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엔 내가 먼저
002화 이번엔 내가 먼저
서도윤은 숨이 끊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바닥은 올라오지 않았다.
허리 아래가 통째로 비던 추락감도, 폐를 뒤집던 바람도, 콘크리트가 코앞까지 차오르던 마지막 순간도 아직 몸에 붙어 있었다.
대신 등을 받치는 건 얇은 매트리스였고, 손끝에 걸리는 건 구겨진 이불이었다. 숨이 먼저 망가져 있었다.
도윤은 목을 움켜쥔 채 침대 가장자리로 기어내렸다. 심장은 아직도 옥상 난간 밖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뛰었다. 옆구리를 눌러 봤다. 갈비뼈도, 어깨도, 손목도 멀쩡했다.
몸은 멀쩡했다. 기억이 아니었다. 허리 아래가 비며 떨어지던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손끝이 헛돌고 발밑이 사라지던 몇 초가 늦게 도착한 통증처럼 몸 안쪽을 훑었다.
휴대폰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도윤은 거의 달려들 듯 화면을 집어 들었다.
`화요일 오후 11:58`
날짜를 본 순간 숨이 한 번 멎었다.
화요일.
방금 전까지 그는 수요일 밤 회사 옥상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휴대폰은 화요일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 하루 전이었다.
알림도 낯익었다. 카드 대금 예정 알림, 어머니 부재중 전화 한 통, 팀 메신저에 쌓인 별것 아닌 업무 공지. 전부 어젯밤, 아니 지금 기준으로는 오늘 밤 조금 전의 것들이었다.
도윤은 손이 떨리는 걸 억지로 눌러 메모 앱부터 열었다.
없었다.
개인 클라우드 메모도, 임시저장 메일도 비어 있었다. 당연했다. 이 시간의 그는 아직 수요일 밤 그 USB를 받지도 않았고, 사진도 찍지 않았고, 팀장에게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그때 시야 한복판에 차가운 글자가 떠올랐다.
`[다음 판 안내]`
도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비밀은 살인지시자 쪽에서 터진다]`
`[능력은 살인자 쪽에서 가져온다]`
`[쓸 수 있는 자료는 죽기 전 24시간 안에 네가 직접 챙긴 것뿐이다]`
`[기억하는 사람은 너 혼자다]`
문장은 짧았다.
그래서 더 현실감이 없었다.
도윤은 네 줄을 끝까지 읽었지만, 머리에 박힌 건 두 개뿐이었다.
살인지시자 쪽에서 터진다.
직접 챙긴 것뿐이다.
나머지는 목 안에 걸렸다. 능력을 가져온다는 게 무슨 뜻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라는 말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직도 몸은 방금 떨어진 직후를 살고 있었으니까.
도윤은 휴대폰 화면을 다시 봤다.
화요일 오후 11:58.
날짜도, 통증도, 방 안 공기도 멀쩡한데 저 글자만 이상했다.
도윤은 밤을 거의 새웠다.
불을 켜 놓은 채 휴대폰 시계만 몇 번이고 확인했다.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렀고, 화요일 밤은 수요일 새벽으로 넘어갔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회사에 가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안 가면 더 미칠 것 같았다. 정말 돌아온 게 맞는지, 아니면 자기 머리가 완전히 나간 건지.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결국 회사뿐이었다.
끝내 머릿속에 남은 건 한 문장이었다.
직접 챙긴 것뿐이다.
문장이 짧을수록 더 잔인했다.
그 말이 맞다면, 어젯밤의 사진 세 장이 지금 이 하루 어딘가에서 터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회사 로비에 들어선 순간, 사무실 공기부터 평소와 달랐다.
다들 조용한데 조용하지 않았다.
키보드 소리는 나는데 말이 줄었고, 팀장 자리엔 평소보다 일찍 불이 켜져 있었다. 탕비실 쪽에선 종이 타월 뜯는 소리가 짧게 이어졌고, 복도 반대편에선 누군가 전화를 죽은 목소리로 받다가 바로 끊었다.
도윤이 자리에 앉자마자 메신저가 먼저 울렸다.
`준법지원실 공지: 오전 9시 10분 관련 부서 긴급 확인 회의. 대상자 별도 메일 참조.`
곧바로 메일 알림이 연달아 떴다.
`[긴급] 에이치브릿지 어드바이저리 집행 자료 사실 확인 요청`
`[외부 문의 공유] 세광경제 한세린 기자 질의 접수`
도윤의 손이 멈췄다.
천천히 첫 메일을 눌렀다.
출처 미상의 익명 제보 자료가 그룹 내부 윤리제보 채널과 외부 경제지 기자에게 동시에 접수됐고, 관련 집행 내역의 진위 여부를 즉시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 첨부 파일 썸네일이 보였다.
도윤은 숨을 들이마시다 말았다.
조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화면.
상단 메뉴가 반쯤 잘린 구도.
손이 떨려 초점이 살짝 나간 계좌번호 끝자리.
그건 분명히 그가 찍은 사진이었다.
오늘 아침의 자기가 아니라, 어젯밤 죽기 직전에.
더 정확히는 오늘 밤에나 자기 손에 들어왔어야 할 파일에서 찍혔어야 하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세 장 전부가 아니었다.
흔들려서 다시 찍은 첫 장과 `강태준` 이름이 걸린 셋째 장만 붙어 있었다. 삭제 로그만 어정쩡하게 걸린 두 번째 사진은 빠져 있었다.
메일 본문엔 짧은 문장만 남아 있었다.
`차명 법인 의심`
`삭제 로그 존재`
`승인권자 특정 가능`
완전한 폭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뒤집을 만했다.
"서 대리."
팀장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터졌다.
도윤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팀장 얼굴은 어젯밤보다 더 망가져 있었다. 넥타이는 삐뚤었고, 손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이거 지금 기자 쪽까지 넘어갔대. 윤리제보로도 박히고, 세광경제 쪽 한세린 기자도 바로 물었대. 아직 기사화는 막는 중인데, 외부 전화 오면 무조건 홍보실로 돌려. 아는 척하지 말고."
그 순간 팀장 휴대폰에서 누군가 쏘아붙이는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강 전무실에서도 바로 확인 들어왔습니다.`
`홍보실 붙여서 막고 있으니까, 누가 외부로 뺐는지부터 잡으셔야죠.`
도윤은 그 짧은 소리를 듣고도 바로 이해했다.
윤리제보 하나만 들어가도 골치였을 텐데, 시스템은 기자 문의까지 같이 꽂아 넣었다. 안으로는 숨길 수 없게 만들고, 밖으로는 덮을 시간을 줄였다.
팀장은 급히 수화부를 막으며 회의실 쪽으로 뛰어갔다.
도윤은 모니터를 다시 봤다.
보낸 적 없었다.
그런데 이미 터져 있었다.
그제야 새벽에 본 문장이 뒤늦게 제대로 박혔다.
비밀은 살인지시자 쪽에서 터진다.
쓸 수 있는 자료는 죽기 전 24시간 안에 네가 직접 챙긴 것뿐이다.
시스템은 없는 걸 만든 게 아니었다.
자기가 본 걸, 자기가 찍은 걸, 자기가 남긴 걸 가장 아픈 곳으로 밀어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 땀이 흘렀다.
공포가 먼저 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분노보다 더 먼저 계산이 올라왔다.
이번엔 함부로 들이박으면 안 됐다.
한 번 죽고 돌아온다고 판 전체가 자기 편으로 기운 게 아니었다. 먼저 더 쥐고, 흔적을 남기고, 빠질 길까지 같이 봐야 했다.
긴급 확인 회의가 시작되자 사무실 전체가 흐트러졌다.
준법지원실에서 프린터를 돌려댔고, 팀장은 회의실과 자리 사이를 뛰어다녔다. 누군가는 홍보실과 통화하며 메신저 창을 열어 둔 채 자리를 비웠고, 누군가는 급히 출력물을 들고 회의실 문 안으로 사라졌다.
도윤은 그 혼란을 가만히 봤다.
이번엔 몸부터 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들이박지도 않았다. 너무 빨리 움직이면 오히려 자신이 그 자료를 읽은 놈이라는 뜻이 됐다. 그는 일부러 메일을 한 번 더 읽고, 팀장 자리 옆을 지나가고, 회의실 쪽 서류를 옮기는 사람들 사이에 한 번 끼었다. 눈에 띄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복합기 트레이 위엔 방금 뽑힌 출력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맨 위 장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화평물류센터 대응안 2차`
도윤의 손끝이 굳었다.
그 아래엔 더 직접적인 문구가 보였다.
`추가 합의금 집행`
`대외 기사 차단비`
`에이치브릿지 재집행`
`강 전무 보고`
`민 실장 전달`
첫 공개 자료가 긁어낸 건 표면이었다.
지금 손앞에 있는 건 그 밑바닥이었다.
도윤은 주변을 한번 훑었다. 회의실 안에서는 준법지원실 직원 둘이 서류를 두고 말다툼 중이었다. 팀장은 복도 반대편에서 전화를 막느라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복합기 쪽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딱 몇 초.
지금 아니면 다시는 안 날 틈이었다.
도윤은 맨 위 세 장만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첫 장은 2차 합의금 목록.
둘째 장은 차명 법인 재집행표.
셋째 장은 결재란 아래쪽에 박힌 `강태준 검토`와 `민재호 현장 정리` 메모.
그는 휴대폰을 최대한 몸쪽으로 붙이고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 첫 장이 조금 흔들리자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찍었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지만, 회의실 안 누군가가 `그건 아직 밖으로 빼면 안 됩니다` 하고 더 크게 쏘아붙이는 바람에 시선은 다시 안쪽으로 쏠렸다.
도윤은 틈을 놓치지 않고 셋째 장까지 찍은 뒤 출력물을 원래 순서대로 돌려놨다.
자리로 돌아와 사진을 확인한 뒤에도 그는 바로 보내지 않았다.
이 정도만으론 아직 부족했다.
기자는 움직일 수도 있었고, 반대로 이걸 들고 바로 붙었다가 더 빨리 추적만 당할 수도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자기를 드러내는 한 방이 아니라, 다음 루프에서 더 크게 터뜨릴 값이었다.
도윤은 창을 닫고 회의실 쪽을 다시 봤다.
그때 낮은 목소리가 복도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정문 출입자 다시 확인하세요.`
`B라인 출력물부터 회수하고요.`
`서비스 엘리베이터는 잠깐 묶겠습니다.`
도윤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정문, 출력물, 서비스 엘리베이터.
저쪽도 이미 건물 전체를 닫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오후까지 평소처럼 움직였다. 팀장 눈앞에서 서류를 한 번 옮겼고, 회의실 문 앞에서 엑셀 파일을 인쇄한 척 두 장을 버렸고, 탕비실에 가서 미지근한 커피까지 한 컵 뽑았다. 조용히 빠져나갈 생각 없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 틈틈이 봤다.
정문에는 보안실 직원이 붙었다.
메인 엘리베이터는 층 이동이 묘하게 느려졌다.
홍보실에서 내려온 사람 둘이 야근자 명단을 받아 갔다.
한 번은 일부러 정문 쪽까지 걸어가 봤다. 보안실 직원 하나가 사원증 목걸이만 스쳐 봐도 사람을 세우는 방식이었다. 다른 한 명은 명단을 들고 있었다. 저기로 나가면 걸린다.
메인 엘리베이터 앞도 비슷했다. 그는 버튼을 눌렀다가 취소하고 한 번 뒤로 물러났다. 열리는 속도도 느렸고, 문이 열릴 때마다 보안실 직원이 한 번씩 안을 들여다봤다. 그건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체에 가까웠다.
도윤은 차악을 골랐다.
B2 서비스 동선.
업체 차량과 시설팀이 드나드는 그쪽은 완전히 잠그기 어렵고, 무엇보다 정문처럼 사람 얼굴을 하나씩 확인하진 않았다. 가장 안전한 길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남은 길 중 제일 덜 닫힌 쪽이었다.
정문은 명단 때문에 안 된다. 메인 엘리베이터는 보안실이 본다. 계단으로만 내려가면 CCTV가 길게 남는다. 남은 건 B2뿐이었다. 그 선택은 안전해서가 아니라, 지금 남은 길 중 가장 덜 죽는 길이라서였다.
최선은 아니어도, 다른 길은 이미 끝나 있었다.
저녁이 완전히 내려앉자 그는 그쪽으로 움직였다.
지하주차장 문이 열리자 차갑고 눅눅한 공기가 먼저 밀려왔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엔진 잔향이 천장에 붙어 있었다.
벽면 전광판 시계가 `11:14`를 막 넘기고 있었다.
VIP 구역 쪽은 일반 구역보다 더 조용했다. 차도 적었고, 사람도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닫기 쉬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세단 한 대가 기둥 옆에 서 있었다.
뒷좌석 창문이 반쯤 내려와 있었다.
강태준이 안에 앉아 있었다.
도윤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했다. 왼쪽 통로로 몸을 틀려는 찰나, 낮은 목소리가 먼저 날아왔다.
"정문 안 쓰고 여기로 내려왔네."
강태준이 말했다.
"생각보다 머리는 돌아가네요."
도윤의 등이 식었다.
"누가 붙었어."
저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네가 읽은 길까지 우리는 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도윤은 그제야 정문 명단, 느린 엘리베이터, 홍보실 인원 배치가 따로가 아니라 한 묶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읽은 가장 덜 막힌 길조차, 저쪽은 이미 닫을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출력물도 회수했고, 정문도 닫았고, 서비스 라인도 확인 중이겠죠."
도윤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아직 제가 여기 있다는 건, 다 못 거뒀다는 뜻 아닙니까."
강태준은 잠깐 웃는지 아닌지도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더 위험한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관자놀이가 조였다.
위험 감지가 늦게 왔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 통로에 세워져 있던 검은 SUV가 시동을 켠 채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운전석엔 민재호가 있었다.
같은 얼굴.
같은 무표정.
이번엔 옥상 난간 대신 운전대 뒤에.
도윤은 몸을 틀었다. 뒤로 빠질 통로, 기둥 사각, 차선 간격을 한꺼번에 읽었다. 가장 덜 막힌 쪽으로 뛰려 했지만, 오른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먼저 움직였다. 보안실 직원이었다. 그 한 박자가 발을 묶었다.
헤드라이트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다음 순간 옆구리를 찢는 충격이 들어왔다. 몸이 허공에 들렸다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처박혔다.
숨이 끊겼다.
이번엔 추락보다 짧고 더 무식했다. 무릎이 먼저 부서진 것 같은 감각, 등뼈가 바닥을 긁는 소리, 입 안을 가득 채운 쇠맛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누가 차에서 내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민재호인지, 강태준인지 확인할 힘도 없었다.
가장 선명한 건 억울함이었다.
이번엔 들이박지 않았다. 보내지도 않았다.
자료를 쥐고, 시선을 피하고, 출구를 골랐는데도 졌다.
자기는 길 하나를 읽었고, 저쪽은 건물 전체를 닫았다.
곧 검은 시야 한가운데 글자가 떠올랐다.
`[죽음 확인: 타살]`
`[살인지시자: 강태준]`
`[살인자: 민재호]`
`[공개 자료: 더 크게 공개]`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아까 찍은 사진들이 스쳐 갔다. 2차 합의금, 차명 법인 재집행, 강 전무 보고, 민 실장 전달.
이번엔 어젯밤보다 훨씬 깊었다.
`[획득 능력: 없음]`
같은 살인자에게서 이미 한 번 가져온 뒤라는 뜻이었다.
`[회귀 시각: 전날 같은 시간]`
그 문장이 마지막으로 떠오른 순간, 서도윤의 의식이 다시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