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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cm의 풍경 일러스트

170cm의 풍경

캠퍼스를 걸을 때, 나는 더 이상 내 키를 의식하지 않는다. 대학교에는 키 큰 여학생들이 많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다. 이제는 이 키가 편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달랐다.

교복을 1년에 두 번 새로 샀다.

치마는 기장이 점점 짧아졌다. 작년 3월에 산 치마가, 12월이 되면 무릎 위로 올라가 있었다. 다리가 길어진 게 아니라, 키가 자란 것이었다. 블라우스는 가슴 부분에서 당기기 시작했다. 단추를 채우면 답답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단추 사이로 속옷이 비칠 것 같았다.

"또 샀어?"

같은 반 수진이가 새 교복을 보며 물었다. 부러움 반, 놀람 반의 얼굴이었다.

"응... 작아져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불편했다. 교복을 자주 사는 게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 다들 그렇게 보는 걸까?

엄마는 교복을 사러 갈 때마다 "벌써?"라고 말했다. 놀라움도 아니고, 불평도 아닌, 애매한 톤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가 원해서 큰 게 아니잖아.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블라우스가 또다시 작아졌다. 이번에는 가슴 때문이었다. 거울을 보니, C컵 브라로는 부족해 보였다. 살이 브라 위로 삐져나왔다.

"엄마, 속옷 사러 가야 할 것 같아."

이번에는 덜 부끄러웠다. 중학교 때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작은 목소리였다.

토요일 오후, 다시 그 속옷 가게에 갔다.

중학교 때 왔던 바로 그 가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직원이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더 큰 사이즈, 더 다양한 디자인의 속옷들이 있는 곳. 레이스가 달린 것도 있고, 예쁜 색깔들도 있었다.

"키가 정말 많이 컸네요. 중학교 때 오셨죠?"

직원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네..."

"사이즈 다시 재볼게요."

피팅룸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혼자 옷을 벗었다. 줄자를 두른 직원이 사이즈를 재더니, 잠시 멈췄다.

"와."

찰나의 순간이었다. 직원은 곧 다시 전문적인 표정으로 돌아왔다.

"70D네요?"

"...D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D컵이라니. 그게... 그렇게 큰 거야?

"네. 언더가 70이니까, 딱 맞는 사이즈예요."

직원은 밖으로 나가더니, 몇 개의 브라를 가져왔다. 이번에는 흰색만이 아니었다. 베이지, 연한 분홍색, 하늘색도 있었다.

하나씩 입어봤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설었다. 이게 정말 내 몸인가? 언제 이렇게 된 거지?

가장 편한 걸로 세 개를 골랐다. 피팅룸 밖으로 나오니, 직원이 포장하면서 말했다.

"부러워요. 이 나이에 D컵이면, 정말 좋으시겠어요."

순간, 나는 멈췄다.

부럽다고?

그게 부러운 거야? 달릴 때마다 불편하고, 교복 단추가 터질 것 같고,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게 부러운 거야?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만 빨개졌다.

"감사합니다."

엄마가 대신 인사했다. 우리는 가게를 나왔다.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부럽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지? 이게 좋은 거야, 아니면 나쁜 거야?'

복잡했다.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하지만 동시에 부끄러웠고, 불편했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원한 게 뭐였는지, 나도 모르겠었다.

그때부터 시선이 달라졌다.

아니, 이미 달라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느끼기 시작한 것뿐.

학교 복도를 걸을 때, 계단을 오를 때, 편의점에 갈 때. 남학생들이 쳐다봤다. 훔쳐보듯, 힐끔힐끔. 그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들이 어디를 보는지.

피부에 닿는 것 같았다. 시선이. 끈적하고, 불편하고, 역겨운 느낌.

카디건을 꼭 껴입게 됐다. 여름인데도. 더워도 벗지 않았다. 교과서를 가슴에 껴안고 다녔다. 어깨를 약간 웅크렸다. 작아지려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너 왜 맨날 카디건 입어? 덥지 않아?"

지은이가 물었다.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냥 좋아해서."

진짜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시선이 무서워서요'라고 어떻게 말해?

여학생들의 시선도 있었다. 부러움, 질투, 호기심이 섞인 눈빛. 몇몇은 대놓고 보기도 했다.

"너 가슴 진짜 크다."

탈의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때, 같은 반 민지가 말했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톤이었다.

"...응."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빨리 옷을 입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아니었다. 내 가슴을 봤다. 내 키를 봤다. 내 몸을 봤다. 그 안에 있는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생리 기간은 더 힘들었다.

평소에도 D컵이었지만, 생리 일주일 전부터는 더 커졌다. 브라가 조이는 느낌. 살이 눌리는 느낌. 민감해져서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체육 시간을 빠지기 시작했다. 핑계는 '배 아프다'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배도 아프고, 가슴도 아프고, 전부 다 불편했으니까.

"또 빠져? 너 요즘 맨날 빠지는데."

체육 선생님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봤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뛸 수는 없었다.

스포츠 브라를 입어도 소용없었다. 꽉 조이는 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뛰면 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내 몸인데, 내가 통제할 수 없었다.

'왜 이래? 왜 내 몸은 내 말을 안 들어?'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생각했다. 답은 없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편의점에 과자를 사러 갔다. 교복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머리를 묶고, 가방을 앞으로 멨다.

편의점에 들어서는 순간, 남자 손님 한 명이 돌아봤다. 30대쯤 돼 보이는 어른.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재빨리 과자를 집고 계산했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 남자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집까지 뛰어갔다. 숨이 찼다. 현관문을 잠그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방에 들어가 거울을 봤다.

나는 뭘 잘못한 거지? 이상한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화장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교복을 입고 편의점에 간 건데. 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거지?

거울 속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170센티미터가 됐다.

줄을 서면 맨 뒤에서 두 번째였다. 교실 뒤쪽 사물함을 썼다. 복도에서 친구들을 찾으려면 눈을 아래로 내려야 했다.

키가 큰 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을 때도 많았다. 높은 곳의 물건을 꺼낼 때, 사진을 찍을 때, 옷을 입을 때. 다리가 길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눈에 띄었다. 숨을 수가 없었다. 작고 평범해지고 싶었는데, 내 몸은 점점 더 크고 다르게 변했다.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누구지? 사람들이 보는 나? 아니면 내가 느끼는 나?'

거울 속의 나와 내가 느끼는 나는 달랐다. 거울 속의 나는 170센티미터에 D컵인, 키 크고 몸매 좋은 여고생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나는 여전히 150센티미터의 중학생 같았다.

두 개의 나 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지금, 대학 캠퍼스를 걸으며 생각한다.

그때는 몰랐다. 사람들이 본 건 '나'가 아니라 '변화'였다는 것을. 그들은 갑자기 커진 키에, 갑자기 나온 가슴에, 갑자기 성숙해진 외모에 당황했던 것뿐. 나도 당황했고, 그들도 당황했다.

지금은 안다. 그 시선들 너머의 진짜 나를. 변화하는 몸 속에서도, 나는 계속 나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걸 깨닫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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