 억지 시작이네..."

코토하는 스구루의 한숨을 상쾌하게 무시한 채, 지휘봉을 허공에 휘둘렀다. 쉭! 쉭!

"잘 들어라, 소년.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건 생물학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진정한 오타쿠... 아니, 구도자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왜 끌리는가', '무엇이 여성성을 여성성답게 보이게 하는가', '그 기호를 어디까지 쪼개고 재조립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파고든단 말이다!"

"무서운 사람들이네요, 진짜."

"그리고 그 광기 어린 탐구의 최종 산물이 바로 오토코노코(男の娘), TS, 여장남자, 크로스드레서다!"

스구루는 양손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잠깐만요. 여자를 좋아하면 그냥 예쁜 여자 캐릭터를 좋아하면 되잖아요. 왜 굳이 멀쩡한 남자를 여자로 꾸며요? 가성비가 안 맞잖아요."

딱-!

코토하가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거기다! 그 질문이 핵심이다, 소년!"

"...대체 뭐가요."

"여자 그 자체를 소비하는 것과, '남성'이라는 튼튼한 기반 위에 '여성적 기호'를 덧씌운 대상을 소비하는 것은 완전히, 철저하게 다른 놀이란 말이다!"

스구루는 진심으로 외계어를 듣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놀이가 왜 그렇게까지 복잡해져요?"

"복잡해지기에 인간은 문명을 쌓아 올린 것이다."

"그 문명, 멸망했으면 좋겠는데요."

코토하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마치 비밀 결사의 수장처럼 은밀하게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 아주 귀엽게 생긴 남자가 있다. 피부는 희고, 선은 가늘고, 눈매는 순하지. 마치 너처럼."

"저기요."

"그런데 그 애가 평범한 칙칙한 교복을 입고 있으면, 그건 그저 '좀 반반한 남자애'로 끝난다."

"네. 그게 정상이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리본, 프릴, 스커트, 오버니삭스 같은 '여성을 맹렬하게 상징하는 기호'를 덧붙이는 순간 어떻게 되지?"

"...여장남자가 되죠."

"그렇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보는 사람의 뇌 속에서는 동시에 두 가지 인식이 맹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한다!

'분명 남자인데?!'

'하지만 내 눈이 인식하고 있는 이 아름다움의 기호는 완벽한 여자 쪽이다?!'

이 인지의 비틀림! 뇌에 가해지는 짜릿한 에러! 그것이 바로 오토코노코의 핵심 쾌락 중 하나다!"

스구루는 질색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쾌락이라는 단어를 학교 뒤뜰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쓰지 말아 주세요. 범죄자 같아요."

"학문에 부끄러움은 없다!"

"학문 맞아요, 이거?!"

코토하는 멈추지 않았다.

"인간은 금기와 혼란, 아름다움과 위화감이 동시에 존재할 때 이상하게 더 강하게 반응한다. 공포영화가 무섭지만 손가락 틈새로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분명 남자인데 예쁘면 뇌가 이상한 방향으로 흥분하는 거다!"

"문장이 갈수록 위험해지는데요. 경찰 부를까요?"

"그래서 오토코노코는 단순한 여장이 아니다! 그것은 인식 교란 장치이며, 미적 기호의 재배열이며, 때로는 배덕감과 큐트함이 섞인 치명적인 칵테일이다!"

"독주네요, 거의. 마시면 죽는."

코토하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비유다. 매우 독하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그럼 TS는요?"

스구루가 반쯤 영혼이 나간 얼굴로 물었다.

"그건 또 뭐가 다른데요?"

코토하의 눈빛이 한층 더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 심각해졌다.

"TS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녀가 검지를 스구루의 콧등 앞까지 들이밀었다.

"오토코노코가 '남자이지만 여자처럼 보이게 한다'는 외부 관찰자의 변태적인 놀이에 가깝다면, TS는 '내가, 혹은 저 녀석이 아예 저쪽 성별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라는 궁극의 체험적 상상이다."

"...어?"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되는' 것이다."

스구루는 잠시 침묵했다.

"누나."

"왜 그러지, 소년."

"그 설명, 묘하게 너무 구체적인데요."

순간, 코토하의 시선이 허공을 향해 살짝 흔들렸다.

"기, 기분 탓이다."

"아뇨. 뭔가 방금 '진짜로 해보고 싶어 하는 아는 사람'의 말투였는데."

"학자는 늘 대상과 일정 수준의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법이다!"

"그 변명, 오히려 더 수상해요."

코토하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TS가 왜 서브컬처에서 폭발적으로 먹히는지 아느냐? 그건 단순히 성별이 바뀌는 마술 쇼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가 전부 새롭게 재편되기 때문이지!

평범하고 칙칙한 남학생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절세 미소녀가 되어 있다? 그 순간, 불알친구의 태도도 달라지고, 세상이 그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본인이 자기 몸을 인식하는 방식조차 바뀐다.

즉, TS는 겉모습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법칙 전체를 다시 쓰는 신의 장치다!"

스구루는 잠시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건...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네요."

"호오?"

"그러니까, 재밌는 건 단순히 예쁜 여자가 돼서가 아니라... 주변 반응이 뚝딱거리고, 원래 알던 친구랑 관계가 꼬이면서 발생하는 그 어색한 상황극이 재밌다는 거죠?"

순간, 코토하의 뺨이 붉게 달아오르며 얼굴에 엄청난 감격이 떠올랐다.

"소년... 네가... 네가 거기까지 도달하다니..."

"아니, 누나가 방금 다 설명했잖아요."

"드디어 내 철학을 이해해 준 첫 수제자가 탄생했구나!!"

"제자 한 적 없어요."

스구루는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근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전 그냥 문화제에서 억지로 치마 입게 생긴 불쌍한 피해자인데."

"천만에."

코토하가 벤치에서 내려와, 스구루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경매장에 나온 최고급 도자기를 감정하는 듯한 그 끈적한 시선에, 스구루는 자신도 모르게 오소소 소름이 돋아 등을 곧추세웠다.

"오히려 네 경우가 제일 전형적이고 완벽한 샘플이다."

"네?"

"생각해 보아라. 정말 근육질에 턱수염이 덥덥하게 난 산적 같은 거구에게 프릴 치마를 입히면 어떤가?"

"음... 그냥 개그죠. 눈 테러고."

"그렇지! 그건 순수한 희극이다. 1차원적인 벌칙 게임이지. 하지만 네 경우는 다르다."

"뭐가요..."

코토하가 지휘봉 끝으로 스구루의 턱선을 살짝 가리켰다.

"너는 선이 부드럽고, 눈매가 순하고, 체격도 가늘다. 피부도 꽤 하얀 편이지. 즉, '조금만 꾸며도 장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르가 발생?"

"그렇다!

못생긴 남자의 여장은 5초짜리 웃음으로 끝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귀엽고 얌전한 남자의 여장은 보는 사람의 뇌리에 지독하고 이상한 질문을 남긴다.

'어? 얘 생각보다 어울리는데?'

'어라? 나 왜 쟤 다리를 보고 있지?'

그리고 바로 그 찰나! 단순 개그는 위험한 페티시로 진화하는 것이다!"

스구루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확 달아올랐다.

"왜 남의 수치심을 그렇게 학술적으로 포장하세요?! 진짜 변태 같아요!"

"포장이 아니다. 날카로운 해석이다."

"해석 안 해줘도 되거든요!"

코토하는 팔짱을 낀 채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 반 친구들이 너를 제물로 고른 것도 아주 본능적이고 단순한 이유다.

악의가 전혀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순수한 괴롭힘만도 아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아는 거다. 너 같은 타입에게 메이드복을 입히면, 웃기면서도 묘하게 어울릴 거라는 걸.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고 싶은 거지."

"...그 말, 진짜 1도 위로 안 되는데요."

"위로가 아니라 분석이라고 했잖느냐."

"오늘따라 분석이 너무 폭력적이시네요..."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체육관 뒤편 철문이 덜컥 열리더니, 같은 반 여학생 둘이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낑낑대며 들고나왔다.

"아, 스구루! 마침 여기 있었네!"

"...왜요? 그 불길한 봉지는 뭐고요?"

"인터넷에서 렌탈한 메이드 의상 샘플 도착했는데, 입어볼 사람이 없어서. 너 잠깐 이리 와봐."

스구루의 척추를 타고 서늘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지금이요?! 여기서요?!"

"응. 사이즈 확인만 하게. 금방 끝나."

"싫어요! 미쳤어요?!"

"어라? 근데 옆에 계신 분은..."

여학생들의 시선이 코토하를 향했다. 코토하는 바바리코트 깃을 펄럭이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누나가 도와줄게."

두 여학생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코토하에게 메이드복 봉지를 넘겨주었다. 스구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왜 다들 이 사람을 당연하게 아는 전제로 진행하는 거예요?!"

"뭐야, 스구루 친척 누나 아니었어?"

"아니에요! 오늘 두 번 본 쌩판 남이라고요!"

"친척도 사제도 아니지만, 지식의 인도자라는 점에선 비슷하지. 자, 이리 온, 소년."

"전혀 안 비슷하거든요! 오지 마요!"

그러나 코토하는 이미 눈을 번뜩이며 봉지 안의 내용물을 꺼내고 있었다.

"좋다. 백문이 불여일견. 오늘은 특별히 지루한 이론에서 짜릿한 실기로 넘어가 주지."

"싫다니까요?! 저리 가요!"

"실증 없는 학문은 공허한 법이다! 벗어라!"

"그 학문, 제 인권과 동의 없이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오오오!!"

십 분 뒤.

체육관 창고 안, 뜀틀과 매트로 대충 가려놓은 임시 탈의 공간 앞.

스구루는 거의 나라를 잃은 듯한, 아니, 영혼의 절반이 뜯겨 나간 울상으로 서 있었다.

그의 몸에는 새하얀 프릴 앞치마가 달린 칠흑 같은 메이드복이 입혀져 있었고, 옆 테이블에는 아직 장착하지 않은 가발, 리본, 레이스 장갑 같은 것들이 수술 도구처럼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마치 사악한 의식을 치르기 직전의 제단 같았다.

코토하는 팔짱을 낀 채, 세계적인 디자이너라도 된 양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스구루를 평가하고 있었다.

"좋다. 먼저 명심해라, 소년. 메이드복은 단순한 천 쪼가리가 아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

"침묵! 지금부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실기 강의를 한다."

그녀가 붉은 리본을 집어 들며 스구루의 목덜미로 다가갔다.

"리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시선을 위로 끌어올려 얼굴을 프레임화하고, 목이라는 취약한 부위를 강조하는 시각적 초크(Choke) 장치다!"

다음은 앞치마의 끈을 꽉 조이며.

"프릴은 단순히 화려함을 더하는 게 아니다! 펄럭이는 천 조각을 통해 보호본능과 과잉 장식의 결합을 이끌어내고, '인공적으로 꾸며진 여성성'을 뇌에 직접 때려 박는 상징이다!"

다음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타킹을 가리키며.

"그리고 절대로 얕봐선 안 되는 것이 바로 저 절대영역—"

"제발 그만 좀 해주세요오오오!!"

참다못한 스구루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왜 옷 한 벌 입히는데 그렇게까지 변태적인 이론이 많은 건데요?!"

코토하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것이... 인간의 업(業)이기 때문이다."

"인간 진짜 쓸데없이 피곤하게 사네요!"

결국 한바탕 소동 끝에, 겨우 옷매무새를 다듬은 스구루가 커튼 역할을 하던 매트 뒤에서 쭈뼛쭈뼛 걸어 나왔을 때.

창고 안은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검은 메이드복.

허리를 꽉 조인 하얀 앞치마.

무릎 위까지 팽팽하게 올라온 검은 오버니삭스.

목에 어설프게 달린 붉은 리본.

아직 가발도 안 썼고, 골격도 남자애의 그것이었으며, 자세도 한없이 어정쩡했지만... 적어도 '우스꽝스러운 털보 아저씨의 벌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 묘한 '애매함'이 문제였다.

숨을 죽이고 있던 여학생 하나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어?"

다른 여학생이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아니, 꽤 괜찮은데?"

스구루는 수치심에 얼굴이 목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만하세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전혀 안 괜찮거든요!"

그러나 코토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어딘가 종교적 희열마저 느껴지는 감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원판(재료)이 훌륭했군..."

"뭐가 훌륭해요?! 죽고 싶어요 지금!"

"보아라, 소녀들이여!!"

코토하가 번쩍 양손을 들어 올리며 창고가 떠나가라 외쳤다.

"이것이 바로 기호의 완벽한 재배열이다!

남자라는 캔버스 위에 여성적 장식을 덧씌웠을 뿐인데, 너희의 뇌 속 인식은 '단순 벌칙'에서 '어? 생각보다 귀여운데?'로 미끄러져 내리지 않았는가!

바로 이 아찔한 경계! 희극과 페티시, 조롱과 미의식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지금 이 창고 안에서 빅뱅을 일으킨 것이다!!"

"그 빅뱅을 왜 제 몸뚱이로 증명하냐고요!!!!"

스구루의 처절한 절규가 좁은 창고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십 분 후.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스구루는, 마치 3일 밤낮을 철야한 직장인처럼 녹초가 된 얼굴로 체육관 외벽에 기대 주저앉아 있었다.

코토하는 여전히 세상을 다 가진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 배운 걸 뼛속 깊이 새겨 두어라, 소년."

"제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데요."

"남자에게 여장을 시키는 심리는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다.

물론 악의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너희 반 녀석들의 뇌 속엔 훨씬 애매하고 복잡한 욕망이 뒤섞여 있다.

웃기고 싶다, 의외성을 보고 싶다, 어울리는 걸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귀여운 걸 보고 싶다.

이 모든 혼돈이 문화제라는 '축제의 광기' 속에서 합법적으로 폭발한 결과인 거지."

스구루는 축 처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듣고 보니 더 기분 나빠요. 애들 얼굴을 어떻게 봐."

"하지만 왜 널 뽑았는지, 그 원리는 완벽하게 이해되었지?"

"조금은요. 지독하게요."

코토하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다음 단계는—"

"다음 단계가 또 있어요?!"

"당연하지! 완벽한 오토코노코를 위한 가발 세팅과 메이크업 실습이다."

"절대 안 해요!! 다가오지 마요!!"

스구루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는 그 순간.

띠링-

코토하의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경쾌한 스마트폰 알림음이 울렸다.

코토하가 무심코 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한 순간, 스구루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인터넷 서점 앱의 푸시 알림이 아주 선명하고 큼지막하게 떠 있었다.

[배송 완료: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남자도 완벽하게 귀여워질 수 있다! 여장 입문 코디 100선』이 문 앞에 배송되었습니다.]

"......"

"......"

늦가을의 찬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싸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스구루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코토하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누나."

"...왜 그러지, 소년."

"방금 그 책... 학술 연구용이에요?"

코토하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폰을 황급히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시선을 허공으로 회피하며 아주아주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진정한 지식인은... 언제나 다가올 시대를 미리 준비하는 법이다."

"본심 숨길 생각 1도 없네요... 이 변태 오타쿠 누나..."

붉게 물든 노을 아래, 스구루는 공허하게 속삭였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