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를 설계한다
004화 하루를 설계한다
회사 뒤편 비상문을 나서는 순간, 밤공기가 비로소 폐 안으로 들어왔다.
도윤은 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크게 느껴져 어깨를 움찔했다. 조금 전까지 몸을 짓누르던 형광등 냄새와 계단 정적이 사라졌는데도, 숨이 편해지진 않았다. 안에서는 최소한 어디가 위험한지 눈앞에 있었는데, 밖은 너무 많았다. 문 하나를 닫았다고 안전해지는 밤은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건물 벽을 따라 걸었다.
정문으로는 안 갔다.
택시 줄도 피했다.
회사 앞 대로로 바로 나가는 순간 목덜미가 또 서늘해졌기 때문이다. 누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확신까진 아니었다. 그냥 저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감각. 그 감각 하나만 믿고, 그는 차량 진입로 반대편 좁은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
팀장이었다.
도윤은 화면만 보고 받지 않았다. 지금 받으면 목소리에서 다 들킬 것 같았다. 숨이 가쁜 것도, 머리가 식지 않은 것도, 자기가 지금 회사가 아니라 어딘가 골목을 걷고 있다는 것도.
진동이 멈춘 뒤엔 사내 메신저 알림이 하나 더 떴다.
`서도윤 대리, 어디예요? 보안실에서 어제 권한 외 열람 기록 다시 본대요.`
팀장 메시지였다.
도윤은 읽기만 하고 화면을 껐다.
신호등 앞에 섰을 때 오른쪽 팔이 먼저 굳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바로 다음 순간, 검은 세단 하나가 천천히 교차로를 돌아 회사 쪽으로 붙었다. 유리에는 짙은 선팅이 돼 있었고, 번호판은 평범했다. 도윤은 그것만 보고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저 차 가까이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세단은 신호를 기다리다 그대로 지나갔다.
도윤은 손바닥에 맺힌 식은땀을 바지에 문질렀다.
민재호 감각은 늘 이런 식이었다. 딱 한 발 먼저 몸이 멈춘다. 확신도, 설명도 없는데 일단 비키게 만든다.
그게 없었으면 방금 저 차 옆 횡단보도에 그대로 서 있었을 것이다.
정문 금지.
첫 번째 규칙이 머릿속에 바로 적혔다.
그는 큰길을 피해서 두 정거장이나 걸은 뒤에야 버스 하나를 잡아탔다. 창가에 앉지도 못하고 중간 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는데, 누가 자기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닌데 자꾸 옆으로 고개를 돌리게 됐다. 차창에 비친 자기 모습은 반쯤 젖은 사람처럼 초췌했다.
버스가 집 근처 정류장에 닿았을 때는 밤 열 시가 훌쩍 넘었다.
내리기 직전까지도 도윤은 망설였다.
정말 집으로 가도 되나.
그런데 갈 데가 마땅치도 않았다. 회사는 더는 못 돌아가고, 친구 집으로 가자니 설명할 말이 없었다. 모텔이나 찜질방은 당장 생각났지만, 그쪽은 오히려 더 눈에 띌 수도 있었다.
아파트로 이어지는 골목 입구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왼쪽 어깨가 먼저 굳었다.
도윤은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길이었다. 매일 지나던 편의점, 관리사무소 불 꺼진 창문, 우편함 쪽 형광등. 그런데 오늘은 그 익숙함 전체가 아주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관리사무소 앞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시간엔 늘 꺼져 있어야 하는 불이었다.
아파트 출입구 맞은편에는 검은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배달차도, 주민차도 아닌 어중간한 세단이었다. 시동은 걸린 채였고, 운전석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담배 불빛이 한 번 짧게 켜졌다 꺼졌다.
출입구 옆 우편함 앞에는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휴대폰을 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계속 엘리베이터 쪽으로 흘렀다. 주민이면 바로 들어가면 될 위치에서 너무 오래 서 있었다.
도윤은 그대로 골목 그림자 안에 멈춰 섰다.
숨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회사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저기 들어가는 건 안 됐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는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가지 않았다. 편의점 쪽으로 몸을 틀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냉장고 모터 소리와 삼각김밥 포장 비닐 냄새가 확 밀려왔다. 점원은 이어폰을 낀 채 계산대에 기대 있었고, 도윤은 생수 하나를 집어 들고 음료 냉장고 문에 비친 바깥 풍경을 흘끗 봤다.
검은 차는 그대로였다.
우편함 앞 남자도 그대로였다.
둘이 서로를 보는 장면은 없었는데, 그래서 더 수상했다. 모르는 척하고 같은 곳을 보고 있는 사람들처럼.
도윤은 바로 등을 돌리지 않았다. 컵라면 진열대 앞에 선 척하면서 냉장고 유리에 비친 바깥만 계속 봤다. 삼 분쯤 지났는데도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편함 앞 남자도 그대로였다. 한 번은 관리사무소 쪽으로 다가가더니, 잠깐 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도윤은 확신 대신 체념에 가까운 걸 느꼈다.
우연히 늦게 귀가한 주민도, 택시 기다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적어도 오늘 밤 자기 집 앞은 평범한 집 앞이 아니었다.
도윤은 계산대에 천 원짜리 몇 장을 내려놓았다. 카드도, 멤버십도 쓰지 않았다. 생수병을 쥔 손이 계속 미끄러웠다.
집 주소.
인사기록카드 안에 당연하게 들어 있을 자기 집 주소가 머리를 때렸다.
회사 안에서야 로그로 찾고, 출입 기록으로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름이 따로 분리돼 있다면, 그 다음은 주소다. 사원증 발급할 때도, 연말정산할 때도, 인사팀 서류 낼 때도 몇 번이나 확인한 그 주소.
정리하면 간단했다. 회사엔 어제 찍힌 권한 외 열람 기록이 남았고, 집 주소는 인사기록에 남아 있었다.
회사에서만 잘못 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인사 기록표 한 장이면, 자기가 자는 동네까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정문 금지 다음은 집 금지였다.
도윤은 편의점 구석에서 생수를 절반쯤 마신 뒤, 병째 들고 다시 길을 건넜다.
집으로는 안 갔다.
갈 수가 없었다.
그는 일부러 반대 방향 골목으로 한 바퀴를 더 돌았다. 혹시 자기 쪽으로 시선이 따라오는지 보려고. 한 블록쯤 돌아 다시 큰길로 나왔을 때도 검은 차는 처음 자리 그대로였다.
그게 오히려 더 선명한 답이었다.
한 블록, 두 블록, 세 블록.
무작정 더 멀어지다 보니 번화가 쪽 네온사인이 보였다. 심야에도 불이 켜져 있는 PC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도윤은 조금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긴 적어도 혼자 방 안에 갇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싸구려 방향제 냄새와 키보드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회원이세요?"
카운터 알바가 묻자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비회원 한 시간만요. 현금으로 할게요."
알바는 별 말 없이 좌석 번호가 적힌 종이쪽지를 밀어 줬다.
도윤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밝은 화면이 켜지자 그제야 자기 손이 얼마나 떨리고 있었는지 더 또렷하게 보였다. 마우스를 두 번 놓치고 나서야 겨우 브라우저를 열었다.
그는 클라우드 메모 앱에 올려 둔 사진부터 다시 확인했다.
`7월 사고 대응 예산 추가 집행 내역`
`유가족 접촉`
`영상 회수 외주`
`대외 합의 지원`
`보안 문서 폐기`
`증적보관함 B2-3 / 21:30 회수 후 선별`
조금 전까진 그 문장들이 단지 더 큰 비밀 쪽으로 이어지는 표지판처럼 보였다.
그런데 회사 밖으로 나와 집 앞까지 위험해지고 나니, 의미가 달라졌다.
이건 누군가 죽은 뒤에 움직인 돈이었다.
단순히 수치를 숨긴 게 아니라, 사람을 치우고 뒤를 닦은 돈.
도윤은 검색창에 `에이치브릿지 사고`, `에이치브릿지 유가족`, `에이치브릿지 추락사`를 차례대로 넣었다.
처음 몇 개는 전부 회사 홍보 기사나 채용 페이지였다.
세 번째 페이지쯤에서야 작은 지역지 기사 하나가 걸렸다.
`에이치브릿지 계열 건물 보수 중 외주 작업자 추락사… 유가족과 원만 합의`
도윤은 마우스를 꽉 쥐었다.
기사 날짜는 7월 중순이었다.
본문은 짧았다. 외주 인력 한 명이 추락해 숨졌고, 회사는 안전 수칙을 지켰다고 밝혔으며, 유가족과 합의가 진행 중이라는 형식적인 문장뿐이었다.
그런데 기사 말미에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사고 당시 CCTV는 점검 중이어서 정확한 경위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색 결과 아래쪽에는 오래된 커뮤니티 캡처 하나도 남아 있었다.
`사고 당일 본사에서 DVR 먼저 가져갔다던데 사실인가요`
본문은 지워져 있었고 댓글도 비어 있었다. 제목 한 줄만 남은, 이미 죽은 글이었다.
도윤은 그대로 화면을 노려봤다.
영상 회수, CCTV 점검 중, 유가족 접촉, 대외 합의, 보안 문서 폐기.
사진 속 항목들이 기사 문장 위로 정확히 겹쳤다.
회계 비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죽었고, 회사는 그 죽음 뒤를 치우고 있었다.
지금 도윤이 붙잡은 것도 그 기록이었다.
기사 중간엔 피해자 이름도 아주 작게 적혀 있었다.
`최동식(52)`
그 이름을 읽는 순간, 도윤은 이 사건이 숫자나 비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는 걸 다시 느꼈다.
도윤은 그 이름까지 메모에 적었다.
그는 기사 전체를 캡처해 다시 클라우드 메모에 올렸다. 제목 없는 메모 안쪽에 사진 두 장, B2-3 메모, 기사 캡처, 피해자 이름이 나란히 붙었다. 폴더가 아니라 조각난 증거들이 흩어진 벽면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짧게 덧붙였다.
`정문 금지`
`집 금지`
`숙소 오래 못 씀`
`B2-3 21:30`
`정문 말고 우회`
메모를 적고 나자 숨이 더 막혔다.
오늘 밤 버티기용이면서, 동시에 다음을 위한 설계표이기도 했다.
지금 하루는 즉흥적으로 버틸 수 있어도 다음엔 처음부터 쪼개서 설계해야 했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팀장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번호.
도윤은 화면만 내려다봤다. 진동이 한 번 멈췄다가 바로 다시 울렸다. 받는 순간 위치도, 숨소리도, 말투도 남을 것 같아서 그는 끝까지 받지 않았다.
대신 전원을 길게 눌러 휴대폰을 껐다.
검은 화면에 자기 얼굴만 비쳤다.
잠깐이라도 눕고 싶었다.
PC방은 사람이 많아서 안전할 것 같았지만, 오래 버틸 곳은 아니었다. 모니터 불빛 아래 앉아 있으니 오히려 누가 등 뒤에서 자기 얼굴을 확인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CCTV도 많았다.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선택지는 모텔뿐이었다.
번화가 끝자락, 술집 골목 건너편에 작은 모텔이 하나 보였다. 간판 불빛이 반쯤 나가 있었고, 현관 자동문은 느리게 열렸다 닫혔다. 좋아서 고른 곳이 아니었다. 더는 고를 힘이 없어서 들어간 곳에 가까웠다.
프런트 뒤엔 졸린 눈의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하룻밤이요."
"현금?"
"네."
"신분증 주세요."
도윤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안 내면 더 수상했다.
그는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건넸다. 프런트 남자는 복사기 위에 올려 두고, 방 번호가 적힌 카드키를 내밀었다.
잠깐, 그냥 나갈까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프런트 남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얼굴이었고, 그 무관심이 더 무서웠다.
이름, 얼굴, 시간은 늘 이런 식으로 남았다.
회사 로그를 피해서 나와도, 결국 다른 장부 위에 다시 자기 이름이 올라가는 셈이었다.
"삼 층 끝방입니다."
도윤은 카드키를 받아 쥔 손을 한 번 더 꽉 쥐었다.
이름도, 얼굴도, 신분증도 남겼다.
머리 한쪽에서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몸은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지금은 문 하나 잠그고 눈만 붙일 수 있으면 뭐든 괜찮을 것 같았다.
방은 좁았다. 벽지는 누렇게 떴고, 에어컨에선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났다. 침대 옆 스탠드 하나와 싸구려 TV, 물 두 병, 얇은 욕실 문이 전부였다.
도윤은 문을 잠그고 카드키를 책상 위에 던진 뒤 그대로 침대 끝에 주저앉았다.
문고리에 체인까지 걸고, 문 옆 의자를 끌어다 걸쳐 뒀다. 허술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뭐라도 해 둬야 손이 덜 떨릴 것 같았다.
신발도 못 벗은 채였다.
그는 충전기를 꽂고, 전원을 다시 켜지 않은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 대신 클라우드 메모만 와이파이로 한 번 더 열어 사진과 기사 캡처가 올라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다음에는 짧은 문장 몇 줄을 추가했다.
`에이치브릿지 외주 추락사`
`기사 축소`
`CCTV 점검 중 문구`
`영상 회수 = 실제 영상 처리 가능성`
`모텔 체크인도 흔적`
`숙소도 오래 못 씀`
잠깐, 회사로 전화했던 기자 번호가 머리를 스쳤다. 지금 이걸 보내면 누군가 받아 줄까 싶었지만 손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정도 조각만으로 누가 자기 편이 돼 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세면대에 가서 물만 한 번 묻히고 돌아왔을 때, 침대가 사람을 잡아당기듯 느껴졌다.
조금만 눕자.
한 시간만 눈 붙이고 움직이자.
해 뜨면 더 멀리 가자.
그런데 그 생각조차 오래 못 갔다. 정문 금지, 집 금지, 숙소 오래 못 씀.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 이미 다음 루프 지도가 머릿속에 있어야 했다.
도윤은 그대로 침대에 비스듬히 쓰러졌다. 천장 무늬가 흐릿하게 흔들렸고, 귀에서는 아직도 PC방 키보드 소리와 회사 복도 무전기 잡음이 겹쳐 들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몸이 먼저 깼다.
눈보다 등이 먼저 식었다.
아직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심장이 벌써 세게 뛰기 시작했다. 누가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고, 문을 두드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일어나야 한다는 감각만이 잠 속에서 도윤을 끌어올렸다.
그는 숨도 크게 못 쉬고 상체를 세웠다.
방 안은 어두웠다.
TV도 꺼져 있었고, 에어컨 바람 소리만 낮게 돌았다.
그제야 복도 쪽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카펫 위를 누르는 발소리.
한 사람 걸음이 아니었다.
둘, 어쩌면 셋.
도윤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조차 너무 크게 느껴져 양말도 안 신은 채 발끝으로만 움직였다. 문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감각이 더 선명해졌다.
열면 안 된다.
지금 이 문을 열면 끝이라는 확신이 문틈 아래 어둠처럼 번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욕실 쪽을 한 번 돌아봤다. 작은 창문이 있었지만 사람 하나 빠져나가기엔 턱없이 좁았다. 이 방엔 문 하나 말고는 길이 없었다.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방 맞죠?"
프런트 남자 목소리였다.
도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이어 다른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짧고, 감정이 없었다.
"문만 열어 주시면 됩니다."
도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문 아래로 복도 불빛이 얇게 스며들었다. 그림자가 한 번 지나가더니, 곧바로 문 앞에 바짝 붙어 멈췄다.
손잡이 쪽에서 아주 미세한 금속음이 났다.
카드키가 긁히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