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역물 폭군이 내게 집착한다 상편 (AI, #대체역사 #개그 #루프물)
우드득.
내 손아귀에서 최고급 족제비 털로 만든 붓이 두 동강 났다.
검은 먹물이 화선지 위로 왈칵 쏟아지며, 지난 4시간 동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글자들을 시커멓게 덮어버렸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손끝에 닿은 머리카락이 푸석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빙의한 지 고작 반나절 만에, 내 새까맣던 머리카락에 하얀 새치가 몇 가닥씩 보였다.
내 머릿속에는 지금 두 개의 자아가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었다.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야근하다 과로사한 평범한 직장인의 자아.
다른 하나는, 하룻밤 만에 천자문(千字文)을 완성하지 못하면 구족이 멸해진다는 압박감에 미쳐버린 양나라의 학자, '주흥사'의 자아였다.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 다음이 뭐였지? 아, 미치겠네.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도대체 글자는 왜 하나도 안 겹쳐야 하는 건데? 이 시대엔 복붙(Ctrl+C, Ctrl+V)도 없냐고!’
내 뇌는 지금 56k 모뎀으로 100기가짜리 압축 파일을 강제 다운로드받는 중이었다. 주흥사의 방대한 한자 지식이 내 현대인의 얄팍한 뇌신경을 찢어발기며 쑤셔 박히고 있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새 붓을 집어 들었다.
황제. 그렇다, 저 궁궐 한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그 미친 폭군 새끼 때문이었다.
“주흥사. 내일까지 단 한 자도 겹치지 않는 천 개의 글자로 우주의 이치를 담은 시를 지어오라. 글자가 겹치거나, 운율이 맞지 않거나, 기한을 넘긴다면…… 네놈의 목을 베어 대전에 효수할 것이다.”
그건 황제의 명령이 아니었다. 사이코패스 십자말풀이 중독자의 살인 예고였다.
"아, 시발. 천지현황… 우주홍황… 다음엔 뭐냐고..."
나는 붓을 든 채 허공을 응시했다.
창밖으로는 벌써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약속한 아침이 코앞이었다. 내가 채운 글자는 고작 8자 남짓. 아직 992자나 남았다.
내 머릿속의 주흥사는 '빨리 써야 해! 죽어! 죽는다고!'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현대인인 나의 자아는 아주 차분하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어차피 못 쓴다.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스케줄이다.
"……."
나는 조용히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먹물이 튄 화선지를 반듯하게 접어 한쪽으로 치운 뒤, 옷매무새를 단정히 가다듬었다. 상투를 꽉 묶어 목덜미를 훤히 드러냈다. 망나니가 칼을 내리칠 때 뼈에 걸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참으로 고결한 학자의 자세였다.
쾅!
그때,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황제의 친위대인 금군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시퍼런 칼날이 내 목을 겨누었다.
"주흥사! 기한이 다 되었다! 폐하께서 부르신다!"
금군 대장의 우렁찬 호통에, 나는 아주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가시지요."
"……어? 천자문은?"
"못 썼습니다."
"뭐, 뭣이?! 네놈이 정녕 미친 것이냐! 폐하께서 분명 목을 친다 하셨거늘!"
금군 대장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천자문을 완성하지 못한 자를 끌고 가면, 자신들마저 황제의 진노를 살까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묵묵히 두 손을 내밀었다. 포박하라는 뜻이었다.
"어명입니다. 어서 저를 대전으로 끌고 가, 제 목을 치시지요."
나의 한 점 흔들림 없는 태도에, 금군 대장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죽음의 공포마저 초월한 진정한 학자의 기개. 대장의 눈빛에 일말의 경외감마저 스쳤다.
그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포박했다.
내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래, 까짓것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빙의한 삶, 목이 달아나는 고통은 1초면 끝날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야근과 암기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참수 따위는 달콤한 휴가나 다름없다.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죽음이 기다리는 대전(大殿)의 육중한 문턱을 넘었다.
대전 내부는 스산할 정도로 고요했다.
새벽의 푸스름한 빛만이 스며드는 옥좌 위에는, 천하를 호령하는 폭군 양무제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계단 아래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조아렸다.
"주흥사. 기한이 되었다."
황제의 목소리는 동굴처럼 깊고 묵직했다. 그 한마디에 주변 환관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올 것이 왔다.
"폐하. 죽여주시옵소서. 소신, 밤새도록 쥐어짰사오나…… 끝내 다 채워 넣지 못했사옵니다."
나의 담담한 고백에, 대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옥좌에서 들려온 황제의 목소리는 분노가 아니었다.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밤새도록, 쥐어짰다고?"
"그렇사옵니다. 제 그릇이 너무 작아, 그 방대한 것을 하룻밤 만에 다 받아내기엔 무리였사옵니다."
"아아……."
황제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당연한 일이다. 처음부터 그 거대한 것을 한 번에 다 받아내려 했으니, 필시 찢어지는 고통이 따랐을 터. 혼자서 얼마나 아팠겠느냐."
"……예?"
나는 바닥에 머리를 댄 채로 눈을 깜빡였다. 폭군의 입에서 나올 법한 대사가 아니었다. 찢어지는 고통? 하긴, 뇌가 찢어지는 것 같긴 했다. 나는 다시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옵니다. 소신이 부족한 탓입니다. 붓끝이 헤지고 먹물이 다 마를 때까지 글을 써야 했사오나,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말았사옵니다."
"크읏……!"
갑자기 황제가 옥좌의 팔걸이를 부서져라 움켜쥐는 소리가 났다.
"주흥사! 네가 짐을 위해 밤새 스스로를 위로하며 연습까지 했단 말이냐! 물이 다 마를 때까지 문지르다니, 이 얼마나 헌신적이고도 음탕한 선비란 말이냐!"
"……예? 위로라니요? 저는 먹을 벼루를 문질렀……."
"오오! 짐은 감동했느니라! 네가 그토록 짐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짐 역시 사내로서 화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펄럭!
무언가 무거운 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황제가 옥좌의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곤룡포를 바닥에 내던진 채, 탄탄한 대흉근과 복근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폭군의 그것이 아니었다. 굶주린 짐승, 아니, 발정 난 수컷의 눈이었다.
"폐, 폐하? 어찌 옥체를 드러내시옵니까? 어서 망나니를 불러 제 목을……."
"목이라니, 당치 않다. 짐은 그대의 지혜와 고결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처연한 눈동자를 오래전부터 사모해 왔느니라."
"……??"
내 이성이 삐걱거리며 정지했다.
황제가 내 턱을 거칠게 쥐어 올리며, 뜨거운 입김을 훅 내뱉었다.
"너의 동정을 짐에게 바쳐라. 네가 미처 다 채우지 못한 그 빈 곳은, 오늘 밤 짐이 친히 구석구석 채워주겠노라."
"……뭐라고요????"
내 머릿속의 주흥사가 남긴 지식이 총동원해 현재 상황을 빠르게 계산했다.
사형, 목이 달아나는 육체적인 죽음.
황제와의 첫날밤.
더러운 똥꼬충 새끼한테 뒷구멍을 따이는 지옥. 정신적인 죽음.
결론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끄아아아아악!!! 이 씨발 미친 호모 새끼가아아아!!"
나는 비단 바닥을 벅벅 긁으며 비명을 질렀다. 황제가 당황해 손을 뻗었지만, 나는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 도망쳤다.
"주, 주흥사?! 어딜 가는 것이냐! 짐이 부드럽게—"
"닥쳐! 이 똥꼬충아! 씨발 호모한테 따이느니 차라리 대가리를 박고 죽어버린다!!!!"
나는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대전의 가장 굵은 자단목 기둥을 향해 전속력으로 머리를 들이받았다.
콰직!
황제의 침소에 드느니, 차라리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게 낫지.
두개골이 부서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내 첫 번째 삶이 끝났다.
"푸흐흡! 오빠, 허접♡ 쫄보♡ 남자가 정조 좀 뺏긴다고 대가리를 꽝 박아? 완전 허접이네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린 것은 귓가를 찢는 듯한 간드러진 비웃음이었다.
나는 깨질 듯한 이마의 통증과, 하마터면 게이 황제에게 순결을 잃을 뻔했다는 끔찍한 정신적 충격에 헛구역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 배 위에는 반투명한 소복을 입은 조그만 미소녀 귀신이 방방 뛰고 있었다.
"넌 뭐야?"
"누구게?♡ 자랑할 게 고작 '웹소설 많이 읽었다 도르'인 누렁이 허접 오빠라면 바로 알아채야 하지 않을까~?♡"
말하는 본새가 아주 얄밉기 그지없었지만, 순간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빙의 전 읽었던 하꼬 대역 소설. 분명 주흥사가 996자를 완성하고 나머지 4글자를 채우지 못해 번뇌할 때, 홀연히 나타나 네 글자를 불러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귀신이 있었다.
저게 그 귀신인가?
아니, 잠깐. 실제 역사 기반 전승이라면 그렇겠지만, 이건 내가 소설 속에 빙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짐작 가는 게 있다.
망작 웹소설이나 똥겜에 인간을 납치하여 데스 게임 루프에 가둬두는 사악한 요정들.
내가 천자문을 완성하지 못하면 허리가 썰려 죽거나, 게이 호모 황제에게 뒷구멍이 따이는 개 같은 양자택일 시추에이션을 강요한 장본인이 누군지 깨달은 것이다.
"야, 이 씨발년아."
"……어?"
"사람 납치한 썅년 아니랄까 봐, 말투도 지랄 같은 거 보소. 네가 좆같아 죽겠는 사람 앞에서 지금 그게 할 소리냐? 확 찢어 죽여버리기 전에 빨리 날 원래 세계로 보내."
내 쌍욕에 귀신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머, 천박한 말투는 좋지 않아, 오빠♡ 내 여린 마음이 상처받아서 오빠를 해코지하면 어떡해? 그럼 오빠는 허접 개복치처럼 펑 터져 죽을 텐데……?♡"
귀신이 드래X볼의 프X저처럼 손가락 끝에 붉은 레이저 빛 같은 것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 빌어먹을 데스 게임 클리셰. 저 성질 지랄 맞은 가이드 요정들은 반항하는 플레이어부터 본보기로 머리를 펑펑 터뜨리지.
"알았다, 알았어. 쏘리, 아임 베리 쏘리. 저엉말 내가 미안하다."
나는 빛의 속도로 엎드려 싹싹 빌었다.
"날 놀리려고 나타난 건 아닐 테고, 무슨 용건인데?"
내 빠른 태세 전환에 귀신이 으쓱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쪼끔 귀엽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더 혐오스러웠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허접 바보 오빠니 내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게~♡. 오빠는 이미 한 번 죽었지?"
"그래. 대가리 박고 꿍, 뚝배기 깨져서 사망."
"응!♡ 오빠가 허접 같이 뚝배기 깨져서 죽는 건 내가 정~말 마음이 아프니까, 상냥하고 배려심 깊은 내가 특별 서비스를 해줄게!♡"
귀신이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짜자잔—! 하는 요란한 팡파르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서나 볼 법한 네온사인 전광판이 허공에 떠올랐다.
대역물이라면서 메스가키 귀신에 카지노 전광판이라니. 장르가 도대체 뭐야.
전광판에는 세 가지 선택 사항이 적혀 있었다.
[루프 특전 선택]
TS 물약 (마시면 미소녀로 변신!)
천자문 힌트 (죽을 때마다 4글자씩 떠오름!)
매력 UP & DOWN (외모와 매력을 마음대로 조절!)
"세 가지 특전 중에 하나를 골라, 오빠!♡ 어때? 나 완전 천사지?♡"
나는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1번, TS 물약. 황제를 여자로 만들거나 내가 여자로 바뀌는 선택지겠지. 하지만 황제를 여자로 만든들 알맹이는 징그러운 남색가 호모 새끼다. 기각.
2번, 천자문 4글자 힌트. 지금 내가 아는 게 천지현황, 우주홍황 여덟 글자니까… 앞으로 248번만 더 뚝배기를 깨면서 죽으면 된다. 까짓거 껌이네—는 개뿔! 아까 뒤질 때 존나 아팠다. 그걸 248번 하라고? 죽어도 못 해. 기각.
그렇다면 남은 건 3번, 매력을 올리고 낮추는 선택지뿐이다.
도대체 이걸로 어떻게 이 지옥 같은 호모 황제의 손아귀에서 탈출한단 말인가.
고민하는 나를, 귀신이 싱글벙글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 실행할 때다.
내겐 선택지가 틀리더라도 무한히 다시 할 수 있는 '회귀'라는 능력이 있다. 저주는 곧 축복. 일단 부딪쳐 보는 거다.
"3번. 나는 매력을 낮추겠다. 나를 더럽고 냄새나는 추남으로 바꿔줘."
띠링!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빙의한 주흥사는, 내가 보기에도 댄디하고 문사의 기품이 좔좔 흐르는 미중년이었다. 그러나 특전을 고른 순간, 내 배는 툭 튀어나오고, 얼굴에는 화농성 여드름이 다닥다닥 피어났으며, 온몸에서는 한 달 넘게 안 씻어서 파오후 같은 쉰내가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장에 나서는 전사의 의식이다.
저 발정 난 폭군의 마수로부터 내 순결을 지키기 위한, 숭고하고도 거룩한 성전(聖戰)의 갑옷!
"히잉, 오빠가 고장 나버렸어……."
귀신이 코를 쥐어막으며 질색했다.
"잘생긴 게 그나마 유일한 장점이던 허접 오빠가, 완전 냄새나는 개허접 존못 돼지가 돼버렸잖아……."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귀신을 향해, 나는 일말의 미혹도 없이 씩 웃어 보였다. 누런 치석이 낀 이빨이 번쩍였다.
"좋아. 지금의 내겐 두려울 게 없다! 가자!"
귀신이 샤르륵 하고 사라졌다.
동이 터오고, 나는 다시 한번 죽음… 아니, 정조의 위기가 기다리는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의 문이 열렸다.
황제는 옥좌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계획대로 엎드리지도 않은 채, 짝다리를 짚고 콧구멍을 벅벅 후비며 섰다.
머리에는 떡진 비듬이 눈처럼 떨어졌고, 옷에서는 시큼한 쉰내가 진동했다.
"주흥사. 짐이 내린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
"아, 예예. 못 했습니다요. 제 대가리가 빡통이라서요. 캬악, 퉤!"
나는 대전 한가운데에 시원하게 누런 가래침을 뱉었다.
주변에 도열한 환관들이 경악하며 숨을 들이켰다. 나를 호위하던 금군이 당장이라도 칼을 뽑으려 했다.
완벽하다. 이 정도의 불경죄와 시각적 테러라면 당장 능지처참이다.
나는 내심 환호하며 황제의 반응을 기다렸다.
"……."
황제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굳어 있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1초. 2초. 3초.
대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황제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분노인가? 혐오인가?
"……주흥사."
황제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계단을 내려와,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너, 냄새난다."
걸려들었다. 나는 코딱지를 파서 튕기며 비릿하게 웃었다.
큭큭큭, 그래 아무리 똥꼬충이어도 냄새나는 존못이 앞에 떡하니 나타난다면 따먹겠다는 망발은 추호도 하지 못할 터. 어떠냐, 이것이 바로 인법 파오후의 술! 자, 올 테면 와봐라 더러운 게이 호모 황제여.
"그렇사옵니다! 소신은 씻지도 않는 더러운 짐승만도 못한 추물—"
"아아…… 이 얼마나 날것 그대로의 짐승 같은 체취란 말이냐!"
"……예?"
황제가 갑자기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어깨를 콱 움켜쥐었다. 그의 눈동자에, 아까보다 세 배는 더 짙은 광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짐은 언제나 궁궐의 가식적인 향냄새에 질려 있었다! 헌데 너는, 그 고결한 선비의 허울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짐 앞에서 이토록 원초적이고 거친 수컷의 본능을 드러내다니! 코를 파고 가래를 뱉는 그 야성! 출렁이는 그 탐스러운 뱃살! 짐의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하는구나!"
아.
이 새끼는 뇌가 하반신에 지배당했구나.
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미친 호모 새끼의 수비 범위는 우주보다 넓었던 것이다.
"여봐라! 당장 주흥사를 내 침소로 묶어서 끌고 가라! 짐이 친히 옥수(玉手)로 저 더러운 때를 구석구석 벗겨주마!"
"… 씨발, 이 새끼 비위 졸라 좋네."
나는 건조하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둥은 이미 금군들이 철통같이 막아서고 있었다. 환관들이 밧줄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황제는 이미 겉옷을 벗어 던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어금니에 힘을 주어 내 혀를 힘껏 깨물었다.
입안 가득 뜨거운 피가 왈칵 쏟아졌다.
"주, 주흥사아아아악!! 안 돼! 짐의 들고양이가아아!!"
황제의 절규가 멀어지며, 나의 두 번째 삶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음 생엔, 저 새끼 성대부터 찢는다.
✦ 작가의 말
호모나 게이 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